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의 딜레마 치킨게임 - joesuui dillema chikingeim

삽화 김영훈 화백

국회의원도 게임을 한다. 퇴근 후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아니면 휴식 중 휴대폰 게임을 할 수도 있지만, 오늘 얘기할 게임은 그런 게임과는 비슷하면서도 좀 다르다. 게임이론이라는 연구 분야가 있다. 게임이론의 ‘게임’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할지가 상대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고, 그 결과로 내가 얻는 이익이나 손실도 나뿐 아니라 상대가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따라서 달라지는 모든 상황을 뜻한다. 이렇게 보면 ‘가위바위보’도 게임이다. 내가 질지 이길지는 상대가 무엇을 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바둑도 게임이고 컴퓨터 게임도 게임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한 술값은 내가 냈다. 쪼잔하기 그지없는 난, 술값을 다음에 또 내가 낼까 벌써 걱정이다. 이것도 게임이다. 국회에서 의원들은 어떤 게임을 할까.

‘베낀 과제’ 자백 받아내는 법

대학에서 자주 일어날 법한 상황이다. 두 학생 A와 B의 과제 보고서를 받아보니 비슷해 보인다. 아무래도 베낀 것 같다. 열심히 보고서를 쓴 다른 학생들을 생각하면 둘에게 낮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런데 심증뿐이다.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럴 때 게임이론을 잘 이용해 둘 모두의 자백을 유도할 수 있다.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이상훈 교수의 아이디어다.

한 학생은 부정행위를 인정했는데 다른 학생은 아니라고 우기면, 인정한 학생은 5점을, 아니라고 시치미 뗀 학생은 0점을 주겠다고 알려준다. 시치미 뗀 학생은 증인이 있으니 부정행위의 증거가 확실하고, 따라서 괘씸죄도 적용해 0점, 인정한 학생은 부정행위는 저질렀지만 그래도 자백했으니 양심점수 5점을 주는 거다. 만약 둘 모두 부정행위를 인정하면 둘 다 1점씩을 주어 징계하고, 둘 모두 시치미를 뚝 떼면 심증만으로 점수를 낮게 주기는 어려우니 별 수 없이 둘 다 4점씩을 주겠다고 두 학생에게 알려준다. 그러고는 한 학생씩 살짝 만나 부정행위를 했는지 물어보는 거다.

자, A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만약 B가 부정행위를 이미 인정했는데도 A가 시치미 떼고 아니라고 우기면 A는 0점을 받는다. 하지만 A도 부정행위를 인정하면 그래도 1점은 받는다. 0점보다 1점 받는 것이 낫다. 따라서 B가 부정행위를 인정했다면 A도 자백하는 것이 A에게 유리하다. A의 고민은 이어진다. 만약 B가 인정하지 않고 안 했다고 잡아떼면 어떻게 해야 할까? A도 마찬가지로 잡아떼면 4점을 받을 수 있다. 이 정도 점수도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이 A를 유혹한다. 친구 B를 배신해 부정행위를 인정하면 A는 5점을 받는다. 4점보다 5점이 높으니 부정행위를 인정하는 것이 A에게 더 유리하다.

자, 두 상황을 요약해 보자. B가 부정행위를 인정하든 안 하든, A의 입장에서는 자백하는 것이 항상 더 유리하다. A만 똑똑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B도 마찬가지로 머리를 쓴다. A가 자백했든 아니든, 부정행위를 인정하는 것이 마찬가지로 B에게 항상 더 유리하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각자가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면, 둘 모두 부정행위를 인정해 1점씩을 받게 된다는 것이 결론이다. 바로 과제를 채점하는 교수가 원했던, 학생 둘이 서로 배신해 자백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A, B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만약 두 학생이 함께 서로 협력해서 끝까지 시치미를 뗀다면 각자가 4점을 받을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이상훈 교수의 ‘베낀 보고서 딜레마 게임’에서, 학생의 과제를 죄수의 형량으로 바꾸면 바로 원래의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된다. 1970년대 후반 미국 정치학자 액설로드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할 때 이익을 최대로 하는 전략이 어떤 것일지를 공모했다. 다양한 배경의 여러 연구자가 제출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서로 경쟁시켜 얻은 결과를 담아 <협력의 진화>라는 재밌는 책을 썼다. 액설로드의 결론은 명확했다. 여럿 중 ‘팃포탯’(Tit-for-Tat)으로 불리는 전략이 가장 성공적이었다. 우리말로 치고받기, 혹은 맞대응이라고도 불린다. 방금 전에 상대가 배신했다면 나도 이번에 배신하고, 협력했다면 나도 협력하는 단순한 전략이다. ‘보고서 베끼기 딜레마’라면 시치미 뚝 떼고 부정행위가 없었다고 우기는 것이 친구와 ‘협력’하는 셈이고, 교수에게 베꼈다고 자백하는 것이 친구를 ‘배신’하는 셈이 된다.

