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재선 - migug daetonglyeong ja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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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오는 11월 중간선거 패배가 유력시되는 미국 민주당 내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재선 불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현지 시각으로 11일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민주당원들은 최근 여러 형태의 내부 모임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과 나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재대결 경쟁력 등에 관해 조용해 의구심을 표했다.

NYT는 “오는 2024년 대선에서 현역인 바이든 대통령을 ‘손절’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NYT는 카운티 단위의 민주당 지방조직 지도자들부터 연방 의원까지 약 50명의 당 관계자들을 인터뷰해 이런 기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멤버인 스티브 시메오니디스는 NYT에 “우리나라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과 아주 거리가 먼 이야기”라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간선거 직후에 2024년 재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문 인터뷰에 응한 민주당 인사들 거의 전부가 “현재 79세이고 재선 시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될 때 82세가 되는 바이든 대통령의 나이가 그의 정치적 생존능력에 관한 큰 우려”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외교무대에서 잦은 말실수와 최근 미 대통령 가운데 언론 인터뷰를 가장 적게 하고 있다는 점 등에 대한 염려도 제기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수석전략가였던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대통령직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아주 힘든 자리다. (바이든)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를 마칠 때 80세보다 90세에 더 가까워진다는 냉엄한 현실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DNC 멤버 셸리아 허긴스는 NYT에 “민주당은 2024년에 신선하고 대담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게 바이든일 수는 없다”라고 직격했다.

특히 공화당에서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와 같은 ‘젊은 피’가 대선 상대로 등장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에 나서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크다.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의 2020년 대선 캠프에서 활약한 파이즈샤키르는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길 수는 있겠지만 드샌티스와 같은 뉴페이스가 공화당에서 등장한다면 바이든은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최고위 선출직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미래에 대한 공개 언급을 삼가고 있지만, 바이든 지지율이 바닥을 찍고 ‘더 나은 재건’ 법안과 같은 역점 사업들에서 별로 이뤄낸 게 없다는 점을 우려의 시선을 바라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 총기 난사, 대법원의 낙태 문제 논의 등 대통령 권한 밖의 외부 악재들로 고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 선거캠프의 고위 참모였던 크리스토발 알렉스는 NYT에 “민주당 지도자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성공을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알리지 않는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며“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민주당 후보는 오직 바이든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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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Projects Detailed Information

  • https://www.krm.or.kr/krmts/link.html?dbGubun=SD&m201_id=10039190&r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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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재선운동
A Reelection Movements of Abraham Lincoln: American 16th President

  • Researchers have entered the information directly to the NRF of Korea research support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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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Summary

