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난이도 높은곡 - piano nan-ido nop-eungog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피아노 곡은 무엇일까

피아노 난이도 높은곡 - piano nan-ido nop-eungog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피아노 곡은 무엇일까요. 사실 유치하고, 의미없는 질문입니다. 예술에 우열이나 순위를 나누는 절대적 기준이 없고, 연주자, 감상자마다 주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인데요. 고음만 잘 내지른다고 해서 노래를 ‘잘한다’고 할 수는 없듯이 테크닉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피아노 ‘난곡’ 순위를 매기는 경우가 없진 않습니다. 어떤 곡이 어렵냐는 질문에 대체적으로 중복 언급되는 곡들이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연주되는 레퍼토리 중에 가장 어렵다고 꼽히는 피아노 독주곡을 소개해드립니다.

 ■밤의 가스파르 | 모리스 라벨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1908년 발표한 <밤의 가스파르(Gaspard de la nuit)>는 난곡 중의 난곡으로 꼽힙니다. 알로이지우스 베르트랑이라는 시인이 쓴 시집 ‘밤의 가스파르’에서 시 세 편을 토대로 작곡한 모음곡인데요. 1악장은 ‘물의 요정(Ondine)’, 2악장은 ‘교수대(Le gibet)’, 3악장은 ‘스카르보(Scarbo)’ 입니다. 곡 자체의 기교도 굉장히 까다로운데 원 시의 음침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해야하다보니 연주자들에게 큰 도전이 되는 곡입니다.
1악장은 인간을 유혹하는 물의 요정, 2악장은 목 매달린 시체가 흔들리는 교수대의 음울한 풍경, 3악장은 밤마다 천장을 뛰어다니는 사악한 요정 스카르보를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 중 3악장 스카르보는 최난곡으로 꼽힙니다. 라벨은 (당시 가장 어려운 피아노곡으로 호평받던)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보다 더 어려운 곡을 작곡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그 결과로 스카르보가 만들어졌는데요. 실제로 어마무시한 곡이 나오면서 가장 어려운 피아노곡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곡이 됐습니다.

피아노 난이도 높은곡 - piano nan-ido nop-eungog

스카르보는 아르페지오의 압박이 심한데요. 박스 안의 오른손과 왼손의 음을 세보시면 짝이 맞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같은 시간 안에 왼손은 22번을 두드리고 오른손은 18번을 두드리는 상황을 생각해보시면 '이건 뭐지'라는 느낌이 오실 듯.

<밤의 가스파르>는 연주시간이 약 20분 정도로 이 중 스카르보는 대략 8분 정도의 길이입니다. 숨가쁘게 질주하다가 갑자기 섬광이 터지듯 고조되더니 다시 사그러들면서 쉴새 없이 ‘밀당’을 하는데요. '고클래식'에 올라와 있는 곡 해설이 잘 되어 있으니 읽어보세요. 재밌습니다.
▶밤의 가스파르 곡 해설 바로가기

Pogorelich plays Ravel: Gaspard de la nuit (Ondine - Le Gibet - Scarbo) | 유튜브

피아노에서 물소리가 들려오는 옹딘부터 사악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오는 스카르보까지 감상해보세요.

■이슬라메이 | 밀리 발라키레프
<이슬라메이: 동양적 환상곡(Islamey: an Oriental Fantasy)>은 러시아 작곡가 밀리 발라키레프가 1869년 코카서스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영감을 받아 작곡했습니다. 발라키레프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곡이고, 최고로 어려운 피아노 독주곡 중 하나로 꼽힙니다. 모리스 라벨이 피아니스트이자 평론가였던 모리스 들라쥬에게 이슬라메이를 능가하는 어려운 피아노곡을 작곡하겠다고 밝혔다는 얘기가 유명합니다. 
악보를 보시면 눈이 팽팽 돌아갑니다. 원곡의 엄청난 난도 때문에 현재 연주되는 곡은 일부 변주 부분을 더 쉽게 연주하고 있다네요. 테크닉이 뛰어난 연주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곡입니다.
오리엔탈 판타지라는 부제처럼 민속적인 선율이 매혹적인데요. 중간의 서정적인 선율은 크림 지방 타타르족의 아름다운 사랑 노래라고 하네요. 아름다운 선율과 현란한 기교가 이어집니다.

Islamey - Balakirev | 유튜브

위 영상은 테크니션으로 유명한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연주인데요. 실황 영상을 보면 너무 여유있게(?)쳐서 놀라게 됩니다. 궁금하시면 다른 영상도 검색해 보세요.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 7번 ‘전쟁’ |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에프는 ‘전쟁’이라는 타이틀로 3개의 소나타(6번, 7번, 8번)를 작곡했는데요. 이 중 7번(Prokofiev Piano sonata No. 7)이 가장 유명합니다. 20세기 현대 작곡가의 곡이다보니 조금은 낯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만. 넘치는 에너지, 날카로운 불협화음, 격렬한 리듬, 타악기적인 타건이 어우러져서 듣는 사람을 압도합니다. 저는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생각나더라구요.
특히 Precipitato(성급하게, 맹렬하게)라는 지시말이 쓰여있는 3악장은 망치를 두들기는 듯한 에너지가 짧은 곡안에서 휘몰아칩니다. 피날레도 수렴하며 마무리하지 않고, 쾅쾅쾅 터트리면서 끝이 나는데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프로코피에프 전쟁 소나타 곡 해설 바로가기

Sviatoslav Richter - Prokofiev - Piano Sonata No. 7 in B flat major, Op. 83

Prokofiev - Piano Sonata No. 7, Op. 83 III. Precipitato (Pollini)

끝까지 듣기 어려운 분은 3악장만 편집한 두 번째 동영상을 들어보세요. 압도적입니다.

