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전자도서관 - jeong-uilan mueos-inga jeonjadoseogwan

오늘날 우리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분배와 인정의 대립을 넘어서

‘인정투쟁’이라는 사회철학 개념이 한국 사회에서 보통명사처럼 회자된 지는 이미 오래이다. 주류 담론에 끼지 못한 일베와 같은 극단주의, 88만원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불협화음 등은 물론이요, 동성애자와 같은 성소수자나 대형마트 계산원, 텔레마케터 등의 감정노동자들처럼 인정과 무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 요소가 점차 확대되고 표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고유한 정체성과 차이가 점점 중요해지면서 이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렇게 인정을 강조하는 것이 복지국가나 경제민주화 같은 분배 정의에 대한 요구를 간과하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문제는 구조화된 경제적 불평등에 있는데 개개인의 정체성과 특수성에 관심을 돌리면 정작 큰 문제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인정과 분배는 서로를 배척하는 대립적 관계일까? 우리는 경제적 평등과 개인의 실존 중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하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정과 분배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독일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와 미국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이 책 『분배냐, 인정이냐?』에서 분배와 인정, 나아가 우리 시대의 정의에 관해 치열한 논쟁을 펼친다. 두 철학자는 분배와 인정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여기거나 분배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경제주의적 시각을 잘못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프레이저가 분배와 인정을 밀접히 연관되어 있지만 환원될 수 없는 관계로 보고 이차원적 정의관을 제안하는 데 반해, 호네트는 분배를 인정의 표현으로 보고 불평등한 분배의 심층적 토대인 사회적 인정 질서에 주목한다.

두 철학자는 상대의 주장이 가진 약점을 드러내고 각자의 주장을 방어하면서 논의를 한 걸음 더 진척시킨다. 논쟁의 초점은 옳음과 좋음을 둘러싼 도덕철학적 문제, 자본주의 경제와 문화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회이론적 문제, 계급 정치와 정체성 정치의 관계에 대한 정치철학적 문제로 발전되고 거대한 비판이론 패러다임 논쟁으로 확산된다. 이를 통해 두 철학자는 기존의 분배 정의론이나 공동체주의가 가진 한계를 넘어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실천적인 정의론을 제시한다.

[출판사 서평]

자본주의 사회 비판을 위한 새로운 정의론의 모색 - 정의론, 사회비판이론, 정치철학의 결합

존 롤스의 『정의론』(1971)에서부터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2009)에 이르기까지 정의에 대한 논쟁은 크게 보아 두 대립축 사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존 롤스나 로널드 드워킨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면서 분배로서의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찰스 테일러나 마이클 샌델로 대변되는 공동체주의적 관점에서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좋은 삶을 강조하면서 공동선으로서의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두 정의론은 오랫동안 서로 대립해왔지만 실천과 결부되지 못한 채 이론적 논의로만 남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분배 정의론은 당장의 현실과 무관한 초역사적 모델에 머물렀고, 공동체주의는 사회통합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인해 개인을 무시하는 현실 긍정론에 그쳤기 때문이다.

낸시 프레이저와 악셀 호네트는 『분배냐, 인정이냐?』에서 이와 같은 분배와 인정의 대립에 종지부를 찍고, 추상적이고 비역사적인 담론을 넘어서는 “현실과 고군분투하는” 정의론을 제안한다. 두 철학자는 정의에 관한 논의를 단지 도덕철학적 차원에만 국한시키지 않으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론뿐 아니라 실제적인 정치적 실천과도 정교하게 결합시킨다. 즉 공허한 도덕적 수사로서의 정의론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규범적 대안과 그 방향을 위한 사회비판적 정의론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그들 중 다수는 도덕이론은 철학자에게, 사회이론은 사회학자에게, 정치적 분석은 정치학자에게 할당하는 학문 영역 간의 분업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함으로써 사실상 각각의 학문 영역을 마치 독자적인 영역처럼 취급한다. 이에 반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하나의 “총체성”으로 이론화하고자 한다. (…) 사회 비판이 이론적 타당성과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투쟁들을 진단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 대한 체계적 이해가 각인된 규범적 개념들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머리말, 19쪽)

비록 두 철학자의 정의관이 서로 엇갈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론과 실천의 연관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시당하거나 배제된 사람들의 투쟁이 정의를 실현하는 역사적 힘이며, 정의론은 이러한 실천이 가진 도덕적 정당성을 보여줄 때 추상화되거나 현실에 부합하지 않고 현존 사회를 비판하는 규범적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악셀 호네트가 책의 결론에서 “비판적 사회이론의 정의관은 그 수혜자들이 제시한 정당화 가능한 목적을 구체화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396쪽)고 말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인정과 분배는 각자 필요하다” - 낸시 프레이저의 이차원적 정의론

