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에 등장 인물 구레 네 시몬 - sin-yag e deungjang inmul gule ne simon

제목 :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 15:21-32    13-0324

예나 오늘이나 예수님의 뒤에는 많은 군중들이 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의 목적은 각각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떡을 얻기 위해서, 명예와 영광을 얻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은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그러나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진리를 배우고 예수님과 함께 하고자 따르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의 짧은 공생애 기간 동안 메시야에 대한 대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든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될 때에는 다 흩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도, 은혜를 입었던 자들 흩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예수님의 뒤를 따르던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등 많은 여인들이 가슴을 치고 울면서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못 박기 위해 따르는 로마 군병들도 있었고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유일하게 한 사람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구레네에서 살고 있는 '시몬'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1. 구레네 시몬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평소에 안면이 있거나 잘 아는 그런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아프리카 청년으로 유대인의 명절에 참석 차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올라온 시골 촌사람이었습니다. 더욱이 지금 예루살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소문만 풍문으로 들었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와보니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궁금하여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에는 말로만 듣던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시몬은 호기심에 사람들을 제치고 군중 맨 앞자리에 나아가서 십자가를 지고 힘들게 올라가시다가 넘어지고 또 일어서서 걷기를 반복하시는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이제까지 말로만 듣고 흠모했던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눈앞에는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들과 불구된 자들을 고쳐주시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시는 화려한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온몸에는 매 맞은 자국에서 흘린 피가 흥건했으며, 오랫동안 고문에 시달려 초죽음 된 예수님의 얼굴을 보게 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두려움과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행렬을 바라보며 할 수만 있다면 건장한 자기가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대신 져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마침 로마 군병 하나가 구레네 시몬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대신 십자가를 강제로 지게 했습니다. 로마 군병은 한눈에 그가 건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입니다. 이때 구레네 시몬은 사색을 하며 '난 안됩니다. 난 절대할 수 없습니다.'하며 그 자리를 황급히 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피할 수 있는 그 길을 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달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할렐루야!

2.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입니다.

구레네 시몬의 마음에는 지금 두 가지 마음이 교차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마음으로 십자가를 대신 져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할지라도 재수되게 없군. 내가 어쩌다 이런 저주스런 죄인들이나 매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나!" 하는 생각과 또 다른 하나는 "감사합니다. 내가 그렇게 열렬하게 사모하던 예수님 그 주님의 고난에 내가 잠시나마 동참하게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내 비록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했으나 이렇게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뵈옵는 것은 물론 십자가까지 대신 짊어지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이를 계기로 내가 더 열심히 주님을 섬기며 우리 가족 모두가 다 참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이 두 마음 중에 후자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쁘게 십자가를 짊어지고 갔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 예수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짊어지는 십자가는 없습니까? 그리고 그것 때문에 원망하며 무서워하며 그 자리를 피하지는 않았습니까? 아니면 힘없이 그저 울며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여인의 모습입니까? 아니면 교회의 모든 어려움들을 주님의 십자가로 알고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로 주님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가게 하옵소서." 하며 주 앞에 나오는 자입니까?

지난 과거 수많은 무리들이 오병(五餠)이어(二漁)를 먹고, 각종 병을 고치고, 기적을 보고, 환호하면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그 뒤를 따름에 있어 기복적인 모습을 많이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고난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소수이며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어려울 때 진정으로 교회를 지키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소수 중에 소수일지라도 그는 참으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복 있는 자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소수 속에 하나인 나 일지라도 너무 마음 아파하시지 마십시오. 이 길이 주님 걸어가신 길이요, 눈물 없이는 못 가는 영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우리교회가 당면한 이 어려움의 길이 곧 십자가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고난의 길이요 아픔의 길일지라도 우리는 행복합니다. 왜요? 주님이 인정하시는 길이요 함께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3. 억지로 십자가를 진 순교자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고난의 행렬에도 나란히 참석해야 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 같은 구레네 시몬의 헌신적인 십자가는 도망자였던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에게 놀라운 도전과 충격을 던져 주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기의 부끄러운 모습에 나는 뭔가? 예수님의 수제자라 하며 예수님을 쫓았던 내가 지금 도망자가 되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나에게 두 번 다시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 남은 생명을 다 받쳐 주님께 헌신 해야겠다는 도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의 헌신을 통해서 크게 회개한 사도 베드로는 가슴을 치며 통곡합니다.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을 두 번 다시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 후 오순절 성령 충만 함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을 들고 소아시아와 사마리아, 로마까지 들어가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에서는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대대적인 처형을 하고자 흉악한 계획을 하였습니다.