  • 미국 대통령 재선 - migug daetonglyeong jaeseon
    Goal
  • 이 논문의 목표는 첫 번째로, 19세기 중반의 미국 대통령선거에 대해서 알아본다. 그 중에서도 1864년 미국의 대선을 통해서 당시의 대통령선거가 현재와 무엇이 다른가를 알아 본다. 또한 당시의 의회와 행정부간의 권력을 둘러싼  이념과 갈등 권력투쟁은 어떠했는가를 알아본다. 19세기 미국 정치는 3권의 경쟁이 치열했고 그 권한이 명백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미국이 건국한지 수 십년 밖에 흐르지 않아서 권력분점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로 1864년 대선을 준비하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통해 대통령과 언론간의 관계는 어떠했는가를 알아본다. 언론은 미국민들과 정부 혹은 의회 의원들이나 판사들을 연결하고 정보와 쟁점을 분석하는 지도자들이 여론에 반응하도록 한다. 또한 정책 결정자들이 국민의 여론을 알 수 있게 한다. 19세기 언론은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게 정치인과 소통할 수 있었고 개인의 권리를 다루었다. 현재는 행정부와 의회의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있지만 19세기에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 결과 언론의 역할이 지금보다 더 강했다. 그리하여 선거운동에서도 언론의 역할이 지금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세 번째로 1864년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링컨 대통령의 힘이 어느 정도였는가? 현대의 미국정치는 의회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대통령의 힘이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이후 강해져서 20세기는 말 그대로 대통령중심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에는대통령의 권한이 한정되어 있었다. 헌법에도 의회 다음에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을 거론하고 있을 정도이다. 대통령은 선거로 뽑힌 왕이 아니라 대의제의 대표에 불과했다. 즉 주민들이 직접 투표로 뽑은 의원들의 대리인이었다. 대통령은 당시 주민이 아니라 선거인단에 의해서 뽑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링컨 이후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1864년의 대통령선거는 우리나라에서의 5년 단임과 달리 재선이 가능한 미국식 특징을 가진 선거였따. 이 논문을 통하여 우리는 미국 19세기 중반의 대통령 선거 운동과 운동 과정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은 19세기 미국 정치사의 특징을 알 수 있고, 미국 대통령선거 운동을 알 수 있다는 것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기존의 링컨에 대한 논문은 수없이 많다. 링컨의 지도자상과 링컨의 정치적인 의미를 말하는 논문은 여러 개가 있다. 또한 남북전쟁을 파악할 수 있는 전잰 전략과 전술에 대한 논문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운동 특히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평택대 김남균 교수의 논문이 한 개가 있다. 그것은 1860년 대통령선거운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864년 재선운동과 그 과정과 결과 그리고 영향력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이 논문의 의의다. 또한 한국에서 대선이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의 가장 전형을 보여주었던 1864년 선거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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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pectation Effectiveness
  • 이 연구결과의 기대효과와 활용방안은 첫째, 미국 선거운동에 대해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무엇보다도 학술적인 것으로서 선거운동과 정치적인 행태에 대한 이해를 수정 비판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1864년 대선을 통해서 미국의 선거방식이 한국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치며 간접적인 도움이 된다.
    둘째, 학술적인 연구의 결과는 자연히 대학 교육이나 강의에서 도움을 줄 것이다. 대학에서의 강의는 끊임 없는 새로운 주제와 발견을 확산시키는 장이 된다. 지금까지 링컨에 대한 정치철학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던 혹은 하지 못했던 재선과 관련된 행태가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역사학의 분야가 다양해지는 것은 고무적이다. 인문학 분야가 상아탑적인 자세를 지양하여 현실문제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여 조사함으로서 각 사회 집단과 담론을 논하는 것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정치학과 정치에 대한 현실적인 담론과 실제의 괴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선거는 오늘날 전 지구적인 주제이다. 