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느티나무 전문 txt - jeolm-eun neutinamu jeonmun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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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재「젊은 느티나무」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라고는 할 수 없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 욕실로 뛰어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때면 비누 냄새가 난다. 나는 책상 앞에 돌아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그의 표정이나 기분까지라도 넉넉히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
  티셔츠로 갈아입은 그는 성큼성큼 내 방으로 걸어 들어와 아무렇게나 안락의자에 주저앉든가, 창가에 팔꿈치를 짚고 서면서 나에게 빙긋 웃어 보인다.
  “무얼 해?”
  대개 이런 소리를 던진다.
  그런 때에 그에게서 비누 냄새가 난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가장 슬프고 괴로운 시간이 다가온 것을 깨닫는다. 엷은 비누의 향료와 함께 가슴속으로 저릿한 것이 퍼져 나간다―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
  그가 이삼 미터의 거리까지 와서 멈추었을 때 나는 내 몸이 저절로 그편으로 내달은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사실은 그와 반대로 젊은 느티나무 둥치를 붙든 것이었다.
  “그래, 숙희, 그 나무를 놓지 말어. 놓지 말고 내 말을 들어.”
  그는 자기도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말하였다. 그 얼굴에는 무언지 참담한 것이 있었다. (…)
  그는 부르쥔 손등으로 얼굴을 닦았다.
  “내 말 알아 주겠어, 숙희?”
  나는 눈물을 그득 담고 끄덕여 보였다. 내 삶은 끝나 버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집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주겠지? 내일이건 모레건 되도록 속히…….”
  나는 또 끄덕여 보였다.
  “고마워, 그럼.”
  그는 억지로처럼 조금 미소하였다.
  그리고 빙글 몸을 돌려 산비탈을 달려 내려갔다.
  바람이 마주 불었다.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 펑펑 울면서 온 하늘로 퍼져 가는 웃음을 웃고 있었다.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 출전 :『젊은 느티나무』, 1994 소담출판사

● 작가 – 강신재 :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1949년『문예』에 소설을 발표하며 등단. 소설『임진강의 민들레』『오늘과 내일』『파도』등이 있으며, 한국문학가 협회상, 여류문학상, 중앙문화대상, 예술원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01년 5월 작고함.

● 낭독 –
정인겸 : 배우. 연극 <보이첵> <호텔 피닉스에서 잠들고 싶다> <관객모독> <살색안개> 등에 출연. 
박유밀 : 배우. <연극열전 불좀 꺼주세요> <나부상화> 등에 출연.

소설을 두고 ‘풍속의 역사’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삶이 모여 기록이 될 때 역사가 되는데 소설은 특히 희로애락에 흔들리는 삶의 다양한 양태를 담아냅니다.
소설의 한 문장이 당대 풍속의 예민한 부분을 압축해서 보여줄 수도 있는데 이 소설의 첫 대목이 바로 그런 상징적인 예입니다. ‘그에게서는 비누 냄새가 난다’는 이 한 문장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누가 남학생들에게 팔렸을지. 그걸 알았다면 비누 회사들이 이 소설가에게 감사장을 줬어야 했을겁니다. 어쩌면 지금 당장까지도.

2007. 1. 31.  문학집배원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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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동시대의 문학으로 읽는 한국문학전집

지난 세기 격동의 역사와 함께 우리 문학을 둘러싼 여러 가지 환경들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오면서 한국 현대 문학이 출발한 지 어느덧 한 세기를 넘어섰다. 그동안 우리 문단에서 꽃피웠던 작품들을 엮고 묶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으나 대개의 경우 당대적인 가치와 의미에만 머물러 특정한 문학관에 입각하거나 단순한 문학적 집성 차원에 머물고 만 나머지, 명실 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문학전집이 부재하는 실정이다. 1995년에 100권의 규모로 근·현대 작가를 망라했던 동아출판사의 한국소설문학대계를 비롯하여 해방 이후 수십 종의 한국문학전집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다. 1970년대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개별 작가들의 전집 역시 비슷한 운명이거나, 명목에 불과한 시도로 끝나고 말았다. 개중에는 자료의 집성으로 후대의 연구에 기반을 제공한 경우도 있었지만, 몇몇 주요 작가에만 지나치게 치중된 나머지, 연구의 편향성만 더했을 뿐 알려지지 않은 작가·작품의 발굴 및 소개와 고른 평가에는 크게 미흡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편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근·현대 문학 작품이라 하면 대개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감상하는 차원에 머물러, 불과 한 세기 전의 작품조차도 고전인 양 취급되기 일쑤였다. 서구의 고전이 시대를 넘어 널리 읽히고, 나날이 그 독자층을 전 세계로 확장해나가는 것과는 상반되는 현상이었다. 그 배경으로는 교과서 수록 작품이라는 권위가 주는 압박과 중·고등학교 시절에나 읽는, 동시대 문학과 전혀 다른 고리타분한 작품이라는 편견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중·고등학생들이 그 주요한 독자층이라 한다면, 교과서에 일부만 수록된 작품의 전문을 읽기 위해 시중에서 전집류를 사서 읽어야 하는 중·고등학생들에게 권할 만한, 그들의 시선에 맞는, 건실한 전집도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하여 장구한 우리 문학사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변화된 상황과 가치를 반영하여 시대를 넘고 세대를 넘어 그 이름과 위상에 값할 수 있는 대표적인 한국문학전집이 절실히 요구되어왔다.
1975년 창사 이래 30년 동안 신선한 작가를 발굴하고 좋은 문학 작품을 발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온 문학과지성사는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문학 연구와 교육에 근간이 될 만한 문학전집을 새로이 발간하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해왔다. 이번에 발행된 문학전집은 달라진 문학 환경에 맞도록 내실 있고 권위를 갖춘 내용으로 꾸며졌으며, 시대를 뛰어넘는 우리 문학의 정본 전집으로 자리매김해 한국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한몫을 할 것이다. 또한 특정 독자층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진 모든 독자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서 기존의 범람하는 전집류와 철저히 차별성을 두어 구성 편집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이번에 발간된 ‘한국문학전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크게 다섯 가지이다.

