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조 목사 지옥 - hayongjo mogsa jiog

하용조 목사 지옥 - hayongjo mogsa jiog
▲ 김용민 시사평론가.

하용조 목사가 우리 곁을 떠났다. 고인은 족적이 많았다. 나는 그에게서 두 가지 존재 의미를 떠올린다.

우선 목회자로서의 자질과 인품이다. 장로인 코미디언 구봉서 선생의 간증 중 일부다. “방송사로 한 전도사(하용조 목사)가 오더라고. 그러더니 예수 믿으라며 성경공부 하자고 해. 신앙을 안 갖는다고 나를 원망하던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내가 그랬지. ‘이것 봐, 내가 예수 믿다가 대표로 망한 사람이야. 어서 가!’ 이랬는데 군말 않고 가더라고. 그런데 다음 날 또 오는 거야. 그래서 보냈지. 다음 날 또 오는 거야. 그래서 다시 보냈지. 또 오고 또 가고. 오기도 잘 오고, 가기도 잘 가고. 며칠 동안 이러기에 마지막에는 내가 막 화를 냈어. ‘여 봐, 내가 욕을 한 200가지 알고 있는데 된 놈으로 고른 10개 들어볼 테야?’ 그러니까 그때 또 가더라고. 그러고는 두 번 다시 안 와. 나중에는 보고 싶기까지 하더라고.”

하용조 전도사는 실종된 게 아니었다. 사업하다가 망한 동료 코미디언 고(故) 곽규석 선생(훗날 목사가 됨) 내외와 구봉서 선생 부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구봉서 장로 자택 안방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이를 모르고 일찍 귀가한 구봉서 장로, 황당한 표정을 짓고는 ‘다 나가’라고 했다. 그러나 도리어 본인이 부인에 의해 방 밖으로 쫓겨났다. 때는 겨울. 오일쇼크가 겹치면서 안방 빼놓고 보일러를 다 끈 터였다. 마루였으나 너무 추웠다. 큰 다리 부상으로 발 시린 것을 참지 못하는 구봉서 선생, 결국 안방으로 들어가 성경공부 조를 등지고 누웠다. 잠시 뒤. 하용조 전도사가 메뚜기와 석청을 먹던 불우한 세례 요한 이야기로 열을 올리자 “고단백 로열제리를 자셨구만. 뭐가 불쌍해?”라며 딴죽을 놓았다.

그러나 말씀은 한 올 한 올 구봉서 선생의 마음에 전달됐다. 마침내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전도에 나섰다. 성경공부 참여 연예인은 크게 늘었다. 한 번은 남성과 잠자리를 갖지 않은 여인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한 부분에 대해 동료 연예인이 의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하용조 전도사에게 물었다. 그러나 답은 구봉서 선생이 했다. “야 인마, 남편 요셉이 아내 마리아를 믿는다는데 네가 왜 시비야?”라고. 이런 낭만 속에 1976년, ‘마가의 다락방’이 아닌 ‘구가의 안방’에서 연예인교회가 태동했다. 국내 최초 연예인 선교의 열매를 체험한 하용조 목사, 훗날에 개척해 교인 수 7만의 온누리교회로 성장시켰다. 다른 것보다 구봉서 선생의 생짜에도 불구하고 얼굴색 하나 안 바꾼 하용조 목사의 인내가 빛난다. 애써 찾아갔을 때에 박대를 받은 것도 굴욕인데, 다음 날 또 찾아가 선의를 나타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은 죽었다 깨어나도 고인을 닮기 힘든 부분이다.

또 하나의 기억, 바로 정치적 지향점이다. 하용조 목사는 한나라당 지지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 당 지지하는 게 문제일 리 없다. 이것도 하나의 소신 체계라면 존중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본인의 지지 의사를 자신이 이끄는 교인에게 강론하는 자세는 분명히 잘못돼 보인다. 노무현 이회창 두 후보가 각축을 벌이던 16대 대선 직전, 자신이 발행인으로 있는 월간지 <빛과 소금>에다 “둘째, 선동하거나 비판적인 사람을 선택하지 마십시오. 셋째, 불안정하거나 함부로 말하는 사람을 선택하지 마십시오. 넷째, 예측 불허의 사람을 선택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남겼다(2002년 12월 15일자). 이는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노무현 적대 언론이 노 후보를 비난할 때 애용하던 논리를 그대로 복창한 셈이다.