아주 복잡하고 혼란스로운 대통령선거 그것도 영향력 있는 미국의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후속적인 연구나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익한 토대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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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 이 논문은 1864년 대통령선거의 과정과 언론의 역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개입을 살펴보려고 한다. 1864년 봄에 이미 미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재직 중이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재선운동을 시작하였다. 1864년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 북부는 정치적 불화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공화당은 1862년 중간선거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으며 그에 대한 반응으로 당 지도자들은 전쟁을 지지하는 모든 집단의 광범한 연합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들은 그 조직을 연방당(Union Party)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공화당과 일부 전쟁지지 민주당(War Democrats)을 합한 것에 불과했다. 민주당 후보는 조지 매크렐런 장군으로 거의 굳혀졌다. 매크렐런은 이전에 북부군 총사령관이었지만 링컨과 불화로 직위해제 상태였다. 민주당은 전쟁에 반대하고 정전을 주장하는 강령을 채택했다.
    링컨은 확실한 대통령 후보로 인정하면서도 일부는 당선될 가능성이 좀 더 높거나 더 나은, 또는 어쩌면 더 유력한 후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공화당에서는 율리시즈 그랜트를 후보로 내세우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랜트는 링컨을 비롯한 몇몇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을 하며 사양했다. 이미 링컨이 어느정도 손을 써놓았기 때문이다.
    1864년 볼티모어 전당대회에 참석한 선거인단은 민주당 계열인 앤드루 존슨(Andrew Johnson)을 부통령 후보에 추대하였다. 당시 공화당은 많은 선거자금을 가지고 있었다. 선거자금의 상당 부분은 공무원들한테서 모금한 것이었다. 당시 집권하고 있는 정당이 어디든 간에 공무원들은 임금의 10퍼센트 또는 그것 이상을 정치기금으로 납부하도록 강요받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고, 공화당은 이점을 최대한 이용했다. 내각의 관료들조차 각자 500달러 정도를 선거운동에 기부했다.
    링컨은 찬조금 이용이라는 권력의 특혜를 잘 알고 있었다. 링컨은 엽관제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또한 잘 사용하였다. 당시 찬조금은 물론 지극히 합법적인 것이었고 관례로 지속되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링컨은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노골적으로 편집장을 매수하는 행위는 금지했다.
    양당은 군중집회와 선거물품과 그 밖의 표를 얻기 위한 노력에 거침없이 돈을 쏟아 부었다. 막대한 예산 지출과 광범위한 전쟁 관련 업무에서 나오는 국방성의 엄청난 힘과 영향력이 전부 링컨의 재선을 확보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정치적인 갈등은 극에 달했고 뉴욕 주에서는 추잡한 싸움이 일어났다. 뉴욕 주에서 발생한 투표 바꿔치기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수록 모든 당 의원들은 분노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체포하기 전에 정부가 확보한 증거에 관한 보고서를 법정에 제출하면서 법무관은 지금까지 미국 시민에게 투표함이 주는 의미는 기독교인에게 교회의 제단이 주는 의미와 같았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재판은 그 증거에 기초해 진행됐다. 당시 정치인들은 강한 인물을 지명하기를 두려워하면서 조종과 관리가 가능한 인물을 지지하는 것을 택했다. 그가 바로 링컨이다.
    당연히 링컨은 재선 결과에 노심초사했다. 1864년 12월 21일 자정이 되어 최종 결과가 거의 확실해졌다. 국민투표에서 상당히 앞섰고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최종 결과가 집계되었을 때 뉴저지, 켄터키, 델라웨어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링컨이 승리했다. 링컨은 국민투표에서 55퍼센트의 지지를 얻었고,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212대 21이라는 압도적인 우세를 거두었다. 결과를 분석해 볼 때 군대의 지지는 특히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1864년의 대통령 선거의 의의는 링컨이 공화당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의 권한을 의회보다 우위에 놓았던 인물이다. 그는 선거운동과정에 엄청난 선거자금을 뿌렸다. 현재 같으면 당장 구속될 수 있는 선거운동이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가능하였다. 그는 엽관제를 이용하여 관직을 약속하면서 대통령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했다. 이전의 대통령선거에서 각당의 후보자는 진두에 선거운동을 하러 다니지 않고 사저에서 혹은 집에서나 사무실에서 은둔하면서 선거운동은 측근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864년의 대선은 미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통령 선거였고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올해 한국 대선에 사사하는 바가 큰 선거였다

