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6시간 수면 디시 - maeil 6sigan sumyeon disi

매일 6시간 수면 디시 - maeil 6sigan sumyeon disi

하루 18시간을 실험실에서 보내는 일중독자였던 토머스 에디슨의 눈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게으름뱅이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가 평생 초인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1000여 가지 발명을 할 수 있었던 건 짧은 수면으로도 피로가 회복되는 체질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기에 실험대 위에서 잠깐씩 눈을 붙이는 습관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1911년 64세 때의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난 하루에 18시간 정도 일하는 걸 즐긴다.

밤에 평균 4~5시간을 자고 잠깐 낮잠을 잔다 

-토머스 에디슨

밤잠을 설치게 하던 무더위도 지나가고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하다. 앞으로 두 달은 1년 가운데 잠자기 가장 좋은 때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계절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여전히 수면 부족에 시달릴 것이다.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1942년 성인의 평균 수면시간이 7시간 55분이었지만 두 세대가 지난 오늘날은 6시간 31분에 불과하다. 일본은 6시간 22분으로 약간 더 짧다. 

만성 수면 부족은 다양한 부작용을 낳는다. 노화 가속이나 대사질환 위험성 증가 같은 건강문제에서 졸음운전 같은 사고 발생 증가, 생산성 저하 같은 경제 손실까지 한 마디로 우리의 몸과 활동 전반이 전날 수면의 양에 영향을 받는 셈이다.

예를 들어 수면시간과 교통사고 발생률의 관계를 보면 놀라울 정도다. 4~5시간밖에 못 잔 상태에서 운전을 하면 푹 잤을 때보다 사고 위험성이 4배로 늘어난다. 수면시간이 4시간 미만일 때는 무려 11배로 급증한다. 밤새운 뒤에는 운전대를 잡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적정 수면시간 개인차 커

따라서 오늘날 건강 지침은 하루 7~8시간은 잠을 자는데 할애하라고 권하고 있다. 그럼에도 적정 수면시간에 대한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은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바로 개인차다. 어떤 사람은 5~6시간이면 충분한 반면 어떤 사람은 9시간은 자야 몸이 거뜬하다. 이건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현상이다. 

실제 사람들을 충분히 자게 한 뒤 다음날 각종 생리 수치나 수행 능력 평가를 해보면 수면 시간과 결과가 별 관계가 없다. 6시간을 잔 뒤 푹 잤다고 느낀 사람은 정말 충분히 잤다는 말이다. 

잠의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이런 개인차는 놀라운 현상이다. 잠은 낮의 경험을 기억과 망각으로 편집해 정리하고 활동으로 쌓인 노폐물을 청소하는 시간인데 누구는 6시간이면 충분하고 누구는 9시간이나 필요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똑같이 80년을 살 경우 하루 6시간을 자도 되는 사람은 평생 잠으로 보내는 시간이 20년인 반면(물론 어릴 때는 더 자겠지만 여기서는 무시한다), 9시간은 자야 하는 사람은 30년을 할애해야 피곤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 80년 인생에서 10년 차이는 꽤 크다.

개인의 적정 수면시간 역시 다른 많은 기질 및 생리 특성과 마찬가지로 유전적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가 잠을 덜 자는 편이라면 자녀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오늘날처럼 할 일도 많고 놀 것도 많은 세상에서 이런 유전형인 부모를 만나는 것도 행운 아닐까.  

적정 수면시간이 꽤 짧은 구성원이 포함된 가계 가운데 하나인 K50025를 분석한 결과 수면시간이 평균보다 두 시간 정도 짧은 사람들(검은색)은 베타1-아드레날린수용체 단백질의 187번째 아미노산이 발린(Val)인 변이형으로 밝혀졌다. 네모는 남성, 동그라미는 여성이고 빗금은 사망자다. '뉴런' 제공

수면시간 두 시간 줄인 유전자 변이는 찾아

학술지 ‘뉴런’ 8월 28일자 온라인판에는 적정 수면시간을 평균보다 두 시간이나 짧게 만든 유전자 변이를 찾았다는 논문이 실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연구자들은 하루 4~6시간만 자도 푹 잤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포함된 가계들을 조사해 수면유전자를 찾는 작업을 십수 년째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한 가계에서 수면시간이 짧은 사람들이 베타원-아드레날린수용체(β1-adrenergic receptor) 유전자의 특정 변이를 지니고 있음을 밝혀냈다. 10년 전 찾아낸 DEC2 유전자 변이에 이어 두 번째 발견이다.

