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음식문화 ppt - hangug-ui eumsigmunhwa 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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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식문화, 세시풍속, 시절음식, 향토음식

목차

가.한국의 자연환경과 식생활
나. 한국식생활 문화의 특성
다. 한국식생활 문화의 형성과 변천
라. 한국음식의 상차림
마. 향토음식
바. 세시(歲時)풍속과 음식문화
사. 통과의례(通過儀禮)와 음식문화

본문내용

바. 세시풍속과 음식문화

세시음식이란

일년 중 때때마다 만들어 먹는 음식으로 명절음식과 시절음식을 통틀어 일컫는다. 명절식으로 명절음식은 절일(혹은 명일)에 그 의미에 맞게끔 해먹는 음식을 말하며 시절식은 봄․여름․가을․겨울의 각 계절에 나는 제철 식품으로 만드는 음식을 말한다. 우리네 본래의 책력(冊曆)은 태음력(太陰曆)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1년을 24절기로 나누고 있다. 15일마다 한절기가 돌아온다. 이를테면 정월에는 입춘(立春)과 우수(雨水), 2월에는 경칩(驚蟄)과 추분(春分)이 들어있다. 이 절기에 따른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농업, 어업, 사냥, 채집, 가정생활의 갖가지 습속이 리듬 있게 이어진다. 이것은 세시(歲時), 월령(月令), 시령(時令) 등으로 불리어진다. 그리하여 절기와 생활이 결부되어 여러 명절이 정해지고 그 날은 맛있는 음식으로 조상에게 제시를 올리고 가족과 이웃이 서로 나누어 먹으니 이를 절식이라 하며, 계절에 따라 산출되는 식품으로 요리한 음식을 시절식(時節食)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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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ation on theme: "한국문화론 9. 한국의 음식문화, 제도."— Presentation transcript:

1 한국문화론 9. 한국의 음식문화, 제도

2 1.음식문화 *정의-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의 총칭 *개관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동부에 돌출한 반도로서 뚜렷한 사계절의 구분과 기후의 지역적 차이가 있어 각 지방마다 식품자원이 다양하게 생산된다. -지역적 특성을 살린 음식들이 고루 잘 발달 -조선시대를 기준으로 볼 때 궁중음식을 근간으로 하는 궁중 반가음식과 일반 백성들의 서민음식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 따른 향토음식도 특색있게 발달 -과학성과 필연성:5첩 반상의 경우 밥·국·김치·장·조치(찜)와 함께 나물·구이·저냐(포를 지진 음식)·자반·장아찌 등 5가지 찬물로 되어 있어, 하루에 필요한 영양소를 고르게 섭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맛 또한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다. -다른 나라 음식에 비해 정성과 노력 그리고 시간이 많이 드는 우리 음식은 조리과정을 통해 자기 수련도 되고 바른 태도와 바른 맛을 만들어내는 요령이 스스로 터득되어져 왔다. -이러한 음식문화가 정립되고 존속되어와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다.

3 (1)시대적 변천 1)선사시대 ①구석기 시대-식생활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 ②신석기 시대 -석기를 곱게 갈아서 만든 마제석기(磨製石器)와 흙을 빚어 구운 토기(土器)의 사용을 특징 -초기 식생활은 수렵과 어업, 특히 어업에 의존함. 남해안, 서해안 중부, 함경도의 북부 해안지방들에서 많은 조개무지가 발견 -후기에는 곡물생산이 시작 -황해도 지탑리유적(智塔里遺蹟)에서 돌가래·돌낫 등과 함께 탄화된 기장(피라고 보는 견해도 있음)으로 보이는 곡립(穀粒)이 발견 -평안남도 궁산리유적(弓山里遺蹟)에서 원시적인 농경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순록(馴鹿)의 뿔로 된 괭이와 동물의 치아로 된 낫 등이 발견 -조개무지에서 총 31종의 조개류가 발견, 도미·삼치·상어 등의 물고기뼈와 고래·바다표범·물개 등과 같은 바다짐승의 뼈가 발견, 이들이 모두 식품으로 이용되었음. -야생동물도 식품으로 이용, 부산 동삼동(東三洞)이나 함경북도 농포동(農圃洞) 조개무지에서 사슴·멧돼지·노루·고라니·야생개·산토끼 등의 뼈가 발견 -도토리·밤·마[薯]·칡뿌리 등과 같은 야생식물의 열매와 뿌리도 발견, 식품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 -농경이라는 새로운 생산적 생활양식이 도입되면서 곡물이 식품으로 쓰임, 곡물의 종류로는 황해도 지탑리, 평양 남경리(南京里) 유적 등에서 탄화된 피·기장·조 등의 곡립이 발견.