  • Korean Keyword
  • 에이브러햄 링컨, 남북전쟁, 공화당, 선거운동, 19세기 미국사, 대통령선거, 민주당
  • English Keyword
  • Abraham Lincoln, Civil War, Republican Party, Presidential Election, 19th Century americna History, Pres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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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earch Summary

  • 미국 대통령 재선 - migug daetonglyeong jaeseon
    Korean
  • 이 논문은 1864년 대통령선거의 과정과 언론의 역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개입을 살펴보려고 한다. 1864년 봄에 이미 미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재직 중이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재선운동을 시작하였다. 1864년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 북부는 정치적 불화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공화당은 1862년 중간선거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으며 그에 대한 반응으로 당 지도자들은 전쟁을 지지하는 모든 집단의 광범한 연합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들은 그 조직을 연방당(Union Party)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공화당과 일부 전쟁지지 민주당(War Democrats)을 합한 것에 불과했다. 민주당 후보는 조지 매크렐런 장군으로 거의 굳혀졌다. 매크렐런은 이전에 북부군 총사령관이었지만 링컨과 불화로 직위해제 상태였다. 민주당은 전쟁에 반대하고 정전을 주장하는 강령을 채택했다.
    링컨은 확실한 대통령 후보로 인정하면서도 일부는 당선될 가능성이 좀 더 높거나 더 나은, 또는 어쩌면 더 유력한 후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공화당에서는 율리시즈 그랜트를 후보로 내세우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랜트는 링컨을 비롯한 몇몇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을 하며 사양했다. 이미 링컨이 어느정도 손을 써놓았기 때문이다.
    1864년 볼티모어 전당대회에 참석한 선거인단은 민주당 계열인 앤드루 존슨(Andrew Johnson)을 부통령 후보에 추대하였다. 당시 공화당은 많은 선거자금을 가지고 있었다. 선거자금의 상당 부분은 공무원들한테서 모금한 것이었다. 당시 집권하고 있는 정당이 어디든 간에 공무원들은 임금의 10퍼센트 또는 그것 이상을 정치기금으로 납부하도록 강요받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고, 공화당은 이점을 최대한 이용했다. 내각의 관료들조차 각자 500달러 정도를 선거운동에 기부했다.
    링컨은 찬조금 이용이라는 권력의 특혜를 잘 알고 있었다. 링컨은 엽관제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또한 잘 사용하였다. 당시 찬조금은 물론 지극히 합법적인 것이었고 관례로 지속되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링컨은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노골적으로 편집장을 매수하는 행위는 금지했다.
    양당은 군중집회와 선거물품과 그 밖의 표를 얻기 위한 노력에 거침없이 돈을 쏟아 부었다. 막대한 예산 지출과 광범위한 전쟁 관련 업무에서 나오는 국방성의 엄청난 힘과 영향력이 전부 링컨의 재선을 확보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정치적인 갈등은 극에 달했고 뉴욕 주에서는 추잡한 싸움이 일어났다. 뉴욕 주에서 발생한 투표 바꿔치기 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수록 모든 당 의원들은 분노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체포하기 전에 정부가 확보한 증거에 관한 보고서를 법정에 제출하면서 법무관은 지금까지 미국 시민에게 투표함이 주는 의미는 기독교인에게 교회의 제단이 주는 의미와 같았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재판은 그 증거에 기초해 진행됐다. 당시 정치인들은 강한 인물을 지명하기를 두려워하면서 조종과 관리가 가능한 인물을 지지하는 것을 택했다. 그가 바로 링컨이다.
    당연히 링컨은 재선 결과에 노심초사했다. 1864년 12월 21일 자정이 되어 최종 결과가 거의 확실해졌다. 국민투표에서 상당히 앞섰고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최종 결과가 집계되었을 때 뉴저지, 켄터키, 델라웨어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링컨이 승리했다. 링컨은 국민투표에서 55퍼센트의 지지를 얻었고,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212대 21이라는 압도적인 우세를 거두었다. 결과를 분석해 볼 때 군대의 지지는 특히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1864년의 대통령 선거의 의의는 링컨이 공화당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의 권한을 의회보다 우위에 놓았던 인물이다. 그는 선거운동과정에 엄청난 선거자금을 뿌렸다. 현재 같으면 당장 구속될 수 있는 선거운동이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가능하였다. 그는 엽관제를 이용하여 관직을 약속하면서 대통령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했다. 이전의 대통령선거에서 각당의 후보자는 진두에 선거운동을 하러 다니지 않고 사저에서 혹은 집에서나 사무실에서 은둔하면서 선거운동은 측근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864년의 대선은 미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통령 선거였고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올해 한국 대선에 사사하는 바가 큰 선거였다

  • 미국 대통령 재선 - migug daetonglyeong jaeseon
    English
  • This thesis to investigate reelection abraham lincoln 1864. Lincoln was reelected over George B. McClellan by a great majority. His second inaugural address, delivered when the war was drawing to its close, was a plea for the new country that would arise from the ashes of the South. His own view was one of forgiveness, as shown in his memorable phrase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He lived to see the end of the war, but he was to have no chance to implement his plans for Reconstruction. On the night of Apr. 14, 1865, when attending a performance at Ford's Theater, he was shot by the actor John Wilkes Booth. The next morning Lincoln died. His death was an occasion for grief even among those who had been his opponents, and many considered him a martyr.

