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장 순위 - hangug mujang sun-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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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당천(一騎當千), 만인지적(萬人之敵). 국사무쌍(國士無雙)

긴 인류 전쟁의 역사 속,

우리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영웅들의 수많은 무용담을 듣게 된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삼한제일검이니, 소드마스터니 하면서 누가누가 한국사 최강의 장수인가에 대한 논쟁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정해진 답도 없고, 또 사실 의미도 없는 논쟁이지만,

누가누가 최강이냐 배틀은 역시 재미있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한국을 넘어, 세계사에는 어떤 영웅들이 있으며, 이들 중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장수는 누구일까?

오늘은, 세계사 속 최강자 후보 8인을 모시고 토너먼트 형식으로 누가 인류 최강의 인간흉기인지 한번 우열을 가려보도록 하자!

1. 중세 VS 고대의 정상 대결

리처드 1세 VS 레오니다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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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는 각각 서양의 중세와 고대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영웅왕. 잉글래드의 리처드 1세 VS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1세의 대결!

우선, 청코너의 리처드 1세를 소개하자면, 장장 200년 동안 지속된 십자군 전쟁에서 최강으로 명성을 드높인 인물로, 무려 사자심왕(Lionheart king)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세 왕의 별명 중에는 비만왕, 대머리왕, 숏다리왕 등 꼭 좋은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가 중세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용맹'의 대명사였는지 알 수 있다. 십자군 전쟁에서의 그는 700의 기병으로 7000의 적을 깨트리기도 하고, 80명의 결사대로 요새에 침투해오는 7만의 투르크군을 몰아내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괴물 같은 활약을 하였다.

홍코너의 레오니다스 1세는 영화 '300'의 "스빠르따아아아아아아!"라는 명대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극소수의 병력만을 이끌고 테르모필레에서 페르시아 침략군에 맞서 싸웠는데,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주장에 따르면 이때 그가 맞서 싸운 페르시아 병력은 무려 470만명...! 이런 대군을 상대로 정면에서는 모조리 승리하고, 적군이 샛길을 통해 뒤로 들어온 다음에도 격렬한 전투를 통해 크세르크세스 왕의 두 동생과 수많은 장군을 참살하는 등 그야말로 최강의 스파르타 보병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준 인물이다.

과연 이 두 사람이 대결한다면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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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1세의 압승

우선적으로 알아둬야 할 것은, 레오니다스 1세의 300 결사대 신화는 사실 후대에 많이 과장되고 각색된, 날조된 신화에 가깝다는 점이다. 우선, 침공해온 페르시아군도 당연히 470만이 아닌(당시 그 어느 고대 국가도 이만한 병력 동원력은 없었다.) 7만에서 30만 내외의 병력이었고, 페르시아 제국 전역에서 닥닥 긁어모은 연합군 성격의 군대라 훈련도나 군율이 형편 없었다. 페르시아의 최정예로 알려진 임모탈(Immortal)조차도 무장에서는 그리스군에게 밀렸다.

반대로 스파르타군 역시 300명이 아니라 펠로폰네소스 동맹시민 3000명, 테살리아인 및 아카디아인 3000명, 그리고 스파르타 노예계급 1000명 등 최소 7000명에서 많게는 2만명으로 구성된 연합군이었다. 물론 대단한 열세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테르모필레의 좁은 협곡에서 맞서 싸우면 충분히 대적해볼만한 수였다. 거기다 스파트라군은 영화처럼 발가벗고 싸우는 게 아니라, 단단한 청동 갑옷으로 전신을 감싼 중갑보병이었다.

더욱이 레오니다스 1세의 평가를 깎아먹는 것은, 현대의 역사가들이 대부분 테르모필레 전투가 전략적으로 그렇게 의미있는 전투가 아니라고 평가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테르모필레 전투의 승패와는 무관하게 페르시아 전쟁의 승패는 아테네군이 주축이 된 마라톤 전투에서 결정되었으며, 스파르타는 오히려 테르모필레에서 300명의 지휘관급 인재와 국왕까지 날려먹은 바람에 페르시아 전쟁의 거의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피해를 회복하지 못하고 빌빌거린다.

