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열정 소나타 해설 - betoben yeoljeong sonata haeseol

Beethoven, Piano Sonata No.23 in F minor

베토벤 열정 소나타 해설 - betoben yeoljeong sonata haeseol
'Appassionata'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열정’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Daniel Barenboim , piano

베토벤은 전 생애에 걸쳐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는데, 작품의 특성 및 작곡 시기에 따라 크게 초기ㆍ중기ㆍ후기 3개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피아노 소나타 23번 Op.57 ‘열정’은 1804년에서 1806년에 걸쳐 작곡된 곡으로 중기 소나타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중기 소나타란 1802년부터 1806년에 걸쳐 작곡된 12곡의 소나타를 일컫는데, 이 중 ‘발트슈타인’ 소나타와 더불어 ‘열정’ 소나타가 중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불꽃같은 격정, 불굴의 기백이 돋보이는 피아노 소나타의 역작

베토벤의 중기 소나타들이 전기 소나타들과 구분되는 특징을 먼저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형식이 자유로워졌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전기 소나타는 하이든과 모차르트로부터 이어지는 전통적인 3악장 혹은 4악장의 소나타-알레그로 형식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중기로 넘어오면서 실험적으로 새로운 형식을 도입했다. 즉, 두 개의 악장으로만 구성된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한다든지, 형식상으로는 소나타 형식이지만 내용면으로는 음량의 폭을 극대화하고 색채감을 더해 고전시대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오케스트라적 음색’을 추구한다든지, 악장 간 유기적인 주제를 사용함으로써 피아노 소나타의 형식을 발전시켜 베토벤 후기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원숙한 예술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베토벤의 손을 주조해 본뜬 모습. 베토벤은 뛰어난 테크닉을 지닌 당대의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이 가운데 ‘열정’ 소나타는 중기 소나타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이 곡이 작곡될 무렵은 베토벤에게 있어 풍부한 창작의 시기였다. 그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를 완성했고 교향곡 4번, 5번, 6번과 ‘라주모프스키’로 불리는 세 개의 현악4중주 Op.59, 피아노 협주곡 4번,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작곡해 양식과 내용에 있어서 진취적이고 독창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곡은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인 프란츠 폰 브룬스비크(1771-1849) 백작에게 헌정되었다.

Rudolf Serkin, piano (1936)

청춘을 지배한 방황과 열정의 산물

브룬스비크 백작은 우리에게 영화로 잘 알려진 ‘불멸의 연인’이라고 일컬어지는 테레제의 오빠이다. 베토벤은 1800년부터 백작의 집에서 테레제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적이 있다. 이 집에는 요제피네라는 누이가 있었는데, 베토벤은 요제피네의 관능적인 아름다움과 테레제의 정적인 아름다움 사이에서 많은 방황을 했다고 한다. 2악장에 테레제에 대한 인상을 반영시켰으며 격렬한 1, 3악장은 요제피네의 아름다움에 대한 반향으로 썼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프랑스의 대문호 로맹 롤랑은 이 곡을 듣고 “열정의 마음, 탄탄한 턱과 위쪽을 노려보는 날카로운 눈빛, 고뇌와 단련된 불굴의 기백이 그대로 다가오는 것처럼 여겨지는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작품의 부제인 ‘열정’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라 독일 함부르크의 출판업자 크란츠가 붙인 것이다. 이 곡이 얼마나 어렵게 느껴졌던지 크란츠는 1838년 이 곡을 출판하면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편곡’ 버전을 함께 선보였을 정도다. 더군다나 대중들이 연주할 수 있기까지 35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는 기록을 보더라도 ‘열정’ 소나타가 당시로서는 얼마나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었던가를 실감할 수 있다.

 

헝가리의 리스트 음악원에 소장되어 있는 베토벤이 사용하던 피아노.

