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었던 내가 꾸는 꿈이여 - naega kkumkkueossdeon naega kkuneun kkum-i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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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가진 거라곤 몸뚱아리 하나 음악과 난 천상 하나 어딜 가나 노래를 부르는 심장과 끝없는 배움을 바라는 삶의 역마살 그 누구에게도 굽힐 줄 모르는 자존심과 긍지 하나면 족해 아침 점심 저녁 밥을 먹듯 내 삶이 돼버린 녀석 아침 점심 저녁밤을 세워서 가사를 쓰던 소년의 열정은 변함없는 내 신념과 소신의 근원 생각보다는 행동 질문보다는 도전 요령보다는 연습으로 난 써내려갔지 페이지를 넘겼고 내 머리 속엔 온통 라임과 플로우가 넘쳤지 한때는 눈앞의 자그만 기쁨에 만족해 부족한 노력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스스로 작지만 커다란 한계를 만들어 버리기도 했어 나를 판단하고 판가름 하는 건 당당함이란 이름 때로는 간단하지만 당당하기란 쉽지만은 않은 길을 변함없는 믿음으로 맞서 싸워 쟁취하는 것 목표를 쟁취하고도 더 큰 목표를 바라보는 것 Oh Boys be ambitions 망설일 필요는 없어 Oh Boys keep your eyes on you 그래 한 번 더 힘을 내봐 서로 다른 모습이라도 모두 다른 꿈을 꾸어도 그 길을 걷던 네 모습 기억해 힘이 들 땐 내게 기대봐 내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 그 길의 끝에 내가 서있을게 뭘 하고 사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사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거든 돌아보면 인생은 언제나 산 넘어 산 젊어서 고생을 돈으로 사 좌우명은 성장은 고통에 비례 과거와 현재와 미래 지금의 고난의 무게는 언제나 내일에 대한 기대 그래서 삶이란 확률이 없어도 항상 설레는 맘으로 로또를 가슴에 품고 사는 기분 열정에 대한 믿음 믿음에 깃든 노력은 필수 인연과 운명은 플러스 이 노랜 꿈꾸는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소년의 꿈 조금은 독한 술이 좋아 마치 바카디 151 처럼 내 몸을 씻어 내리는 그 느낌은 압셍트처럼 초록빛 마법으로 날 휘어감아 눈을 감아봐 꾹 참았었던 마음들을 꺼내놔봐 험난한 산속을 헤메이다가 Rainy day 비가 내리고 길을 잃어도 좋아 너와 함께 라면 여정은 쉽지 않아 식지 않는 열정만은 쉬지 않아 때론 눈이 내리는 날도 싫지 않아 대지가 춤을 추고 바람이 흩날리고 소년이 꿈을 꾸는 그곳 엘도라도 생명이 숨을 쉬고 태양이 눈을 뜨고 소년이 시를 쓰는 그곳 엘도라도 열정이 타오르고 절망이 꿈틀대고 소년이 노래하는 그곳 엘도라도 이건 분명 내가 찾던 꿈의 세상 이 작은 새장을 박차고 날아가 나를 찾는 여행 Oh Boys be ambitions 망설일 필요는 없어 Oh Boys keep your eyes on you 그래 한 번 더 힘을 내봐 서로 다른 모습이라도 모두 다른 꿈을 꾸어도 그 길을 걷던 네 모습 기억해 힘이 들 땐 내게 기대봐 내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 그 길의 끝에 내가 서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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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내가 꾸는 꿈

    곡 기본정보

    • 내가 꿈꾸었던 내가 꾸는 꿈이여 - naega kkumkkueossdeon naega kkuneun kkum-iyeo

    곡 정보
    아티스트 Esther
    앨범Esther Nation
    재생 시간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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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이별을 말한다해도 두렵지 않아 남은 나의 사랑으로도 견딜수 있어 혼자만의 사랑이었다고 해도 슬프지 않아 남은 나의 사랑으로도 웃을수 있어 워~ 너는 내가 꾸는 꿈 이제다시 가질수 없지만 자유롭게 떠나 내 사랑에서 니가 원하는 곳으로 모-르게 나를 떠나도 행복하길 이렇게 아픈 시간 안에서 니가 없어도 울지 않을 그날이 내게 오겠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테지 숨찬 그리움도 너의 사랑도 세월이 흐르면 희미해 지겠지 꿈속의 너의 이름도 너의 마음도

    junkeys 님이 등록해 주신 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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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여 꿈이여                                          

      장자는 『莊子(장자)』 <齊物論>(제물론)에서  말합니다. “언젠가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나비였다. 내 스스로 아주 기분이 좋아 내가 사람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윽고 잠을 깨니 틀림없는 인간 나였다. 도대체 인간인 내가 꿈에 나비가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 이 인간인 장자로 변해 있는 것일까.”