반면, 리처드 1세는 3차 십자군 원정 내내 단 한번도 전투에서 패한 적이 없으며, 힘만 앞세운 용장이라는 인식과는 달리 매우 전략적인 기동으로 팔레스타인 지방의 주요 요충지를 속속 공략했다. 게다가 개인의 무력도 대단해, 한번은 갑옷도 걸치지 않은 채로 투르크군 사이에 뛰어들어 무쌍을 찍어 그의 전투를 지켜본 살라딘이 "저게 사람이냐? 사탄 아니냐?"라고 경악했을 정도.

따라서 조국을 위해 장렬히 희생한 레오니다스에게는 미안하지만, 최강자 대결 1라운드에서는 리처드 1세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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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로관 메뚜기 VS 미카와의 사슴벌레

여포 VS 혼다 타다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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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삼국지 게임에서 언제나 무력 100의 최강 장수로 등장하는 여포! 그으~ 상대는~ 일본 전국시대 최강의 맹장으로 이름 높은 혼다 타다카츠!

먼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여포를 소개하자면, 그는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천하를 두고 다퉜던 삼국시대에서도 최강으로 이름 높은 맹장으로, 공식 기록에도 '사람 중의 사람은 여포, 말 중의 말은 적토마.(人中呂布 馬中赤兎)'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당대에도 인정받는 장수였다. 그의 전적을 살펴보면 소수의 기병으로 1만의 군대 격파하기, 곽과와의 1대1 일기토에서 승리하기, 유비와 원술 중재하기 위해 극 술먹고 활로 세워놓은 극 맞추기, 동탁이 던진 수극 쳐내기 등이 있으며, 이 모든 행적이 소설이 아닌 정사 기준이다! 그의 위명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천자문에도 여포가 활을 잘쏜다는 의미의 '포사(布射)'라는 구절이 있다.

혼다 타다카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휘하의 무장으로, 일평생 전장을 누비며 단 한번도 몸에 상처를 입은 적이 없다고 알려진 당대 최강의 괴물이다. 그의 활약을 지켜본 무장 고스기 사콘이 '이에야스에게 과분한 것이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당나라 투구고 하나는 혼다 타다카츠다.'라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 또한 도쿠가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맞붙은 코마키 나가쿠테 전투에서는 마치 장비처럼 불과 수백의 군사로 히데요시의 수만 군대를 가로막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깊은 인상을 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를 가리켜 '일본 제일, 고금 독보의 용사(日本第一、古今独歩の勇士)'라고 찬사하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이 두 영웅이 맞붙는다면 과연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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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타다카츠의 신승

의외의 결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역사 속 여포 VS 혼다가 동등한 조건에서 붙는다면, 십중팔구 혼다 타다카츠가 승리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천하무적의 절대 강자 여포의 이미지는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한 여포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연의에서의 여포는 주인공인 유비가 조조와 맞붙기 전에 맞딱뜨리는 중간 보스 같은 존재로, 조조가 문무겸비의 끝판왕이라면 여포는 무력 끝판왕으로 '의도적으로' 설정된 캐릭터다. 현실에서의 여포는 진정한 '만인지적'으로 정사에 기록돼 있는 관우나 장비보다는 한끝발 아래로 평가되며, 당연히 유비, 관우, 장비와의 3대 1 맞짱도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동탁 암살로 유명세를 탔지만, 사실 동탁군에서 가장 유력한 무장도 아니었다.

물론 여포가 인중여포 혹은 비장(飛將: 날아다니는 장수)이라고 불릴 정도로 삼국 전체에서 손꼽힐만한 무력을 가진 강자였음은 틀림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무력도 그의 멘탈에 따라 들쭉날쭉 기복이 심했다는 점이다. 게임에서는 병사들이 여포만 봐도 "으악! 여포가 나타났다!"라고 외치며 전의를 상실하는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한번은 여포가 있지도 않은 매복에 지레 겁먹어 "으악! 손견군이 나타났다!"라고 외치며 (트롤링)튄 적도 있을 정도다.

