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수없는 약속 - dol-ikilsueobsneun yagsog

편지지에는 그것만 적혀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무카이는 새벽, 옷장 속 골판지 상자 안에서 A4크기의 빨간색 클리어 파일을 집어 들었다. 파일에는 신문이 스크랩되어있었다. 1980년 6월 7일 기사로, 슈트케이스에서 여고생의 토막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뒤로 몇장 넘기자 『여고생 토막 살인사건 범인 체포』라는 글자와 함께 가도쿠라 도시미츠, 이이야마켄지라는 두 남자의 사진이 보였다.

설마 그 약속을 지켜달라는건가?...

무카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인 가오루와 호노카를 잃을 수 없기에 약속을 지킬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가게에 출근을 하자 또다른 한통의 편지가 와있었다. 편지에는 약속을 이행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만약 지키지 않는다면 무카이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재앙이 덮칠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무카이는그 때 이후로 다시는 가지 않았던 니시요코하마로 향했다. 사카모토 노부코를 만나기 위해, 아니 사카모토 노부코가 진짜로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그녀를 찾아가면서 사카모토 노부코를 만났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무카이는 사실 어린 시절, 얼굴의 반 이상이 멍으로 덮혀있어 부모에게 버림받고 사람들로부터 더러운 존재라고 손가락질 당했다. 그에 대한 반항심으로 강도, 폭행 등으로 소년원을 들락날락하는 생활을 했는데, 그 때 우연히 야쿠자와 엮이게 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무카이는 야쿠자 몇명을 칼로 찌르고 도망쳤는데, 그들로부터 숨어지내는 과정에서 사카모토를 만났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딸과 함께 살았는데, 고등학생이었던 딸이 두 남자에게 납치되어 끔찍하게 유린당하고 살해당했다고 했다. 그녀는 그런 놈들에게 사형이 아니라 무기징역이 선고된 것에 강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무카이에게 한가지 제안을 했다. 나중에 그 범인들이 출소하면 자기 대신 그들을 죽여달라는 것이였다. 그녀는 말기암 환자여서 그들이 출소할때까지 시간이 없었다. 대신 무카이에게 자신의 전재산을 줄테니 그 돈으로 신분을 사고 성형수술을 하라고 했다.

무카이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야쿠자의 위협 아래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고, 한편으로는 어차피 그녀는 죽고 출소할때까지는 한참 남았으니까 아무도 모를 것이다 생각하고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다카토는 무카이가 되어 지금의 행복한 생활을 살게 된 것이다.

무카이는 조사를 한 끝에 사카모토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사카모토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 약속을 또 누가 알고 있는 것일까. 무카이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사카모토가 그에게 제안할 당시에 자신은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가게로 돌아왔을때 또 다른 한통의 편지가 와있었다. 그 안에는 스마트폰이 들어있었고 전화가 울려 받아보니 그 협박범이였다. 일단은 한 명이라도 괜찮으니 약속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자신과 같은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이라 말했다. 무카이는 망설였지만 이를 예상한 듯 협박범은 그에게 호노카의 사진을 보냈다. 결국 그는 정육용 칼 한자루를 구입했다.

범인 둘 중에 가도쿠라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그를 찾아갔다. 기회를 노려 그에게 접근해서 같이 술을 마셨고 가도쿠라가 만취될때까지 기다렸다. 가도쿠라는 속이 안 좋은 듯하여 공원의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그 뒤로 무카이는 주머니 속 칼을 꺼내 천천히 가토쿠라에게 다가갔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무카이는 아내에게 자신의 정체를 이야기하고 과거에 저질러온 여러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협박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려했다. 그 때, TV 속에서 지난 밤 있었던 가도쿠라 살인사건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어떻게 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사실 무카이는 그를 죽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젯밤 그는 죽었다. 그녀에게 사실을 고백하려던 그는 아무 말도 못한채 집을 빠져 나왔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그에게 실망했다며 이것으로 단순한 협박이 아님을 알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당장 내일 중으로 남은 범인을 처리하지 않으면 호노카가 위험할 것이라는 협박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무카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가족을 지켜야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살인을 저지를 수 없었다. 그래서 협박범에게 협조하는 듯하면서 사실은 그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려고 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새로운 신분을 구해준 마카베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가 야쿠자에게 자신의 새 신분에 대해 얘기했다면 협박범이 자신의 과거를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카베는 사건과 관련이 없었다.
다음으로 무카이는 자기가 예전에 저질렀던 네건의 강도 사건의 피해자들을 찾아갔다. 찾던 중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세번째 피해자인 여성는 사건이 있은 후 자살을 했고, 그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아들의 이름이 고헤이라고 했다.