국회의원도 삐친다

자, 이제 국회의원이 하는 게임 얘기를 해보자. 지난번 연재 글에서도 이용했던 국회 법안 발의 자료를 우리 연구실의 이송섭 연구원과 함께 분석해봤다. 발의한 의원의 수가 15명 이하인 법안만을 모았다. 앞서 소개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과 비슷하게 두 의원 사이의 협력과 배신을 정의할 수 있다. 만약 A가 대표 발의한 법안에 B가 이름을 올렸다면 B는 A에 협력했다고 하자. 이후에 만약 B가 대표 발의한 법안에 A가 이름을 올렸다면 A도 B에게 협력한 셈이고, A가 함께하지 않았다면 A는 B를 배신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자료에서는 A가 한 법안을 대표 발의한 후에 B가 다른 법안을 대표 발의하기까지의 기간 동안에 A가 다시 다른 법안을 대표 발의하는 경우도 많다. 분석에서는 이런 경우 A가 대표 발의한 법안 중 B가 함께한 법안의 비율(PAB)을 가지고 B가 A에게 협력한 정도를 측정했다. 따라서, 이 값(PAB)이 1에 가까울수록 B가 A에 협력한 정도가 강한 셈이고, 0에 가까울수록 배신한 정도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B가 대표 발의한 법안에 A가 함께한 비율은 이제 PBA로 부를 수 있다. 여기까지 A와 B가 서로 법안 발의의 행위를 주고받으면, 가위바위보의 한 판처럼 게임 한 판이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 치킨게임 - joesuui dillema chikingeim

<그림> 국회의원 A가 대표 발의한 법안에 B가 발의자로 참여한 비율을 PAB, 반대로 B가 대표 발의한 법안에 A가 참여한 비율을 PBA라 하자. 화살표의 방향은 다음 단계에서 A, B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화살표의 색이 진할수록 더 많은 의원이 이런 행동을 했다는 뜻이다. 김범준 제공

이제 드디어 재밌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오늘 분석의 하이라이트다. 방금 판에서 A와 B가 얼마나 서로 협력했는지가 다음 판에서의 A와 B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림>은 법안 발의 자료에 포함된 많은 짝(A, B)에 대해서 일종의 평균을 구해 변화의 화살표를 그려본 그림이다. 먼저, 가로축의 값이 1, 세로축의 값이 0에 가까운 오른쪽 아래를 보자. 이곳의 좌표 (1,0)의 의미는 B는 A에게 협력(PAB = 1)했는데 A는 B를 배신한(PBA = 0) 상황을 뜻한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다음 판에서는 B는 A에게 협력의 정도를 줄이려 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바로 그림에서 보이는 왼쪽을 향하는(즉, PAB가 줄어드는 방향) 화살표의 의미다. 내가 법안 발의를 도왔던 의원이 나를 돕지 않으면 당연히 다음번에는 나도 그 의원을 돕지 않는다고 해석하면 된다. 바로 팃포탯에 해당하는 전략이다. <그림>에서 화살표들이 향하는 방향을 눈으로 쫓아가면 (0,0)으로 수렴한다. 두 의원이 서로 배신하는 전략(PAB = PBA = 0)을 택하게 되는 상태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라면 둘 모두 배신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오늘의 결론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법안을 발의할 때 팃포탯을 닮은 전략을 택한다. 어려운 얘기가 아니다. 국회의원도 사람이다. 법안 발의 안 도와주면 삐친다는 것이 오늘의 결론이다.

모두가 신뢰할 사람이 필요하다

게임 이론으로 분석할 수 있는 상황은 다양하다. 일차선 도로를 두 차가 정면으로 마주보고 높은 속도로 다가온다. 먼저 자동차 핸들을 꺾어 차선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내기에서 지는 무식하기 그지없는 자동차 경주가 있다.(제임스 딘이 출현한 영화 <이유 없는 반항>(1955)에도 비슷한 경주가 등장한다.) ‘치킨 게임’으로 불리는 이 황당한 게임을 이기는 방법이 있다. 출발하자마자 차의 방향을 고정하고 핸들을 떼어 차창 밖으로 버리는 거다. 상대가 볼 수 있게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상대도 마찬가지로 따라해 핸들을 떼어 차창밖에 버리면, 이제 100퍼센트 정면충돌 사고가 날 것이 확실해도 아무도 피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이기려 섣불리 핸들을 떼어 버려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없앴다가는, 아무도 살아서 집에 가지 못한다. 자기가 죽거나 중상을 당할 것이 뻔한데, 그래도 지지는 않았으니 기쁘다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이런 황당한 게임을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어쩌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 놓여도 해결책이 있다. 게임에서 아무도 지지 않으면서도 둘 모두 안전히 돌아갈 수 있는 묘책이 있다. 바로, 누군가가 “하나, 둘, 셋”을 세면 정확히 동시에 핸들을 꺾으라고 둘을 설득하는 거다. 둘 다 자존심도 세우고, 사고도 나지 않는 해결 방안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둘 모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사람만 둘을 설득할 수 있다. 우리나라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