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한국 반환 - daemado hangug banhwan

대마도 한국 반환 - daemado hangug banhwan
사진 1. 미국 JANIS 75권의 한국편 제1책 인구편에 등장하는 한국지도. 왼쪽 위편으로 '한국 인구밀집 지역'이라는 제목이 보이고, 왼쪽 아래에 제주도가 이어 오른편 아래쪽에 대마도(Tsushima)가 선명하게 인쇄돼 있다. 제주도 해안가로 인구가 밀집해 있는 것처럼 대마도 위 아래쪽으로 인구 밀집지역이 표시돼 있다. 출처 : 미국 국립문서보관청, NARA일본 정부가 김창룡 경찰청장의 독도방문의 틈을 타 해묵은 독도 영유권 분쟁화를 시도하고 있다.

일본이 터무니없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패전국 일본의 지위를 정의한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체결과정의 문구를 일본이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부터다.(관련기사 참고)

그런데 대마도를 한국(Korea)의 섬으로 분류한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기밀 책자가 발견돼 흥미를 끌고 있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49km, 일본 규슈에서 147km 떨어져 있는 면적 700㎢의 섬이다. 독도 보다 3700배나 크다.

대마도를 한국의 섬으로 분류한 책은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육해군 합동 정보 조직인 'JANIS'가 세계 곳곳에서 수행할 미군의 군사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담아 발간한 기밀책자 가운데 한 권이다.

 'JANIS' 시리즈 가운데 제 75권으로, 한국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두 권으로 편철돼 있는 책의 제목은 'KOREA(Including Tsushima and Quelpart)'이다.

 우리말로 풀면 '한국(대마도와 제주도 포함)'이다.

대마도 한국 반환 - daemado hangug banhwan
사진 2. JANIS 75권 1책의 표지. 한국 영토 구역 아래쪽에 제주도와 대마도가 선명하게 표시돼 있다. 출처 : NARA
CBS노컷뉴스가 미국 문서관리기록청(NARA)에서 확보한 제1책의 표지에는 '비등록 기밀'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다.

서문에는 "이 연구의 목적은 우리가 한국에서 수행할지도 모를 군사 작전 계획의 바탕이 될 모든 필요한 구체적인 지형학적 정보를 하나의 출판물로 제공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서술돼 있다.

 책 제목에 이미 '대마도'가 명시돼 있듯이 781페이지로 구성된 책 전반에 한국의 모든 지형 설명에 대마도가 주요하게 기술돼 있다.

 책에는 개요, 군사 지리, 해안과 상륙지역, 기후, 항구 시설 등이 차례로 설명돼 있는데 각 항목별 지도도 매우 정교하게 인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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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JANIS 75권 1책에 나와 있는 지도들. 왼쪽은 해안 구획이고 오른쪽은 상륙지점이다. 두 지도 모두 대마도가 역시 명확히 표시돼 있다. (NARA)
우선 1장 개요 항목의 주요 교통 루트 편에는 남부의 중심지로 부산, 대구, 진해, 여수가 명시돼 있고, 이어 남해의 가장 큰 섬으로 대마도와 제주도가 각각 설명돼 있다.

 인구와 정부 항목 내 군사 지리 편에는 한국 내 소수(several)의 큰 섬들과 수 백 개의 작은 도서가 소개돼 있는데 여기서도 울릉도, 대마도, 제주도를 대표적 섬으로 적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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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JANIS 75권 1책의 지도. 한국을 입체모형으로 그렸는데, 여기에도 대마도가 큼지막하게 나타나있다.(NARA)  
다만 이 책 1장 42페이지 '인구와 정부' 편에는 대마도가 일본 영토라는 설명도 등장한다.

 '인구와 정부'편은 인구, 노동력, 정부조직, 정치 요인, 안전 및 공공질서가 차례로 서술돼 있고 이어 마지막으로 대마도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거기에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대마도는 일본 proper의 부분이며 나가사키현의 사법관할'이라고 적혀있다.

 여기서 'proper'는 서술상 명사지만 해당 단어는 명사로는 쓰이진 않는다.

 미국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한 미국인 자료조사원은 "문맥상 소유라는 뜻의 'property'라는 단어가 잘 못 쓰인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일본 소유'로 읽힌다"고 말했다.

 이는 이 책에서 대마도를 한국 섬으로 시종일관 기술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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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JANIS 75권 1책의 지도. 한국 지도를 위성 형태로 표현했다. 부산 아래 대마도가 표시돼 있다. 출처 : NARA모순되는 설명이 같은 책에 등장하는 이유는 이 책이 여러 곳의 정보를 취합한 때문으로 보인다.

 이 책은 서문에서 "1945년 3월 1일까지 워싱턴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집대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해군 작전참모처, 육군 정보처, 해군 정보처, 기상청, 공군 등 11곳의 정부 기관의 정보를 망라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어떤 정보는 대마도를 한국의 영토로 분류한 반면, 어떤 곳은 한국의 영토로 분류하면서도 '일본 소유의 부분'이라고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우리정부도 한 때는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고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다.

1949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마도 반환을 일본에 요구했으며, 이어 1951년 4월에도 미국정부에 대마도 영유권을 공식 주장하기도 했다.

 세종실록과 동국여지승람 등에는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기록이 적지 않다.

 국내 역사학계에서는 조선시대 때 대마도를 비워놓는 바람에 19세기 후반 일본 메이지 정부가 대마도를 일본에 편입시켰다고 보고 있다.