고헤이...
무카이는 바에서 일하는 고헤이가 바로 그 아들이라고 확신했다.

전화가 울렸다. 협박범은 호노카가 잠든 사진을 보내 협박을 하며 한 장소로 오라고 말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어떤 자동차 한대가 있었는데 뒷 트렁크에는 남은 범인인 이이야마켄지가 묶여있었다. 협박범은 그를 당장 죽이지 않으면 호노카를 죽이겠다고 말했다. 무카이는 고헤이를 설득하기 위해 그에게 알겠으니 그전에 자신에게 얼굴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얼굴을 드러낸 것은 고헤이가 아니라 오치아이였다.

알고보니 오치아이는 무카이에게 피해입고 자살한 그 여자의 애인이었던 것이다. 오치아이는 범죄피해자 모임에서 사카모토를 만나서 친해졌는데 그 즈음 사카모토가 무카이를 만났다. 그래서 둘은 서로의 복수를 하기 위해 무카이에게 제안을 했던 것이다. 범인들을 죽이고, 무카이를 살인범으로 만드는 계획.
오치아이는 자신의 애인을 강간하고 결국 자살에 이르게한 무카이를 원망했다.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이 무엇인지 느껴보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은 여기에는 오치아이가 모르는 진실이 있었다. 무카이가 강도짓을 하러 그 여자의 집에 들어갔을때 한 남자가 찾아왔다. 무카이는 그녀에게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 아들을 죽이겠다 협박하고 두살난 아이를 데리고 옷장 속에 숨었다. 문이 열리자 갖은 욕설과 함께 한 남자가 들어와 그녀를 폭행하고 강간했다. 그 남자는 바로 그녀의 친아버지였다. 그가 일을 마치고 집을 떠나자 무카이는 옷장에서 나왔고 그녀를 도와주려고 했다. 그때 애인이었던 오치아이가 들어왔다.

그 사건으로 무카이는 체포되었는데 그녀가 자신에게 당했다고 진술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서 절박한 바람을 느꼈다. 그녀의 아들이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더러운 존재로 평생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죄를 순순히 인정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오치아이는 믿을 수 없었다. 그 때 뒤에서 고헤이가 나타나 무카이의 말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남긴 유서에 그간 친아버지로부터 당해온 일과 고헤이가 그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것이 쓰여있었고, 그녀는 오치아이씨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자신은 이미 더럽혀졌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다고 했다.그 유서를 본 고헤이는 복수를 위해 그녀의 친아버지를 죽였고, 자살하기 전에 엄마가 사랑했던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서 오치아이의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다.

  유서를 받아든 오치아이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당신의 상냥함과 곧은 사랑이 나를 괴롭게 합니다.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미안해요.

"그렇다면 내가 그녀를 죽인 건가?"

그는 이 말과 함께 들고 있던 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려했다. 순간 무카이는 오치아이를 향해 몸을 던졌다. 이윽코 몸에 예리한 통증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다.

눈을 뜨자 침대옆에는 형사가 앉아 있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고 한다. 그는 꽤나 심각한 상황이였지만 지금은 괜찮아졌다. 형사가 가고 난 뒤 고헤이가 들어와 그에게 봉투하나를 건냈다. 아내 가오루가 보낸 것이었다.

"이혼 서류구나"

고헤이가 떠난 뒤 그는 주저주저하면서 안에 든 것을 숨죽이고 꺼냈다. 눈물이 흘러나와, 앞이 흐려졌다. 가족사진인듯 보였다. 가족사진을 뒤집어보니 글자가 쓰여있었지만, 시야가 번져 읽을 수 없었다. 무카이는 행복했던 세 사람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이 마르기만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