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4장 10절 - jeondoseo 4jang 10jeol

ECCLESIASTES 4:9‭-‬10

Two are better than one because they have a more satisfying return for their labor; for if either of them falls, the one will lift up his companion. But woe to him who is alone when he falls and does not have another to lift him up.

*labor: 1.노동 2.근로 3.노력 4.진통 5.출산

*companion: 1.동반자 2.친구 3.동료 4.반려 5.벗

*woe: 1.비통 2.비애 3.아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도서 4:9-10

본문: 전도서 4장1절~16절
찬송가: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전래동화중에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본 이 이야기에는 삼남매를 집에두고 품팔이 나갔다가 돌아오는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호랑이는 어머니를 잡아먹고는 어머니로 가장하여 삼 남매가 사는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아이들은 호랑이의 목소리와 손바닥이 어머니와 다른 것을 알고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았으나 호랑이는 갖은 꾀를 내어 집으로 들어가 막내를 잡아 먹었습니다. 남은 오누이는 겨우 도망하여 우물가 큰 나무 위로 피신합니다. 나무에 올라가지 못하는 호랑이는 오누이에게 어떻게 거기에 올라갔나고 물어봅니다. 오라비는 거기에 참기름을 바르면 잘 올라올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미끄러져 약이 잔뜩 오른 호랑이에게 누이가 그만 도끼로 나무를 찍어 올라오라고 비밀을 가르쳐 줍니다. 나무를 찍으며 올라오는 호랑이를 피해 나무 꼭대기 까지 올라간 오누이는 하늘을 향해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기원을 하자 하늘로부터 동아줄이 내려와 위기를 모면합니다. 호랑이에게는 썩은 줄이 내려와 그것을 잡고 오르던 호랑이는 떨어져 죽었는데 수숫대 밭에 떨어져서 붉게 되었습니다. 동아줄에 매달려 올라간 오누이는 하늘의 해와 달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해와 달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수숫대가 왜 빨간 색인지를 설명해주는 설화이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위해 나무 맨 꼭대기까지 올라가려고 발버둥치고 호랑이는 나무 밑에서 도끼를 찍으며 올라옵니다. 이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호랑이가 오누이를 잡아먹는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힘없는 한 두사람이 쫓겨다니고 죽어가는 소식이 들려도 그들을 위로해주기는 커녕 힘있는 호랑이에게 밉보일까봐 오히려 호랑이에게 아부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지혜자가 살아가던 시대(BC 900년대) 나 오늘이나 마찬가지로 양육강식의 현장에서, 약한 자가 학대받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4:1절 입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학대받으며 눈물을 흘려도 위로해주는 자가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위로받지 못하고 하소연할수 없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차라리 내가 그 때 죽었다면 나았을 것을, 왜 목숨은 이리도 질겨 이러한 수모를 겪고 있는가? 이러한 악한 일을 보면서 사는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게 나을 뻔 하였다' 는 탄식이 터져나오는 겁니다. 욥이 고난과 고통속에서 자기가 태어나지 않는게 더 나을 뻔 하였다고 탄식하였던 것처럼, 지혜자의 탄식도 이와 같습니다. 2-3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아직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악한 일을 보지 못한 자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7절이하에 지혜자의 탄식이 이어집니다.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세상에서 혼자 다 쓰지 못할 만큼의 막대한 재산을 갖추었어도 그것을 함께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 또한 헛된 수고일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행복에 대해서 9절-12절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내가 살아가는 인생여정에 함께 걷는 동무가 있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때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넘어진 내게 손을 내밀어 줄 동무가 있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혼자 걷기 쉽지 않은 외로운 인생여정에 말동무도 되어 주고 서로 조언도 주고 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지금 나의 곁에 그 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아담에게 하와를 하와에게 아담을 부부로 맺어주시고 가족을 주신 것 아닙니까? 아내나 남편, 가족이 내 옆에서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추운 겨울에 함께 체온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에게도 그런 동무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오랜시간 기다리고 계십니까? 