그때 사랑하는 베드로의 제자들이 "선생님, 로마 성을 피하십시오, 선생님은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 두려워서 로마 성을 피하여 이른 아침 언덕을 넘어 로마를 뒤로하고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를 향해 그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예수님이셨습니다. 베드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쿼바디스 도미네?(주님 어디로 가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네가 살겠다고 내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로마로 들어간다."는 말씀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베드로는 깜짝 놀라 다시금 발걸음을 돌이켜 '이제 내가 주님과 함께 그 고난의 길에서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로마에 돌아가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혔습니다. 베드로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원형 극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수자라고 하면서도 나 살기 위해 내 주인을 배반하고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바르게 섬기지 못한 제자입니다. 그러한 내가 어찌 예수님과 동일하게 십자가에 매어달릴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죽을 자격도 없습니다. 제발 나를 거꾸로 매달아 주시오" 그리하여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의 입과 코에서는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베드로는 하늘가는 밝은 길을 알았기에 비록 늦게나마 담대하게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고난의 길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중에 혹시라도 이렇게 부흥되지 않은 교회에 꼭 다녀야만 하는가 하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까?아니면 지금이라도 조그마한 계기라도 주어진다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말입니다. 그러나 구레네 시몬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무겁고 흉악한 십자가를 지기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어떤 사람도 자기가 그 십자가를 지기 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구레네 시몬은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랐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구레네 시몬이 본의 아니게 진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였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주님을 섬기며 경배한 결과 온 가족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리 많지 않은 우리 성도님들일지라도 이 교회와 이 지역과 이 민족을 뒤엎을 참다운 영적 지도자가 태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주님을 끝까지 따른 여러분의 삶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레네 시몬을 통해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그의 가정과 가족들에게 임한 것처럼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한 은혜가 넘쳐나리라 확신합니다.

4. 자손에게까지 미치는 축복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사람에게 영광과 축복을 약속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4:13절에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1)하나님의 보상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신 일에 동참함으로 인해 그 자신의 명예로운 이름과 함께 후손들에게까지 놀라운 축복을 남겨 주었습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 하시면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10:40)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10:41) 그렇다고 볼 때 시몬은 상을 받기에 충분한 일을 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그 당시에는 잘못 걸려들어 억지로 진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보상과 축복의 대상으로 영원토록 인류 역사에 기록되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3:2절에 보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 힘들고 어렵지만 세계로열린교회를 지키며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임 받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따라 축복하시고 보상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2)자손이 받은 복입니다.

성경의 기록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시몬이 신자가 되었고 또 그의 아들들이 초대교회에 명성을 떨친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었다는 사실을 일러 줍니다. 본문 말씀 21절에 "알렌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시몬"이라고 한 것을 보아 구레네 시몬에게 알렉산더와 루포라는 두 아들이 있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성경 기자는 알렉산더와 루포에 대한 소개가 없이 이름만 밝힌 것으로 보아서 이미 그들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잘 알려진 저명인사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사도 바울이 로마 성도들에게 보낸 문안 인사 중에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한 말입니다.(16:13) 알렉산더라는 이름은 다른 성경에도 나오지만(19:33, 딤전1:20), 이는 흔한 이름이기 때문에 시몬의 아들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루포가 시몬의 아들이라는 데는 일반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훗날 로마의 성도들에게 보낸 글인 마가복음이나 바울 서신에 루포의 이름이 기록되고 바울로부터 문안 받을 만한 인물이라면 신약교회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시몬의 아내를 바울이 자기의 어머니라고 불렀다면 그들은 신앙적으로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시몬은 어쩌다가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을 목도하게 되었고 그 중에도 잠시 동안 그 십자가를 대신 졌지만 그는 후대에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그 이름이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자손손 경건하고 복된 인물들로 기록에 남게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우리교회 개척시절에 함께 했던 사람은 한 분도 없지만 그러나 새 성전건축의 어려운 시절을 지나 입당예배 때부터 세계로열린교회와 신앙의 길을 함께하신 분들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이 분들과 자녀들이 받을 복이 무엇인가를 성경은 구레네 시몬의 가정을 통해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후대에까지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구레나 시몬의 헌신이 그와 그 자손들에게 복이 된 것처럼 부모님들의 억지로 하는 헌신까지도 그 자손들에게 복이 될 줄 믿습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중 대다수가 믿는 자들의 후손이요 그중 절반 이상이 목사의 후손들이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헌신이 자신과 가정과 자손들에게 큰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끝으로 결론을 맺으려고 합니다.

미국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에 커다란 종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종탑이 높아서 그런지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수많은 군중들이 운집하여 교회당 종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성도 한 사람이 궁금하여 묻습니다. "형제들이여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저 십자가를 보십시오." 그래서 가르쳐 주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다름 아닌 십자가 종탑을 수리하는 수선공이 그 십자가에 매달려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 평소에는 십자가를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어찌 수선공이 올라가 십자가를 수리한다고 저 난리를 피우며 꼼짝도 않고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 때 한 사람이 기발한 생각을 해냈습니다. "그렇다. 십자가에 매달리는 사람이 있어야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쳐다본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 누군가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있을 때 성도들이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그냥 일꾼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물질과 정성을 다해 죽도록 십자가를 지며 충성할 일군을 찾고 계십니다. 많이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곧 구레네 시몬과 같은 한 사람의 순종과 헌신만 있으면 교회 부흥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여러분들이 그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