1. 전체 목록을 미리 확정하지 않고 유연하게 구성하였다.
우선 문학사의 일반적인 평가를 참조하여 작가별로 편차를 두어 배정하였다. 염상섭, 이광수 등의 주요 작가는 4권 이상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또한 각 작가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구성하되, 풍문으로만 전해지는 대표작이 과연 작가의 대표작일까 하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숨겨진 수작을 발굴하는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중등 교과서의 수록 작품을 염두에 두고 교과서에 일부 수록된 작품의 전문을 읽을 기회를 중·고등학생들에게 제공하고자 했다.

2. 원본 작품을 토대로 엄밀하게 텍스트를 확정했다.
우선 기존에 발간된 개별 작가의 작품집들 중 가장 믿을 만한 판본을 골라서 다른 판본들과의 비교 내용을 텍스트에 반영해 최선의 판본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는 창작 당시의 오류를 수정하기도 했으며, 작가 생전에 수차례의 개작을 거친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했고, 비교적 현대어 수정본을 골라서 작업을 하되 원본 혹은 연재본과의 꼼꼼한 대조로 오류를 수정하기도 했다.

김동리, 「혼구(昏衢)」에서
수정 전 ▼

학숙은 나지막하나마 또렷한 목소리로 마침내 그것을 승인하였다.
정우는 도리어 어떤 기대에 어그러진 듯한 불만을 느끼며,
“거 무슨 소리냐? 왜 그랬단 말이냐?
“……”
“응? 왜 그랬어?”
“학숙아.”
“네.”
“선생님이 묻는데 대답을 해야지.”

수정 후 ▼

학숙은 나지막하나마 또렷한 목소리로 마침내 그것을 승인하였다.
정우는 도리어 어떤 기대에 어그러진 듯한 불만을 느끼며,
“거 무슨 소리냐? 왜 그랬단 말이냐?
“……”
“응? 왜 그랬어?”
“……”
“학숙아.”
“네.”
“선생님이 묻는데 대답을 해야지.”

수정 근거
원본의 오류: 맥락상 대답 없는‘학숙’의 대사가 한 번 더 들어가야 한다고 판단됨.

수정 전 ▼

“학숙아.”
“네.”
“……”
학숙은 대답 대신 젖은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수정 후 ▼

“학숙아.”
“……”
학숙은 대답 대신 젖은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수정 근거
원본의 오류: 이어지는 ‘대답 대신 젖은 눈초리로’의 표현으로 볼 때 대사가 삭제되어야 한다고 판단됨.

염상섭, 「삼대」에서

수정 전 ▼

“들어가선 무얼 하나. 출출한데 나가세그려. 그년의 하숙 노파의 눈칫밥 먹으러 하숙에 기어들어가고도 싶지 않은데…… 군자금만 대게, 내 좋은 데 안내를 해줄게!”

수정 후 ▼

“들어가선 무얼 하나. 출출한데 나가세그려. 그년의 하숙 노파의 눈칫밥 먹으러 들어가고도 싶지 않은데…… 군자금만 대게, 내 좋은 데 안내를 해줄게!”
수정 근거
판본 비교 결과 반영: 연재본과의 대조로 동아출판사 판 「삼대」(한국소설문학대계 5, 류보선 정리, 1995)의 오류를 바로잡음.
수정 전 ▼

그러나 조의관으로서 생각하면 이때껏 자기가 쓴 돈은 자기 부친이 물려준 천 냥에서 범용한 것이 아니라 자수로 더 늘린 속에서 쓴 것이니까 그리 아깝지도 않고 선고(先考)의 혼령에 대하여도 떳떳하다고 자긍하는 것이다.

