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민주주의 등장배경 - jeonjaminjujuui deungjangbaegyeong

 

전자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한계

박동진(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1. 서론

   인터넷은 민주주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인터넷은 정치발전 나아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왜 민주주의의 발전을 논의하는데 인터넷에 주목하는가? 인터넷은 인간관계의 매개적 특성들을 통합적으로 기능할 수 있게 하는 기술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도구이다. 또한 인터넷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장(場)이다. 이것을 가리켜 사이버스페이스라고 한다. 이러한 인터넷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그것이 자동적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유의미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전자적 테크놀로지를 정치에 도입하면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점들에 대한 발전적 대안을 모색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의미가 있는 경험적 사실들을 제도화하기 위한 끊임없는 관찰과 반성을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전자민주주의(e-democracy)라는 개념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의식이다.

전자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두 가지 층위에서 이 용어를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전자적 테크놀로지, 즉 인터넷을 민주적 질서에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확대, 발전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획이다. 다른 하나는 인터넷시대, 좀더 넓게 말해서 정보사회에 적합한 민주적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기존의 민주적 절차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이념과 권력의 문제 등을 포괄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는 좁은 의미의 전자민주주의를 가리키며, 통상 이를 이폴리틱스(e-politics)와 같은 범주에서 놓으면서 참여민주주의를 통한 정치발전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후자는 보다 진보적인 기획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술적 조건으로서의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적 조건으로서의 직접민주주의를 설명한다. 후자의 개념 하에서 전자민주주의를 논한다는 것은 전자민주주의의 문제를 권력의 문제와 함께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 관점이며, 사회구성체론에 입각한 사회변화를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것은 근본적인 민주주의의 전환을 기획하는 비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전자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들이 후자의 관점에서 변화를 진단하는 당위론적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구체적인 정치현실의 변화 속에서 인터넷에 의해 변화, 창출되는 각각의 정치적 요소들이 갖는 상관관계를 밝히면서 그것을 개념화하고, 나아가 이를 통해 현실을 진단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은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참여의 방식 및 결정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회사에서의 일상적인 의견수렴 중 상당부분을 인터넷에 의존하며, 일상적인 결재 수단으로 인터넷이 사용된 것도 이미 오래전 일이다. 부분적으로 현실의 공동체가 인터넷상의 사이버공동체와 접맥되면서 공동체의 책임자와 인터넷상의 운영자 혹은 관리자가 일치되는 경향을 보이고, 나아가 이들을 선출하는 과정이 인터넷을 통해서 전개되고, 공동체의 의견수렴과 여론 확산이 인터넷을 통해서 전개되는 양상을 보여 왔다. 이것이 생활세계에서의 민주적 절차가 변화하고 있는 내용들 중 일부인 것이다. 전자민주주의는 한편으로는 현실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적 관계의 표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의 예와 같이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발생하는 민주적 방식과 관련된 변화를 토대로 제기되는 민주주의의 발전적 전망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전자민주주의는 인터넷이라는 기술적 조건의 변화로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기술적 변화를 사람들이 사회에서 채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변화가 정치적으로 반영되는 사회적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을 이용한 정치과정 및 정치활동을 의미하는 e-politics는 정치선진화 및 정치의 효율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전자민주주의의 과정적인 부분집합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우리의 관점 중 하나는 인터넷만의 세계를 고집하거나, 현실의 관계만을 고집하면서 한편으로는 인터넷의 효과를 과대 포장하여 낙관론에 빠지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의 효과를 폄하하여 비관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사이버스페이스와 리얼스페이스의 상호작용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성 속에서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자민주주의를 접근하기 위한 다음의 세 가지 기본적인 관점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현실의 정치를 부분적으로 인터넷으로 옮겨가고자 하는 경향이다. 둘째는 인터넷을 이용해서 현실의 정치의 효율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경향이다. 셋째는 현실정치와는 전혀 상관없이 인터넷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경향이다.

첫 번째의 경향은 현실 정치 중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수행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고, 인터넷을 이용해서 수행할 수 있는 정치과정을 정치발전,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기본적인 조건을 창출하면서 구축하고자 하는 경향이다. 두 번째의 경향은 인터넷을 이용해서 현실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경향은 대체로 참여민주주의 및 직접민주주의라는 논술을 동반하는데, 이는 여론의 정치시대에 인터넷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거나 무엇인가 강력한 집단적 힘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정치를 제어하려는 일련의 시도들로 나타난다. 시민운동 등이 인터넷을 통해서 추구하는 정치적 행위가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민운동은 인터넷을 활용함으로써 정치참여의 폭을 확대하고 나아가 운동의 역동성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시민운동 이외의 정치집단 혹은 압력집단에게 이러한 도구가 넘어감으로 인해 나타나는 폐해도 등장한다. 세 번째의 경향은 매우 제한적으로 등장하고 있으면서도 매우 우려해야할 특징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사이버파티 등과 같이 인터넷에서 사이버국회를 구성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이다. 이는 사이버국회에서 후보자로 입후보하고 이용자들이 투표를 해서 사이버국회의원을 선출해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국회를 만들려는 기획들이다. 이러한 기획이 가지는 문제는 우선 그러한 노력이 공동체, 엄밀하게 말하면 사이버공동체에 기반하지 않고 무작정 기획되어 돌출적인 형태를 취한다는 점이고, 다음은 토대가 약하다보니 모든 행위가 희화화되거나 연예화되어 현실정치보다 더 못하거나 무능력한 정치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인해 대안부재의 패배감을 확산시킨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참여자를 유도하기 위해 등장하는 엔터테인먼트한 요소들이 첨가됨으로 인해 정치를 오락으로 전락(politainment= politics+entertainment)시키는 결과를 야기하기도 했다.

