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판 상용구 사전 - papan sang-yong-gu sajeon

입력2022.08.18 14:03 수정2022.08.30 17:09

- 효월의 종언 V6.0 오프닝 트레일러

"얼마 만에 누른 로그인 버튼일까?"

3년? 4년? 정말 오랜만에 에오르제아를 찾았다. 커뮤니티 기자를 그만두고 글로벌 서버에서 '절 알렉산더 토벌전'을 은퇴식(?)으로 성공한 후 단 한 번도 접속하지 않았다.

복귀를 결심한 것은 누군가의 권유였다. 커뮤니티 기자 시절 그립지 않느냐며 향수를 자극했다. 고민 끝에 시간적으로 여유도 생겼고 V5.0 '칠흑의 반역자' 스토리를 전부 스킵 한 것도 아쉬워 이번 기회에 천천히 음미하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매칭 시간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스토리는 처음부터 진행하는 조건을 붙였다. 그리고 스토리를 감상하기 위한 한국 서버와 지인들과 함께 레이드를 즐기기 위한 글로벌 서버를 모두 결제했다. 한국 서버에선 말 그대로 게임을 음미하고 글로벌 서버에서는 콘텐츠 진행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설치 버튼을 클릭했다. 5번째 확장팩까지 출시해서 그런지 설치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다. 기다리는 동안 '서버는 그대로 유지할까?', '어떤 종족과 직업이 좋을까?', '기존 닉네임들은 남아있을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나중에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등 행복한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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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규 런처도 처음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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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에 사용했던 캐릭터와 닉네임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1시간 20분 정도 걸려서 설치가 완료됐다. 게임 시작을 누르자 이용권이 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로그아웃됐다.

"이 게임 정액제구나"

한동안 부분 유료화 게임만 접하니까 잊고 있었다. 정액제 결제 이후 다시 접속하니까 닉네임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예전에 휴면 계정 닉네임 초기화 소식을 얼핏 들어 다 사라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이다.

일단 기존 아이디인 Baroo와 건브레이커로 접속해 봤다. 건브레이커의 경우 길드에서 퇴출되지 않았다. 같이 떠난 지인의 마지막 접속 일이 1272일 전인 것을 보니 복귀가 실감됐다. 현역 시절 함께 즐겼던 매드라이프 Moongazer는 신규 레이드를 끝낸 이후 쉬는 중인 것 같다.

여전기 게임을 즐기고 있는 지인이 링크셸 접속 알람을 봤는지 귓속말을 걸어왔다. 링크셸에 아직도 남는 것부터 신기했다. 그는 "해킹 당했나? 누구야? 주인 아니지?"라며 독특한 환영 인사를 전했다. 웃으면서 인사를 전하자 반갑게 맞아줬다. 20~30분 정도 일상을 공유하니까 너무 재밌었다.

"이게 파이널판타지14의 매력이었지"

과거의 향수가 밀려왔다. 지인을 만나니까 기존 캐릭터로 계속 이어가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왕 복귀했으니 새로 시작하면서 제대로 익혀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5개의 서버 중 고민 끝에 초코보 서버를 선택했다.

과거 발 빠르게 선점한 닉네임 '무도가'에 종족은 라라펠, 직업은 검술사로 이미 설정된 탓에 선택지가 없었다. 외형이나 종족은 추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환상약'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기존에도 라라펠이었던 만큼 신규 종족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바꾸지 않을 것 같다.

닉네임에 맞춰 무도가 직업을 선택하려면 칠흑의 반역자까지 도달해야 한다. 무도가를 시작하기 전까지 효월의 종언 주인공 직업이면서 던전 매칭이 수월한 검술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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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싹으로 늠름하게 에오르제아 생활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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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고향에 온 느낌이다

'울다하 날 회랑' 풍경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뭔가 새로웠다. 마치 고향에 온 기분? 고요하게 들려오는 BGM도 정말 편안했다.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려는 순간 HUD를 조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텐키리스 키보드로 바꾼 바람에 이전에 사용했던 Num LK HUD를 사용할 수 없다. 과거에도 효율적인 조작을 위해 HUD를 바꿔보는 것을 계획했는데 귀찮아서 제대로 시도하지도 않고 포기한 바 있다. HUD는 한 번 정하면 습관처럼 유지되어 바꾸지 않을 확률이 높으므로 복귀를 기회로 삼아 제대로 바꿔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깔끔하게 HUD를 조정하고 메인 퀘스트를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단축키도 기억 속에서 사라져서 새로운 것을 익히는 기분이 들었다. 닉네임 옆에 붙은 새싹 아이콘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개선된 UI를 보면서 얼마나 게임을 떠났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NPC와 대화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G 키를 계속 클릭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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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천히 살펴보니까 나름 신선했다

다행히 길은 기억했다. 파이널판타지14 지도가 예전보다 많이 개선됐지만 각종 구조물과 고·저차로 길을 잃기 쉬운데 아직까지 잊어버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번 목표는 첫 번째 던전인 '사스타샤 침식 동굴'까지 끝내는 것이다.