수정 후 ▼

그러나 조의관으로서 생각하면 이때껏 자기가 쓴 돈은 자기 부친이 물려준 천 량에서 범용한 것이 아니라 자수로 더 늘린 속에서 쓴 것이니까 그리 아깝지도 않고 선고(先考)의 혼령에 대하여도 떳떳하다고 자긍하는 것이다.
수정 근거
판본 비교 결과 반영: 연재본과의 대조로 동아출판사 판 「삼대」(한국소설문학대계 5, 류보선 정리, 1995)의 오류를 바로잡음.

3. 작품에 곁들인 충실한 해설과 꼼꼼한 주(註)이다.
문학과지성사의 ‘한국문학전집’에서는 각권마다 책임 편집자들이 수록 작품 선정과 본문의 텍스트 확정부터 해설 집필까지를 맡았다. 박사 학위 이상의 책임 편집자들은 각 작가의 전공자들로만 엄격하게 위촉되었다. 책임 편집자들은 그동안 문학사에서 풍문처럼 전해 내려오는 대표작은 물론이거니와 숨어 있던 수작들을 소개하기 위한 작품 선정부터, 현대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현대어 변환 작업, 그리고 낱말 풀이부터 판본 비교의 주요한 내용을 담은 주에 이르기까지 이번 ‘한국문학전집’의 내실을 기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작가론과 작품론을 함께한 「작품 해설」과 주석을 포함한 「참고문헌」은 문지판 ‘한국문학전집’의 빼놓을 수 없는 차별점이다. 전공자들은 물론이고, 중·고등학생들도 읽기 편하도록 평이한 해설을 중심으로 집필된 「작품 해설」에서는 수록 작품을 중심으로 작가에 대한 문학사 일반의 평가와 논의를 포함하여 책임 편집자 나름의 현대적인 평가를 덧붙이도록 노력했다. 「참고문헌」은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나열식에서 탈피하여 주요한 참고문헌을 중심으로 계열화시켜 깊이 읽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충실한 길잡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4. 현대어 맞춤법과 띄어쓰기로의 변환 작업을 들 수 있다.
그동안 우리 문학의 풍토에서는 원작을 그대로만 읽어야 한다는 엄숙주의로 인해 오히려 작품을 화석화시킨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다. 독자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을 읽는다는 느낌으로 우리의 앞선 세대 작품들을 멀리하게 된다면 문학 전통의 보존보다는 전통의 단절이라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시대의 분위기와 맛을 살려 읽는 독서 경험도 물론 중요하지만, 문학 작품을 문학답게 감상할 기회 또한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으로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은 원작의 의미와 작가의 의도를 훼손하는 수준을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책임 편집자들의 최종 판단을 기준으로 작품 표기의 현대화 작업을 하였다. 다시 말해 방언과 구어체의 표현을 제외하고는 가급적 현대어 표기와 띄어쓰기를 적용시켜 판본을 완성시켰다. 그리하여 현대의 독자들은 물론이고, 중·고등학생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동시대의 문학 작품처럼 읽힐 수 있도록 하였다.

염상섭, 「삼대」에서
수정 전 ▼

그런 소리를 웨 날더러 하니? 너 아버니한테 가서 무슨 소리든 시원스럽게 하렴!

어빠! 어빠야. 너 어빠 보고 싶다고 했지?

할아버니께 또 있는 말 없는 말 쏘삭이는 것은 어쨌든지 간에……

수정 후 ▼

그런 소리를 왜 날더러 하니? 너 아버지한테 가서 무슨 소리든 시원스럽게 하렴!

오빠! 오빠야. 너 오빠 보고 싶다고 했지?

할아버지께 또 있는 말 없는 말 쏘삭이는 것은 어쨌든지 간에……

5. 저작권과 관련된 사항이다. 현재 몇몇 작가의 경우 독점 계약으로 단 한 출판사에서만 출간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여러 출판사에서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는 작품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원본 확정이나 책의 편집에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식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채로 불법, 무단으로 출간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한번 확정된 텍스트가 오랜 세월 수정·첨가되지 않은 상태로 출간된 나머지 잘못된 판본이 정본인 양 읽히기도 하는 실정이다. 이번에 출간되는 문학과지성사의 ‘한국문학전집’은 저작권이 유효한 작가는 개별 저작권자와 접촉하여 문지판의 차별성과 우월성에 대한 설명과 함께, 독점 계약의 오류를 지적하고 우수한 한국 문학 작품의 대중화에 한몫을 할 것임을 약속하고 정식 계약을 체결하여 진행하였다. 월북 작가의 경우도, 북한의 유족들과 연락을 취해 정식 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번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은 독자들이 최대한 접근하기 쉽고 읽기 편한 전집이 되도록 여러모로 신경을 썼다. 그중에 또 주목할 만한 특징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장정을 들 수 있다. 판형은 최대한 문고판에 가깝게 만들어 휴대하기 간편하도록 했으며, 최근 발행된 단행본 소설집 못지않은 표지 디자인을 위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진작가의 작품들을 엄선하여 곁들였다. 이갑철, 임영균, 배병우, 구본창, 이희상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이번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의 표지에 사용될 사진을 흔쾌히 협조해주었으며, 그런 작업을 기획하는 과정에 경기대학교 미술학부 박영택 교수가 적극 참여해주었다.