 필자는 그 범위를 현실정치를 인터넷으로 옮겨서 수행할 수 있는 가능한 부분들에 대한 연구와 나아가 현실정치의 발전을 위한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인터넷의 활용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 초점을 맞추고 서술할 것이다.

2. 인터넷과 민주주의

오늘날 사람들은 전통적인 대의제 형식의 정부 및 의회에 대해 불신을 느끼고 있고, 자신과 정당이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서 논의되고 있는 ‘시민의 관여(civic engagement)’ 및 ‘참여’라는 낡은 형식이 마치 정치윤리적인 것처럼 난무하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그리 새로운 논의가 아니다. 이와 같은 정당정치의 폐해에 대해 진단하는 논리는 매우 다양하다. 퍼트남(Putnam)은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온 변화 중 하나가 자발적 협의체의 구성원들을 서서히 파괴한 것이며, 공통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일에서 공동체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사회적 자본을 축소시켜 온 것이라고 강조한다1). 달튼(Dalton)이나 와튼버그(Wattenberg) 등은 정당의 무기력화 현상을 다음과 같은 맥락으로 설명한다. 즉, 정당은 시민과 국가를 연계하는 핵심적 제도이지만, 그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이미 정당 내에서의 역할이 축소되어 버리거나, 파벌정치로 인해 일반대중과 분리되어 버렸다는 것이다2).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논의도 다양한데, 노리스(Pippa Norris)는 현대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비판적 시민의 출현을 강조한다. 즉, 그녀는 “민주주의 위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대중들은 대의제의 실제적 실행에 대해 낮은 평가를 하면서, 관념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높은 기대를 갖는 특성을 보인다고 진단하고, 이러한 특징이 “비판적 시민”을 증가시키는 요인임을 강조한다3). 반면에 인터넷의 적극적 도입에서 대안을 찾고자 하는 낙관론도 존재한다. 바버(Benjamin Barber)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옹호자들로 인해 전자민주주의가 인터넷 시대의 정치변화에 대한 대안으로 급부상하기도 한다. 바버는 국가(nation-state) 내에서의 거버넌스의 형태들이 국민투표와 국민발안, 공동체 조직에로의 권력위임,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 차원의 동원력의 보다 확대된 사용을 하기 위해 시민들이 협의(deliberation)하고 직접결정(direct decision making)하는 기회를 더 증대시킬 수 있도록 발전시켜나갈 것을 제안한다4).

사이버공간에 대한 낙천주의자들은 디지털기술이 이러한 과정을 잠정적으로 보충해줄 수 있는 우리시대의 가장 중요한 발전으로 간주한다. 슈와츠(Schwartz), 라쉬(Rash), 에치오니(Etzioni) 등은 인터넷을 통한 거의 무한한 정보의 활용으로 인해 일반대중이 공적인 사안에 관해 보다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이메일 및 온라인 대화방, 토론방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보다 분명하게 표현하며, 공동체의 사안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동원화의 과정에서 보다 활기를 보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5).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방식으로 인해, 인터넷은 시민과 매개조직 사이의 연결을 강력하면서도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여기서 매개조직이란 정당, 사회운동단체, 이익집단, 언론 나아가 지역 및 국가의 공공기관 그리고 글로벌 거버넌스까지 포함할 수 있다. 인터넷은 정치참여와 시민의 관여를 가로막는 몇몇 장애물들을 파괴시킴으로써 공공생활에 대한 관련성을 확대시켜 나갈 수 있다. 이 장애물들로 인해 대다수의 개인과 집단들이 주류정치(mainstream politics)로부터 소외되었다. 인터넷은 이슈 캠페인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는데 있어, 그리고 공동체의 네트워크를 동원하는데 있어, 또한 정책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연합을 네트워크하는데 있어, 나아가 대표를 선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 시민의 능력을 촉진시킬 수 있다. 인터넷으로 운영되는 게시판, 대화방, 공지사항, 이메일 등의 기능들은 이념을 교환하고 이슈를 토론하며 의제를 동원할 수 있는 새로운 공공영역(public sphere)으로서의 지위를 부여받는다6). 버찌(Budge)에 의하면, 인터넷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촉진시키고 있다. 버찌가 예로 드는 것은 국민투표나 선거에서 전자투표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7). 헤이규(Hague)나 로더(Loader) 같은 학자는 정부에 대한 시민의 요구의 증대와 이로 인한 정부의 책임성(accountability) 증대를 강조하면서 그 예로 인터넷의 확산으로 도시의 이웃이나 공동체의 네트워크를 재활성화시키는 것이 정부의 책임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강조한다8). 사이버낙천주의자(cyber-optimist)이러한 모든 방식을 통해, 인터넷은 정치과정에서 배제된 국민들을 재접속시키며, 나아가 쇠약해지고 있는 시민의 정치적 활력을 부활시키고 있다.

반면, 사이버 회의주의자들(cyber-skeptics)은 디지털기술의 실제적 활용은 민주적인 참여의 현존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데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인터넷은 정치 및 사회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냉소 사이의 간극을 더욱 벌려놓을 것이라는 비관적 예언을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학자는 마고리스(Margolis)와 레스닉(Resnick) 인데, 이들은 인터넷으로 일반화되는 민주주의의 부활에 대한 초기 희망은 미국의 경우를 보면 완전히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들은 현실의 거대정당들, 전통적 이익집단들 그리고 공룡같은 미디어그룹들이 인터넷에서도 “일상의 정치(politics as usual)”를 양산해 내면서 가상세계에서 그들의 지배력을 재확인한 미국의 경험을 토대로 인터넷의 정치적 실패를 강조한다9).