4 ③조리 ㄱ)날 것을 먹는 방식 -유적의 도구들로 미루어 통째로 먹기보다는 썰거나 절단해서 또는 가루로 부수어서 먹었음 ㄴ)불을 이용한 방식 -구석시시대의 주거지(상원읍이나 포전리 점말동굴)에서 난방장치가 발견 -신석시시대의 집터에서 어김없이 화덕이 발견 -화덕 주변에는 곡물과 함께 취사도구가 있어 굽거나 찌는 조리법을 가능 -곡물을 가는 갈돌이 발견, 곡물을 갈아 불에 익히는 조리법 -곡물을 갈아 약간의 수분을 첨가하여 불에 익혔다면 이는 죽요리를 의미 -죽은 우리나라 곡물음식의 최초 ④저장 ㄱ)띄워 저장하는 방식 -야생열매를 그릇에 오래 담아두면 자연히 발효가 되기 마련, 이는 인류가 배운 가장 최초의 저장법 -이것이 후에 술을 담가 마시는 양조의 방법으로 발전 ㄴ)말리는 방법 -어패류나 나무열매, 짐승의 고기를 말렸다가 추운 겨울이나 불의의 사고에 대비 -신석시시대의 움집 속에는 저장혈(貯藏穴)이 있어 나무열매나 곡물을 땅속에 묻어 저장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겨울철에는 어패류를 어름에 묻어 저장하는 냉동 저장법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 2)고대의 음식문화 -선사시대, 서기전 2,400년경에 고조선, 기자조선·위만조선, 서기전 107년경, 고구려·예맥·부여·옥저·낙랑 등을 국명으로 하는 독립 정치세력이 등장 -한강 이남지역에서는 마한·진한·변한 등으로 불리우는 삼한(三韓)이 성립 -철제농구가 어느 정도 보급된 상태 -벼농사를 비롯한 농경이 성했으므로 식생활의 다원화, 조리법의 발달, 국가간의 식품 교류 등 식문화에 많은 변화 -소형용기(小形容器)가 등장, 공동식기시대에서 개인식기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 -각종 곡류가 주식의 자리에 대치, 주부식분리(主副食分離)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음을 시사 ①식재료 ㄱ)곡류 -제천의식(祭天儀式) -유적지에서 나온 탄화미와 무문토기에 나타나 있는 곡물자국 등을 종합, 대략 피·기장·수수·조·보리·벼·콩·팥 등ㄴ)과채류 ㄴ)과채류 -농경이 어느 정도 발달된 상태, 일찍부터 야생식물을 식용, 과채류도 재배되고 있었을 것 -과채류는 쉽게 부패해 그 흔적이 남아있을 리 없고 기록 또한 거의 없는 실정 -『삼국유사』「고조선조」에 쑥과 마늘이 나오고 있고, 또 같은 책 「박혁거세조」에 박 정도가 나오고 있을 뿐이다. ㄷ)수산물류 -해안지방에서는 여전히 어로가 성행 -조개류로는 해진안댐조개·새꼬막·긴고둥·전복·홍합·국자가리비·피뿔고둥·두드럭고둥·살고둥·다슬기·우렁이 등 -생선으로는 도미·삼치·상어·조기·모래무지·농어·복어·가자미 등이 있었다.

6 ㄹ)육류 -전적으로 사냥에 의해 얻어지던 육류가 원삼국시대에 이르러 사육에 의해 얻어졌다
ㄹ)육류 -전적으로 사냥에 의해 얻어지던 육류가 원삼국시대에 이르러 사육에 의해 얻어졌다. -사육은 특히 북부지방에서 발달 -『삼국지』「위지동이전 魏志東夷傳」에는 “부여인들이 짐승을 기르는데 능숙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육된 동물은 말·소·돼지·개·닭 등이었다. ②조리법 ㄱ)곡물의 조리 -시루 발견, 시루의 밑바닥에는 검은 응집물이 있어 불을 때서 솥으로 사용한 흔적 -곡물을 가루 내어 죽을 쑤는 외에 시루에 찌는 방식이 있었음(떡) -만들어진 떡은 당시 국가들이 가졌던 각종 제천의식에 쓰였고, 이러한 전통이 훗날 떡이 제향음식의 주요 품목이 되는 계기 ㄴ)육류의 조리 -최남선(崔南善)의 『고사통 古事通』에 따르면 이때에 한대(漢代)로부터 갱저(檟鵄)와 맥적(貊炙)이라는 숙육법(熟肉法)이 들어와 연향(宴饗)의 내용을 성대하게 만들었다고 하였다. -저(煮)란 고기찜, 적(炙)이란 고기구이, 갱(檟)은 서북의 유목민족, 맥(貊)은 동북의 부여계 민족을 가리키는 것, 맥적은 부여식 고기구이를 말하고 맥적을 중심으로 한 식탁을 맥반(貊盤)이라 칭한다. -고기찜과 구이의 조리법이 있었음 ③저장법 ㄱ)띄우는 방식, 곧 발효법 -술과 장이 그 대표적인 보기 -호형토기(壺型土器)는 술이나 장의 가공 저장용으로 쓰였던 그릇 ㄴ)굽는 방식 -고분이나 유적에서 발견되는 탄화미(炭化米)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입증

7 3)삼국·통일신라시대 -4세기경에 이르러 고구려·백제·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하는 삼국시대 -7세기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 -벼농사의 정착이 어느 정도 음식문화에 안정, 국가의 형성과 함께 계층화 된 신분제도가 식생활 자체를 귀족식과 서민식으로 분리시키는 계층화를 이룩 -농경 중심의 제천의식과 이에서 비롯한 명절 등의 행사가 식생활의 폭을 다양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삼국의 음식문화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식생활의 계층적 형태를 완성 -농경의 발달과 쌀의 생산 및 외국과의 교류가 성행됨에 따라 한국음식의 체제가 정착된 시대 -이렇게 정착된 음식문화는 일본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①식재료 ㄱ)곡물 -쌀·피·기장·수수·조·보리·콩·팥 외에 부여의 백제 군창지에서 밀과 녹두가 출토. 쌀은 주로 귀족들의 주식, 서민들의 주식곡은 대개 보리와 콩 ㄴ)과채류 -도토리·밤·잣·마 외에 무·상추·복숭아·오얏(자두)·배·밀감 등이 기록에 전한다. -상추는 수(隨)나라 사람들이 그 종자를 입수하기 위해 비싸게 사갔으므로 천금채(千金菜)라 불렸다. -잣 또한 그 질이 좋아 신라의 사신들이 중국에 갈 때 가지고 가서 비싼값에 팔았다고 한다. -밀감은 이때부터 이미 제주의 특산물이었으니, 일본에서는 이 밀감을 구하고자 사람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약용식품으로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는 삼이 식용된 것도 이때이다. -통일신라로 오면 미나리·오이·앵두·참외 등의 과채류도 등장

8 ㄴ)수산물류 -항해술의 발달, 지중양식(池中養殖) 등으로 비교적 풍부한 수산물이 식생활을 풍족하게 해주었다
ㄴ)수산물류 -항해술의 발달, 지중양식(池中養殖) 등으로 비교적 풍부한 수산물이 식생활을 풍족하게 해주었다. -이 시대의 구체적인 수산물의 종류는 『해동역사 海東繹史』「물산지 物産志」에 웅어·새우·조기·상어·돌고래·가자미·숭어·문어·농어·낙어·반어·다시마 등이 보인다. ㄷ)육류 -신라에서는 목숙전(㉰典)이란 관아를 두어 목축에 쓰이는 사료를 담당, 양을 사육하는 양전(羊典), 고기를 다루는 육전(肉典)도 있었다. -도서지방에 방목장(放牧場)이 있었다는 기록, 신라의 목축이 매우 기업화되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고구려에서도 안악3호분(安岳三號墳) 벽화에 외양간과 마구간이 그려져 있어 소·말 등의 가축이 사육되었음 -백제에서도 소·돼지·닭 등이 사육되었다는 기록 ㄹ)조미료 -암염(岩鹽)이나 해안의 암초·해초 등에서 소금기를 채취하던 단계를 거처 이 시대로 오면 차부(鹺府)라는 관청을 두어 소금에 관한 일체의 업무를 맡고 있다. -이는 소금이 필수적인 조미료의 하나로 식생활에 정착되었음을 말해주는 것 -원삼국시대에 벌써 만들어졌던 장(醬)이 본격화, 꿀·기름·천초·생강 등도 사용. -외국과의 교역을 통해 들어와 일부 상류층에서 조미료로 쓰던 귤피(橘皮)도 있었다.