      어느 것이 맞습니까? 전자가 맞다고 증명할 수 있습니까? 후자가 틀리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꿈에 나비가 되어 있다 죽으면 나비가 죽은 것입니까? 내가 죽은 것입니까? 지금 이 순간은 꿈입니까 현실입니까? 꿈은 무엇이고 현실은 무엇입니까? 꿈과 현실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꿈속에서도 해 · 달 · 별이 있고 산과 강과 나무들이 있고, 불도 있고 물도 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이 있고, 기쁨과 슬픔이 있으며, 욕망과 좌절이 있고, 성공과 실패가 있으며, 삶도 있고 죽음도 있습니다. 꿈속에서도 칼에 찔리면 피가 나고 고통이 있습니다. 이 현실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꿈에서도 꼬집으면 아픕니다. 현실에서도 꼬집으면 아픕니다. 그런즉 아픈 것과 같은 감각으로는 꿈인지 아닌지 분별을 할 수 없습니다.

      꿈은 짧고 현실은 길다구요? 아닙니다. 꿈은 길고 현실은 짧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5분간의 꿈 속에 나타나는 꿈의 내용은 5시간도 되고 5일도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현실의 시간이 짧고 내용적으로는 꿈의 시간이 훨씬 더 깁니다. 영화 <인셉션>에서는 현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약을 먹고 꿈속으로 들어갑니다. 현실에서는 5분 동안의 시간이지만 꿈속에서는 5시간의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꿈을 현실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짧고 긴 것으로도 구별을 할 수 없습니다. 꿈은 불분명하고 현실은 분명하다구요? 꿈도 꿈속에서는 분명했습니다. 이 현실이란 꿈도 깨어보면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꿈은 비논리적이라구요? 이 현실은 논리적으로 굴러간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세상이 모순 투성이라고 생각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꿈이 꿈이었다는 것은 깨어나서야 압니다. 깨기 전에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꿈꾸고 있는 동안은 꿈이 꿈인 줄 모릅니다. 우리네 이 삶이 사실 꿈입니다. 그러나 이 삶이 꿈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밤에 꿀꿀 때 그 꿈이 꿈인 줄 모르고 현실인 줄 알았듯이 이 현실도 꿈인 줄 모르고 참 현실인 줄 아는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꿈은 오로지 깨어나야 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어난 사람과 꿈꾸고 있는 사람은 교통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이 꿈에서 깨어나야만 꿈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깨어난 사람이 아무리 간절하게 얘기해도 꿈속에 있는 사람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꿈꾸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꿈꾸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깨어난 사람과 꿈꾸고 있는 사람간의 교통은 불가능합니다. 외형상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습니다만 내용상으로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에 대화도 불가능하고 공감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깨어난 사람은 꿈꾸고 있는 사람이 안타깝게 보이고, 꿈꾸고 있는 사람은 깨어난 사람이 비현실적이라고 혀를 찹니다. 

      지금 우리는 꿈꾸고 있습니다. 엄연한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이 대명천지의 삶이 꿈이라는 것을 깨어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 침상에서 깨어났을 때 어젯밤 감미롭고 혹은 무서웠던 일들이 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듯이 이 삶이 끝났을 때 이 삶 속의 수 많았던 욕망과 갈등과 고뇌들이 다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밤에 꾸는 꿈은 깨고 보면 침상이고 이 삶이라는 꿈은 깨고 보면 관속이라는 차이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관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깨어나서 관속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쯤 이 삶이 꿈이었다는 것이 증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우리는 꿈속에 있기 때문에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꿈이 꿈인 것은 꿈꾸는 자가 꿈의 내용을 조금도 가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줄거리나 배경이나 등장인물들 중 그 어느 것도 조금도 내 뜻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꾸는 꿈이라면 내가 배경이나 등장인물이나 줄거리를 꾸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즐겁고 신나는 꿈만을 꿀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 꿈의 작자가 아닙니다. 꿈꾸는 동안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 때 나는 주인공으로 단지 행하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나의 모든 행위는 보이지 않는 꿈의 시나리오에 따른 것일 뿐입니다. 다만 내가 내 뜻대로 행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자유의지로 행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작가의 시나리오에 따른 행위일 뿐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의 주인공의 행동을 평가하기는 해도 그 근원인 시나리오 작가의 의식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성별, 부모, 형제자매, 고향, 국적, 인종, 키, 혈액형, 지능, 성격, 생김새 등등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다 주어진 것입니다. 내 몸과 마음 그리고 몸과 마음의 작동들도 모두 주어진 것입니다. 면역기능, 호흡과 피의 순환, 신경작용, 느낌, 생각, 감정, 의지 등 모든 것이 주어진 것입니다. 프로이트(1856∼1939)는 말합니다. “모든 마음의 움직임은 반드시 각각 그보다 앞서 일어난 심적 사건에 의하여 결정된다.” 내 마음마저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은 내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삶의 스토리를 어찌 내 뜻대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주어진 대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주어진 대로 살지 않으면 줍기 위하여 살다 갑니다.