※취재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요즈음 대마도가 우리 한국영토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우리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열렬히 환영해야 할 사안이라고 보지만, 대마도는 우리가 오랫동안 일본 땅으로 여기거나 방치해 놓고 있었음이 사실이라서 이러한 뉴스에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유리한 자료를 좀 확보하고 있고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 하더라도 이 분쟁이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20~30년 혹은 그 이상 걸릴 수 있다고 보며,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단호한 태도와는 별도로 역사적 근거를 좀 더 찾아내고 타당한 논리를 구성하여 체계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며, 일반 시민들도 대마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해방 이후 일본의 극우세력들과 정치인들은 줄기차게 독도, 즉 자기들 말로 다케시마가 시마네현 소속의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데, 요즈음은 일본의 일반 시민들도 같은 주장을 서슴치 않고 있다. 한국이 무단으로 경찰을 진주시켜 실효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다케시마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대마도는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한 쓰시마 시(巿)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対馬島'를 한국식 독음대로 읽어 대마도라고 부른다. 이 섬의 면적은 부속 섬을 포함하여 708.7㎢(제주도의 38%)이며, 대부분이 해발고도 400m 이상 산지라서 가용 토지는 많지 않다. 이 섬은 역사적으로 해적의 근거지였고 한일교역의 거점 중 하나인데, 일본 내에서도 존재감도 별로 없는 곳이다. 일제때도 이 섬은 부산과 동일경제권이었고, 주민들이 주말에 영화보러 가거나 쇼핑간다고 하면 배 타고 부산 가는 게 당연했다. 인구는 1960년대에는 거의 7만명이었으나 1970~80년대에 걸쳐 인구이탈이 지속되어 지금은 3만명 수준이다. 대마도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왜국으로 가는 길에 소개된다. 그때 대마국(對馬國)은 부산 동래구 내지 경남 거제시로 추정되는 독로국과 김해로 확실시되는 구야국에서 바닷길로 접해있다 했다. 백제 멸망 후 일본조정은 나당연합군의 일본열도 역습을 대비해 대마도 서쪽 각지에 이른바 조선식 산성 가네다 성(金田城)을 쌓았다.

대마도는 일본 본토를 향해서 봉건제도 하의 느슨한 복속관계만 맺으며 자치를 하고 있었고, 한반도를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정부는 대마도를 경상도 관할로 정도로 여겼을 수 있고, 일부 일본 고지도들이 대마도를 조선영토로 그려놓고 있음은 사실이나, 이들이 일본에 좀 더 가까웠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물론 한반도 국가들은 마음만 먹었으면 직할 영토화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마도는 평상시 고려, 조선국의 물품을 수입하여 일본 본토에 넘겨 꽤 이득을 보았고, 식량이 부족하면 조선에서 원조를 받거나, 도둑이 되어 약탈을 했다. 이 왜구들 때문에 우리나라도 바다를 건너 원정길에 나서기도 했다. 1차는 고려 말 1389년(창왕 2년), 2차는 조선 개국 직후 1396년(태조 5년), 3차는 1419년(세종 1년) 기해동정(己亥東征)이다. ‘대마도 원정’은 우리의 군사력을 보여주어 왜구의 재발을 방지함이 목적이었다. 이 원정 이후, 조선은 강경책 대신 회유책으로 무역을 허가했고, 대마도는 조일무역의 중개지가 되었다. 1861년 러시아가 일본에 통상조약과 개항을 요구하며 대마도를 반년간 점령했는데 영국의 개입으로 철수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이승만 대통령은 대마도 영유권 주장 및 반환 요구성명을 60차례 발표하기도 했다.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이 불법적으로 점령한 영토는 반환하기로 했으므로, 불법적으로 점령된 쓰시마 섬도 반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본 언론에서는 '쓰시마 섬의 위기'라는 식으로 대서특필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주장은 당시 독도영유권이 불확실했던 상황에서 협상력 유지를 위한 카드의 하나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지난 2005년에 확인된 미국 국무부 외교문서에 따르면 1951년 4월 27일 한국정부는 대마도에 관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 작성 과정에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대마도의 영유권을 돌려받는다는 문구를 포함시킬 것을 미국 측에 공식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1951년 7월 9일 미국은 "쓰시마 섬은 일본이 오랫동안 통제하고 있고 이번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쓰시마 섬의 현재 지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한국의 요구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한국정부는 대마도 이야기를 꺼낼 기회가 없었다.

요즈음 대마도를 한국령으로 표시한, 일본이 ‘오가사와라 제도’를 미국으로부터 되찾기 위한 증거로 쓰였던 일본 발행의 프랑스어 고지도가 발견되었다고 하며, 최근 ‘과거 일본으로 강탈되어간 한국 사찰 소유 불상반환’을 위한 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과정에서 대마도가 ‘국제분쟁지역’으로 규정됨에 따라 한국이 대마도에 관해 유리한 입장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좀 더 지켜볼 일이라고 생각되며, 미리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독도는 물론이지만 대마도, 북간도 등 다른 잊혀진 고토들도 좀 더 많은 지식과 애정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대응해 나감이 중요하다고 본다. 변모하는 국제상황 하에서 이러한 영토들이 언젠가는 우리 손에 들어 올 수도 있음을 역사에서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역사상 가장 부강한 나라로 부상하는 시점이기에 이러한 다툼에 있어서도 과거와 같은 불리함을 감수할 이유는 없으니 다행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