파이널판타지14의 가장 큰 진입장벽이라 불리는 '무당벌레'도 무사히(?) 이겨내고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를 같이 진행하니까 레벨이 금방 올랐다. 너무 초반 구간이라 지루한 느낌도 없진 않았지만 추억이 그 지루함을 한껏 덜어줬다.

커뮤니티 기자 시절에는 빠르게 레벨을 올려서 콘텐츠 정보를 파악해야 하니까 무심하게 스킵했던 콘첸츠가 많았다. 그런 요소들을 상세하게 살펴보니 1레벨부터 시작한 것이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했다. 장비와 레이드에 연연하지 않고 여유롭게 즐기면 더 재미있을 것이라는 요시다 나오키 PD의 말을 지금에서야 공감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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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나모, 라우반 등 잠시 잊고 있던 NPC들을 만나니까 무척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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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기식이 6레벨로 변경된 것은 만족 포인트였다

6레벨 '개기식'을 배우니까 사냥이 한껏 편해졌다. 예전에는 '재빠른 검격 → 폭도의 검격'으로 한 마리씩 처치하니까 정말 답답했다. '플래시' 또한 공격 스킬이 아니라서 간혹 적개심 관리가 까다로운 상황이 발생했는데 이런 개선은 게임이 한층 발전했다는 느낌을 들게 만드는 요소였다.

퀘스트 도중 노련해 보이는 미남(산크레드)을 만나서 10레벨 정도 달성하니까 단축키와 기능들이 손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게임을 진행할 때마다 곳곳에 편의 기능이 상향된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도시에 배치된 에테라이트 전송망의 위치가 명확하게 표기되는 것, 동아리 찾기, 업적 표기 UI 등 다양한 변화점은 복귀 유저 입장에서 굉장히 신선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파이널판타지14의 종족과 NPC들은 참 매력적이다. 라라펠 종족과 비슷한 디자인이라면 블레이드앤소울의 린 종족, 테라의 엘린 종족 등이 떠오른다. 다른 게임의 종족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라라펠은 뭔가 균형 있게 특징을 잘 살렸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파이널판타지14 자체가 세련된 그래픽으로 설계된 게임도 아니고 눈에 띄게 예쁜 그래픽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도시의 야경이 화려하게 예쁘다면 시골의 밤 풍경은 수수한 아름답다는 차이가 있듯이 파이널판타지14는 시골처럼 정겹게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메인·서브 퀘스트를 순차적으로 공략하고 림사 로민사, 그리다니아 등 3대 도시를 탐방한 후 '초보자의 집'에서 제시하는 미션들을 끝내니까 어느새 목표했던 사스타샤 침식 동굴 앞에 도달했다. "오래 걸리겠지?"라는 생각으로 매칭 버튼을 눌렀다. 마음의 준비를 다질 시간도 없이 1초 만에 '팅' 소리가 나면서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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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족마다 특징을 정말 잘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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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유롭게 게임을 즐기니까 스토리에 대한 몰입감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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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널판타지14만의 매력이 담겨진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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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매칭된 상황에 당황했다

던전에 입장하니까 '길 잃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다들 상용구로 인사하는데 잘 써보지 않았던 기능이라 혼자 '안녕하세요'라고 채팅하니까 시대에 뒤떨어지는 기분이 느껴지면서 민망했다. 몬스터를 몰아도 되냐고 묻자 친절하게 그렇게 하라고 답해줬다. 하지만 이 길이 맞나? 어디까지 몰아야 하지?라는 고민이 머릿속을 흔들었다.

다행히 길은 제대로 찾았다. 그래도 나름 5~6년 경력직인데 이 정도 지식은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몰이사냥은 분명 처참했다. 겉으로는 표하지 않았지만 분명 다른 파티원들도 '진짜 못하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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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전도 반가웠지만 과거 업무로 한창 찍었던 스크린샷을 다시 찍으니 기분이 묘했다

예전에는 정말 지루한 던전이었는데 의외로 재밌었다. 물론 파이널판타지14를 계속 즐기면 다시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복귀해서 잠깐 즐기고 떠나는 것이 아닌 오랫동안 에오르제아 생활을 즐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첫 목표를 완수했으니 다음 목표를 정했다. 서브 퀘스트까지 진행하니까 시간이 꽤 소요되는 만큼 신생 에오르제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루다' 토벌전을 다음 목표로 설정했다. 글로벌 서버 신규 레이드 정보를 제공하려면 시간이 빠듯하니 한국 서버의 진도는 서두르지 않을 계획이다.

이 코너는 에오르제아 생활과 외수 행사를 중심으로 때로는 기자로서 정보 제공을, 때로는 SNS처럼 일상 공유를, 때로는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로 기획했다. 이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진부하고, 누군가에게는 반갑고, 누군가에게는 신선한 내용일 것이다.

처음에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중요하지 않다. 시간이 흘러 많은 모험가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함께 만나 게임을 즐기면서 에오르제아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코너가 되길 바란다.

문원빈 한경닷컴 게임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