그래도 주위 사람들의 권유와 걱정으로 박사과정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박사논문을 다시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 포닥과정의 지도교수님이자 멘토를 만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미국의 university of toledo의 교수님이 셨는데 한국에서 미국에 간지 20년만에 한국에 돌아오시게 되셨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아는 분이 그분을 소개시켜주셨습니다.
제가 SCM(supply chain management)로 박사과정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교수님이 그 분야를 연구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교수님을 만나게 되서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레퍼런스 지원도 받고 제가 어려운 문제는 이메일을 통해서 질문을 하면 메일로 답을 주시고 스카이프라는 화상채팅을 통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조금 뒤, 사고 능력이 다시 명료해졌을 때, 실패를 만든 원인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지도교수(X라고 합시다)는 매우 방임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계획서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고(“판단을 하기 전에 전체를 봐야 한다.”), 초고의 한 페이지도 제 글을 읽지 않았지요. 어떤 피드백도 주지 않고, 광범위한 질문과 일반적인 의견만을 주었습니다. 미흡한 부분을 수정하려고 하였지만, 제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 서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학기가 가까워지자 저는 X교수에게 논문 디펜스 날짜를 요청했고, 함께 날짜를 잡았지만 이틀 전에야 몇 가지 질문과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글을 수정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저는 코멘트에 대응하는 답변을 몇 페이지 작성하며 이것이 최선이기를 희망하였습니다. 결국 심사는 초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디펜스 당일, 저는 심사위원들 맞은 편에 앉았습니다. 네 사람을 마주보고 있는 것은 저뿐이었습니다. 모두 스프링 제본된 제 논문을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거의 반은 포스트잇 표시가 붙어 있었고, 솔직히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X교수의 카피는 한 번도 읽힌 적 없는 책처럼 아주 깨끗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질문을 시작했을 때(X교수는 자신은 질문과 의견은 가장 마지막에 덧붙이겠다고 말하며, 이를 미루었습니다), 저는 답을 하려고 했지만, 곧 패닉 상태로 빠져 들었습니다.
갈팡질팡 답을 하며 맞은편에 앉은 지도교수가 도움을 주거나 상황을 명쾌하게 만들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코멘트는 커녕,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질문이 더 구체적여지자 X교수가 논문 전체를 읽지 않았다는 점은 명백해졌습니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언급하는 부분을 전혀 찾지 못했고, 아무렇게나 카피본을 들춰 보는 모습이 제 가슴을 더 조여 오게 만들었습니다.
이 처참한 낭패 이후,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집으로 가는 것뿐이었습니다. 밖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차로 다가갔을 때, 남편은 환하게 웃으며 진심으로 축하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고, 이를 알아챈 댄은 “자, 얼굴 펴고 식당으로 가자.”고 했습니다(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식당에서 몇 명의 친구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 돼! 그냥 집으로 가자.” 저는 애원했습니다. 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친구들에게 축하는 없을 것이라고 알리려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저 이 답답한 수트를 벗고, 침대에서 영원히 뒹굴고만 싶었습니다.
“좋아, 하지만 나는 식당에 가는 게 당신한테 더 좋을 것 같아.”
“뭘 축하하자고? 내가 실패한 거?”
댄이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실패자가 아니야.” 그러고는 집으로 가는 동안 아무 말 없이 운전을 했습니다.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는 문을 열 기운 조차 없었습니다. 댄은 문을 열었고, 저는 진창에 빠진 마음으로 그를 밀치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딩동, 딩동!” 문자 메시지 알람이 계속 울렸습니다. 이를 다 무시하고 있다가, 얼마 후 세수를 하고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박사라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게 아니야. 너를 위해 있는 거야. 어서 와.”
“우리 중에 박사학위 있는 사람 아무도 없는 걸. 우린 아무 상관 안 해.”
아래 층에서 댄은 다시 “어서 옷 입고 식당에 가서 친구들이랑 놀자!”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잠자코 그를 따랐습니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 여섯 명의 진심어린 포옹과 다정한 말은 제게 힘을 주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제가 박사이든 아니든 말이지요. 그날 저녁 우리는 많이 웃었고, 깊은 우울로 빠뜨리려고 위협하는 검은 구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친구의 한마디가 굉장히 감동스러웠습니다. 제니는 한 팔을 제게, 그리고 한 팔은 댄에게 두르고는 속삭였습니다. “너, 첫 번째 결혼이 잘 되지 않았었잖아. 그런데 지금 이렇게 된 게 뭣 때문이라고 생각해? 모든 게 제대로 모든 게 되었을 때, 그 모습이 얼마나 굉장한지를 봐.” 남편은 칭찬에 미소를 지었고, 저는 어둠을 밀어내는 빛을 느꼈습니다. 저와 댄은 둘 다 결혼에 실패했었습니다. 하지만 스타벅스에서 6시간 30분 동안의 만남으로 서로의 ‘운명’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