17대 대선에 이르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는 발언으로써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 본인의 호불호를 강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교회 안팎 신자에게 투표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니 엄연한 정치 개입이었다 하겠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국면에서는 <국민일보> 특별기고를 통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통해 분노와 원망과 미움을 가지게 되면 모두가 불행해지고 파멸에 이르게 된다”며 서거 책임론에 휘말린 이명박 대통령을 두둔하고는 “이 시점에서 자살의 영을 막지 아니하면 그것이 전국적으로 유행병처럼 번지게 될 것이다”며 누가 봐도 고인을 격하할 의도가 서린 언사를 행했다(2009년 5월 25일자).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맥락을 외면했던 것이다.

정치 지향적 설교가 금기시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한국교회 강단에서 개인 구원의 범주를 넘어서는 사회참여적 메시지가 보다 다양하게 펼쳐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온당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 번째, 균형감을 확보해야 한다. 믿고 싶은 것만 보고 또 읽으려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설교자가 그로써 접한 인식을 확신 체계로 삼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사안의 본질부터 세부적 수치까지 빈틈없이 간파해야 한다. 특히 사회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은 없는지 적극 살펴야 한다. 이해가 부딪히는, 찬반이 뚜렷한 현안에 대해서는 양측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 설교가 맹탕일 것 같은가. 아니다. 한결 높아진 수준을 절감할 것이다. 때론 의도한 것과는 다른 그러나 한층 성숙한 결론으로 귀결되는 뿌듯함도 누릴 것이다.

두 번째, 신화화의 유혹을 버리라. 특정 인물과 사건에 대한 은혜로운 서사로 교인에게 감동을 주고 싶은 유혹이야 어느 목회자에게나 있다. 그렇다고 드라마적 요소를 과도하게 가미한다면 사실 왜곡이 된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된다는 논리는 억지에 다름 아니다. 설교도 설득력이 생명인 연설의 일종이다. 특히 해석의 여지가 많은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아주 냉정한 관찰자 시점을 견지해야 한다. 설교가는 작가보다는 기자에 더 가까운 직군이다.

세 번째, 섣부른 결론은 삼가라. 설교를, 많이 아는 목사가 뭘 모르는 교인을 계몽 훈육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다. 경제 수준이 나아지고 민주화가 진척됐다. 이에 따라 교인의 안목 또한 높아졌다. 교회 안에 부정한 관행을 일소하는 개혁운동에 탄력이 붙는 것도 자연스럽다. 말세가 다가와 사탄이 발호하거나 교회에 빨갱이가 틈타서만은 아닌 것이다. 누구나 사리분별 능력이 있다. 섣부른 결론은 강요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6일 동안 온갖 주의 주장에 시달려 온 교인은 목사 개인의 사상과 사유를 주입받고 싶지 않다는 점도 분명히 알아 둬야 한다. 신중해야 한다. 항상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판단하십니까’같은 프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마트폰 가입자가 올해 2000만 명을 넘긴다고 한다. 신자든 비신자든 국민의 절반이 예배 중에 목사 설교의 진실 여부를 실시간으로 검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컨대 ‘팩트’의 힘이 격 있는 설교의 핵심 요소다.

팩트 지상주의인 것 같은가. 그러나 무책임하게 정 가운데에만 줄 서라는 설명은 아니다. 설교는 경향성(傾向性)을 띨 수 있다. 아니 띠어야 한다. 때론 편파(偏頗)적이어도 된다. 어느 쪽? 약자에 말이다. 애매한 것은 물론, 사회 전반의 판단과 규정이 어떠하다 해도 약자를 염두에 둔 메시지에는 탈이 없다. 어려운 주문 같은가. 아니다. 정직하게 팩트에 입각하면 약자 편에 안 서려 해도 서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매 시 매 분 매 초, 약자가 패하지 않는 때가 없으니까. 한진중공업만 보더라도 그렇다. 주주에게 배당금을 나눠 줄 만치 부요한 회사가, ‘구조조정은 없다’던 노동자와의 약속을 파기하고, 정리해고했다. 고로 팩트는 노동자의 편이다.

