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MBC 드라마 이산에서는 도화서가 주요 배경 중 하나인 만큼 김홍도를 등장시키는 구상도 있었지만 정조의 일대기를 다루는 자칫 드라마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판단으로 백지화되었다.
6. 기타[편집]
그런데 그가 태어난 고향이 어디인지와과는 별개로, 안산 내 지역 중 김홍도와 확실히 관련 있는 곳은 단원구 지역보다는 안산 성포리 갯마을(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 노적봉 공원 일대)이다. 특히 김홍도가 처음 사용한 아호가 '서호(西湖)'인데 이는 당시 성포리 앞 바다 이름과 유관하다.[28] '단원'이란 아호 역시 성포리 뒷산 노적봉 기슭에서 김홍도의 스승 강세황이 여주 이씨 문중 사람들과 시회를 했던 박달나무 숲인 '단원'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근거로, 김홍도의 출생지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는 확실히 안산 지역과 관련이 있는 인물로 여겨진다. # 7. 관련 문서[편집]
[1] 망건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망건은 이마를 가리는 용도가 아니라 상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머리를 잡아주는 역할이기 때문에 위 그림은 고증이 잘못됐다고 볼 수 있다.[2] 이 선비가 김홍도인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까지는 아니라는 것이 정설.[3]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이름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4] 그는 벼슬을 얻었으나 곧 다시 사임하고 화가로 돌아갔기에 정치인이라고 하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5] 김양기도 화가로 여러 작품을 남겼다. 아버지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화풍을 보여줬으나, 재능은 아버지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평이 많다.[6] 왕릉 근처에 세운 절.[7] 현 경기도 화성시 화산동.[8] 단원 풍속도의 대중적 지명도 때문에 이런 표현을 하기는 하지만 김홍도는 다양한 장르에서 대단히 많은 작품을 남겼고 풍속도첩에 수록된 25점의 풍속도는 김홍도 전체 작품 세계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논란의 결과가 어떻든 화가로서 김홍도의 위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는 하다.[9] 현대에 재평가된 작가가 아닌 이상 수많은 작품들이 소장되어 전해져 온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10] 삼세여래체탱 (三世如來體幀), 용주사[11] 금강사군첩 (金剛四郡帖) 一[12] 강세황 초상[13] 송하맹호도 (松下猛虎圖)[14] 김홍도 단독 작품은 아니다.[15] 김홍도 단독 작품은 아니다.[16] 언론에서는 이영희를 한일 고대 사학자 혹은 한일 사학자 등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영희는 사학과 출신이 아니라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 작가 겸 기자다.[17] 조선왕조실록 뿐 아니라 일성록에도 김홍도가 연풍 현감으로 재직하다가 파직당하고 의금부로 압송될 뻔하다가 사면받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18] 심지어 샤라쿠의 정체는 네덜란드 사람이라는 설까지 있다.[19] 책 제목은 '또 하나의 샤라쿠'.[20] 거스트만 증후군. 손가락 실인증이라 하여, 선천적으로 손발을 인지하는데에 장애를 가진다.[21] 이점을 더욱 확장하여, 위에서 언급된 일본 출신에 대한 의혹이 나오기도 한다.[22] 물론 취향과 평가의 차이는 존재하며, 네임밸류라고 보면 된다.[23] 그러나 조선 정조 시기 쌀 한 섬 값이 5냥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 기준으로 보면 할 것 다해도 가족이 먹고 사는데는 별 지장 없는 돈이었다. 가족 생활비는 두고 지름신을 맞이한 것이다(...).[24] 참고로 당대 물가로는 3000냥이면 노비를 수십명 이상 부려먹고, 한양내 기와집 수십채를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오기되었을 가능성을 자처하더라도 가장으로써 능력은 썩 좋지 않다는 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