3. 2002년 한국의 전자민주주의

1) 2002년 한국의 인터넷과 정치

   2002년의 한국은 전자민주주의와 어떠한 연관을 맺고 있는가? 왜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의 전자민주주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민주주의의 질(質)은 선거나 정치캠페인과 같은 정치과정을 민주적인 것으로 정의하는데 유권자가 얼마나 실천적으로 관여하는가에 의해 좌우 된다10). 바로 2002년의 한국은 민주주의의 질을 평가하는 중요한 대규모 선거가 6개월 간격으로 예정되어 있는 정치의 장소이다. 여기에 정당민주화의 한 차원으로 해석될 수 있는 국민참여경선제가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실시되었다. 문제는 이들 제도가 인터넷과 무관하지 않게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된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변화의 중심적 힘이 인터넷 혹은 인터넷 세대를 중심으로 작동될 수 있었다. 그것은 기존의 폐쇄적인 제도에 시민의 참여라는 새로운 제도적 개방의 결과 속으로 시민의 참여가 물밀 듯이 밀려들어간 결과라 하겠다. 그리고 그것을 추동한 힘의 중심에 인터넷이 놓여있었으며, 사람들은 이 도구를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는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민주당의 경우는 처음부터 인터넷을 겨냥한 국민참여경선제의 실시가 두드러졌다. 우선 인터넷을 통해서도 국민참여신청을 받았고, 또한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투표방식도 도입하였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단순 KIOSK형 전자투표가 아닌,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누구든 인증만 받으면 투표할 수 있는 인터넷전자투표의 도입이 그것이다. 처음부터 인터넷과 인터넷 사용자인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유권자의 참여를 유발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인터넷이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정치과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략적 대상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셋째, 인터넷 사용자들의 정치에 대한 접근 방식의 변화가 나타났다. 다름 아닌 사이버정치인팬클럽의 구성이다. 2000년 실시된 4.13총선이 총선시민연대에 의한 부정의 담론에 기초한 시민의 정치관여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 운동은 인터넷을 활용하면서 시민운동에 대한 시민의 참여방식의 새로운 전환 및 전형을 보여주었다. 다른 한편으로, 4.13총선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에 대한 납세, 국방, 전과 등의 기록을 인터넷을 통해 발표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발표한 것이 갖는 의미는 그 기록이 선거기간 내내 누구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2년 뒤 인터넷을 통한 시민의 정치적 관여방식의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사모’라는 노무현후보 사이버팬클럽인데,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기존과는 달리 공식적으로 한 후보를 지지하는 사이버공동체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부정의 담론에 기초한 운동에서 긍정의 담론에 기초한 운동으로 사이버공동체의 정치적 관여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파시킨 전도사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그 단체가 앞으로도 그러한 적극적 운동(positive campaign)을 전개할 것인지, 아니면 집단적 시위형식의 상대후보에 대한 부정적 운동(negative campaign)으로 전락할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나는 누구를 이러한 이유에서 지지한다’고 선언할 수 있는 나만의 매체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넷째, 한국의 인터넷이 갖는 특성 중 사용자의 특성과 관련된 부문이다. 한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2002년 6월 현재 2,560만명으로 전체인구의 58%를 차지하는 매우 높은 수준에 올라왔다11). 아래의 표를 보면 전체 이용자수의 기본적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다.

<표>인터넷 이용자의 성별, 연령별 구분12)

인터넷이용자

전체

24,457,000

전체인구의 약57%

성별

남자

13,913,000

56.9%

여자

10,543,000

43.1%

연령별

7-12세

3,011,000

12.3%

13-19세

4,629,000

18.9%

20-29세

6,076,000

24.8%

30-39세

5,609,000

22.9%

40-49세

3,802,000

15.5%

50세이상

1,286,000

5.3%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20대와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전체 인터넷 이용자 중 20대와 30대는 47.7%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은 더 이상 10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물론 게임이나 오락의 측면에서 인터넷 이용률은 10대가 압도적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되어 재생산되는 장(場)으로서 인터넷은 20대와 30대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40대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한국의 30대는 민주화운동의 중심세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대부분 화이트칼라 계층에 속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민주당에서의 후보에 대한 거대한 지각변동이라는 정치변화는 30대의 민주화운동 세대가 20대의 그 후속세대 및 40대 초반의 그 참여세대를 강력하게 견인하면서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 우연의 일치로 인터넷 중심세대와 동일한 맥락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터넷의 중심세대가 현실 정치변화의 중심세대와 결합되고 있다는 점이다.

2) 2002년 왜 전자민주주의인가?

   일반적으로 인터넷은 세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커뮤니케이션 기능이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전개되는 커뮤니케이션을 가리켜 전자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르면서 기존의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나 매개적 커뮤니케이션과는 전적으로 다른 기술적 기반위에서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설명한다. 인터넷은 대중적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자 장(場)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차이를 발견할 있다. 둘째는 정보를 생산하고 교환하는 장으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이 기능은 직접적으로 정보사회를 견인하는 인터넷의 기능인 것이다. 물론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은 정보를 생산하고 교환하는 과정이기는 하지만, 인터넷은 단순한 정보의 생산과 교환이 아니라, 가치를 창출하는 정보의 생산과 교환 및 재생산이라는 점에서 커뮤니케이션보다는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전자민주주의에서 이러한 정보의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설명할 것이다. 셋째는 상거래기능이다. 이 기능은 전자상거래를 이해하면 된다. 각종 인터넷쇼핑, 각종 P2P방식의 거래, 인터넷에 기반한 기업의 ERP, 나아가 유료 DB를 통한 직접적인 정보의 상품화현상들을 연상하면 이 기능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기능은 직접적으로 전자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우리의 생활과 삶, 그리고 경제영역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이는 곧이어 정치과정의 변화에 대한 욕구로 등장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사회변화의 현상들인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앞의 두 기능을 중심으로 왜 전자민주주의가 오늘날 정치변화의 중심화두로 등장하는지를 분석하겠다.

