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값과 차이 200원 넘었지만
최근 격차 100원 이내로 좁혀져
급등 진원지는 디젤차 많은 유럽
최근 러 수입 길 막혀 수급 차질
싱가포르 현물시장 자극 값 껑충
정제마진 급등 정유사는 이익 챙겨
14일 오후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기흥휴게소 주유소 모습. 휘발유 1980원, 경유 1930원으로 두 유종의 가격 차이가 50원에 불과하다. 연합뉴스
“운전을 많이 하는 직업이라 연비 고려해서 디젤차로 샀는데, 요즘은 그 이점을 느낄 수가 없다. 일주일마다 넣는 기름값이 6만~7만원으로 지난 달과 비교해 체감상 만원 이상 오른 것 같다.” 인천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정명규(31)씨는 15일 <한겨레>에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거의 따라잡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운전자 쪽에서는 경유 가격 상승세가 심상찮다. 지난 14일 기준 오피넷을 보면, 휘발유 평균가격은 1988.04원, 경유는 1892.42원으로 집계됐다. 1년 전만 해도 두 유종 간 가격 차이는 200원을 넘었는데, 지금은 경유 가격 급등에 따라 격차가 100원 이내로 좁혀졌다. 머지않아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는 모든 유종 수급에 다 영향을 미치는데, 유독 경유 가격 상승세가 가팔라진 이유가 무엇일까.
국내 경유 가격 급상승 진원지는 유럽이다. 석유업계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유럽은 경유를 연료로 하는 디젤 차량이 많은 편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사람들의 이동이 줄었을 때 현지 정유업계가 경유 생산을 줄였다. 점차 사람들의 이동이 많아지면서 지난해부터 경유 소비량이 크게 늘었는데, 그러다 보니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부터 유럽 내에 경유 재고가 최근 5년 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수급 상황은 더 꼬였다. 이 관계자는 “유럽은 보통 경유의 20∼50%를 러시아로부터 가져왔는데, 이 길이 막히면서 경유 수급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유럽에서 경유 수급에 문제가 생기자 유럽의 유가 현물시장에서 경유 가격이 치솟았다. 유럽의 유가 현물시장은 미국과 아시아 현물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 유가는 ‘싱가포르 현물시장’에서 집계된다. 유안타증권 자료를 보면, 싱가포르 현물시장 기준으로 경유 가격은 지난 1월 배럴당 97.5달러였는데 지난 3월4일에는 126.8달러로 급등했다. 국내 경유 가격도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이 그대로 반영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국내 수급 상황과는 별개로 그 사이 국내 경유 가격도 크게 뛰었다.
글로벌 경유 가격이 급등한 결과, 정유사들의 순이익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정제 마진’도 급등했다. 정제 마진이란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 비용을 뺀 값으로, 정유업계 수익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업계에 따르면 3월 둘째 주 싱가포르 복합 정제 마진은 배럴당 12.1달러로, 전주(5.7달러)보다 6.4달러나 올랐다.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6달러 이하를 밑돌았던 정제 마진은 지난해 말부터 개선되기 시작해 올해 들어서는 6∼7달러대를 나타냈었다. 특히 등·경유의 정제 마진 상승폭이 컸다. 3월 둘째주 기준으로 경유 정제 마진은 측정 방식에 따라 30~40달러로 형성됐다. 전주 대비 15~20달러나 상승한 것이다. 업계에선 원유의 정제 마진 손익분기점을 4달러 정도로 본다. 최근 급등했던 경유의 정제 마진은 소폭 하락했지만, 증권업계에선 “러시아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경유 가격은 더 상승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유가가 상승하는 시기라고 해도, 보통 정유사들은 줄어드는 수요를 반영해 판매가 인상 폭을 조절한다. 이 경우에는 정제 마진이 급격하게 상승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럽의 수급 혼란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충격이 경유 가격에 갑작스럽게 반영되면서 정제 마진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국내 주유소들은 이렇게 상승한 글로벌 유가 지표를 그대로 국내 경유 판매가에 반영했고, 그 충격은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물론 일시적이겠으나, 국내 정유사들은 유럽발 경유 수급 불안 덕에 쏠쏠한 이득을 챙기고 있는 셈이다.