■페트루슈카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Petrushka)>는 원래 발레음악으로 1911년 작곡됐습니다. 인형 극장의 주인이 갖고 있던 세 인형 페트루슈카, 발레리나, 무어가 생명을 얻은 뒤 벌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러시아발레단에 의해 파리 샤틀레극장에서 초연됐습니다. 줄거리는 1830년경 제정 러시아 시대에 페테르부르크의 사육제 주간에 번화한 광장에서 일어난 꼭두각시 인형 페트루슈카의 비극을 주제로 하고 있다네요. 페트루슈카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꿈꾸다 비참하게 숨지는 내용이라는군요.
스트라빈스키는 1921년 친구였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을 위해서 발레 음악 중에서 3곡을 추려서 피아노 모음곡으로 만들었습니다. 곡은 ‘러시아의 춤’, ‘페트루슈카의 방’, ‘사육제의 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곡은 꼭두각시 얘기답게 경쾌하게 시작하는데, 도약도 심하고 정신없습니다. 검색해보니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 등장했다는군요. 드라마를 보신 분은 '아, 이곡이구나' 하실 것 같네요.
▶페트루슈카 곡 설명 바로가기
▶발레음악 페트루슈카 설명 바로가기

Trois Mouvements de Petrouchka | 유튜브

손열음씨의 연주로 들어보시죠.

■쇼팽 에튀드에 대한 연구 | 레오폴드 고도프스키
쇼팽 에튀드에 대한 연구(Studies on Chopin’s Etudes)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데요. 낭만파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피아노 작품 중 하나인 프레데릭 쇼팽의 에튀드(연습곡)를 폴란드 출신 미국 작곡가 레오폴드 고도프스키가 편곡했습니다. 고도프스키는 초절기교를 자랑하는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했다는데요. 원곡도 쉽지 않은데 고도프스키가 편곡해 놓은 쇼팽 에튀드는 입이 떡벌어집니다. 쇼팽 에튀드 27곡(Op. 10, Op. 25의 24곡+3개의 새로운 연습곡)을 토대로 53곡을 만들었는데요. 양손으로 치기도 힘든 곡을 왼손으로만 치게 만든다거나 에튀드 중 ‘흑건’과 ‘나비’를 합친 곡을 만들어낸다든지 다양한(어려운) 시도를 했습니다. 비교하면서 들으면 고도프스키 쇼팽 에튀드의 무시무시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Pollini plays Chopin Etude Op.25 No.11 'Winter Wind' | 유튜브

Chopin-Godowsky - Study No. 42 in A Minor after Op. 25 No. 11 | 유튜브

쇼팽 에튀드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곡으로 꼽히는 '겨울바람'(Op. 25, No.11)을 시베리아의 눈폭풍으로 바꿔놨네요;;; 위는 원곡이구요. 아래가 고도프스키 버전입니다. 유튜브에서 godowsky chopin etude로 검색하면 더 많은 곡이 나오니까 원곡과 비교하면서 들으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Godowsky: Passacaglia in B Minor (Siirala) | 유튜브

추가로, 고도프스키의 파사칼리아(Passacaglia on Schubert’s unfinished Symphony)도 굉장한 난곡입니다. 슈베르트 '미완성 교향곡'의 주제를 따와서 44개의 변주를 만들어냈는데요. 이 곡은 20세기 거장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희망이 없다. 손 6개가 필요하다”고 한탄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연주자는 힘들겠지만, 듣다보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라 발스 | 모리스 라벨
모리스 라벨의 <라 발스(La Valse)>도 난곡으로 꼽힙니다. 라벨은 오케스트레이션의 달인으로 유명했는데요. <볼레로> 등의 관현악곡은 클래식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도 친숙하죠. <라 발스>도 원래는 관현악곡입니다. 라벨이 오스트리아 빈, 그리고 빈의 왈츠에 바치는 오마주로 작곡한 곡인데요. 화려한 무도회장을 떠올리게 하는 매력적인 곡입니다. 하지만 쿵짝짝 쿵짝짝 우아하고 단순하게 흘러가는 왈츠 음악에 그치지 않습니다. 극적이고, 휘몰아치듯 발전해서 마지막에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합니다. 뭐랄까, 코끼리코를 10바퀴 돌거나 만취상태에서 흥청거리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후반부 글리산도 나오는 부분이 엄청 신납니다. 편곡 버전이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피아노 난이도 높은곡 - piano nan-ido nop-eungog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음표인 악보가 악기를 통해 아름다운 음악으로 재현되는 모습을 보노라면, 세상에 이보다 더한 불가사의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들어보시니 어떤가요?

올댓아트 에디터 배문규


피아노 난이도 높은곡 - piano nan-ido nop-eung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