우선 커뮤니케이션 양식의 변화에서 전자민주주의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즉 인터넷으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즉 1 대 多 방식에 의존해 온 산업시대의 매스미디어와는 달리 인터넷은 多 대 多 방식의 직접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새로운 의사전달의 지판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혹자는 면대면 방식에 의존하는 직접적 커뮤니케이션의 시대, 인쇄물과 같은 매개체에 의존하는 매개적 커뮤니케이션의 시대 그리고 인터넷과 같은 정보매체에 의존하는 전자적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로 역사를 구분하면서 ‘정보양식’13)이라는 특성에 바탕을 두면서 세계의 역사를 다시 쓰고자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전자적 커뮤니케이션이 우리에게 무슨 변화를 가져다주었냐는 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직접참여, 직접결정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열어준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우리는 사회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적 행위를 매개적 관계에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응집적 대표매체가 신문과 방송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정치에 대한 시민의 관여는 절대적으로 신문과 방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언론은 제4의 권력으로 불리면서 때로는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권력 그 자체가 되면서 순수한 여론수렴 및 여론확산의 범주를 벗어나기도 했다. 시민은 언론에 권력 및 사회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논리적으로 위임해줌과 동시에 언론이 사회를 지배하는 새로운 억압적 현상을 창출했다. 다시 말해, 언론이 더 이상 우리의 정치적, 사회적 관여를 대변해 줄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기술적, 사회적 가능성을 인터넷이라는 전자적 커뮤니케이션이 보여주었고, 그 속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을 경험적으로 체득했다는 점이 변화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전자민주주의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한편으로는 이전투구식 정쟁의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의제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과 오랜 민주화운동의 경험으로 획득한 민주화 이후의 정치발전이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의 결과가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모색하는 현상으로 연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정치에 대한 의식의 변화와 함께 인터넷과 같은 정보통신기술의 사회적 확산으로 시민, 네티즌들이 사회적인 모든 것에 대해 직접참여하고 직접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정치의 합법적 변화의 장인 선거에서 그 변화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인터넷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경험적 사실이 전자민주주의에 주목하게 하는 것이다.

전자민주주의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를 논술할 때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함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정보’의 장이라는 관점이다. 우리는 보통 인터넷을 통해서 정치인과 유권자가 대화하는 방식들로 게시판, 주제토론방, 채팅, E-mail 등을 일상적으로 거론한다. 그리고 여기서 인터넷의 직접성, 쌍방향성을 추론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웹사이트상의 메뉴들이 유권자로 하여금 직접성과 쌍방향성을 체감할 수 있는 기술적 특성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매우 드문 성공적인 사례가 거론되는 현상들의 이면에는 공통적으로 관리자라는 사람들의 실질적인 노력, 현실공간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노력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폴리틱스를 주장하는 경우에는 여섯 가지를 거론한다. e-mailing, e-campaigning, e-fundraising, e-polling, e-voting, e-addressing이 그것이다. 이것은 선거운동에 인터넷을 활용하는 방식들이다. 사실 여기에서도 직접적으로 직접성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인터넷이 만들어낸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로운 공간이 선거운동의 장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라고 우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14).

우리가 인터넷을 통한 직접성, 쌍방향성 정치참여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정보의 생산과 교환 그리고 재생산의 과정이 전개되는 웹사이트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정치인과 유권자의 목소리는 언론이라는 특수한 매체에 의해서 여과되어 서로에게 전달되어왔다. 물론 특수한 상황에서는 정치인과 유권자가 직접만나기도 하지만, 일상적인 정치적인 언어행위와 그 행위를 소비하는 유권자 사이에는 언론이라는 여과기가 이었던 것이다. 이를 가리켜 1 대 多의 매개적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라 하며, 그러한 시대를 매스커뮤니케이션 시대라고 정의해 왔다. 그런데 정치인이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여기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주장을 전개한다. 그리고 유권자 개인 혹은 집단이 특정 정치인에 대한 웹사이트를 구축하여 정치적 정보를 서로 교환한다. 그리고 그 정보가 순환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보다 더 발전된 형태로 전환되어 다시 유권자 및 정치인에게 돌아온다. 사실 쉽게 포착되지 않는 정치의 새로운 흐름인데,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의 정보를 둘러싼 이러한 흐름으로 구성된 변화15)가 웹사이트 상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변화가 갖는 의미는 정치의 주체인 ‘나’가 정보를 생산하고 발신하고 직접 수신하여 재생산의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나’라는 존재가 매개적 매체를 거치지 않고도 정치에 관한 담론을 생산하고 그것을 발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권자와 함께 정치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열어준 것이 인터넷이다. 따라서 인터넷이 창출하는 직접적인 것과 쌍방향적인 것은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주체적 존재로서의 ‘나’를 새로이 정립하는 계기를 의미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주체인 ‘나’가 ‘정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전자적 시민관여(electronic civic engagement)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나’와 ‘정치인’이 여과기적 매개체를 통하지 않고도 항상 일상적인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사회, 대중사회에서의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그리고 정치정보의 독점적 운영은 특징적으로 언론의 몫이었다. 따라서 시민의 정치적 관여는 좋은 정치의 한 미덕정도로 관념화되어 있었고, 실제에서는 실질적 권한 위임과 형식적 관여, 대리적 관여, 매개적 관여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그러한 한계를 무너뜨렸다. 관념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참여와 관여를 가로막던 기술적 한계를 무너뜨린 것이다. 인터넷은 ‘나’와 ‘정치적 사안’ 사이에 자리하던 기존의 매개체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더 이상 합리적인 것으로 용인할 수 없도록 우리에게 자극을 준 것이다. 여기에 인터넷시대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며, 정보사회 혹은 지식정보사회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4. 전자민주주의의 조건