하용조 목사의 설교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팩트에 기초한 세밀한 현상 진단이 아쉬웠다. 그럴 만했다. 목회 사역을 빛냈던 신자들-정계, 재계, 학계, 연예계 명망가들을 보면 대체로 ‘가진 자’ 즉 주류다. 첨탑이 우뚝 선 자리는 서빙고와 강남, 양지 중에 양지다. 처와 처가 쪽 인사가 옷 로비 청문회장을 드나들었을 당시에 받은 충격은 굳이 회고하지 않으련다.

이 때문에 한국교회를 넘어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고인을 위한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교회의 지도자를 넘어 시대를 품어 줄 지도자에 대한 기대, 우리 시대에는 사치일까. 그저 평범한 목회자로서 하용조 목사의 일생을 기록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나 고인, 편히 쉬시라.


김용민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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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복음주의 교회 내에서 구원의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는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모두들 성경을 믿는다고 하며, 교회에 출석하며, 성도의 교제를 하며, 선교를 하며, 내적 치유를 하지만 구원의 체험을 한 사람은 없다. 구원의 체험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복음주의권 내부에서 구원의 도리를 입맛에 맞게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목사나 성도나 무지 속으로 들어가 헛된 약속으로 거짓된 평안함 속에 들어가 있다. 현대 한국교회에서 ‘당신은 구원의 체험이 어땠습니까?’라고 물으면 곧바로 ‘구원파’라고 낙인찍는다. 구원의 체험은 아무 것도 없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특히 어려서부터 교회 생활한 사람들은 격한 구원의 체험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갈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 생활에 익숙하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구원 받은 것이라 착각하기 쉽다. 그들은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에 대해 감격도 없으며 구원 받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바울이나 교회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거듭날 때 경험하는 걱정을 현대교회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종교개혁 시대의 목사나, 청교도 시대의 목사들이 왜 교황을 ‘적그리스도’라 했는가? 무지한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기에 그렇다. 참된 목사, 참된 교회를 분별해야 우리는 천성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잘못된 가르침은 교회사 속에서 항상 인기 있어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해하기 쉽고 편하고 따뜻하고 인정미가 넘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7장의 좁은 길은 우리를 힘들게 하며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기 때문에 넓은 길을 택하는 것이다.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람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10-12)

진리를 믿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자들, 심지어 진리를 듣지 못한 자들은 결국 심판에 이를 것이다. 이제 섞일 수 없는 두 신학이 섞이는 기이한 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반펠라기우스주의 또는 알미니우스주의와 칼빈주의가 섞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행위구원론과 은혜교리가 섞인다. 두 개는 섞일 수 없는데 섞이고 있다.

문제는 섞이는 순간 어느 정도는 행위구원론이 되고 어느 정도는 은혜구원론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행위구원론으로 바뀌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서 단 0.1%라도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면 불순하게 되어 버린다. 순전한 사도의 가르침은 사라지고 만다.

오순절 신학은 철저히 알미니우스주의이다. 예수전도단도 오순절 신학을 근간으로 했으므로 같은 오순절 신학이라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들은 그것을 열심히 하고 나가면 그뿐이 다. 장로교 목사는 오순절교회가 숫자적으로 성장하고 감동이 있다고 해서 그곳에 기웃거리면 안 된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기웃거림으로 불순한 신학을 조장하는 교회가 있다. 바로 ‘온누리교회’이다.

하용조 목사 지옥 - hayongjo mogsa jiog

앞으로도 보겠지만, 하용조 목사는 교파, 교리 등이 없는 것을 순수한 신앙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가 시도하는 교리적 혼합은 올바른 사고를 가졌거나 성경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평신도나 신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장로교의 신학과 오순절의 뜨거운 기도, 선교 단체들의 열정을 섞어 보려는 소망을 가진다. ‘내가 옳다 네가 옳다 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자기의 소견대로 옳다고 서로 싸우고 교단을 나눈다는 것을 못마땅해 하며, 모든 것은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자연인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성경을 공부하고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서로의 장점을 연결하여 진정 하나가 되는 그런 기독교를 만들어 보고 싶은 의지를 가진다. 그런데 장로교 신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오순절 신학을 열심히 공부했는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동일한 성경 구절로 서로 정반대의 결론을 내고 있다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된다. 장로교가 옳다고 하면 오순절이 틀리고 오순절이 옳다고 하면 장로교가 틀리게 된다.