이 변이로 유전자 발현 산물인 수용체 단백질의 187번째 아미노산이 알라닌(A)에서 발린(V)으로 바뀌었다(이하 A187V로 표시). 이처럼 아미노산이 하나 바뀌면 단백질의 구조도 변하고 따라서 기능도 영향을 받는다. 그 결과 적정 수면시간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 수용체의 변이와 짧아진 적정 수면시간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연구자들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편집 기술로 생쥐의 수용체 단백질을 A187V로 바꿨다(참고로 생쥐뿐 아니라 많은 포유류에서 해당 위치의 아미노산은 알라닌이다). 그 결과 변이 생쥐 역시 잠자는 시간이 한 시간 정도 짧아졌다. 둘의 관계가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수면과 관련된 β1-아드레날린수용체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드레날린수용체는 카테콜아민 계열(아드레날린도 그 가운데 하나다)의 신경전달물질을 인식해 그 신호를 전달한다. 우리 몸에는 다섯 가지 아드레날린수용체(알파원(α1), α2, β1, β2, β3)가 있다. 베타1-아드레날린수용체는 심장에 주로 존재해 심근의 수축력 증가를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적정 수면시간이 평균보다 두 시간이나 짧은 사람에서 이 수용체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됐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뇌에서 유전자 발현 패턴을 알아봤다. 그 결과 수면을 조절하는 부위인 뇌교(pons)에 있는 신경세포(뉴런)에 β1-아드레날린수용체 밀도가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이 수용체의 변이형을 지닌 사람은 카테콜아민의 신호에 다르게 반응해 그 결과 적정 수면시간이 두 시간 정도 짧아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생쥐 뇌교의 β1-아드레날린수용체 뉴런의 활성을 조사하자 깨어있을 때와 렘수면일 때는 활발했지만 비렘수면일 때는 조용했다. 렘수면(REM)은 잠을 잘 때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는 상태로 보통 꿈을 꿀 때다. 비렘수면(NREM)은 안구의 움직임이 없는 잠으로 1~4단계로 나뉘는 데 3, 4단계는 깊은 잠이다. 

β1-아드레날린수용체 변이형은 이 뉴런의 활성을 더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적정 수면시간이 짧아진 것으로 보인다. 

세포막에 베타1-아드레날린수용체가 있는 뉴런의 분포를 보여주는 뇌의 단면으로 등쪽 뇌교(dorsal pons. 빨간 점선)에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뇌교는 잠의 조절과 관련된 부위다. '뉴런' 제공

10만 명에 겨우 네 명

2009년에 이어 이번에 또 수면시간 관련 유전자 변이가 밝혀졌지만 두 유전자의 변이로 적정 수면시간의 개인차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두 유전자 모두 변이형을 지닌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2009년 밝혀진 DEC2 유전자의 변이형은 한 가계에서 두 명만이 확인됐을 뿐 비교군으로 분석한 250명이 넘는 사람들 가운데 변이형을 지닌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번에 발견한 β1-아드레날린수용체 유전자 변이도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 결과 10만 명에 네 명꼴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조사한, 적정 수면시간이 짧은 구성원이 포함된 수백 가계 가운데 두 유전자의 변이를 공유한 곳은 없다. 이들은 아직 모르는 또 다른 이유로 수면시간이 짧아진 것이다. 적정 수면시간 연구는 이제부터가 시작 아닐까.

잠의 과학을 다룬 문헌에서 단골로 등장해 비난을 받는 사람이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다. 전구를 발명해 인류가 만성 수면부족으로 가는 길을 비췄을 뿐 아니라 잠을 충분히 자는 게 시간낭비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실제 에디슨은 하루 4~5시간만 잤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자고도(물론 잠깐 낮잠을 자는 것으로 보충을 했지만) 평생 왕성한 발명 활동을 했다는 건 하루 4~5시간 수면이면 충분한 유전형을 지녔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정 수면시간의 개인차가 꽤 크다는 사실을 몰랐을 에디슨의 눈에 하루 8시간씩 자는 주변 사람들이 게을러 보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에디슨이 남긴 또 다른 말은 그가 수면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지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제 수면의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논문이나 책에서 에디슨을 비난하는 관행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내 최고의 아이디어들은 잠을 푹 잔 뒤에 나왔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