1) 인터넷과 공공성의 문제

인터넷과 정치 특히 민주주의를 분석할 때, 그 이론적 전제는 공공성(publicness)의 창출에 놓여야 한다. 정치는 공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 및 정치인은 공적 인간의 몰락(fall of public man)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공적 인간의 몰락으로 파괴된 오늘날의 공공성은 매스미디어와 같은 매개된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재창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공적 인간의 몰락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더욱 촉진되었다. 이제 많은 연구자나 사회의 발전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공공성의 재창출을 인터넷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넷은 그 속성상 정보전달(정보의 생산과 소비)기능과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을 전제로 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창출하고자 하는 공공성은 전자적 공론영역(electronic public sphere)이라는 공간에서 새롭게 발견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전자적 공론영역의 중심은 정보시대의 시민운동이고, 그 운동은 정치에 대해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는 새로운 도구를 인터넷에서 발견한다. 이러한 정치적 운동은 참여민주주의의 비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과 참여민주주의의 논의는 인터넷과 공공성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공공성을 가시성의 공간으로 개념지어 왔다. 인터넷을 통한 전자적 커뮤니케이션은 현대 세계에서 가시성의 공간을 발견함으로써 공공성의 재창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전자적 커뮤니케이션은 전자적 공론영에서의 공공성의 재창출을 어떤 방향으로 진전시킬 것인가? 매개적 공론영역에서의 새로운 공공성의 재창출은 인터넷의 출현과 더불어 새로운 개념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즉 면대면 접촉에 의거했던 고대 그리스의 공공성과 매스미디어에 의해 매개되는 현대 공공성을 구분하는 것처럼, 매개된 공공성은 공중의 지배 내에서 시각적 상징교환의 과정을 통해 발생하는 사건과 행위들로 주조된다. 특히 현대세계에서 공공성의 재창출은 비대화적(non-dialogical) 공공성에서 다시 새로운 유형의 대화적 공공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실제 현대세계의 매스미디어들은 개방성과 가시성을 중심으로 한 거대 미디어 산업들이 좌우하고 있으며, 공공성을 주조하는 기본단위로서 개인 역시 자아형성 과정부터 미디어를 통해 매개된다. 따라서 시공간을 가로지르고, 지속적인 재생산이 가능하며, 상징형태의 조정을 담당하고 있는 인터넷과 같은 뉴미디어와의 복합적인 대화를 통해 공공성이 창출된다. 이러한 매개된 공공성은 다음의 네 가지 특화된 공간에서 구체화된다.

첫째, 지역화되지 않은 공간이다. 특정한 지역성, 공간적 한계에 얽매이지 않은 공공성의 등장이다. 인터넷 역시 특정한 공유 공간에 의거하여 공공성을 구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특정 인트라넷의 구축은 장소에 의거한 조직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 물론 이 공간이 상징교환을 순환시키면서 핵심을 차지하는 보편공간의 새로운 창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현대 매스미디어들이 지구적 범위에서 잠재적으로 그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인터넷은 범지구적인 매개로 기능함과 동시에 인트라넷을 통한 지역화된 공간으로 기능한다.

둘째, 비대화적 공간에서 다시 대화적 공간으로의 전환이다. 라디오나 TV, 신문과 같은 미디어들에 의해 매개된 공공성은 대부분 비대화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왜냐하면, 공공성에 참여하는 사람 역시 매개된 가상적 상호작용(quasi-interaction)의 수준에서 행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상징형태를 교환함에 있어 대화적 공간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들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셋째, 개방형 공간이다. 매개된 공공성은 창조적이며 상대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공간이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고정된 내용들이 존재하지 않으며,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상적 공공성을 창출하는 인터넷은 매개된 공공성을 창출하는 매개된 커뮤니케이션보다도 더 강력한 개방형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넷째, 현존하지 않는 생산자와 수용자의 다원성이다. 비대화적으로 매개된 공공성의 참여자들은 단지 정보의 수용자일 뿐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출현은 개인들이 매개된 공공성에 참여할 수 있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터넷은 현대세계에서 매개된 공공성에 두 가지 중요한 수정을 가한다.