반면 혼다 타다카츠는 13세에 처음 종군한 이래, 평생 약 50여회의 전투를 치르는 동안 단 한번의 패배는 고사하고 앞서 말했듯 상처조차 입은 적아 없다.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굵직한 전투에는 모두 참가해, 때로는 그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으며, 결국 도쿠가와를 전국시대의 최종 승자로 만들었다. 도쿠가와가 오다 노부나가의 휘하에 있을 때, 오다 노부나가는 그를 가리켜 '마치 장비와도 같은 용력을 지닌 장수"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 말을 100% 믿을 수는 없겠지만, 만약 '혼다의 타다카츠=장비'의 전투력 공식이 성립한다고 본다면, 혼다 타다카츠는 확실히 정사의 여포보다는 한 수 위의 무력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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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드 마스터 VS 소드 마스터

척준경 VS 사묘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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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 중에는 영웅이 등장하는 법. 격동의 시기였던 12세기 동북아에는 세계 최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소드 마스터가 고려, 여진, 송나라에서 각각 한명씩 무려 3명이나 출연했다. 바로 척준경, 사묘아리, 한세충이다. 이번 3라운드에서는 우리에게 보다 밀접한 척준경과 사묘아리를 싸움 붙여보았다.

우선, 척준경은 최근 인터넷 등지에서 각광받고 있는 전설의 소드 마스터로, 그 무용은 가히 한국사 최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에 버금가는 무용을 지닌 인물로는 이성계가 있으나, 이성계는 조선조의 창시자로 엄청난 미화와 버프를 받은 반면 척준경은 고려사의 반역열전에 실려있을 정도로 평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무력만은 만땅이라는 점이 특기할만 하다. 척준경의 전적을 몇가지만 소개하자면,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장의 목을 베기, 몇십의 병사로 몇만의 적군 유린하기, 고함소리만으로 적들을 도망치게 하기 등 그야말로 게임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활약이 대부분이다.

사묘아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척준경이 싸웠던 바로 그 여진족의 장수다. 윤관의 여진 정벌 때 그는 단신으로 고려군의 장수를 찔러 죽이고, 윤관의 동북9성 중에 2개를 함락시키고, 특히 갈라수에서는 3차례 연승으로 고려군 7만을 갈아버리는 등 혁혁하게 활약해 윤관의 동북9성 정벌을 좌절시킨 1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묘아리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이후 그는 요나라(거란), 송나라와의 전쟁에서도 활약해 100기의 부대로 수만의 거란군을 쫓아내고, 27척의 배로 1000척의 거란 수군을 격파하기도 했으며, 송나라의 군대도 수차례 깨트리는 등 맹활약했다.

과연 이 둘이 맞붙는다면, 천하제일의 소드 마스터는 누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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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묘아리의 신승

우리에게는 안타깝게도, 필자는 사묘아리의 승리를 점쳐본다.

사실 척준경은 윤관의 여진정벌 당시 아직 초급 무관으로 막 군 경력을 시작한 상태였으며, 전쟁을 통해 고속 승진하긴 하였으나 여진 정벌이 끝날 때까지도 사령관 급이라기보다는 특공대장, 돌격대장의 성격이 강했다. 그의 전공들은 일견 대단해 보이지만, 수만 대 수만의 대규모 회전보다는 소규모 별동대를 이끌고 적을 급습해 수십 명의 적을 베는 전공이 대부분이다. 혹자는 사묘아리가 고려군을 대파한 갈라수 전투에 왜 척준경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을까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별동대를 이끌고 그 자리에 없었거나, 그 자리에 있었어도 휘하의 소수 병력으로 전황을 뒤집을만한 전과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척준경은 여진 정벌의 마지막으로 대외 원정보다는 대내 정치 싸움에 휘말려 들었고, 결국 반역자로 몰려 귀양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반면 사묘아리는 고려와의 전쟁 이후에도 요나라, 송나라와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며 성장해갔고, 결국 금나라라는 대제국의 건설에 일조해 '왕'의 직위까지 하사받게 된다. 그는 소규모 게릴라전, 대규모 회전, 공성전, 심지어는 수전에서까지 다방면으로 활약하여 결국 요나라는 멸망시키고 송나라도 반토막을 내는 등, 당대 동북아에서 가장 성공한 장수를 꼽으라면 단연 사묘아리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성격이 불같아 이자겸과 손을 잡고 왕궁에 불까지 질러 반역자가 된 척준경과는 달리, 사묘아리는 인격도 훌륭해 사후에 '지민(智敏, 지혜롭고 민첩함)'이라는 시호까지 받았다. 동시대의 소드 마스터로서 자존심이 상하지만, 천하의 척준경도 사묘아리에게는 한 수 접어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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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 최후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이자, 최초의 '제왕(Βασιλεύς)'인 헤라클리오스와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의 대결!