9 ②조리법 ㄱ)떡의 발달 -쌀을 중심으로 한 농업이 크게 확대되면서 한층 발달 -삼국시대의 고분에서 어김없이 발견되고 있는 시루를 비롯하여, 고구려 벽화의 시루모습,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에서 산견되는 떡에 관한 기록 등은 이러한 사실을 잘 증명 -이 시대의 떡은 제향음식으로 쓰이는 외에 명절과 같은 특별한 날에 만들어졌다. ㄴ)김치의 활용 -김치가 중요한 부식 -고추가 쓰이기 이전이므로 장이나 젓갈에 저려 만든 짠지의 일종 -삼국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일본 나라시대(奈良時代)의 ‘나라쯔께’라는 것도 이 때의 짠지가 전해진 것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천초·생강·귤피 등 향신미(香辛味) 나는 조미료를 이용하여 국물김치가 개발되기도 하였다. ㄷ)포(脯)의 등장 -『삼국사기』「신라본기 신문왕조」에 신문왕의 결혼예물로 포가 들어있다. -이는 육류를 얇게 저며서 말린 오늘날과 비슷한 육포가 이 시대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 -육류를 말려 저장하는 방식은 삼국 이전부터 있어 왔으나 이때는 대개 고기를 통째로 말려 저장하는 방식이었으므로, 여기서 말하는 포는 한 단계 발전한 육류가공법인 셈이다.

10 ㄹ)기호식의 다양화 -술 외에 차(茶)가 새로운 기호음식으로 등장 -『삼국사기』에 따르면 차가 전래된 것은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당나라) -차가 이땅에서 직접 재배된 것은 그후로도 200여년의 세월이 지난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이르러서였다. -통일신라시대로 오면 차에 곁들여 먹는 기호품으로 강정과 유밀과가 만들어졌다. 강정은 당의 면견(麵繭)이 전래된 것으로 이때에는 견병(繭餠)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유밀과는 그 본고장이 인도로 추정되는데, 불교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ㅁ)국의 등장 -통일신라시대의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의 글에 "헛되게 밥만 먹으니 국에 맛을 조화하기는 어려울것 같습니다."라는 구절이 보이고 있는데, 우리 문헌에서 국[羹]에 관한 기록은 이것이 처음인 듯 하다. -고려시대에 크게 발달하여 그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우리 음식의 대표적인 부식으로 뿌리를 내린 국은 바로 이 시대에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③저장법 -장류(醬類)가 한층 발달, 저장식품이 고안 -젓갈을 이용하여 저장하는 방법도 고안 -장빙(藏氷)의 시작, 각종 기록과 유적으로 남아있는 석빙고 등을 볼 때 결빙기에 천연빙을 채취하여 저장했다가 여름철에 식품을 저장하는 데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11 4) 고려시대의 음식문화 -고려왕조는 관료제도의 발달과 불교적 분위기의 심화를 그 특징으로 했던 시대 -식생활도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주로 채식을 강조하는 경향이 짙었다. -몽고로부터 설렁탕이 들어오면서 차차 육식으로 변화 -원으로부터의 소주·상화(霜花)·포도주·후추·설탕 등의 도입이 식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 -고려의 음식이 원으로 전래, 고려병(高麗餠)이라 불리우던 유밀과를 비롯하여 고려하인(高麗蝦仁)·고려육(高麗肉)·고려유령(高麗乳領) 등과 같이 고기를 기름에 튀기거나 지지는 요리가 그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유밀과·떡·국수 등 곡물로 된 별식이 현대와 거의 다름없는 방법으로 조리, 두부·콩나물과 같은 콩가공식품도 개발 -국이 다양하게 개발, 밥과 국이라는 기본적인 상차림의 구조가 정착 -소금의 전매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 식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고, 고려청자기의 놀라운 발달이 식생활을 문화적인 차원으로 높여 주었다.

12 ①식재료 ㄱ)곡류 -앞시대의 다양한 곡류가 고려 때에도 모두 생산 -『해동역사』에 따르면 콩류로는 특히 검은콩과 완두콩이 생산, 조는 가장 생산량이 많았다. -전쟁으로 굶주린 자가 많아 역사상 최초로 원(元)으로부터 강남미를 수입하기도 하였다. ㄴ)육류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했던 만큼 초기에는 여러번의 도살금지령이 내려져 식탁에서 고기를 찾기는 힘들었다. -13세기 중엽에 이르러 몽고인들과 겨루게 되면서 때로는 몽고의 풍속대로 육류로 된 음식을 만들어주어야 했으니, 이로부터 다시 육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육류로 쓴 것은 소·말·돼지·닭·거위·오리였고, 서민들 사이에서는 개고기가 널리 식용되었다. -토끼·사슴·멧돼지·노루·꿩 등 야생동물의 고기도 식용 -『고려사』에는 신우(辛禑)왕이 여항(閭巷)에서 대나무장대로 참새를 나꿔 구워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ㄷ)수산물류 -『고려도경 高麗圖經』에 따르면 고려인들이 즐겨 먹던 수산물은 미꾸라지·전복·게·새우·굴·조개·소라·해조·곤포(昆布) 등이 었다. -특히 새우잡이가 성하여 젓갈을 만들어 귀천이 모두 즐겨 먹었고, 게잡이도 성하였다. ㄹ) 과채류 -고려 때의 문장가 이규보(李奎報)는 「가포육영 家圃六詠」에서 오이·가지·무·파·아욱·박 등 6가지 채소에 대하여 읊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6가지 채소는 이규보 자신이 그의 채마밭에 심어 식용하던 채소이니, 이것이 이 시대의 주된 채소였다고 볼 수 있다. -더덕·고사리·송이버섯 등도 식용되고 있었음이 이때의 문헌에서 산견된다. -과일로는 모과·배·오얏·살구·감·대추·밤·복숭아·앵두·능금·잣·유자·귤 등이 있었다. -이 시대 말엽에는 홍다구(洪茶丘)에 의해 수박이 재배되기 시작, 포도도 포도주를 담가 먹을 정도로 성하였다.