곽진산 기자
선박·산업용 차량 등 쓰임 많은 경유
국제 시장에선 더 비싸고 대우받지만
한국에선 휘발유보다 싸다는 인식 오래돼
올 초 우크라 침공 후 국제 경유값 급등
국내 경유값 오름세 휘발유보다 가팔아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기름을 넣고 있다. 이날 전국 평균 경유값은 전날보다 3.08원 오른 ℓ당 2115.58원으로, 전날보다 2.54원 오른 휘발유값 전국 평균(ℓ당 2107.17원)보다 큰 폭으로 올랐다. 김정효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이하 러-우) 전쟁으로 천연가스 공급이 준 유럽 쪽의 연료용 수요 증가에 따라 ‘생계형 차 연료’ 경유 판매가의 가파른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 휘발유값을 추월한데 이어 가격 격차를 더욱 벌려가는 모습이다. 기름값 아끼겠다며 경유차를 산 운전자들은 땅을 친다. 러-우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고유가 흐름, 그 중에서도 경유값이 계속 뛸 수밖에 없다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화물차·레미콘 같은 산업용 차량과 연근해 어선 등 디젤 차량과 엔진을 많이 사용하는 생계형 운전자들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클 것으로 분석된다.
19일 오후 4시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평균 경유 판매가가 ℓ당 2115.58원으로 전날보다 3.08원 올랐다. 휘발유값보다 오른 폭이 크다. 전국 평균 휘발유 판매가는 ℓ당 2107.17원으로 전날보다 2.54원 올랐다. 국내 경유값은 지난달 12일 1953.29원을 찍으며 역대 최고가(2008년 7월16일 1947.74원)를 넘어선 이후 연일 새 기록을 이어가는 중이다. 휘발유값 역시 이달 11일 2064.59원으로 역대 최고 기록(2012년 4월18일 2062.55원)를 넘어선 뒤 매일 새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경유값의 가파른 상승세는 올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시작됐다. 올해 1월1일 국내 경유 판매가는 ℓ당 1442.42원, 휘발유는 ℓ당 1623.79원으로 여전히 휘발유값이 높았다. 이후 지금까지 경유가 600원 이상 오르는 동안 휘발유는 400원 정도 오르면서 가격이 역전됐다.
우리나라에서 경유는 서민들의 생계형 차 연료를 대표했다. 1980년대까지 고급 차량의 연료는 대부분 휘발유였다. 경유를 쓰는 디젤 차량은 힘과 연비 효율은 좋지만, 압축비가 높은 연료를 폭발시키는 가동 특성상 진동과 소음이 커, 승차감이 좋아야 선택받는 승용차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간주됐다. 소비자들이 경유차를 찾는 주된 이유도 경유값이 싸, 휘발유차보다 연료비가 덜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친환경에 대한 관심 등에 따라 경유에 대한 인식과 처우도 달라졌다. 유럽에서 먼저 휘발유차보다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는 이유로 경유차 보급이 늘었고, 우리나라 정부도 2005년 이후 디젤 승용차 보급을 늘리면서 경유에 부과하는 세금을 올려 가격을 휘발유의 85%까지 올리는 제2차 에너지세제 개편 방안을 진행됐다. 앞서 2001년 시행된 제1차 에너지세제 개편 때는 경유값을 휘발유값의 75%에 맞췄는데, 두 유종 간 가격 격차를 좁힌 것이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2차 세제 개편 당시 소비자가을 기준으로 휘발유에 붙는 세금을 약 900원이라 한다면 경유는 약 650원으로 두면서 국내에서는 경유가 휘발유보다 싸다는 인식이 계속됐다. 그러나 국제 시장에서는 차량용뿐 아니라 선박·덤프트럭·굴착기·레미콘 등 다양하게 수요가 많고, 연비가 좋은 경유가 휘발유보다 배럴당 5달러 정도 비싸게 팔려왔다”고 말했다.
여기에 러-우 전쟁으로 경유차가 많은 유럽에 경유 공급이 줄고, 유럽 쪽의 경유 선물 수요에 따라 싱가포르경유선물지수가 상승하면서 국내 경유 판매가를 밀어올렸다. 조 실장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산업 활동이 줄면서 경유값이 휘발유값을 밑돌았는데, 지난해 말부터 국제 시장에서 경유값이 휘발유값을 역전했고, 올 초 러-우 전쟁으로 경유대란이 닥치며 품귀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 등의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로 국제유가는 6.8% 급락하며 흐름이 달라지는 모양새다. 17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7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이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6.8%(8.03달러) 떨어진 109.5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8월 브렌트유와 미국 휘발유 선물가격도 6% 가량 떨어졌다.
그러나 러-우 전쟁이 계속되며 유럽 쪽의 자동차 연료 공급망 불안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았고, 통상 국제 유가 변동이 우리나라 경유·휘발유 판매가에 반영되는 데 2~3주의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경유·휘발유값 고공행진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심수빈 키움증권 투자전략팀 애널리스트는 지난 16일 ‘국제유가, 추가 상승 가능성은?' 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여름철 에너지 수요가 많은) 3분기까지는 원유 시장 내 상방 리스크가 우세할 것으로 보이며, 하반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140달러 사이에서 등락을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현재 국제 유가는 110~120달러 선이다.
최우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