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평생 4개의 시대[8]를 겪었고, 그가 시대에 끼친 영향도 시대가 그에게 끼친 영향도 아주 컸습니다. 사마의는 조조 밑에서 출사했고 그가 일흔 살이 넘어가면서 위 왕조는 쇠락하죠. 살아가는 동안 감정이나 이상, 포부에 아주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전통적인 이미지에 도전한다기보다는 이 사람의 일생을 온전하게, 그리고 개연성 있게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애써서 미화하고 싶지도 않았고 깎아내리고 싶지도 않았어요. 혼란한 시대 속에서 실패한 사람이건 성공한 사람이건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고평가 혹은 저평가할 필요는 없죠." 작가의 인터뷰 Show
3. 다시보기[편집]인터넷상에서 다시 보는 방법은 편당 결제를 지원하는 VOD 사이트가 몇 있지만, TVING의 정액제를 이용하는 편이 가장 싸게 먹힌다. 무엇보다 네이버 등의 다시보기 VOD에서는 720p 화질만을 지원하지만 티빙에서는 1080p 화질까지 지원하기 때문. 4. 등장인물[편집]자세한 내용은 대군사 사마의/등장인물 문서 를 의 번 문단을 의 부분을 참고하십시오.5. 평가[편집]신선한 재해석과 압도적인 스케일의 연출로 중국 전토에 사마의붐을 일으킨 사극으로 그동안 등장했던 삼국지 관련 영상매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사마의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며, 제작비로 무려 67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사용된 대작이다.[21] 단순히 돈만 많이 들어가서 대작이 아니라, 준비기간은 5년, 각본 탈고만 4년이 걸렸다고 한다. 6. 비판[편집]6.1. 낮은 CG 수준[편집]영상의 때깔도 좋고 연출도 훌륭한 편에 비해 묘하게 CG가 전체적으로 구리다. CG가 나오는 부분은 위화감이 확 들 정도. 6.2. 어색한 끊는 타이밍[편집]무미랑전기나 삼국 역시 그랬지만, 한꺼번에 다 찍어 놓은 다음 편집 단계에서야 회차를 나누는 중국 사전제작 드라마 답게 1편씩 드라마를 끊는 타이밍이 뭔가 어색하다. 또 드라마가 시작할 때 편집 문제+지난 장면 설명을 위해 지난 회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데, 너무 길다. 6.3. 늘어지는 스토리[편집]초반 조조의 포스가 워낙에 강렬하고 기록이 그나마 많은 세자 다툼을 둘러싼 과감한 각색이 대단하지만, 조조가 사망하고 종친과 사대부의 대립이라는 큰 틀 속에 각색 수준도 아닌 창작된 에피소드가 많이 들어간 중반 이후엔 힘이 빠지는 듯한 인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6.4. 과도한 음모론 차용[편집]2부에서 나온 형주파 익주파 운운은 사서에서 관련 기록이 없이, 순전히 이중톈의 해석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문제는 이 이중톈이 삼국지 쪽으로 유명하긴 해도 역사학과 출신이 아닌지라 이 사람의 주장 역시도 아마추어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이에 대한 비판과 반박 또한 끊기지 않고 있다. 6.5. 주역의 묘사에 대해서[편집]사극에서 보기 힘든 영화같은 색감과 귀를 즐겁게하는 OST나 각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 우슈보, 왕루오용, 위허웨이, 장쥔닝 같은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가 뒷받침 되어있어서 역사를 비튼 부분이나 어설픈 CG처리가 거슬리긴해도 만족하면서 보고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사마의를 비롯해 몇몇 주역의 미화, 인물들의 성품이나 역사내용들을 주연급들에게 유리하도록 각색이 많이 되어있다는 의견도 있다.[26] 아는 입장에서 중간 중간 몰입이 끊어질 정도의 각색이 눈에 자주 보인다는 것. 