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우울증 - laheumaninopeu uuljeung

입력2020.06.05 10:44 입력시간 보기

수정2020.06.05 10:57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로 보는, 당신이 몰랐던 라흐마니노프의 삶

“나는 보여줘야 해, 당장 들려줘야 해”

라흐마니노프 우울증 - laheumaninopeu uuljeung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HJ 컬쳐

라흐마니노프는 1897년, 24살의 어린 나이에 ‘교향곡 제1번’을 발표합니다. ‘교향곡 제1번’은 라흐마니노프에게 의미 있는 곡이었습니다. 그의 젊은 시절 사랑의 아픔이 녹아 있고, 악보 첫머리에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발췌한 글들이 적혀 있는 등 라흐마니노프의 삶과 흔적이 묻어난 곡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곡이 발표되었을 때, 라흐마니노프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혹평과 비난을 들으며 라흐마니노프는 몇 년 동안 심각한 우울증을 앓게 됩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라흐마니노프의 생애 중 그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극 중에서, 라흐마니노프와 각별한 사이인 사촌 실로티는 우울증에 빠진 라흐마니노프를 도와주기 위해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을 보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니콜라이 달의 도움에 힘입어서, 무의식중에 그를 압박했던 과거의 기억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우울증을 앓기 전후로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라흐마니노프가 우울증을 앓기 전후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라흐마니노프의 TMI를 시작합니다!

◇엄격한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건 게으른 성격 때문이다?

라흐마니노프 우울증 - laheumaninopeu uuljeung

10살 무렵의 라흐마니노프 | 위키미디어 커먼스

라흐마니노프는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바실리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자 군인이었고, 어머니 루보프는 육군 장군의 딸이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4살부터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녀는 라흐마니노프의 재능을 알아봤죠. 한편, 라흐마니노프의 아버지는 도박과 방탕한 삶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1883년, 10살이 된 라흐마니노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해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죠. 그런데 1년 후, 그녀의 누이인 소피아가 디프테리아라는 호흡기 질환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모스크바로 떠나버리죠.

1885년, 라흐마니노프는 그에게 차이콥스키의 곡들을 알려주며 음악적인 영향을 준 또 다른 누이 옐레나를 잃으며 한 번 더 큰 실의에 빠집니다. 그는 학교를 불성실하게 다니고, 시험에 자꾸 떨어지면서 추가 교육을 위한 시험이 취소될 위기에 처합니다. 이를 염려한 라흐마니노프의 어머니는 라흐마니노프를 아주 엄격한 음악선생님인 니콜라이 쯔베레프에게 보냅니다. 라흐마니노프의 모스크바 음악원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쯔베레프는 작곡이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에게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라흐마니노프의 쯔베레프의 불화가 시작되었죠.

◇라흐마니노프의 사촌 실로티 역시 음악가였다?

라흐마니노프 우울증 - laheumaninopeu uuljeung

실로티(왼쪽)과 라흐마니노프 | 위키미디어 커먼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는 ‘실로티’라는 라흐마니노프의 사촌 형이 나옵니다. 배우가 직접 나오는 역할은 아니지만, 실로티는 라흐마니노프에게 니콜라이 달을 보내는 중요한 인물이죠. 실로티는 라흐마니노프와 절친하고 막역한 사이면서, 라흐마니노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인물입니다. 실제로 그 둘은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을까요?

사실 라흐마니노프가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가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도움을 준 건 바로 실로티였습니다. 실로티는 당시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습니다. 그 역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음악을 배웠고, 좀 더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가 프란츠 리스트에게 사사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선생님이었던 니콜라이 쯔베레프는 실로티가 모스크바 음악원을 다닐 시절 함께 공부했던 동문이었죠.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원에서 니콜라이 쯔베레프에게도 사사하지만, 그의 사촌이었던 실로티에게도 가르침을 받습니다.

◇음악원 최고 금상의 주인공

라흐마니노프 우울증 - laheumaninopeu uuljeung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 HJ 컬쳐

뮤지컬 속에서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에게 편곡 의뢰도 받고, 졸업 연주회에서 금상도 받습니다. 실제로도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 앞에서 졸업 연주를 합니다. 그는 푸시킨의 <집시들>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오페라 ‘알레코’를 졸업 작품으로 완성합니다. 그리고 1892년 3월, 볼쇼이 극장에서 졸업 작품을 연주합니다. 차이콥스키 역시 현장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고, 그를 칭찬했습니다. ‘알레코’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졸업연주회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인 금메달을 안겨주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도 편곡했습니다. ‘6개의 로망스’를 편곡하기도 했죠. 차이콥스키를 우상으로 삼고, 그에게서 창작의 원동력을 얻기도 했던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가 죽고 나서 점점 우울한 길로 빠지게 됩니다. 차이콥스키가 1893년 타계했을 때, ‘비가풍의 3중주곡 2번 d단조’를 쓰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교향곡 제1번’의 실패, 사실은 술 취한 지휘자 때문이다?