■ 근간 목록
운수 좋은 날/현진건 단편선/김동식(인하대) 책임 편집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 단편선/서준섭(강원대) 책임 편집
사랑/이광수 장편소설/한승옥(숭실대) 책임 편집
과도기/한설야 단편선/서경석(한양대) 책임 편집
수난 이대/하근찬 단편선/황국명(인제대) 책임 편집
화수분/전영택 단편선/김만수(인하대) 책임 편집
탁류/채만식 장편소설/방민호(서울대) 책임 편집
남생이/현덕 단편선/홍정선(인하대) 책임 편집
꺼삐딴 리/전광용 단편선/김종욱(세종대) 책임 편집
유예/오상원 단편선/한수영(동아대) 책임 편집
낙동강/조명희 단편선/류보선(군산대) 책임 편집
흉가/최정희 단편선/황호덕(성균관대) 책임 편집
초기여성작가선/이상경(KAIST) 책임 편집
취우/염상섭 장편소설
나도향 단편선
주요섭 단편선
허준 단편선
장용학 단편선
카프문학선
유항림/34문학선

※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은 계속 출간됩니다.

한국문학전집_31
젊은 느티나무
강신재 소설선
김미현(이화여대) 책임 편집

1950, 60년대 대표적인 한국 여성작가 강신재의 중단편 가운데 10편을 엄선한 작품집. 세계와 불화하는 여성 정체성의 문제를 현실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서 바라보고 이를 감각적으로 이미지화하는 데 탁월했던 강신재는, 예의 서정적인 문체와 관조적 시선, 지적인 분석력으로 ‘비누 냄새’ 나는 풋풋한 사랑 이야기에서 끈끈한 ‘점액질’의 어두운 욕망에 이르기까지 운명의 폭력성과 존재론적 한계를 줄기차게 탐문했다. 「젊은 느티나무」에서 시작해 「점액질」에 이르기까지의 강신재 소설의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

강신재는 갈등을 강조함으로써 서정적 합일을 추구하는 진정한 아이러니스트이고, 여성의 불행에도 민감한 따뜻한 휴머니스트이며, 사랑의 불가능성을 염려하는 생래적 로맨티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강신재 소설의 감각적이면서 수동적으로 보이는 서정적 여성들은 세계의 다양성을 경험하는 데에 더 적합한 유동적 주체이고,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의 비극은 세계의 부조리나 폭력을 문제 삼는 효과적 장치이며, 감각적인 언어는 리얼리티를 위한 가면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젊은 느티나무」나 「점액질」 중 하나만 읽으면 강신재 소설의 절반만 읽은 것이 된다. 강신재 소설은 초현실주의보다는 입체파에 더 가까운 소설이기 때문이다. ―김미현, 작품 해설 「비누 냄새와 점액질 사이의 거리」에서

강신재 지음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32년 함경남도 청진 천마소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부친이 사망하면서 서울로 다시 이사해 1937년 덕수소학교에 재입학하였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1943년 이화여전 가사과에 입학한 뒤 2학년 때 결혼과 동시에 중퇴하였다. 1949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소설 「얼굴」과 「정순이」를 『문예』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하였다. 이후로 단편소설 「안개」(1950), 「부두」(1954), 「절벽」(1959), 「젊은 느티나무」(1960), 「이브 변신」(1965)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작품 초기에는 주로 남녀간의 애정을 감각적이고 회화적인 수법으로 다루었으며 그 뒤로 장편소설 『임진강의 민들레』(1962), 『파도』(1963), 『명성황후』(1994) 등을 통해 사회의식과 현실의식이 담긴 작품을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설세계를 펼쳐 보였다. 1959년에는 죽음을 앞둔 한 여성의 비극을 그린 「절벽」으로 한국문인협회상을, 1967년에는 『이 찬란한 슬픔을』로 제3회 여류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외에도 1984년 중앙문화대상, 1988년 예술원상을 받았으며,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위원,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및 소설가협회 대표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1년 숙환으로 타계, 천안공원묘원에 안장되었다.

김미현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 졸업.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저서로 『한국여성소설과 페미니즘』 『판도라 상자 속의 문학』 『여성문학을 넘어서』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