이에 대해선 의견이 둘로 갈린다. 6.5.1. 비판[편집]주인공 사마의 및 그 주변인물들, 특히 장춘화와 조비, 사마부를 너무 미화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서성에서 펼쳐진 공성계를 사마의가 속임수인 줄 알고도 안 들어간 것으로 바꿨다. 상방곡에서도 사마의는 안 낚였지만 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것으로 바꿨다. 여자옷도 까짓거 그냥 입고 더 심한 모욕과 조롱으로 되갚아준다. 여자 편력이 심했던 사마의가 여기서는 부인에게 쩔쩔 매는 사랑꾼으로 묘사된다. 사실 사마의는 장춘화에게 폭언[27]을 날린 적이 있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28] 심지어 장춘화는 강호무림의 무술 고수로 나오며, 오나라에 외교관으로 갈 적에 사마의와 동행하며 주태와 칼로 싸워 무승부를 낸다.[29] 6.5.2. 반론[편집]
호소용음을 보면, 사마의가 제갈량과 재주를 겨룰 수는 있으나 마음가짐에서는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인물임을 피력한다. 그는 조비 사후 그 어떠한 일에도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늘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둔다.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제갈량의 공성계를 간파하며 제갈량에게 당신처럼 나 자신도 충의지사이며 국궁진췌 사이후이할 수 있다고 말하나 기어이 실천하지 못한다. 읍참마속을 흉내내지만 결국 자기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 출사표를 비웃는 것 역시 자신은 그처럼 할 수 없기 때문에 비웃는 것이다. 자신이 부도독일 때는 군권을 손에 넣기 위해 의도적인 태업을 하고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면피하는 행동과 조진의 실패를 유도한다. 훗날 도독이 된 후에는 조예의 충신이자 자신의 군권을 위협하며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위나라의 숙장인 장합을 차도살인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깔끔하게 죽인 다음 위선의 눈물을 흘리며 달달하게 촉 방면 군권을 꽉 잡고 개인적인 사리사욕[30]을 채운다. 결국 사마의는 망탁조의의 일원에 불과한 것이며 제갈량의 진심어린 충의에 비할 수 없는 것이다. 7. 여담[편집]
[1] 1부는 11시, 2부는 10시. 단 2부는 본방 기준이고 9시에는 지난 편 재방송을, 11시에는 바로 전 시간에 방송한 편을 틀어줬다.[2] 여자 작가다.[3] 1부 국내 슬로건[4] 2부 국내 슬로건[5] 방영 이후에도 영문명은 대개 "Advisors Alliance"로 통한다.[6] 연의 원작에서는 복룡(와룡)과 봉추로 제갈량, 방통이 유명했으나, 후세에서는 여기에 유린(어린 기린이라는 뜻으로, 강유의 별명이 기린아였다는데서 기원한다.)과 총호(늙은 호랑이)를 추가하여 4S 라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호소용음이라는 부제는 사마의 vs. 제갈량의 대결 구도를 의미한다.[7] 제목 때문에 생긴 문제라면, '대군사 사마의', '사마의', '군사연맹'과 '호소용음', '미완의 책사'와 '최후의 승자'까지. 제목이 너무 많아졌다. 각 제목끼리의 접점이 적어 같은 드라마인지 종종 헷갈리는 지라, 왜 별도의 제목을 붙인건지 이해가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다. 다만 '귀취등지정절고성(鬼吹燈之精絕古城)'도 중화TV가 방영할 때는 '귀취등 : 무덤의 비밀'로 현지화 시킨 걸로 볼 때, 적당적당히 의역해서 시청자들이 알기 쉽도록 하려는 경향이 자리잡은 듯 하다. 다만 본 제목의 위엄을 살리지 못한 것도 까임 요소. 호불호 징하게 갈리긴 한다.[8] 사마의가 모신 4명의 군주들, 즉 조조, 조비, 조예, 조방을 뜻한다.