하나는 대화적 공간으로서 공공성의 등장이다. 인터넷의 네트워크적 특징과 리좀(rhizome)적 구조는 1:N의 관계가 아닌 N:N의 관계를 의미한다. 즉, 미디어에 의한 독백이 아닌 N과 N의 대화적 상황 속에서 새로운 공공성의 창출을 발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생산자와 수용자로서 기능하는 개인의 등장이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용하고, 다른 관점들과 조우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개인의 등장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터넷의 등장이 매개된 공공성 개념의 풍부화와 비판적 계승에 기여한다는 주장을 전개할 수 있으며, 가치판단의 주체로서 개인의 정체성을 대중사회에서의 ‘나’와는 달리 새로이 발견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전자적 공공성 개념은 일반화된 심의(deliberation) 과정을 통해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정당성이 부여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개인들은 비지역화된 공간에서 정보를 취합하고, 다른 관점들을 종합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의 독백에 강조점을 두어 대화적 상황을 가정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을 통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낙관은 금물이다. 물론 인터넷이라는 대화적 상황을 통해 심의의 범위와 방법을 확장할 수 있다. 반면 실제의 모든 대화적 소통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즉, 심의과정을 강화할 수 있는 인터넷 기술의 발견과 매개된 경험들의 심의에 대한 참여 기회 증진 그리고 반성적 개입들을 증진시킬 수 있기 위해서는 일련의 사회적 조건들을 필요로 한다. 물론 인터넷의 사용을 통해 원거리의 행위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증대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그와 같은 행위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 역시 많아진 것이다.

2) 전자민주주의의 조건

   인터넷과 공공성의 문제는 인터넷이 그 속성상 참여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을 논의했다. 그러나 그 논의는 사회적으로 복잡한 관계 속에서 발견한 가능성은 아니다.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도구적 특성만을 놓고 민주주의의 발전으로서 참여민주주의의 전망을 지니고 있음을 논한 것이다. 이제 우리의 논의는 인터넷이 창출하는 사이버공간과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공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토대로 보다 구체화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이버스페이스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 매트릭스와 같은 완전한 디지털공간에서 완전하게 디지털화 된 ‘나’로 살아갈 수는 없다. 그것은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공상일 뿐이다. 이러한 일화가 있다. 그리스의 로더스섬에서 올림픽이 열렸는데, 자기가 그곳에서 높이뛰기 세계신기록을 세웠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었다. 그 말을 들은 한 사람이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여기가 로더스섬이네, 여기서 한번 뛰어보게(Hic Rhodos, Hic Saltus)”라 하였다. 이 말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내가 무엇을 했건 그것이 현실공간에서의 작용성으로 기능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현실공간이 사이버공간에 작용을 가하는 경우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현실공간의 지배력이 사이버공간을 식민화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공간의 집합적 관계현상이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바탕으로 사이버공간에서 거대한 변화의 담론을 형성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전자는 부정적 결과로 현실공간의 소수의 억압적 권력을 강화시켜주는 힘으로 전락할 것이며, 후자는 긍정적 결과로 다시 현실공간의 사회, 정치적 관계를 변화하는 발전의 추동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인터넷에 대한 우리의 사고는 항상 현실공간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인터넷과 참여민주주의의 출발지점이다.