13 ㅁ)조미료 -초·참깨·참기름 등과 함께 외국과의 교역을 통해 후추가 들어와 조미료로 이용되었다
ㅁ)조미료 -초·참깨·참기름 등과 함께 외국과의 교역을 통해 후추가 들어와 조미료로 이용되었다. -단맛을 내는 데는 꿀과 물엿이 쓰였고, 송(宋)나라나 남해상인으로부터 사들인 설탕이 이용되기도 하였다. ㅂ)가공식품 -콩을 가공한 콩나물과 두부가 이때 처음 시작 -콩나물은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에 대두황(大豆黃)이란 이름으로 나오는데, 콩를 싹트게 하여 햇볕에 말려 약에 쓴다는 내용이 부연되어 있다. -두부는 고려 말의 학자인 이색(李穡)의 시에 등장하고 있는데, 연하고 물렁물렁한 두부의 특징은 물론 영양가가 많다는 내용까지 담겨 있다 ②조리법 ㄱ)다양화된 곡물음식 -주식으로 쌀밥, 보리에다 피를 섞어 지은 잡곡밥, 팥죽·칼국수·메밀국수 등을 만들었다. -별식으로 백설기떡·감설기떡·쑥떡·흰떡·꿀떡·수단(水團) 등의 떡류를 비롯하여 유밀과·다식(茶食)·상화·만두 등도 만들었다. ㄴ)국의 발달 -국이 크게 발달 -된장국을 예로 들더라도 곤포로 다시를 낸 다음 된장을 넣어 끓이다가 파·마늘로 양념함으로써 지금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조리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의 종류도 다양하여 몽고의 영향으로 만들게 된 설렁탕을 비롯하여 토란국·조갯국·아욱국·순채냉국·다시맛국·미역국 등이 있었다.

14 ㄷ)기호식품의 발달 -보편적인 기호품으로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술이 이 시대로 오면 매우 다양 -한림학사들의 공동작품인 「한림별곡 翰林別曲」에 등장하는 술만 예로 들더라도 잣술·솔술·예주·댓잎술·배술·오가피술 등의 이름이 보인다. -기호품으로는 우유가 있었다. 원나라와의 교류 이후 국가의 상설기관으로 우유소(牛乳所)가 생겨 이곳에서 우유를 공급했는데, 이때의 우유는 주로 낙죽(酪粥)의 원료로 쓰였다. ㄹ)육류 요리 -설리자[雪裏炙]라 하여 소의 갈비나 염통을 기름에 양념하여 굽다가 반쯤 익으면 냉수에 담갔다가 다시 센불에 굽는 요리가 있었는데, 주로 술안주로 쓰였다. ③저장법 ㄱ)쌀 -흙으로 높게 바닥을 만든 다음, 쌀가마를 쌓아 올려 그 위를 풀로 덮어 비바람을 막았다. -이러한 쌀 저장법은 가마니를 쌓아 올리는 방벙이 좋아서 공기가 잘 통하고 몇 해를 지나도 햅쌀과 같았다고 하니, 그 저장법이 매우 발달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ㄴ)밤 -도기(陶器)에 넣어 흙 속에 묻었다. 이렇게 저장한 밤은 해를 넘겨도 손상이 없었고 여름철에도 그 맛이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ㄷ)어육류 -생선은 소금에, 육류는 계피 같은 향신료에 각각 절여서 말려 저장했다. ㅁ)채소 -무는 소금에 절였다가 채소가 없는 겨울에 먹었고, 무청은 장 속에 넣었다가 여름철에 먹었다. -채소를 소금에 절였다가 마늘·생강 등의 향신료를 넣어 버무려 두었다가 먹는 김치의 방법이 널리 쓰이기도 하였다.

15 5)조선시대의 음식문화 -조선왕조는 유교를 국교로 했던 만큼 유교적 정치윤리가 강조하는 사례(四禮), 그 중에서도 조상에 대한 봉제사(奉祭祀)와 가족제도에 따른 식생활이 크게 중요시 된 시대였다. -중인(中人)계급의 대두로 인한 상하층의 식생활 교류가 일반 서민에게까지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 -외래식품이 널리 전래 보급되어 식생활의 다양화를 가져왔다.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전래된 고추는 고춧가루로 가공되어 그 이전까지 담백미(淡白味)였던 우리 음식을 조화미(調和味)로 바꿈에 따라 한식(韓食)의 특성을 배가시켰고, 대표적인 부식인 김치를 완성시켜주었다. -3첩·5첩·7첩·9첩·12첩 등으로 구분된 첩수별 반상차림이 정착한 것도 바로 이때이다. -한마디로 조선시대는 한식 완성기라고 볼 수 있다. ①식재료 ㄱ)곡류 -벼·기장·피·당서·팥·콩·보리·수수·밀 등 9가지 품목의 곡식을 심었다. -이 시대 중엽에 처음으로 옥수수가 옥촉(玉凊이란 이름으로 전래되었다. ㄴ)육류 -일상적인 부식으로는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꿩고기 등이 주로 쓰였고, 개고기가 여름철 보양식으로 크게 유행하였다. -말고기를 포로 만들어 먹었다. -후기로 오면 쇠고기 소비의 수요격증과 쇠고기 편식(偏食)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된다.