[9] 다만 관우는 번성전투 당시 사마의 최고의 계략 중 하나인 손유동맹 갈라놓기 부분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되며 사마의의 명성을 드높이는 역할을 한다. 관우/기타 창작물 참조.[10] 사마의를 제외하곤 이들 중 그나마 비중이 높은 인물은 진군이 유일한 편.[11] 하후돈 같은 위나라의 주요 무장들조차도 거의 나오지 않다가, 20화가 넘은 후에 모습을 드러냈다. 게다가 보통의 삼국지에서 '무장 하후돈'이 강조된다고 하면, 이 드라마에서는 '이룰거 다 이루고 위치가 군부의 탑에 이르고 황실 종친의 큰 어른이기도 한 원로'로서 나오는 식.[12] 이때는 마초랑 싸우기는 커녕 마등이 수도로 이주할 때 즈음의 일이다.[13] 애시당초 이 드라마는 딱히 정통사극을 표방한 적이 없다. 감독 왈, "구판 <삼국연의>와 신판 <삼국>이 이미 있는데도 <군사연맹>을 제작하는 것은 아주 부담이 큰 일이었고, 돌파구가 절실했다. 따스하게 그리고, 역사적 색채는 가볍게 하자, 처음 제작팀의 창작 의도는 그것이었다."[14] 물론 실제로도 사마의는 조비의 오른팔이기는 하였으나, 조비의 킹메이커였던 오질이 드라마에서는 일찍 리타이어되는 대신 그 역할을 사마의가 맡았다.[15] 물론 구품관인법은 진군이 구상하고 만들었지만, 구품관인법을 보다 심화해서 시행하는 주대중정(州大中正)을 사마의가 만든 만큼 사마의 역시 이 법에 큰 관련이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16] 다만 1부 후반에 들어 비교적 퀄리티가 하락했다고 평을 받는 사마의 vs 종친들의 대립 구도는 선악 이분법적 성격이 전반부에 비해 강화되었다. 특히 조홍은 인간말종 수준. 이 밖에도 사마의의 세 아들 중 사마소와 사마륜 또한 2부 후반으로 갈 수록 냉혹함이 강조되고 있다. 정점을 찍은 시점이 사마소는 낙곡대전에서 자신을 지켜준 결사대를 입막음시키기 위해 죽였을 때, 사마륜은 형수 하후휘를 돌로 머리를 쳐서 기절시켜 납치한 뒤, 사마소가 하후휘를 죽일 때 방치한 것과 죽은 하후휘의 시체에 사마사의 옥패를 쥐어줘 사마사에게 누명을 씌웠을 때.[17] 다만 처음에는 출사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조비를 모시기로 결정한 다음부터는 확실히 천하에 대한 뜻을 일신의 보존보다 앞에 두고 있다.[18] 고퀄리티의 이유 중 하나로 세밀한 조명 세팅이 있다. 조비 역의 이신 인터뷰 참조. 키워드를 '화면'으로 검색하면 쉽게 해당 내용을 볼 수 있다.[19] 인터뷰 영상은 사미독숙(四味毒叔)이라는 토크쇼 내용. 이 쇼에는 위허웨이(조조 역), 자이톈린(양수 역), 왕칭송(순욱 역) 등도 출연했으며, 프로그램 이름답게 4명의 독한 아저씨들의 심도있는 인터뷰/이야기 등이 주 콘텐츠인데, 이 중 탄페이는 2016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수상작인 장강도《长江图》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의 거물이기도. 탄페이는 위허웨이, 왕칭송 등과 인터뷰를 했다.[20] 물론 흥세 전투과 같이 왜곡되거나 축소된 것도 있지만, 이는 시간과 돈 그리고 배우들의 안전 문제 때문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흥세 전투를 제대로 다루려면 사천성 지방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촬영을 해야 한다. 실제로 사천성의 산악지대는 지금도 도로가 제대로 깔려있지 않고 잔도에 의존하는 곳이 많을 정도로 험준한 지형을 자랑하고 있다.[21] 2018년 기준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가 소모된 드라마는 태왕사신기인데, 430억 정도였다. 다만 태왕사신기가 24부작이고 이 드라마는 1부, 2부에 1부만 42화라는걸 생각하면 태왕사신기 쪽이 훨씬 돈이 많이 들어갔다.[22] 양수가 번성 전투까지 살아있거나 조조와 마초의 싸움이 적벽대전 이전에 있었다던가 하는 각색들이 있었으므로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사마의가 하는 말들이나 작중 전개를 보면 오히려 1년 보다 기간이 더 길었을 가능성이 높다.[23] 그 선덕여왕도 미실만큼이나 엄청난 임팩트와 인기를 누렸던 비담의 빌런화로 최소한의 긴장감은 지켜냈다.