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소희 점 - min sohui jeom

민 소희 점 - min sohui jeom


누가 봐도 같은 ‘장서희’인데, ‘점’ 하나 떡 붙이고 나와 “안녕하세요, 민소희입니다”라고 우기던, 심지어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민소희로 믿어주는, 천연덕스러움으로는 당할 자가 없는 SBS <아내의 유혹>(이하 아유)이 종영한 지도 벌써 반년이다. 김순옥 작가는 그 빠른 속도감으로 연이어 다음 작품 <천사의 유혹>을 선보이고 있으며 <아유>의 영향인지 하반기에도 ‘막장’의 전성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아유>의 여파는 거기서 끝이 아닌 듯하다. 종영한 지 반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방송계에서는 숱한 패러디로 ‘아유’를 재생산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방송계에서 패러디의 대상으로 삼는 작품은 대중 사이에 인지도가 있는 작품 중 현재 방영 중이거나 종영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래서 그 틀만 본떠도 이해도가 따라오는 작품이다. <남자셋 여자셋>에서 이의정이 최진실의 여고생 가발을 썼던 것도 <별은 내 가슴에>가 갓 종영했을 때였으며 <커피프린스 1호점>이 <개그콘서트>와 ‘빅뱅 콘서트’를 통해 무한 복제되었던 것도 ‘커프’의 열기가 식기 전이었다. 하지만 <아유>만큼은 마치 지난주에 방송이라도 된 듯 패러디 열풍이 한창이다.

<재밌는 TV 롤러코스터>의 ‘막장극장’은 막장 드라마의 각종 클리셰를 총출동시켜 마구잡이로 연결시킨 코미디극이다. 처제와 형부의 사랑, 거짓 임신과 기억상실증 등 구태의연한 소재를 정리했다고 하지만 역시 극의 주체를 이루는 것은 <아유>다. ‘복수’의 기미만 보일라 치면 <아유>의 주제가 ‘용서 못해’가 흘러나오며 여주인공은 ‘점’을 붙인다. 패러디의 대가 김병욱 역시 <아유>를 지나치지 않았다. 지난 26일 방송된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해리는 전학생 ‘정교빈’을 남자친구로 칭하며 집에까지 초대한다. 그러나 잘생기고 줏대 없는 소년 정교빈은 신애에게 한눈을 판다. ‘내 것’에 대한 집착이 무섭도록 강한 해리가 남자친구를 놓치고 가만히 있을 소냐. 해리는 변기에서 힘을 주며 “정교빈, 복수할거야”를 외치더니 눈 밑에 점을 붙이고 교빈군과 신애 앞에 나타나 난데없이 춤을 춘다. 물론 교빈군과 신애는 우기는 해리 민망하게 “해리야, 너 왜 그래? 너 해리잖아”라며 전혀 속아 주지를 않지만 말이다.


민 소희 점 - min sohui jeom

재개장한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대놓고 패러디를 지향하고 나섰다. 제목부터 ‘패러디 극장’인 새 코너에서 <일밤>이 지난주부터 선보인 것은 ‘내조의 여왕의 유산의 유혹’. 코너명만 들어도 <내조의 여왕> <찬란한 유산> <아내의 유혹>을 섞은 잡탕 패러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편 김구라를 힘껏 내조하다 버림받은 이경실은 아마도 다음 주 방송되는 ‘유산의 유혹’ 편에서 점을 붙이고 “복수할거야”를 외칠 것이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선덕여왕>이나 <아이리스>가 아닌, 작년 11월에 방영을 시작한 <아유>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 관계자들조차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하는 <아유>의 폭발적인 인기는 <꽃보다 남자>와 함께 2009년 상반기 방송계의 핫이슈였다. 단순한 ‘막장’으로 치부하기에는 한 회 분량에 사건 실마리부터 해결까지 착착 늘어놓는 롤러코스터급 속도감은 드라마계 전설로 남을 만한 것이었다. 특히 ‘복수’라는 코드에 있어서 <아유>가 보여준 것은 너무나 허술해서 오히려 놀라운 것이었는데, 기존의 드라마에서 숨어서 복수를 했던 것에 반해 <아유>에서는 복수 대상의 앞에 나타나 당당히 그를 유혹하며 “전 민소희라니깐요”를 외치는, 전대미문의 ‘우기기 18단’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들 놀란 것은, 이렇게나 허술한데도 재미가 있고, 이렇게나 뻔뻔한데도 시청자들이 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 여기저기서 민소희의 점을 붙였다 뗐다 하는 것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은, 시간 지나 보니 더욱 어이없는 ‘점쇼’에 40%가 넘는 시청률을 담보해주었던 우리에게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민망함 때문이다. 그리고 방송계 스스로도 ‘점’이 웃음을 위한 장치는 될 수 있지만 변신을 위한 장치는 아님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점 하나에 ‘님’도 ‘남’이 된다지만 구은재가 민소희가 되는 것은 정말, 다시 봐도 손발이 오글오글하니 말이다. 김송희 기자 | 사진제공 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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