16 ㄷ)수산물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조선시대의 어류는 근 50여 종으로 현재 어획되고 있는 어류가 거의 망라되고 있다
ㄷ)수산물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조선시대의 어류는 근 50여 종으로 현재 어획되고 있는 어류가 거의 망라되고 있다. -특기할 사항으로는 오늘날 즐겨 먹는 명태가 조선조 중엽에 명천에서 태모(太某)라는 사람이 처음 잡아 그 이름을 명태라 했다는 것이다. -멸치어업이 크게 성행하여 젓갈로 만들어져 새우젓과 함께 김치류에 들어간 것도 이때이다. ㄹ)과채류 -19세기 초의 문헌인 『임원경제 林園經濟』에 따르면 아욱·부추·갓·쑥갓·평지·시금치·상추·미나리·순채·여뀌·생강·두릅·고수풀 등 다채로운 채소류가 식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버섯류도 고려 때의 송이버섯 외에 표고버섯·석이버섯 등이 식용되었다. -중엽에는 우리 음식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준 고추가 전래, 토마토가 남만시(南蠻枾)라는 이름으로, 호박이 호과(胡瓜)란 이름으로 각각 전래되었다. -조엄(趙曮)에 의해 고구마가 감저(甘藷)란 이름으로 처음 이 땅에 들어왔고, 순조 때에는 감자가 북저(北藷)란 이름으로 전래되었다. -과일류는 고려시대부터 먹어오던 종류 외에 효종 대에 중국의 빈과(ね0xFD29가 사과란 이름으로 전래되었고, 견과류인 땅콩이 낙화생이란 이름으로 이우촌(李雨村)에 의해 이 땅에 들어왔다. ②조리법 -조선조 후기로 오면 현재와 다름없는 여러가지 조리법을 볼 수 있다. -발효법(醱酵法 : 술·장·초·김치), 굽는법(생선구이·고기구이), 말리는법(어포·육포·곶감·건율), 찌는법(고기찜·생선찜·떡류), 조리는법(생선조림, 연근·우엉 등과 같은 근채류 조림), 볶는법(고기볶음·나물볶음), 지지는법(생선지짐·나물지짐, 화전·부꾸미 등과 같은 떡류), 무치는법(나물), 끓이는법(죽·밥·탕류), 삶는법(수육·나물, 경단·단자 등과 같은 떡류), 짜는법(기름류), 가루를 내는법(깨소금·고춧가루·밀가루) 등이 모두 이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다.

17 ③저장법 ㄱ)어육류 -생선류는 말리는 방법 외에 생선을 독에 넣고 소금을 뿌린 다음 땅에 묻는 염해법(鹽醢法)이 있었다
③저장법 ㄱ)어육류 -생선류는 말리는 방법 외에 생선을 독에 넣고 소금을 뿌린 다음 땅에 묻는 염해법(鹽醢法)이 있었다. -육류도 말리는 법과 함께 연기에 쏘이거나, 고기에 술을 뿌려 삶아서 묻는 법, 장에 묻어두는 법 등 다양한 저장법이 개발되었다. ㄴ)과일 -감·밤·대추 등은 햇볕에 말려서 저장 -말린 과일은 형태와 맛이 본래의 과일과 크게 달라 그 이름도 곶감[枾諸]·율저(栗諸)·조저(棗諸)라고 달리 불렀다. ㄷ)채소 -고춧가루의 보급으로 채소를 가공 저장하는 김장법이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정착되었다. -이 시대에 있어서 김장은 1년의 식생활 중 가장 중요한 연중행사였는데, 그 시기는 「농가월령가」 10월조에 “무·배추 캐어들여 김장을 하오리라….”라고 했듯이 대개 음력 10월이었다. -김장독은 추위에 얼어터지지 않도록 짚으로 싸서 땅에 묻거나, 짚으로 삼각형의 가가(假家)를 지어 그 속에 보관하였다.

18 *절기별 음식 1)입춘일-이른 봄 눈이 녹을 때 산 속에서 자라는 산개(山芥)를 비롯하여 승검초·파싹 등을 살짝 데쳐 초장에 곁들여 절식으로 삼는다 2)설날-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이날은 흰떡국을 끓여 먹고, 약식·인절미·단자류·저냐·편육·강정·식혜·수정과 등 여러가지 음식을 마련하여 세찬상에 올린다. 3)상원(정월 대보름)-오곡밥·약식·부럼·귀밝이술·묵나물·복쌈 등이 절식으로 마련된다. 이 가운데 부럼은 1년 동안의 태평을 기원하고,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십사 하고 축수하는 의미에서 견과류를 깨 먹는 것이다. 또한 묵나물은 여름에 나오는 채소를 말려 묵혔다가 이날 삶아서 볶은 것이다. 이밖에 귀밝이술은 귀가 밝아진다고 하여 데우지 않은 술을 대보름날 아침에 마시는 것이며, 복쌈은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취나물·배춧잎·김 등으로 밥을 싸서 먹는 것이다. 4)중삼절(삼짇날)-진달래꽃을 따다가 화전을 부쳐 먹거나,두견주를 담가 마신다. 또 오미자 국물에 녹두국수와 잣을 띄운 화면(花麵)을 먹기도 하고, 녹두국수에 붉은 물을 들여 꿀물에 띄운 수면(水麵)을 먹기도 한다. 5)등석일(초파일)-이때쯤 돋어나는 느티나무싹을 따다가 멥쌀가루에 섞어 느티떡을 만들어 먹거나, 볶은 콩, 삶은 미나리 등을 절식으로 삼는다. 6)단오-수리취절편·각서(角黍)·제호탕 등이 절식으로 꼽힌다. 이 중 수리취절편은 쑥을 넣어 만든 떡을 수레바퀴 모양으로 찍어 낸 절편이고, 각서는 밀가루 반죽을 둥글게 빚어 소를 넣은 다음 양쪽에 뿔이 나게끔 오무려 싼 만두의 일종이다. 이밖에 제호탕은 오매육·초과·백단향·축사 등을 곱게 빻아 꿀과 함께 고아서 물에 타 마시는 청량음료이다. 7)유두일-수단(水團), 건단(乾團), 상화병(霜花餠), 연병(連餠)등을 만들어 절식으로 삼는다. 수단은 멥쌀가루나 찹쌀가루를 쪄 구슬 처럼 둥글게 빚은 다음 이것을 다시 꿀물에 넣고 얼음에 채운 것인데, 계절적으로 유두일(음력 6월 15일)이 햇보리의 수확 시기이므로 보리로 만들기도 한다. 건단은 수단과 같은 방법으로 하되 떡을 물에 띄우지 않은 것이다. 상화병은 밀가루에 술을 넣고 반죽하여 부풀린 다음 소를 싸서 찐 음식이고, 연병은 밀전병을 부쳐 소를 넣고 싸서 각기 다른 모양으로 오무려 싼 음식이다.

