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가치중립성 논쟁 - gwahaggisul-ui gachijunglibseong nonjaeng

첫째, 과학적 발견은 가치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적어도 지식인층에서 기독교적 창조론 더 나아가서 기독교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이것은 종교에서 떠받드는 여러 가치에 대한 타격으로 이어졌다. 다른 한편으로 다윈의 진화론은 소위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 나는 다윈이 억울해할 것이기 때문에 스펜서주의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의 이데올로기로 이어졌다. 이 외에도 과학적 발견 또는 가설이 가치에 영향을 끼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둘째, 과학자들이 연구 주제를 선택할 때에 가치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병을 고치겠다는 의지에서 시작하여 어떤 의학 분야를 연구하기로 했다고 하자. 그 사람에게는 “병을 고치는 것이 옳다”라는 가치 체계가 있는 것이다. 만약 “진화가 잘 되게 하기 위해 죽을 놈을 죽어야 한다”라는 식으로 생각했다면 의학서를 불태우는 일에 전념했을 것이다.

셋째, 과학자도 인간인지라 자신의 편견이 과학 연구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과학자가 거의 백인 남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흑인과 여자(동물의 경우 암컷)를 연구할 때 편견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비판이 있다. 나는 그런 비판 중 일부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넷째, 과학자가 과학 대중화에 나설 때에도 가치가 영향을 끼친다. 도킨스가 『눈먼 시계공』을 쓴 이유 중 하나는 창조론을 반박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것은 기독교 같은 종교를 도킨스가 못마땅해 한다는 점과 연결되어 있다.

다섯째, 이제 과학 연구를 위해서는 보통 엄청난 비용이 든다. 따라서 “어느 연구에 돈을 댈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사람들은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에 돈을 대려고 한다.

여섯째, 과학 연구가 도덕적 규범의 정당화에 사용될 수 있다. 예컨대 “사형 제도는 범죄율을 거의 낮출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사형 제도를 폐지하자”는 가치 명제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모두 맞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도 과학은 수 많은 복잡한 방식으로 가치 문제와 얽혀 있다.

나는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다”라는 말이 적어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진리에 도달하고 싶다면 과학 연구를 할 때 가치를 배제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고쳐 말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슨 뜻인가? 과학 가설의 참/거짓을 따질 때에는 자신의 도덕적,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적, 종교적 가치를 잠시 옆에 제쳐 두어야 한다는 얘기다.

강간의 예를 들어 보자. 진화 심리학자들은 강간이 적응(adaptation)인지 부산물(by-product)인지를 두고 여전히 논쟁 중이다. 내가 알기로는 모든 진화 심리학자들이 강간은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간은 부도덕하니까 적응이면 안 된다 또는 적응일 리가 없다”라는 식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반면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많은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강간은 부도덕하기 때문에 적응일 리가 없다. 즉 인간이 때로는 강간을 하도록 설계되었을 리가 없다”는 식으로 믿는 듯하다. 즉 과학 명제의 참/거짓을 가리는 데 자신의 가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할 지를 결정할 때에는 당연히 가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명제 또는 가설의 참/거짓을 가릴 때에는 가치를 배제해야 한다. 과학자는 오직 논리적, 실증적 기준으로 참/거짓을 가려야 한다. 그래야 과학적 진리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 식으로 말하자면, 과학의 교권(magisterium)에서는 과학의 방법론에 따라야 한다. 어떤 과학 명제가 단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단지 비윤리적인 응용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단지 비윤리적인 이데올로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그 명제를 거부하는 것은 과학자가 취할 태도가 아닌 것이다. 이것이 “과학의 가치 중립성”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다.