      주어진 세상임에 자랑할 것도 없고 한탄할 것도 없습니다. 기쁨도 순간이고 원망도 찰나입니다. 알렉산더도 진시황제도, 그 어떤 재벌도 미인도 천재도, 유명인도 무명인도, 악인도 선인도 모두 갔습니다. 지난 밤 꿈에 왕이었든 거지였든 지나간 꿈일 뿐입니다. 또한 지금 이 순간도 왕이든 거지든 지나갈 꿈입니다. 모두 갑니다.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도 단지 주어질 뿐입니다. 심는대로 거두리라는 믿음에 의지할 뿐입니다. 100년을 살든 1000년을 살든 영원이란 시간 속에서 보면 다 순간입니다. 아무것도 집착할 것이 없습니다. 어렸을 때 딱지 한 장 가지고, 빵 한조각 가지고 싸웠던 순간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습니까? 보다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면 오늘 우리의 욕망과 갈등과 걱정들이 딱지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 모두는 내일의 해골일 뿐입니다. 어느 공동묘지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있다고 합니다. “나 어제 너와 같았으나 너 내일 나와 같으리.” 또 다른 비문은 말합니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 모두들 오래오래 살길 기대하다가 모두들 별안간 죽습니다. 남은 삶 동안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추구할 것입니까? 알렉산더 대왕은 죽으면서 자신의 두팔을 관속에서 꺼내 빈손을 펴 놓아 많은 사람에게 보이라고 유언했습니다.

      꿈은 길든 짧든 깨고 나면 모두 환영입니다. 왜 우리에게 그러한 꿈이 있는 것일까요? 이 현실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例表가 아닐까요? 꿈이 없다면 인간은 이 현실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깨달으라고 끊임없이 꿈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 예표마저 온갖 황당한 사변으로 해석을 해대며 현실로 끌어들입니다. 꿈은 현실의 부속품이 아닙니다. 꿈이 현실을 예지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꿈이 주체이고 현실은 꿈의 종속물이고 그림자인 것입니다. 현실이 꿈에 투영되는 것입니까 꿈의 내용이 현실에 펼쳐지는 것입니까? 꿈이 먼저입니까 현실이 먼저입니까? 어느 세상이 참세상입니까? 꿈을 꿀 때는 꿈이 현실입니다. 꿈이 현실이라면 이 현실 또한 꿈입니다. 현실같은 꿈이 참세상입니까? 꿈같은 현실이 참세상입니까?

      현실에서는 꿈꾸었던 나를 기억하지만, 꿈속에서는 현실에 있던 나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꿈 속에서는 더 이상의 꿈이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꿈속에서 꿈을 꾸었다는 말은 꿈이라는 무대에서 벌어졌던 다른 장면일 뿐입니다. 꿈속의 꿈이라는 또 다른 층위의 세계속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단지 꿈속에서 벌어지는 다른 장면일 뿐입니다. 현실의 삶의 흔적들이 꿈에 투영되기는 해도, 꿈의 내용들이 현실에 반영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 사실은 이 현실이 악세서리이고 꿈이 본체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간혹 꿈속의 내용들이 현실에 펼쳐졌다는 말들이 있지만 이는 꿈을 현실의 악세서리로 보는, 즉 현실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근거없는 말에 불과합니다. 