19 8)삼복-하지(夏至)로부터 세째 경일(庚日)을 초복(初伏), 네째 경일을 중복(中伏), 입추(立秋)로부터 첫째 경일을 말복(末伏)이라고 하는데, 이 초복·중복·말복을 가리켜 삼복(三伏)이라고 한다. 삼복 기간은 여름 중에서도 가장 무더운 때이므로,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절식으로 개장국·장어국·육개장국·삼계탕· 임자수탕 등을 만든다. 9)칠석-절식으로 밀전병과 밀국수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날 이후가 되면 밀가루에서 밀냄새가 나기 때문에 마지막 밀음식 향연이 되는 셈이다. 10)백중-일명 백중(百衆)·백종(百種)·중원(中元)이라고도 한다. 이날은 고래로부터 남녀가 모여 음식을 차려놓고 노래와 춤을 즐기던 날이나, 신라에서 고려로 오면서 불교가 성해짐에 따라 우란분재(盂蘭盆齋)와 같은 불교의 유풍이 뒤섞이게 되었다. 절식으로는 각종 과일과 튀각·부각 등과 같은 사찰 음식이 전해진다. 11)추석-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의 2대 명절로, 이 때(음력 8월 15일)쯤에는 햇곡식이 익을 때이므로, 이 햇곡식으로 송편을 빚어 먹는다. 또 토란이 많이 나는 철이므로 토란국을 끓여 먹기도 한다. 이 밖에 햇버섯, 도라지, 쇠고기 등을 갖은 양념을 하여 볶아 꼬챙이에 꿴 화양누르미, 살이 오른 닭으로 만든 닭찜 등도 만들어 절식으로 삼는다. 12)중구(중양절)-황국이 은은한 향기를 내 뿜으며 필 때이므로 이것을 따서 국화전을 지지고, 국화주를 담근다. 또한 이 때쯤 무르익는 배와 유자로 화채를 만들기도 한다. 13)상달-음력 10월을 일 년 12달 중 첫째가는 달이라고 하여 상달이라 한다. 이때에는 고사를 지내기 위하여 백설기나 팥시루떡을 찐다. 또 신선로가 절식으로 전해오고 있다. 14)동지-찹쌀가루로 새알심을 빚어 넣어 끓인 팥죽을 절식으로 삼는다. 팥의 붉은 빛이 액을 막아준다는 속신에서 비롯된 절식 풍속이다. 15)납일-동지가 지난 뒤 셋째 미일(未日)을 납일(臘日)이라 한다. 이날이 되면 궁에서는 종묘와 사직에 큰 제사를 지냈는데, 특히 사냥한 산돼지와 산토끼를 제물로 사용하였다. 이날은 또 참새를 잡아 어린이들이 먹으면 마마를 깨끗이 한다고 하여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기도 하였다. 절식으로는 골동반과 골무떡이 있다.

20 2.교육 제도 (1)역사 1)고조선-준왕이 위만에게 박사 직위를 수여하였다. 2)원삼국 시대-중국에서 한자를 들여와 사용, 초보적인 교육 체계가 발달하였다. 3)삼국 시대-중국의 유학을 흡수, 무예를 연마 4)고려 시대-음서와 과거제가 등장 5)조선 시대-성균관, 집현전, 서당으로 성리학 연구 장려 6)일제강점기-근대적 교육 제도 도입 7)미군정기-현대 한국 교육의 기본 틀 마련 ,

21 (2)교육제도 -한국의 학제는 6-3-3-4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2)교육제도 -한국의 학제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모든 한국 학생들은 나이 제한 없이 각각 학생들의 능력에 따라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을 제공받는다. -학교 체제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 4년(전문대 2~3년)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학은 또한 2~3년의 석사과정, 2~3년 정도의 박사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3)교육과정 1)학기와 방학 -한국은 모든 학교가 3월에 학기를 시작한다. -7~8월 중에 여름방학이 있고 8월말에 2학기를 시작한다. -12~2월 사이에 겨울 방학을 한다.

22 2)초등학교 -한국의 초등교육은 무상 의무교육으로 국민생활에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초등보통교육 실시를 목적으로 한다. -취학률은 99.9%로 완전취학 수준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어린이는 3~5세가 되면 유치원에 다니며 만 5세부터 취학이 가능하나 보통 8세에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다. -초등학교는 수업 연한이 6년이고 대부분 공립학교이다. -공립과 사립의 교육과정은 크게 차이가 없다 3)중학교 -중학교는 초등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보통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무상의무교육으로 중학교 입학희망자 전원은 거주지에서 가까운 학교로 컴퓨터 추첨에 의해 배정을 받는다. -수업 기간은 3년이고 사립학교 수의 비율이 초등학교에 비해 높으나 국립, 공립, 사립 간에 교육과정은 크게 차이가 없다.

23 4)고등학교 -고등학교 교육은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교육 및 기초적인 전문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4)고등학교 -고등학교 교육은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교육 및 기초적인 전문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등학교는 일반계 고등학교, 특성화고등학교 및 특수목적고등학교(외국어, 예체능, 과학 고등학교)로 나누어진다. -수업연한은 3년이고 학비는 자비부담이다. -특성화고등학교 및 특수목적고등학교는 본인이 학교를 선택하며, 일반 고등학교는 본인이 희망하는 학교에 배정되거나 중학교처럼 거주지에서 가까운 학교로 추첨에 의해 배정받는 게 일반적이다. *외국인 학생의 경우 -외국인 학생이 한국의 초·중·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데 제한은 없다. -현행 교육법상 외국인 학생의 입학은 학교의 학칙에 의해 결정이 되므로 학생이 다니고 싶은 학교에 가서 입학 상담을 하고 학교의 안내에 따르면 된다.