이 책의 1부는 낸시 프레이저의 글로 시작된다. 프레이저는 분배를 중심으로 했던 정의 담론이 한편으로는 분배 요구들로, 다른 한편으로는 인정 요구들로 갈라지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대립은 잘못된 것이며 “오늘날 정의는 분배와 인정 모두를 요구하고 있다”(26쪽)는 것이 프레이저의 주장이다. 예컨대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면서 불평등 분배로 차별받는 동시에 외모로 인해 무시당하는 이중적 불의를 겪는다. 이렇듯 분배나 인정 한 가지만으로는 오늘날의 복합적 불의를 파악할 수 없기에 분배와 인정을 통합하는 “이차원적 정의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프레이저는 ‘인정’ 개념을 자아실현 모델이 아니라, 분배 정의와 같은 의무론적 도덕성과 관련되는 “인정의 신분 모델”로 개념화한다. 이로써 분배와 인정은 만인의 동등한 사회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상호주관적 조건으로 이해되며 포괄적인 규범적 틀 안에 포섭된다. 프레이저는 이러한 도덕철학적 정의 개념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회이론과 연결시킨다. 지구화하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계급 구조와 신분 질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프레이저는 경제주의, 문화주의, 반(反)이원론, 실체적 이원론 등의 한계점을 지적하며, 분배와 인정 사이의 환원 불가능성, 경험적 분열, 실천적인 뒤얽힘을 함께 파악할 수 있는 “관점적 이원론”만이 점차 확대되어가는 계급 불평등과 위계적 신분관계의 중첩 현상을 파악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는 분배가 없이는 그 어떤 인정도 없고 인정이 없이는 그 어떤 분배도 없다. 자본주의는 경제와 문화라는 서로 구별되지만 긴밀히 연관되는 두 가지 불의의 차원들과 종속의 질서들을 체계적으로 고안해낸 역사적 사회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이론과 규범적 정의론을 내적으로 연결시키면서 프레이저는 정치이론의 차원에서 예컨대 기본소득과 같은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을 주장한다. 이를 통해 독백주의와 절차주의의 한계를 넘어 동등한 참여의 원리를 제도화하는 민주적 정의론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분배는 인정의 또다른 표현이다” - 악셀 호네트의 인정 일원론적 정의론

2부에서 악셀 호네트는 낸시 프레이저에게 반론을 제기하면서 프레이저의 “관점적 이원론”과 대조적으로 인정 개념을 통한 “규범적 일원론”을 제안한다. 호네트가 보기에, 분배와 인정을 대립적으로 보는 것은 피상적인 차원에서 사태를 이해한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왜 사람들이 분배 투쟁이나 정체성 투쟁을 일으키는지를 본질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인정이론적 전환은 낸시 프레이저의 논증이 진행되는 차원보다 한 차원 심층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범주적 전환은 지금까지 불충분하게 다루어진 해방운동을 논의에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불의 자체를 다룰 때 발생하는 핵심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207쪽)

호네트는 경제적 불평등을 단지 경제 구조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더욱 심층적 차원에서 경제 구조의 토대가 되는 사회적 인정 질서에 주목한다. 이러한 인정 질서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형성과 함께 역사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달리 말해 자본주의 사회는 인정의 역사적 분화(사랑, 권리, 업적)가 정치적으로 제도화되고 경제적으로 왜곡되어 표현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이에 따라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사랑, 권리 동등성, 업적 정의라는 세 가지 인정 원칙을 둘러싼 다양한 유형의 인정투쟁이 나타난다. 이렇듯 호네트는 분배와 인정의 대립이라는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서 현대 사회의 인정 질서에 대한 설득력 있는 거대 이론을 제시한다. 이것은 그의 대표작인 『인정투쟁』(1992)의 논의를 한층 더 발전시킨 것이다.

이제 호네트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동등성과 특수성이 제도적으로 인정됨으로써 사회적 포함의 범위가 확대되고 개성의 신장이 이루어지는 것을 한 사회의 도덕적 진보로 규정한다. 물론 이러한 진보는 사회적으로 무시당한 사람들의 인정투쟁을 통해 추동되는 것이다. 이때 인정투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길이 열려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조건의 특수성이나 개성에 호소하며 차이(업적)에 대한 인정을 요구할 수도 있고,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화를 보장하는 동등성(권리)에 대한 인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제 분명해지는 것은 (분배투쟁을 포함한) 모든 인정투쟁에서 문화적 문제가 내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정 원칙의 적용은 항상 욕구, 권리, 능력에 대한 문화적 해석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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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분배와 인정의 관계에 대한 두 철학자의 논쟁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경제 질서는 제도화된 문화적 가치 유형들에 의해 더 이상 직접적으로 조정되지 않고 여타의 사회적 질서들로부터 분리된 사회체제로 이해되어야 하는가?(프레이저) 아니면 자본주의 경제 질서는 오히려 시초부터 불평등한 인정에 토대를 둔 문화적 가치들의 발현으로 이해되어야 하는가?(호네트)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체계화된 경제 법칙에 의해 조절되는 자기조정시장인가, 아니면 규범적으로 구조화된 사회 질서 속에 “깊이 파묻혀” 있는 사회적 시장인가? 두 철학자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적-사회적 문제들의 본질을 새로운 시각과 개념들로 해석함으로써 현실에 기반을 둔 ‘실천적 대안’으로 나아간다.

인정 일원론 비판 vs 인정의 요점 - 프레이저와 호네트의 공격과 방어

나머지 3부와 4부에서 논쟁은 한 걸음 더 진척된다. 두 철학자는 서로의 비판에 응답하면서 세 가지 이론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서로 다른 문제들을 다룬다. ‘도덕철학’의 차원에서는 규범적 일원론과 규범적 이원론의 상대적 장점, 좋음에 대한 옳음의 우선성, 그리고 이런 논란들이 가지는 함의들에 대해 논쟁한다. ‘사회이론’의 차원에서는 경제와 문화의 관계, 그리고 이들 사이의 구별이 가지는 지위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에 대해 논쟁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차원에서는 평등과 차이의 관계, 경제적 투쟁과 정체성 정치의 관계, 사회민주주의와 다문화주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논쟁한다.

특히 “인정”을 둘러싼 두 철학자의 서로 다른 개념화로 인해 인정 환원론을 비판하는 프레이저의 글과 이에 대한 반론으로 인정의 요점이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호네트의 글이 차례로 이어진다. 이들은 이러한 공격과 방어를 통해 자신들의 논점이 무엇인지를 더욱 명확하게 밝히면서 동시에 이러한 정의론들이 어떻게 현실 사회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마련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