      꿈에서는 더 이상의 꿈이 없기에 온전한 세상입니다. 그래서 꿈은 완벽한 현실입니다. 현실에서는 꿈이라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고 경험도 하지만 꿈속에서는 이 현실이라는 다른 세상이 있는 줄을 모르고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즉 이 현실은 반쪽짜리 세상입니다. 이 현실은 현실세상과 꿈세상으로 이루어진 전체세상의 반쪽짜리 부분세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꿈세상은 그 세상이 전부인 온전한 세상입니다. 현실은 꿈속으로 들어가면 사라지는 세상이지만 꿈세상은 이 현실세상에서도 기억하고 반추하며 함께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꿈세상은 언제라도 들어갈 수 있는 항존하는 세상이지만, 이 현실은 꿈속으로 들어가면 언제라도 사라지는 임시의 세상입니다. 꿈은 깨지 않으면 영원한 현실이 되지만 이 현실은 명백히 깨어날 꿈입니다. 죽고 나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더 이상 깨어나는 일이 없을 것이므로 영원한 현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현실은 어느 순간에 반드시 끝날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어느 세상이 참세상입니까? 꿈은 바로 참세상을 깨달으라고 보여주는 예표가 아니겠습니까?

      장자는 말했습니다. “도를 깨달은 지인(至人)은 꿈이 없다.” 진리를 깨달은 자는 꿈을 꾸지 않아도 이 현실이 꿈인 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꿈이 없습니다. 그는 참세상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참세상에 도달한 자라는 의미의 “지인(至人)”인 것입니다.

      『금강경(金剛經)』은 말합니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일체의 현상세상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으며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

      꿈과 환영과 물거품과 그림자와 이슬과 번개는 잠깐 있다 사라지는 것의 例表일 뿐입니다. 이유위법의 예표는 잠깐 있다 사라지지 않는 영원불변한 무위법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유위법의 허망함을 넘어 언어도단의 세계, 그 무위법의 영원성을 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1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베드로전서 1:24-25>.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 같고 움킬 것에 날아 내리는 독수리와도 같구나<욥기 9:26>.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시편 144:4>.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언 27:1>

      인류역사상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말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도서 1:2, 14>

      주자(朱子, 1130~1200))는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 《권학문(勸學文)》에서 말합니다.

      .....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 연못가의 봄풀은 아직 꿈도 안깼는데 계단 앞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을 알리는구나.

      우리 인생은 봄꿈을 꾸다가 가을을 맞습니다. 봄 햇살에 취해 있는데 어느날 별안간 가을 서리가 봄꿈을 깨웁니다. 花無十日紅이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입니다(月滿則虧 월만즉휴). 가을 서리가 봄꿈을 깨우듯이 죽음은 예고없이 별안간 찾아옵니다. 죽음(死)은 어느(一) 저녁(夕)에 비수(匕)처럼 날아드는 것입니다. 겨울은 왔는데도 길 잃은 철새처럼 한숨만 지을 것입니까? 이제 다가오는 겨울을 어찌할 것인지 정해야 합니다. 

      지나가는 것, 변하는 것, 사라지는 것은 모두 헛된 것입니다. 영원한 삶 이외의 그 어느 것도 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입니다. 영생 만이 진리입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읽고 쓰고 먹고 자는 모든 것이 살기 위한 것입니다. 죽기위해 그러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 다 실패합니다. 다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목표설정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기간설정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목표로 하는 한 모든 것이 헛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도 허무감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생자필멸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의 해탈이 영생의 열쇠입니다. 영생은 우리가 죽고 난 후에 새로 생겨나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살아있을 때 없던 것이 죽고 나서 새로 생길 수가 없습니다. 영생은 살아있을 때부터 살아야 합니다. 살아있을 때 살던 것이 죽고 나서도 계속 지탱되는 것이 영생입니다. 살아 있을 때 없던 영생은 결단코 죽어서 새로 생기지 않습니다. 죽었는데 그 무엇이 새로 생길 수 있겠습니까?

      영생은 반드시 살아 있을 때 확보해야 합니다. 영생은 노력을 통해서 획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채움을 통해서 달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내려 놓는 것입니다. 내려 놓을 것이 더 이상 없을 때 비로소 영생이 나타납니다. 조금 내려놓고 조금 영생하는 양다리 걸치기는 통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을 때 죽으면 죽을 때 죽지 않습니다. 내가 사라질 때 영생이 탄생합니다. 내가 사라진 寂靜의 자리가 곧 영생의 자리입니다. 핵심은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내려놓는다는 노력을 하는 한 영생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핵심은 내려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려놓고자 하는 마음조차 완전히 포기당할 때 거기 영생의 자리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법정스님이 열반하셨을 때 한 동안 그의 『무소유』라는 책을 소유하기 위해 소동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무소유마저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일진대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숭산스님은 말했습니다. “오직 모를 뿐 ·····.”

      그러나 어느 眞人은 말했습니다. "확신 속에 살기를!(Live in Confid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