지난해 12월 중국 선전시 법원은 중국 남방과학기술대의 한 생물학 교수와 동료 과학자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2개의 수정된 인간 배아를 에이즈 감염에 대항할 수 있게 유전자가위로 조작한 후 자궁에 착상시켜 쌍둥이를 포함한 세 명의 아기를 출산하게 했고 이 사실이 중국 의료법규 및 생명윤리를 위반했다고 법원은 판결했다. 사건 기소 이전인 지난 2018년 해당 과학자가 기자회견을 통해 세계 최초로 유전자 조작을 시행한 수정란으로부터 아기를 출산했다고 발표하면서 학문적으로, 사회적으로 논쟁거리가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 세계 감염자 수가 550만명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미국·유럽 학자들과 정치인들 사이에는 최초 발병 원인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학자들의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인간이 이 바이러스를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생성하지는 않았으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연구진의 실수로 실험 중 누출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원자핵의 핵 분열을 인위적으로 유도한다면 거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은 잘 알려진 것처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제안했다. 후일 미국 과학자들이 이 이론을 실험적으로 증명함으로써 원자력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중 아인슈타인이 미국 대통령에게 쓴 편지에서 이 실험 결과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암시를 했다는 에피소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에게는 과학의 가치중립성이라는 절대 명제가 있었다. 과학 지식탐구는 그 자체가 목적이며 과학자가 지식탐구를 수행하는 중에는 가치 판단이나 결정을 유보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과학자는 비록 실수를 해도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근거로 가치중립성이라는 명제를 사용했다. 이 명제에 대한 반론은 여러 학자에 의해 제기됐으며 토마스 쿤이라는 과학철학자는 과학기술 문명의 비판과 함께 가치체계의 변화와 경험, 역사적 우연 등으로 과학이 더 이상 보편적 진리가 아니며 목적의 합리성이 유일한 판단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가치중립성으로 실수가 덮어지던 지난 시대와 달리 이제 과학은 사회적이고 역사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과학 연구의 윤리적·법적 책임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통적인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다. 아직도 과학 연구의 순기능만을 생각하고 연구에 따른 파생 효과에 대한 판단과 책임은 해당 과학자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세계 주요 학계에서는 소극적이지만 연구주제 선택에 있어서의 개방성, 연구 방법의 윤리성, 연구 결과에 대한 비판적 수용, 그리고 평가에 대한 공정성 등 최소한의 기준을 각자 마련해나가고 있는 정도가 현실이다.

스마트폰부터 미사일까지 과학 기술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점점 커져 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라 과학 기술이 제 3자에 의하여 악용되거나 인류를 위협, 혹은 도덕적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 가운데서 사회는 과학자들에게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통찰하고 책임을 지라는 짐을 지우고 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이러한 현상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사실과 과학자는 죄가 없다. 죄가 있는 것은 과학적 사실을 악용한 제 3자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알리기 위하여 이 칼럼을 작성하게 되었다.

'단 하나의' 폭탄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15초, 히로시마. 미군 제509 혼성 전대 제393 폭격 비행대대 소속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 로부터 폭탄 한 발이 투하되었다. 그리고 이 폭탄 단 한 발은 역사를 통째로 바꾸기에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떨어진 폭탄의 이름은 리틀 보이, 다른 이름은 원자폭탄이었다. 히로시마 주민들은 곧 전속력으로 도주하는 두 대(에놀라 게이-원자폭탄 투하, 그레이트 아티스트-계측 장치 투하) 의 미군 소속 B-29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43초 후, 리틀 보이는 도시로부터 580m 상공에서 폭발하였다. 인류 최초의 실전 투입 원자폭탄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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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의 영향은 심대한 것이었다. 약 80,000 명이 원자폭탄 투하 당시에 즉사하였다.  약 70,000 명이 부상당하였으며, 90 퍼센트에 달하는 의사가 사망하였다. 폭심지에 있던 사람들은 섭씨 4,000 도에 이르는 열과 직면하여 말 그대로 증발하였다. 온 사방에 피부가 녹아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즐비하였고, 의사들은 처음 보는 상황에 무기력하게 환자를 죽어 가게 놔둘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음속에 달하는 거대한 돌풍이 이들을 덮쳐 모든 것을 파괴하였다. 최대 166,000 명에 달하는 사망자 중에서 군인은 2만 명이었다. 14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고통 속에서 숨지고 만 것이다. 히로시마 NHK 라디오, 히로시마 방면 전신, 히로시마 군 지휘부는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 단 한 발의 폭탄이 도시를 완벽히 파괴하여 놓은 것이다.2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우리는 위에서 원자 폭탄 폭발의 참상을 확인하였다. '원자 폭탄 투하가 정당한가?' 에 대한 논쟁은 잠시 미뤄 두자. 민간인 사망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원자폭탄을 개발한 일명 '맨해튼 계획'의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 소장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잘못일까? 아니면 원자폭탄의 투하를 승인한 미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의 잘못인가? 이것과 관련된 논쟁이 바로 과학의 가치중립성에 관한 논쟁이다. 

과학의 가치중립성

과학의 가치중립성이란 무엇인가? 과학적 사실, 즉 과학적 의미나 발견 그 자체는 중립적인 것으로서 다른 의미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이다.3 원자폭탄의 사례로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원자폭탄의 기본 원리 자체는 사회에 아무런 해악이나 이익을 끼치지 않는다. 그저 중성자가 발생했다면 연쇄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있을 뿐이다. 즉, 과학적 결론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 판단이나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것을 비도덕적인 방향으로 이용하는, 예컨대 이 과학적 사실로 원자 폭탄을 만들어 이용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과학의 가치중립성이다. 따라서, 만약 과학이 가치 중립적이라면 과학자는 기술이 낳는 사회 문제나 악용 가능성에 대하여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저 과학적 사실 탐구에만 집중하면 된다. 