라흐마니노프 우울증 - laheumaninopeu uuljeung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 HJ 컬쳐

라흐마니노프 삶에서 우울 증세의 기폭제로 여겨지는 작품은 ‘교향곡 제1번’입니다. 이 곡은 1987년, 글라주노프의 지휘 아래에 초연되었는데요. 비평가, 대중들에게 혹평을 들으며 라흐마니노프는 창작에 자신감을 잃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도 비하인드가 있습니다. 바로 지휘자인 글라주노프가 연주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의혹이 있었던 것입니다. 진짜로 그가 술에 취한 채 지휘를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글라주노프가 당시 리허설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는 것과, 지휘를 좋아하지만 그만큼의 능력은 없었다는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라흐마니노프 우울증 - laheumaninopeu uuljeung

‘교향곡 제1번’의 초연에서 지휘를 맡았던 글라주노프 | 위키미디어 커먼스

‘교향곡 제1번’의 초연이 완전히 실패해버리자 라흐마니노프는 그 악보를 서랍에 넣고 자물쇠로 잠가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교향곡 제1번’은 연주되지 않았고,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으로 떠난 후에도 연주된 적은 없어서 사람들은 라흐마니노프가 악보를 없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944년, 이 작품의 오케스트라파트보가 레닌그라드에서 발견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전체 모음 악보가 복원되었습니다. 덕분에 1945년 10월 17일,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알렉산드르 가우크의 지휘로 다시 한번 공연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향곡 제1번’은 라흐마니노프의 초기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협주곡 2번’이 성공하고, 사촌과 결혼했다?

라흐마니노프 우울증 - laheumaninopeu uuljeung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 HJ 컬쳐

1901년 11월,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성공시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발표를 하죠. 바로 그의 사촌인 나탈리아와 결혼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이 둘이 약혼하게 된 건 1899년이었습니다. 이 둘이 바로 결혼하지 못했던 건 러시아 정교회와, 나탈리아의 부모님이 이 둘의 약혼을 반대하고 결혼 계획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모로 1890년대 후반은 라흐마니노프에게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교향곡 1번이 실패하고, 결혼에도 실패하고, 무엇 하나 쉽지 않은 때였죠.

라흐마니노프 우울증 - laheumaninopeu uuljeung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 HJ 컬쳐

라흐마니노프는 190cm가 넘는 거구에, 열두 건반을 짚을 수 있는 30cm의 거대한 손을 가진 연주자였습니다. 덕분에 남들은 하기 어려운 고난도 테크닉을 활용할 수 있었죠. 작곡가로도 훌륭했지만, 초인적인 기교와 화려한 연주로 콘서트홀의 청중을 압도하곤 했다고 합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서는 라흐마니노프가 쯔베레프에게 느꼈던 동경과 원망의 감정, 어린 시절 가정의 불화들이 라흐마니노프의 일기를 보는 것처럼 펼쳐집니다. 자신의 과거를 하나하나 꺼내며 슬럼프를 극복해나가는 라흐마니노프의 모습은, 그와 같이 미래를 두려워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우리들에게 위로로 다가옵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2020.03.14 ~ 2020.06.21
서울 예스24스테이지 1관
관람 시간 100분
8세 이상 관람가
박규원, 이해준, 정욱진, 유성재, 정민, 임병근 출연

참고 | 위키피디아,

네이버 지식백과

30cm 손가락으로 피아노 테크닉 ‘묘기’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 <채널예스>, 문학수,2012년 10월 25일

[STEP 2] 라흐마니노프 음악이 우울과 슬픔을 위로해주는 까닭?, <채널예스>, 김수영, 2013년 4월 5일

Rachmaninov: 15 facts about the great composer,

라흐마니노프의 금지된 사랑과 피아노 협주곡 2번의 탄생 비화, <올댓아트>, 정혜원, 2018년 5월 31일

로맨틱 왕자인 줄 알았는데, 숨겨진 야수 본능? 라흐마니노프의 매력을 파헤쳐보자!, <올댓아트>, 박찬미, 박경은, 2019년 4월 8일

<올댓아트 김지희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