헬라클리우스(그리스어로 이라클리오스(Ἡράκλειος))는 동로마 제국 최후의 전성기를 이끈 황제로, 사산조 페르시아에 밀려 망해가던 동로마 제국을 다시 일으켜 잃어버렸던 아나톨리아 지방을 수복하고, 아르메니아의 수도를 점령했으며,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한 아바르족을 격퇴하는 등 활약해 동로마 시민들로부터 '한니발과 스키피오 이래 최고의 명장'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또한 위의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외모와는 달리, 헤라클레스에서 따온 이름에 걸맞게 엄청난 무골이었는데, 니네베 전투에서는 페르시아의 장군 세명과 1:1 전투를 벌여 모두 격퇴하는 기염을 토했고, 또 적진에 뛰어들어 무쌍을 펼치기도 했다.

항우는 '산을 뽑을만한 힘(역발산기개세, 力拔山兮氣蓋世)', '패왕(覇王)' 등의 명칭으로 우리에게 유명하며, 후대에 일류 무장들에게 붙여지는 '만인지적(萬人之敵)'의 원조기도 하다. 몇십명의 장정이 달려들어도 끄떡 않는 솥을 번쩍 든 일화를 시작으로, 일생동안 벌인 70여 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 번의 마지막 전투를 제외하고는 패한 적이 없고, 그 마지막 전투에서도 소수의 몇십 기로 몇만의 포위망을 뚫는 데에 성공한 뒤 스스로 자결했다. 특히 3만의 군사로 60만의 한군을 패퇴시킨 곤양대전은 가히 레전드 오브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 두 전투형 군주가 맞붙는다면, 승리의 여신은 누구에게 미소를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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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 승리

헤라클리우스가 당대에 매우 강력한 괴수임은 분명하지만, 역시 패왕의 대명사인 항우에게는 역부족이지 않을까 점쳐본다.

우선, 헤라클리우스는 페르시아 원정에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동로마에서 그렇게 큰 기대주가 아니었다. 그 자신도 집권 초기에는 페르시아 외에도 슬라브, 아바르 등 외세의 힘에 밀려 수도를 아예 카르타고로 옮길까 진지하게 고민했을 정도. 또한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긴 했으나. 이후 곧바로 발흥한 이슬람 제국에게 탈환한 팔레스타인, 시리아, 아르메니아, 이집트 지역을 고스란히 빼앗기고 만다. 그야말로 동로마 최후의 회광반조가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이다. (이란에게 빼앗아 아랍에게 주기)

항우도 최종적으로는 유방에게 패해 죽기는 했으나, 우선은 한번 전 중국을 제압해 '패왕'의 자리에 올랐으며, 이후 각국 제후들의 반란으로 신나게 두드려 맞는 와중에도 자신이 직접 지휘한 전투에서는 패한 적이 없다. 최후의 전투인 '해하 전투'에서 한신, 유방, 팽월, 영포, 조참 등 당대 최고의 명장들이 3배 이상의 병력으로 그를 겹겹이 애워싼 뒤에야 항우를 패퇴시킬 수 있었고, 그나마도 항우 본인은 놓쳤다. 항우 자신도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나는 싸움에서 진적이 없다."라고 자평했을 정도.

따라서 4라운드의 최종 승자는 항우로 판정승을 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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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강의 무장은?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