새로운 질서와 미래를 향한 베토벤의 예술적 창조력

이 곡은 격렬한 고통과 애처로운 전율을 일으키는 1악장, 격정 뒤에 찾아오는 안식과 슬픔이 내면으로 잦아드는 2악장, 운명을 거부하는 듯한 힘찬 전주와 폭풍우를 불러일으키는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극적 정서와 강렬한 음향, 자기 자신을 뛰어넘고자 한 악성의 열정은 기존의 그 어떤 피아노 소나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베토벤만의 창조성을 증명한다. 이렇듯 독창적인 내용, 진보된 피아노 테크닉의 명곡으로 200여 년 동안 꾸준히 사랑 받아왔지만, 표현과 테크닉의 어려움 때문에 작곡 초기에는 아무나 연주할 수 없었다. 베토벤을 존경하고 작품을 꾸준히 연주했던 프란츠 리스트의 탁월한 연주력과 관심 덕분에 비로소 이 곡은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다. 1803년 파리의 피아노 메이커인 에라르 사가 제공한 그랜드 피아노도 이 곡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발전된 성능의 피아노 덕분에 보다 높고 넓은 음역 및 다양한 음색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열정’ 소나타가 베토벤의 천재성을 담아낸 독보적인 작품이라는 ‘신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베토벤이 18세기 영국 런던악파의 거장이자 모차르트와의 피아노 경연대회, 작곡가, 지휘자, 출판업자, 피아노 제조업자 등으로 유명한 무치오 클레멘티(Muzio Clementi)를 존경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음악학자 알렉산더 링거의 분석에 따르면 ‘열정’ 소나타에서 클레멘티의 영향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소나타 3개의 악장을 ‘동일한 음악적 요소’로 결합시키는 통일성의 방식에 있다. 그러므로 ‘열정’ 소나타의 통일성은 베토벤의 독창적 산물이 아니라 클레멘티로부터 배운 것을 자기 스타일로 발전시킨 것이라는 결론을 내려볼 수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베토벤은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고자 했고 이 질서는 옛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궁극적인 출발점은 베토벤의 예술적 창조력이요, 지향하는 지점은 미래의 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다.

Maurizio Pollini, piano

Complete

1. Allegro assai

2. Andante con moto - Attacca

3. Allegro, ma non troppo - Presto

Alfred Brendel, piano

Complete

1. Allegro assai

2. Andante con moto - Attacca

3. Allegro, ma non troppo - Presto

제1악장 :Allegro assai

12/8박자의 제1악장은 격렬한 단조의 폭풍을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듯한 긴장감이 곧 들어닥칠 거대한 폭풍을 예고한다. 1주제와 2주제, 이 두 개의 주제를 연결하는 경과구가 서로 어우러지며 단단한 통합력을 바탕으로 결속되어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2, 3악장까지도 같은 요소로 구성된 ‘음악적 동기’를 통해 3개의 악장을 통일시킨다. 이 악장의 주요 리듬은 교향곡 5번 제1악장의 ‘운명의 동기 리듬’ 패턴과 흡사하다.

2악장 :Andante con moto - attacca

변주 형식을 따른 평범한 변주곡이다. 주요 주제가 3개의 변주 다음에 다시 제시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음악학자 찰스 로젠은 이 주제가 3개의 변주가 진행되면서 차례대로 성취한 긴장감을 다시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언급했다. 변주가 진행되면서 한 옥타브씩 올라갔다가 클라이맥스 이후 다시 처음의 낮은 음역의 주제로 되돌아오는 것이 이 변주 악장의 특색이다.

제3악장 : Allegro ma non troppo - Presto

소나타 형식 혹은 론도 형식으로 구성된 이 마지막 악장은 베토벤 특유의 강렬한 음향과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불꽃같은 격정과 날카로운 눈빛, 불굴의 기백은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고도 남을 강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매우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끝맺음 부분은 연속적으로 휘몰아치는 아르페지오를 통해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파괴적인 에너지와 흥분을 토해낸다.

추천음반기라성 같은 거장 3명의 연주와 현대적인 연주 1장을 골랐다. 고전적인 명연으로는 루돌프 제르킨의 연주(SONY)를 꼽을 수 있다. 독일적인 분위기와 엄격함, 순간순간 불을 튀기는 연주가 인상적이다. 켐프의 연주(DG)도 고전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음향의 아름다움과 시적인 서정성이 결합한 아름다운 연주다. 부제 그대로의 뜨거운 열정을 발산하는 리히터의 스튜디오 녹음(RCA)은 스케일과 파워가 돋보이는 연주다. 현대적 명연으로 폴리니의 연주(DG)를 추천한다. X선을 투사한 듯한 명확한 구조와 현대적인 음색이 아름답다.

박제성(음악칼럼니스트)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의 역자. 클래식 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으며, 공연, 방송, 저널활동, 음반리뷰, 음악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해설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 2009.11.30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5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