24 5)전문대학 -전문대학은 중등교육 이후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현재 한국에는 150여 개의 전문대학이 있는데 10여 개는 국공립이고 나머지는 사립이다. -근래에는 기숙사를 완비한 학교들이 많이 늘었으며 수업료가 4년제 대학에 비해 비교적 저렴하다. -전문대학 교육의 목적은 확고한 이론과 기술의 토대를 갖춘 중간급 기술인을 육성하는데 있다. -실용적인 전문지식이나 기능을 익혀 졸업 후 취직을 할 수도 있고 필요하면 4년제 대학에 편입할 수도 있다. 6)대학교 -학사학위 과정이 개설된 4년제 대학으로 현재 한국에는 250여 개 대학이 있다. -의학·한의학·치의학·약학 대학은 6년 과정이다. -한국의 대학은 종합대학의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대학마다 학과가 다양하게 개설되어 있다. -각 대학은 학점 취득, 졸업 최소필수 학점, 표준 학점 및 각 학기당 취득해야 할 최대 학점, 취득 방법과 특별 학점에 대한 제한 등에 관하여 자체의 학사 규정을 두고 있다. -학교는 설립 주체에 따라 국립, 공립(시립), 사립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부분의 대학이 사립이다.

25 3. 행정 제도 (1)구조 -우리 헌법은 권력분립에 입각한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의 지위와 국가원수의 지위를 갖는다. -대통령을 보조하는 세부적인 국가행정조직은 헌법에 근거하여 제정된 정부조직법에 의해 설치 및 구성된다. -정부조직법은 대통령 및 그 직속기관, 국무회의, 국무총리 및 그 직속기관, 행정각부와 그 직속기관을 일괄하여 규정하고 있다. -크게 중앙행정조직, 지방행정조직, 간접국가행정조직으로 이루어진다. -정부조직법상의 정확한 명칭은 중앙행정기관이다. -정부조직법 이외의 특수한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의 설치에 관한 개별법으로는 대통령경호실법,국가정보원법이 있다. -독립행정기관의 설치에 관하여는 감사원법, 선거관리위원회법이 있으며, 대통령의 자문기관의 설치에 관하여는 국가안전보장회의법이 있다.

26 (2)제도 -3권 분립 확립 -헌법에 따라 국가 원수인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한다
(2)제도 -3권 분립 확립 -헌법에 따라 국가 원수인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한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도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한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대통령은 행정 수반이고, 국가를 대표하며,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을 임명할 권리를 가진다. -대통령은 5년 단임제이고,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한국은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있어 각 시, 도별로 행정기관과 입법기관이 있다. -현재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강원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제주도 등 9도에는 도의 행정을 총괄하는 도지사가 있고, 도의회가 있다.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인천광역시,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광주광역시와 그 밖의 각 시에는 행정 수반인 시장과 시의회가 있다. -도지사, 시장, 도의원, 시의원은 모두 국민 직선제로 선출된다.

27 (3)정부조직표

28 (4)공무원 -국가공무원법에 의하면 공무원은 경력직 공무원과 특수경력직 공무원으로 대별된다
(4)공무원 -국가공무원법에 의하면 공무원은 경력직 공무원과 특수경력직 공무원으로 대별된다. -경력직 공무원이란 실적과 자격에 의하여 임용되고 그 신분이 보장되며 평생토록 공무원으로 근무할 것이 예정되는 공무원을 말하며 일반직·특정직·기능직 공무원의 3가지가 있다. -일반직 공무원은 기술·연구 또는 행정 일반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며 직군·직렬별로 구분되는 공무원이다. -특정직 공무원은 법관·검사·외무공무원·소방공무원·교육공무원·군인·군무원 및 국가안전기획부 직원과 특수분야의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으로서 다른 법률이 특정직 공무원으로 지정하는 공무원이다. -기능직 공무원은 기능적인 업무를 담당하며 그 기능별로 분류되는 공무원을 말한다. -특수경력직 공무원은 공무원 외의 공무원을 말하며, 정무직·별정직·전문직·고용직 공무원 4가지가 있다.

29 1)정무직 공무원 ①선거에 의하여 취임하거나 임명에 있어서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 공무원 ②감사원의 원장·감사위원 및 사무총장,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의 사무총장, 국회의 사무총장 및 차장, 헌법재판소의 상임재판관 및 차장, 헌법재판소의 상임재판관 및 사무처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상임위원 및 사무처장 ③국무총리·국무위원, 처의 처장, 각원·부·처의 차관 또는 차장, 청장(중앙행정기관이 아닌 청을 제외한다), 행정조정실장, 특별시·직할시장, 도지사, 차관급 상당 이상의 보수를 받는 비서관 ④국가안전기획부의 부장 및 차장 ⑤기타 다른 법령이 정무직으로 지정하는 공무원 등이다.

30 2)별정직 공무원 ①국회전문위원회 ② 감사원 사무차장 및 특별시·직할시·도 선거관리위원회의 상임위원 ③ 국가안전기획부 기획조정실장, 각급 노동위원회 상임위원, 해난심판원의 원장 및 심판관 ④ 비서관·비서 기타 다른 법령이 별정직으로 지정하는 공무원 등 3)전문직 공무원 -국가와 채용계약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 연구 또는 기술업무에 종사하는 기술자·과학자 및 특수분야의 전문가 4)고용직 공무원 -단순한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을 말한다. 5)별정직·전문직·고용직 공무원의 채용조건·임용절차·근무상한 연령 및 기타 필요한 사항은 국회규칙·대법원규칙·대통령령으로 정한다. 6)특수경력직 공무원은 보수 및 복무에 관한 규정을 제외하고는 국가공무원법과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국가공무원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7)일반직 공무원 계급은 1급 내지 9급으로 구분한다.

31 4. 경제 제도 (1)혼합형시장경제제도 -대한민국은 자본력이 부족한 국가적인 특수한 환경에 따라 독특한 형태의 경제발전을 진행 -중소기업보다는 재벌기업이 주류인 대기업을 축으로 하는 기업경제구조 -천연 자원이 모자라 가공무역을 핵심으로 삼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을 도입 -수출과 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중국, 미국, 대만, 독일, 영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세계 규모 12위 및 대한민국 최대 그룹인 삼성그룹을 비롯하여 1983년부터 세계 조선 1위를 지켜오고 있는 현대, 백색가전 세계 1위인 LG, 세계 철강 4위인 포스코 등의 여러 기업 집단을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 500대 기업 중 17개가 대한민국 기업이다.