[24] 다만 실망을 표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손쉽게 거사가 진행될 줄 알았으면, 왜 그동안 질질 끌었냐'는 비판이 대표적.[25] 다만 애초에 공성계가 연의의 창작이며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다 보니(그래서 작중 장합이 거세게 반발한다.) 사마의에게 뒷꿍꿍이가 있어서 라는 해석을 덧붙이는게 그런 선택에 좀 더 합리성을 부여해주기는 한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조예때까지 크게 견제받은 일이 없기 때문에 토사구팽을 걱정한다는게 말이 안 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사마의가 조조 때부터 줄곧 거세게 견제 받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토사구팽을 걱정한다는게 말이 안 되지 않는다.[26] 일례로는 1부 후반의 퀄리티 하락의 원인을 보통은 아녀자들의 규방 싸움을 예로 들지만 실제 역사와는 다른 조비의 미화로 인해, 그리고 사마의가 조조ㅡ조비ㅡ조예ㅡ조방까지 4대를 섬겼다는 것에 착안하여 총 86화의 줄거리를 작위적으로 4분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실제 역사에서는 1년에 불과한 일을 20화 가량 할애했다는 견해도 있다.[27] 대놓고 늙었다고 비하했다. 사마의 본인보다 10세나 어린 조강지처에게 말이다![28] 다만 이것도 말년의 사마의가 적의 의심을 풀기 위한 연기일수도 있다. 둘 사이에서 나온 막내 사마간은 사마의가 50대, 장춘화가 40대에 낳았을 정도로 늦둥이이니 금슬이 아주 나빴는지 의심은 간다. 사실 말년의 저 폭언도 사실이지만 장춘화가 사마의의 꾀병을 목격해버린 하녀를 죽여서 사마의가 중히 여겼다는 기록도 존재하는지라.[29] 주태가 비록 늙긴 했어도 현역 무장이며 장춘화는 무림을 떠나 가정주부가 된지 십년도 넘었다. 실제 역사를 떠나 작중 설정과도 좀 안맞는다. 그냥 중드 특유의 억지 서비스 액션신이라고 생각하자(...).[30] 가족과 일신의 안위라는 명분.[31] 다만 이 부분이야 말로 사마 가문 미화의 절대적 증거이다. 사마부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조위의 충신으로 형하고 조카들과 반목한 인물이 절대 아니며 오히려 일생동안 사마의와 그 후손들의 오른팔이였으며 사마의도 능가하는 진정 위선자이자 처세술 괴물이다.[32] 사마의가 조조 앞에서 잠결에 '황제는 황제가 아니고, 왕은 왕이 아니다'라는 십상시를 비판하는 민요를 부르며 한나라의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이 민요는 훗날 하후휘가 사마사 앞에서 다시 언급한다.) 정작 조조가 사마의에게 '내가 제위에 올라서보면 어떨까'라고 넌지시 물어봤을때 사마의는 조용히 조조에게 절을 함으로서 긍정했다.[33] 드라마 내에서도 채옹은 이름만 언급 되긴 하지만 (당연한게 드라마 도입부 기준으로도 수년전에 이미 고인이였던 인물이다), 대학자로 통한다. 작중에서 채옹의 글씨가 뇌물로 돌아다닐 정도.[34] 조조와 사마의는 24세 차이로 거의 부자간의 나이차이였으며 조조의 장남인 조앙이 사마의보다 나이가 많았다.[35] 실제 역사에서는 유비가 사마의보다 18세가 많았다. 100년이나 되는 대서사 삼국지를 시작한 주인공과 최후의 승자의 나이 차이 치고는 그래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닐지도.[36] 여성 작가인 것도 같고 트렌디 사극을 지향해 역사 왜곡으로 비판을 받은 부분 역시 공통적이다.[37] 한 사람은 이 음악의 도입부를 듣자마자 부모님께 진작 잘하지 못한 유년기가 순간 떠올라 감정이 복받쳤다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38] 이후 나레이션으로 삼국정세의 변화를 축약한 장면이 곧바로 나와 앞서 나온 OST의 여운을 배가했다. 피로 물들인 언월도 하나 설원에 떡하니 꽂는 것으로 관우의 죽음을 퉁친 건 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