다음 조건은 현실의 문제의식이 현실공간과 사이버공간에서 동시에 담론(discourse)으로 구성될 수 있어야 한다. 담론이란 단순한 대화의 소재가 아니다. 담론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며, 그것은 그 사회의 시대적 문제의식이 응축되어 표현되는 행동의 지표를 의미한다. 반독재 투쟁의 시기에 그 행동의 지표로 등장하는 담론이 ‘민주화’였던 것과 같은 의미이다. 결국 담론이란 현실공간에서 전개되고 있는 모순, 왜곡된 현상들을 바로잡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이 묵시적으로 합의한 구체적 행위정향인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는 대화적 관계 속에서 전개되며, 그 대화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비롯된다. 지금까지 정치적 담론은 거대언론에 의해서 주도되어 온 것이 사실이며, 그것이 냉전반공주의에 철저하게 봉사하는 협애한 이념적 스펙트럼 위에서 기생해 온 한국의 거대언론이 민주주의의 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원인이기도 하다16). 인터넷의 공공성은 거대언론이 주도해 온 한국민주주의의 담론을 재생산하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전자민주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담론의 생산과 유통과 재생산의 장으로 인터넷이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매개로 하지 않더라도 참여민주주의가 대두하기 위해서는 ‘왜 참여인가’라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왜 참여인가? 그 대답은 대의제에 대한 회고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오늘날의 대의제가 과대대표성의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수의 일방향적인 언론에 의해 의사대표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에서 ‘너 대 나’의 관계성은 복합적이며 다원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반면, 대표성은 점점 소수의 영역으로 한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즉 전자민주주의는 그 대당적 관계를 지금의 대의제가 지니고 있는 한계에서 발견한다. 다시 말해서 전자민주주의의 조건 중 또 다른 하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운동에 의해 발전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자기운동은 제도로 귀결되면서 발전된다. 그 제도는 정착됨과 동시에 또 다른 욕구와 갈등을 기반으로 발전을 위한 자기운동을 시작한다.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연쇄적인 자기순환적 완결관계를 갖는다. 전자민주주의는 그러한 과정에서 등장하는 운동으로서의 특성과 제도적 지향을 동시에 함축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의 발달은 우리로 하여금 근대 대의제민주주의가 내포한 대표성의 이질화 현상에 대해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주고 있다.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결과를 보여주었고, 정보가 일방향적으로만 흐르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로 드러내 주었다. 인터넷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과대 대표되는 경향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비전을 전자민주주의로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방향적인 매스미디어에 의해 우리의 참여가 의사(quasi)대표되는 것 역시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적 정보소통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을 의미깊게 성찰해야 한다. 최근에 전개되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사이버팬클럽 사이트인 ‘노사모(http://www.nosamo.org)’17)와 노사모에 대응해서 등장한 이회창을 지지하는 사이트인 ‘창사랑(http://www.changsarang.com) 그리고 안티조선(http://www.urimodu.com)운동이나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와 같은 인터넷을 통해 전개되는 새로운 시도, 시민운동단체의 인터넷 웹사이트 등은 우리들을 더 이상 매스미디어에 의한 정보의 소비자로 국한시킬 수 없다. 정보사회에서 우리는 정보의 생산자로 그 위상이 이미 전환되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시민운동단체나 개인이 공공의 목적을 위해 웹사이트를 만들고 이메일 서비스를 하는 것은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정보서비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성찰해야 한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현실공간의 구질서를 타파하는 적극적 행위이다. 그것은 또 다른 참여이며, 민주주의인 것이다. 인터넷으로 인해 확대되는 대표성의 유형을 ‘내가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사회적 대표성을 통해 정치적 대표성을 제약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참여의 새로운 유형이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경향들을 시민운동단체들을 통해 경험하고 있다. 즉 참여는 내가 직접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이 있고, 정치적 대표에 ‘나’의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정치적 대표성이 형성되었듯이, 사회적 대표에 나의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사회적 대표성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대표성을 견제하고, 나아가 집합적 형태의 정치참여를 추구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어느 경우는 우리는 참여라는 행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전자와 후자는 기계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그것은 참여라는 같은 행위 속에서 전개되는 변화의 시작이다. 전자민주주의가 비전으로 제시하는 직접민주주의 역시 정치적 대표성의 최소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 다른 조건은 인터넷으로 가능한 모든 대안들을 드러내고 토론하고 실험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의 ‘참여’는 구체적으로 가능성이 입증되었을 때 현실로 드러나는 행위이다. 인터넷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 어느 하나도 제도화되거나 현실과의 통로구축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중요정책을 결정할 때, 여전히 소수의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비공개적으로 자문을 받아 정책결정을 수행한다. 그 과정은 여전히 우리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보공개법은 존재하지만,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특정사안은 공개하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이 포함된다. 제도없이는 참여가 보장되지 못하며, 참여의 제도적 보장없이 민주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 또한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형식적이거나 제약된 형태의 제도라고 한다면, 참여는 명목상의 참여이며,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참여가 된다. 결국 인터넷을 도입했다손 치더라도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 이러한 현실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때, 인터넷과 참여민주주의는 또 다른 좌절로 정치발전의 희망없는 미래의 연속이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까지 전자민주주의에 포함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전자민주주의를 논의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 즉 발전을 위한 모델로서 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퇴보적 현상만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안티’전자민주주의를 위한 민주주의 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으로 참여가 가능한 대안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 대안들은 도발적인 사고일지라도 제안해야 하며, 비판을 받더라도 토론에 붙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새로이 등장한 도구를 활용한 새로운 정치적 방식에 관한 토론이자 실험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미래를 대비한 논의의 첫 출발점을 형성한다. 지금은 과감한 제안과 사려깊은 토론의 연쇄가 진행되어야 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정부가 IMT-2000 사업자를 선정할 때, 동기식과 비동기식 방식의 장단점을 전문가들의 견해로 모두 공개하고, 이를 토대로 시민들이 인터넷으로 투표를 하여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IMT-2000은 결국 통신소비자가 사용하는 것인 만큼 이제 더 이상 주어진 기술에 순응적인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기술을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시공을 초월하는 기술적 특성을 바탕으로 함과 동시에 지식정보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식정보화된 ‘나’의 주체를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물론 전자투표시스템에서 비밀투표, 다수결의 문제, 선거결과의 왜곡, 매표의 문제 등이 무수하게 거론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토론의 대상이며, 토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유권자 개인 개인의 투표행위만을 놓고 그 행위를 보면 유권자는 매우 비합리적 양태를 보이는 것처럼 드러난다. 지역에 기반해서 투표를 하거나, 금품을 받고 투표를 하는 등의 사례들이다. 그러나 집단적 결과를 놓고 보면 유권자들의 투표행위는 합리적으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공간에서 지금까지의 선거결과들에 대해서 대부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는 대통령후보를 위한 경선과정에서 전자민주주의의 기술적 특성 중 두 가지 테크놀로지가 실험되었다. 하나는 Kiosk 방식의 전자투표이며, 다른 하나는 인터넷전자투표이다. Kiosk 방식의 전자투표는 기존의 붙뚜껑을 이용해 종이에 기표하는 대신, 터치스크린에서 단계별로 컴퓨터가 안내하는 대로 원하는 후보를 선택하면 된다. 이존의 방식에 전자적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집계결과가 정확하고 신속하다는 점에서 효율성을 보여준다. 이 방식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모두 도입해 사용했다. 문제는 인터넷 전자투표이다. 사실 Kiosk 방식의 전자투표는 다른 나라에서도 수차례 실시되었던 기술이며, 그 기술에 의해 투표를 한다고 해서 전자민주주의의 특성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 인터넷전자투표시스템은 언제, 어디서나, 유권자라면 원하는 누구든지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제한적이지만, 민주당의 경우 도입되어 실시했다. 10일간의 투표기간동안 4만여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인터넷 전자투표라른 특성, 한국의 인터넷 사용자수를 감안하면, 민주당의 실험은 양적으로는 실패를 보였지만, 그것이 준 공적 영역에서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최소한의 범주 내에서 도입되었다는 점에서 전자민주주의의 급속한 확산을 야기하는 새로운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의 확산은 대부분의 국가들로 하여금 전자정부로의 전환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행정부 역시 전자정부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전자정부가 단순한 온라인 행정서비스체계를 갖추는 비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자정부는 ‘정부’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는 계기이다. 여기에서 시민은 행정서비스의 소비자가 더 이상 아니다. 시민은 정부를 구성하고 정부의 정책을 결정하며, 정부를 직접 감시, 견제하는 ‘주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정부는 그 초기부터 시민의 참여가 열려있어야 한다. 시민 없는 전자정부가 추진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것 역시 참여에서 시작해서 참여로 그 결실을 맺어야 한다. 그것이 인터넷과 참여민주주의가 사회발전의 전망이라는 첫 걸음을 보여주는 주체적 행위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회의원들이 결정하는 주요 법안에 대해서도 인터넷 전자투표로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 결정이전에 논의가 필요하다면, 일정한 과정을 거쳐 논의 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야 한다. 직접 참여가 정보의 홍수, 참여의 홍수로 결정을 지연한다면, 그것은 시민이 정치영역을 견제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단체에 그 권한을 위임하여 시민사회단체를 통한 참여를 확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문성을 갖춘 사안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당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치에 반영하는 창구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 역시 과대 대표된 정치인들에 의해 그 고유의 기능을 공적 형태로 유지하지 못하는 대표의 과잉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당이나 정치인이 과대 대표되지 않는다면, 참여는 자연스럽고 일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어야 한다.