예컨대 ‘지금도 방언은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장로교는 이미 중지 되었다고 하는 반면 오순절은 성령 세례를 받은 증표라 한다. 이 두 그룹은 똑같이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을 근거 자료로 삼는다. 방언을 이야기해야 하므로 동일한 성경 구절을 사용한다. 그 동일한 구절로 한 진영에서는 방언은 확실히 중지 되었다고 말하고 한 진영에서는 그러므로 방언은 지금도 진행된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하나를 따르면 하나를 버려야한다. 그 대안적 방안으로 ‘방언은 지금도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구원 얻은 데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방언하면 좋고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날카로운 대립을 피하기 위해서는 좋으나 답이 될 수는 없다. 한국에는 장로교가 많지만 각 교회에서 방언을 실제적으로 허용하므로 이런 입장을 많이 취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방언을 한다는 의미에서 오순절 적이며,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에서 ‘오순절에서는 반감’을 가질 만한 것이다. 오순절에서는 성령 체험의 증거를 방언에 두고 있기에 방언은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신학을 연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교리가 섞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신학을 조금 더 깊이 연구하면 두 진영은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두 진영이 섞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없는 아이들이나 하는 생각이고, 이제 막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하는 생각이다. 진지하게 신학을 계속 연구하는 목사나 신학자들은 그 일이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불가능한 일을 하용조 목사가 해왔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하용조 목사는 평신도나 신학적 소견을 가지지 않은 목사들 사이에서는 한국교회에 큰일을 했다고 평가되고, 신학을 조금만아는 목사들 사이에서는 ‘짬뽕’목사 ‘비빔밥’목사라고 불리며 온누리 교회는 ‘대형마트식 교회’라고 평가된다. 즉, 이런 저런 교리들과 갖가지 방법론이 뒤섞여 있다는 뜻이다. 장신대 명예 교수인 강사문 교수는 하용조 목사를 한국의 칼빈으로까지 생각한다.(‘장신대 교수가 보는 칼빈관이 이 정도일 줄이야’라고 느끼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하용조 목사와 칼빈의 공통점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두 사람이 모두 병에 시달렸다는 것 ... 두 번째 공통점은 설교가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 세 번째 공통점은 칼빈은 1년에 286편의 설교와 186회의 신학 강의를 했으며, 그 가운데 2023편의 설교가 남아 있다 ... 하 목사도 지금까지 문서로 남긴 설교가 1천 편이며 앞으로 1만 편에 이를 것을 추정했다. 강 교수는 ‘칼빈의 설교가 명쾌하고 핵심을 찌를 것이었으나 혹독했다’며 ‘하 목사의 설교도 편수가 많은 것 못지않게 설득력과 감화력이 있다’고 말했다 ... 네 번째 공통점은 칼빈과 하 목사의 설교가 주석적 강해이며 통전적이라는 것을 꼽았다.

마지막으로 칼빈과 하 목사는 사회, 정치, 경제 및 문화 구조의 변화로 하나님 나라 구현을 목표로 설교, 목회, 전도하는 점을 들었다. 칼빈이 제네바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되고 다스림을 받는 시로 만들기 위해 노렸했듯, 하 목사도 온누리가 다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가 될 것을 희구하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성결교 출신 학자인 한영태 교수는 하 목사가 장로교의 약점을 보완하고, 지금도 오순절과 같은 성령 체험이 가능하다는 성결교적 신앙을 지녔다고 주장했다 ... 한 교수는 ‘하 목사의 성화관이 장로교회와 성결교회의 성화관이 혼합되어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 목사에게는 점진적 성화의 개념이 있으므로 장로교회와 같으나, 성령세례를 성결로 보는 점에서는 성결교회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예정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신 선택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는 점을 들어 ‘하 목사의 신학에 장로교회의 엄격한 전통적 예정론이 희미한 것은, 그가 가슴이 뜨거운 목회자요 복음 전도자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기독교 역사를 간추려 보아 알겠지만 반대되는 교리는 섞일 수 없고, 정통 교리를 지키기 위해 2000년간을 싸우며 고수해 왔는데, 하 목사와 같은 생각을 가진 목사들은 믿음의 선배들의 수고와 노력을 아무 것도 아니게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깟 교리들이 뭐가 중요해? 예수님 만나면 되지’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듯 하는 하용조 목사는 보기 좋게 성공했다. 거대한 교회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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