32 (2)기업구조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상장기업에는 개인지배주주가 존재한다
(2)기업구조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상장기업에는 개인지배주주가 존재한다. -반면에 기업성장에 따른 외부자본조달로 지배주주의 지분율 하락이 불가피한 가운데 지배주주와 소액주주간 이해상충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경우 지배구조가 계열사간 피라미드 및 순환식 소유구조에 의해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으나, 이는 현금권(cash flow right)과 통제권(control right) 간의 상당한 괴리를 가져와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경영권 행사에 따른 사적 경영권 혜택(private benefit of control)이 과도하여 기업이 망하지 않는 한 경영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비효율적 산업구조는 대한민국 경제의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33 (3)산업 -대한민국의 제조업은 중급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산업들에 특화되었다
(3)산업 -대한민국의 제조업은 중급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산업들에 특화되었다. -주요 산업으로는 조선, 전자, 자동차, 반도체 등이 있다. 특히 조선 산업은 2008년 기준 세계 전체 점유율의 절반을 넘어섰으며, 전자 산업은 삼성전자와 LG가 있다. -자동차 생산력은 세계 5위이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수출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로봇, 친환경 에너지 등의 미래형 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 또한 늘리고 있다. -반면, 국가경제 발전수준에 비해 서비스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은 편이며, 발달수준도 미흡한 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는 삼성그룹과 같은 재벌대기업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34 5. 법 제도 (1)대한민국 헌법 제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한국은 철저한 법치국가다 (3)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동등하다. (4)한국의 법은 헌법과 하위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5)헌법은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되어 지금까지 9차례 개정되었다. 1987년 10월 29일에 마지막으로 개정된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 헌법 제10호(大韓民國憲法第十號), 제6공화국 헌법(第六共和國憲法)이나 개정된 1987년을 따서 87년 헌법이라고도 하며, 전문(前文)과 본문130개조, 부칙 6개조로 구성되어 있다.

35 (6)법과 관련된 기초 어휘 형법, 민법, 채권법, 상법, 노동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국제법, 판사, 검사, 변호사, 구형, 선고, 상고, 공판, 피의자, 증인, 증거, 현장 검증, 심문, 재심 청구, 징역, 집행유예, 출석, 법정, 원고, 피고, 고발, 참고인, 판결,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 위헌, 법률, 벌금, 구금 등 (7)집행기관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

36 6. 언론제도 -기본적으로 거의 완전한 언론의 자유를 가진 나라이다. -모든 종류의 언론기관이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설립될 수 있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1)신문사 -인터넷, 방송 등으로 인해 영향력이 축소되었다. -디지털 신문으로 종이 신문의 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일간신문(조간, 석간), 주간신문, 월간 신문 등 -1234년 고려의 최윤의가 편찬한 <상정고금예문>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간행 -1883년 최초의 서구식 신문인 <한성순보> 창간 -1886년 서재필에 의해 <독립신문> 한글 전용으로 창간 -1920년 일간지인 <동아일보>,<조선일보>가 창간 -처음엔 세로 글씨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현대엔 가로 글씨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2)한국의 대표 신문사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세계일보, 서울신문, 문화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국민일보, 부산일보, 대구매일신문, 코리아헤럴드 등

37 (3)라디오 방송국 -1927년 2월 6일 경성방송국이 개국 -KBS, MBC, SBS, 기독교방송, 평화방송, 불교방송, 교통방송 등 (4)TV방송국 -1961년 12월 KBS가 TV 방송국 개국 -공중파 방송:KBS, MBC, SBS -유선방송:YTN, Arirang TV, EBS, MBN 등 -종편방송:JTBC, 채널 A, TV조선, MBN 등 (5)언론 용어 뉴스, 기사, 해설, 논평, 토론, 드라마, 방송, 기사화, 칼럼, 광고, 사설, 중계방송, 위성방송, 녹화 방송, 신문 배달, 채널, 공영방송, 유선 방송, 교육 방송, 종교 방송, 영어 방송, 생중계, 편집, 편집권, 제목, 본문, 시청, 시청률, 다큐멘터리, 보도, 디지털 신문, 광고 등 (6)통신, 잡지 -연합통신, 로이터통신 등 -<신동아><월간조선><월간중앙><주간조선> 등

38 7.한국 방송의 역사 1)세계 텔레비전 방송의 역사 -1925년 버드(Baird, J.)가 런던에서 텔레비전을 공개 실험 -1935년부터 독일, 1936년부터 영국, 1939년부터 미국에서 정기방송 시작 -1956년 한국에서 방송 시작 2)한국 초기 방송기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은 HLKZ TV에 의해 1956년 5월 12일 실시(하루 2시간씩, 격일제, 보도, 교양, 오락 등) -’활동사진이 붙은 라디오가 나왔다'라는 시민의 첫 반응 -1957년 5월 ‘한국일보'의 장기영에게 양도 -대한방송주식회사(DBC)로 개편(1959년 화재로 전소)

39 2)3대 텔레비전 방송기 -국영라디오방송 KBS가 1961년 5
2)3대 텔레비전 방송기 -국영라디오방송 KBS가 1961년 5.16 군사정변과 함께 방송계의 황금시대를 이루는 전환기 마련=국제방송 탄생, 텔레비전방송국 개국 -KBS 텔레비전 1961년 12월 31일 역사적 전파 발사 -1966년 전국적인 방송망 수립 -1964년 12월 7, 8일에 ‘동양텔레비전방송주식회사(TBC TV)가 서울과 부산에서 최초의 민영텔레비전방송국을 개국 -1969년 8월 8일 한국문화방송주식회사(MBC TV)가 개국 -1973년 방송공사가 정식으로 발족, KBS는 공영방송으로 변모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조치로 공영방송체제로 돌입 3)공영방송기 -1980년 12월 1일부터 KBS TV가 컬러 시험방송 시작 -1991년 민영 방송인 SBS TV가 방송을 시작 -종합 유선 방송(케이블 TV)가 1995년 3월 1일 시작 -2010년 12월 31일 방송통신위원회가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 등을 종합편성방송채널 사업자로, <연합뉴스>를 보도전문채널 사업자로 선정 -2011년 하반기에 종편방송이 서비스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