또한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 역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제도적 고찰을 할 필요가 있다. 각종 선거운동 방식을 인터넷으로 제한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와 문제점들이 논의되어야 한다. 국회에서 논의되는 모든 사안들이 공개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역시 인터넷을 기반으로 마련될 수 있는 가능한 방식들이 요구되어야 한다. 국회에서의 정당간 합의가 그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비공개적으로 밀실에서 전개되는 일은 무효임을 주장할 수 있는 데서부터 출발하여 정치의 투명성을 인터넷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 제기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제도 자체를 바꾸거나 만드는 작업일 수 없다. 이것은 시민들이 정치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존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새로운 비전으로 정치발전을 요구하는 인터넷 시대의 참여민주주의적 발상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참여의 폭넓은 행위는 구질서를 타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전환의 계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마지막 조건은 정보생산자로서 의제설정의 권한과 그에 상응하는 인터넷 시대의 시민적 책임성을 확대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시민권 개념의 확장 및 지적․도덕적 지도력의 시민사회적 회복을 통한 참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정보소비자로 전락될 수 없다. 적어도 지식정보사회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지식정보를 생산하는 다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를 의미해야 한다. 소수의 독점적인 사회구성원에 의해서 생산되고 전유되는 지식과 정보는 절대 양방향성을 지닐 수 없다. 그것은 인터넷의 원리와 배치되는 사회질서를 의미한다. 정보를 생산한다는 것은 ‘나’의 웹사이트가 미디어로서 기능함을 의미한다. 나아가 그것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웹사이트가 미디어로서 기능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매스미디어와는 속성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뉴미디어라 부른다. 기존의 매스미디어라는 패러다임으로부터 전환을 한 뉴미디어인 것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보다 폭넓은 참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정치적 의제들을 ‘나’ 혹은 사회적 대표로서의 시민단체가 의제를 설정하고 사회적 토론을 주도하면서 변화를 추동해 낼 수 있는 담론을 생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담론에 대한 시민적 책임성을 ‘참여’라는 개념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그 책임성의 확장은 정보사회에서 시민이 사회 및 정치의 영역에서 지적, 도덕적 지도력을 회복하는 계기이기에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지금의 지배적인 구세력이 이미 사회적, 정치적으로 지적, 도덕적 지도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전환의 시대는 공적 인간의 몰락을 바로 잡기 위한 대안으로서 시민권의 확장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그것은 참여라는 적극적 행위와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이념적 비전속에서 확립되어야 한다.

5. 결론  

   민주주의는 아무런 노력없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며, 그 속에서 발생하는 권력의 질서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사들만의 세계에서는 천사들이 타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필요하며, 악마들의 세계에서는 악마들이 날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운동과 제도, 갈등과 조화가 민주주의의 순환적 담론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태초의 세계라면 그것을 처음부터 기획하면서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민주주의를 숙고했겠지만, 우리의 지금은 과거의 유산으로서 지금이며, 따라서 우리가 지금 한편으로는 향유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받고 있는 민주주의는 이미 운동의 결과로 제도화된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정적인 진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만들어 가는 것이다. 현실은 변화해야만 미래의 비전을 전망할 수 있다. 그 변화는 운동의 추동력으로 도출하는 것이다. 80년 후반과 90년초반 우리는 민주화운동이라는 추동력에 의해 지금의 민주주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변화 역시 운동의 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 동력은 현실의 미래발전을 위해 오늘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의 실현을 위한 사회적, 정치적 참여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그 저변에 인터넷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인터넷은 한편으로는 전자적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적 의미에서 우리에게 새로움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해 주고 있다. 또한 인터넷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를 실현하는 장이라는 의미에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패러다임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기반 위에서 ‘나’를 찾고 있다. ‘나’라는 존재는 역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사회 속에 참여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정보를 생산하는 이상 나는 사회적 참여자이다. 정보생산자로서의 ‘나’를 현실화시키는 것이 인터넷시대, 정보시대 전자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인터넷이 중요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인터넷은 참여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적, 제도적 도구에 불과하다. 어쩌면 전자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 그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획이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인터넷이 우리에게 가능성이라는 계기를 기술적으로 주었다는 점이다. 이것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사회적 관계들은 사이버공간을 위한 사이버공간의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공간을 위한 현실공간의 관계이다. 인터넷이 창출하는 사이버공간의 관계성은 현실공간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전자민주주의는 현실의 문제이지 인터넷만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하게 하는데서 인터넷과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사고와 실천을 출발해야 한다. 인터넷은 현실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채용할 수 있는 기술적 계기, 그렇지만 너무나도 큰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기술적 계기들 중 하나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