미국 대통령 재선 - migug daetonglyeong jaeseon
Research result report

  • 미국 대통령 재선 - migug daetonglyeong jaeseon
    Abstract
  • 이 논문의 목적은 첫 번째로, 19세기 중반의 미국 대통령선거에 대해서 알아본다. 그 중에서도 1864년 대통령선거를 통해서 그 당시의 선거가 현재와 무엇이 다른가를 알아 본다. 또한 이를 통해서 당시의 의회와 행정부의 갈등과 권력투쟁은 어떠했는가를 알아본다. 19세기 미국 정치는 의회와 대통령간의 권력 투쟁이 치열했고 또한 양 권력의 권한이 명백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미국이 건국한지 수 십년 밖에 흐르지 않아서 권력분점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로, 이 논문을 통해서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선거운동을 둘러싼 대통령과 언론간의 관계는 어떠했는가를 알아본다. 언론은 미국민들과정부 혹은 의회의원들이나 판사들을 연결하고 정보와 쟁점을 분석하는 지도자들이 여론에 반응하도록 한다. 또한 정책 결정자들이 국민의 여론을 알 수 있게 한다. 19세기 언론은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게 정치인과 소통할 수 있었고 개인의 권리를 다루었다. 현재는 행정부와 의회의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있지만 19세기에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 결과 언론의 역할이 지금보다 더 강했다. 그리하여 선거운동에서도 언론의 역할이 지금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세 번째로 1864년 대선을 통해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힘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알아본다. 현대의 미국 정치는 의회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남북전쟁(1861-1865) 당시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이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이후 20세기는 말 그대로 대통령중심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남북전쟁 이전)에는 대통령의 권한이 한정되어 있었다. 헌법에도 의회 다음에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을 거론하고 있을 정도이다. 대통령은 선거로 뽑힌 왕이 아니라 대의제의 대표에 불과했다. 즉 주민들이 직접 투표로 뽑은 의원들의 대리인이었다. 대통령은 당시 주민이 아니라 선거인단에 의해서 뽑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링컨 이후 상황이 달라져 대의제의 대표가 아닌 나라의 수장이자 가장 강력한 권부가 되었다.
    1864년의 대통령선거는 우리나라에서의 5년 단임과 달리 재선이 가능한 미국식 전통의 일환이었다. 이 논문을 통하여 우리는 미국 19세기 중반의 대통령 선거 운동과 운동 과정을 알아본다. 이 논문은 19세기 미국 정치사의 특징을 알 수 있고, 미국 대통령선거 운동 과정을 알 수 있다. 기존의 링컨에 대한 논문은 수없이 많다. 링컨의 지도자상과 링컨의 정치적인 의미를 말하는 논문은 여러 개가 있다. 또한 남북전쟁을 파악할 수 있는 전쟁 전략과 전술에 대한 논문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운동 특히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선거운동에 대해서는 평택대 김남균 교수의 논문이 한 개가 있다. 그것은 1860년 대통령선거운동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1864년 재선운동과 그 과정과 결과 그리고 영향력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이 논문의 의의다. 또한 이 논문은 1864년 대통령선거의 과정과 언론의 역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개입을 살펴보려고 한다. 1864년 봄에 이미 미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재직 중이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재선운동을 시작하였다. 1864년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 북부는 정치적 불화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공화당은 1862년 중간선거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었으며 그에 대한 반응으로 당 지도자들은 전쟁을 지지하는 모든 집단의 광범한 연합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들은 그 조직을 연방당(Union Party)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공화당과 일부 전쟁지지 민주당(War Democrats)을 합한 것에 불과했다. 민주당 후보는 조지 매크렐런 장군으로 거의 굳혀졌다. 매크렐런은 이전에 북부군 총사령관이었지만 링컨과 불화로 직위해제 상태였다. 민주당은 전쟁에 반대하고 정전을 주장하는 강령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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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search result and Utilization method
  • 연구의 결과는 무엇보다도 학술적인 것으로서 선거운동과 정치적인 행태에 대한 이해를 수정, 비판,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둘째, 학술적인 연구의 결과는 자연히 대학 교육이나 강의에서 도움을 줄 것이다. 대학에서의 강의는 끈임 없는 새로운 주제와 발견을 확산시키는 장이 된다. 지금까지 링컨에 대한 정치철학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던 혹은 하지 못했던 재선과 관련된 행태가 한국 이 연구결과의 활용방안은 첫째, 미국 선거운동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본 의 대통령 선거의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역사학의 분야가 다양해지는 것은 고무적이다. 인문학 분야가 상아탑적인 자세를 지양하여 현실문제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여 조사함으로서 각 사회 집단과 담론을 논하는 것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정치학과 정치에 대한 현실적인 담론과 실제의 괴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선거는 오늘날 전 지구적인 주제이다. 아주 복잡하고 혼란스로운 대통령선거 그것도 영향력 있는 미국의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후속적인 연구나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익한 토대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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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이브러햄 링컨, 16대 대통령, 재선운동, 그랜트, 민주당, 공화당 급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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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대통령 재선 - migug daetonglyeong jae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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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재선 - migug daetonglyeong jaes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