나의 생각-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다

아직 논란이 많은 주제지만, 나는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보통 통념은 과학자가 과학 기술의 영향과 악용 가능성에 대하여 깊게 통찰하고 대비하여야 한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과학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과학자가 발견한 과학 기술이 끼칠 윤리적 영향을 가늠하는 것은 철학자나 혹은 사회학자들이 할 문제지 과학자가 할 일은 아니다. 또한 과학자에게 무리하게 발견한 과학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고려하라는 것은 과학자에게 많은 부담을 지게 할 수 있다.  과학자는 과학 기술을 악용하는 존재가 아니다. 대개의 경우에서, 과학 기술을 악용하는 사람과 과학 기술을 발견한 사람은 분리되어 있고, 설령 과학자가 과학 기술을 악용하였다고 하여도 그 기술을 발견한 것이 죄가 아니라 악용한 것이 죄일 뿐이다. 따라서 이러한 통념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보자. 한 과학자가 유전자 조작을 획기적으로 저렴하고 안전하게 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어떠한 사람이 이 기술로 무기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학자가 이 기술을 발견한 것이 죄가 되지는 않는다. 또한, 이 기술이 악용될 것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라 관련 법을 제정할 법조인, 영향을 조사할 사회학자, 인권 운동가들의 몫이 된다. 따라서 과학자는 진리를 탐구하고 그 사실을 세상에 공표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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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가치 중립성에 대한 반론과 나의 논파

과학의 가치 중립적인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따라서 과학이 가치 중립적이라는 증거도 많지만, 과학이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많다. 지금부터는 이 반론들을 알아보고 나의 생각에 따라 논파해보도록 한다.

먼저 하나의 반론을 들어 보자. 과학적 사실이 사람들의 가치 판단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치 암에 걸린 한 환자가 있다. 그 환자는 암의 고통과 불치 성을 알고 있다. 또한, 안락사에 대한 과학적 사실, 즉 안락사를 당하면 최대한 고통 없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는 안락사로 죽겠다고 결정하게 된다. 여기에서 허점은 무엇일까? 바로 결정은 과학적 사실이 한 게 아닌 전적으로 인간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사람이 내리는 것이지 과학적 사실이 내리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러한 반론도 제기된 적이 있다. 과학자도 사람이라, 편견이 과학적 연구에 반영될 수 있다는 반론이다. 예를 든다면 나치가 연구한 아리아인의 우월성에 대한 연구가 있다. 하지만, 사람의 편견이 과학에 간섭하게 되는 순간, 이는 더 과학이자 연구라고 할 수 없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수많은 실험과 검증 끝에 하나의 이론이 탄생한다. 즉, 사람의 편견이 과학적 사실에  개입할 틈은 없으며, 개입되었다는 것은 결과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4

다른 반론도 찾아보자. 연구 방향에 관한 반론인데, 과학자가 연구 방향을 설정하고 연구 주제를 정하는 데에 과학자의 가치 판단이 개입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물론 과학자들이 연구 방향을 수립할 때에는 과학자들 개인의 가치가 들어가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이 반론도 논파 될 수 있다. 연구 방향과는 상관없이, 수십 수백 번의 과학 실험으로 도출된 이론 자체가 내리는 결론은 가치 판단이 개입하지 않는다.  과학자가 '달은 치즈로 이루어졌다'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연구 방향을 달이 치즈로 이루어졌는지를 알아보는 연구를 기획할 수 있지만, 그 연구 방향이 달은 암석으로 이루어졌다는 과학적 '사실' 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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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가치중립성에 대한 다른 시각

단순한 '과학의 가치 중립성'이라는 말에는 너무 광범위한 범주가 포함되어 있다. 지금까지 나는 과학의 가치 중립성을 '과학적 사실, 즉 과학적 의미나 발견 그 자체는 중립적인 것으로서 다른 의미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는 것'으로 정의하여 설명하였지만, 다른 사람이 과학의 가치 중립에 대하여 다른 정의를 내린다면 위 반박은 유명무실해지게 된다.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과학 연구는 무조건 도덕적 판단의 잣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과학의 가치중립성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칼럼에서는 과학의 가치 중립성을 '어떠한 사회적 책임을 과학자에게 물을 수 없다'는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분석했다고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결론

이제 결론을 내릴 시간이다. 나는 어떠한 과학 기술의 악용에 대하여 과학자가 직접 개입하지 않는 한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과학자는 과학 기술의 사회적 영향이나 과학 기술의 악용 가능성에 대하여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다. 다만 아직 민감한 주제인 만큼, 앞으로도 더 충분한 고려와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