그리고 오랜시간 기다려 왔으나 나에게는, 울타리가 되어주는 가족도 없고, 인생여정을 함께 걸어갈 동무도 없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기다려왔던 오랜 기다림을 깨고 이제 내가 먼저, 나처럼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옆의 사람에게 다가가 그의 동무가 되어주십시요. 오랫동안 동무가 되어줄 벗을 찾고 있었다면 이제 단지 누군가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그런 존재의 사람으로 그에게 먼저 다가 가십시요. 그가 나에게 오기전에 먼저 내가 그에게 찾아가십시요. 용기를 내어 먼저 내가 그에게 한걸음 가까이 가십시요. 내가 그에게 동무가 되어준다면 그는 나에게 또한 벗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에게 그런 동무가 없었다 하여도, 오늘 부터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동무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내가 그의 여정에 함께 걷는 동무가 되어준다면 그는 나에게 또한 벗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걷는 인생은 외로운 인생길입니다. 때로 우리를 삼키려는 호랑이가 우리를 좇아올 때에도 우리가 함께 그길을 걷는 다면 우리는 쉽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전도서 4:12절은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한 사람이면 패하기 쉬우나 두 사람이면 적의 공격에 대항 할 수 있습니다. 한 줄은 쉽게 끊어지지만 두 겹줄,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눅10장에서 예수님이 70인을 각 지역으로 전도하러 보내실 때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보내시지 않고 둘씩 보내셨습니다. 혼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도 서로 힘을 합쳐 도우면 능히 감담할 수 있기에 둘 씩 짝을 지어 보내신 것입니다. 시너지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1+1은 단순히 2가 되지 않고 그 이상의 결과를 가져올 때 일컫는 말입니다. 말 한마리가 끄는 힘에 비해 말 두마리가 끄는 힘은 단순히 두배가 아닌 그 이상의 힘을 내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두 사람이 함께 하면 개인 두 사람이 각각 할 수 있는 힘의 합 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수 있습니다. 둘 씩 제자들을 마을로 보내셨던 예수님은 제자들만 보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 마을과 동네로 들어가는 제자들과 함께 주의 권능을 부어주셨습니다.(눅10:19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 할자가 결코 없으리라) 제자들을 두명씩 마을로 보내셨던 예수님은 마18:20에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중에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둘씩 내 보내시면서 권능을 부어주셨고 주의 백성 두 세사람이 함께 하는 그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함께 하는 그곳에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하시는 예수님이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두 사람으로 맺어지는 두 겹 줄에 예수님이 함께 하심으로 세겹줄이 엮어지는 것입니다. 예수가 중심줄이 되고 두 사람이 곁줄이 되어서 엮어지면 단단하 세겹줄이 됩니다. 두 사람이 그리스도안에서 동무가 되어 있다면 그 중심에, 예수님이 함께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어지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중심 줄이 되심으로 그와 연합한 두사람이 함께 엮어가는 세 겹줄은 결코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고달프고 외로운 인생 여정을 함께 걸 을 수 있는 동무가 나에게 있다면 그는 복된 사람입니다. 나에게 그런 동무가 없다면, 내가 그리고 바라는 동무의 모습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 주십시요. 나에게 필요한 그런 동무처럼, 그에게 필요한 벗이 되어 주십시요. 예수로 인해 엮어지는 이 세 겹줄은 우리를 영원한 하늘로 이끌어 가는 동아줄이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늘의 해와 달처럼 빛나는 인생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맞아 주실 것입니다.

기도::
오늘 우리에게 함께 걸어갈 벗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안에서 함께 사랑과 정성을 나누는 아름다운 관계가 우리 삶속에 풍성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나에게 필요한 동무를 기다리다가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 없게 하시고, 오늘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에게 내 자신이 먼저 다가가는 용기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 내 곁에 함께 있게 하신 사람들에게 일생토록 함께 걷고 싶은 벗과 같은 존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험악한 세상속에서도 예수로 말미암아 결토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 세겹줄 인생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