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시추기 원리 - seog-yu sichugi wonli

시추 장비 및 방법의 역사

앞서, “석유시추탐사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시추 장소와 조건에 따른 다양한 시추 장비에 대하여 다룬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추장비까지 어떤 변천과정을 거쳐서 오게 되었을까요?

시추의 시작은 물을 찾는 것에서

인류가 최초로 땅에 구멍을 뚫게 된 배경은 바로 물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구 상의 물은 97%가 바닷물이고, 민물은 3%입니다. 3%의 민물 중에서 지구 표면에 있는 지표수는 0.3%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만년빙하와 지하수입니다.

따라서, 호수나 강 등에 사는 사람이 아닐 경우에는 땅을 파서 물을 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도구가 없이 손으로 땅을 팠겠죠. 그러다가 앞서 한국 내의 석유 시추(試錐) 역사에서 소개한대로, 고대 중국에서 아주 효율적인 방법을 개발하게 됩니다.

크고 끝이 뾰족한 돌을 스프링 보드(spring board) 위에 로프(rope)로 매달아서, 사람이 스프링 보드 위를 뛰어 오르내리면 돌이 위로 급히 당겨 올려졌다가 떨어지게 됩니다. 돌이 떨어질 때마다 땅 속으로 날카로운 돌이 파고들게 되어 땅을 파는 사람에게 위험을 주지 않고 구멍을 뚫게 됩니다. 중국인들은 구멍을 대나무로 케이싱(casing)하여 300m 이상 깊이까지 뚫을 수 있었습니다.

출처: http://www.petroleumhistory.org/OilHistory/pages/Cable/kicking.html

케이싱은 구멍을 뚫을 때 매우 중요합니다. 계속 구멍을 뚫다 보면 이미 뚫어진 구멍 옆의 흙들이 계속 무너지게 됩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케이싱을 반드시 해야 하는데, 중국인들은 그 케이싱을 대나무로 했던 것 입니다.

중국 시추 기술의 유럽 전파

1828년 앙베르라는 프랑스 선교사는 중국을 방문하여 이 놀라운 중국 시추 방법을 눈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그는 이 시추기술에 대하여 프랑스 본국으로 상세하게 써서 보내게 됩니다. 그 이듬해에 그의 편지는 프랑스 과학계에 알려져서 갑론을박을 하기에 이르렀고, 중국이라는 나라가 미개하다고 생각하여 대부분 믿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조바르라는 기술자는 앙베르와 지속적인 교류를 통하여 여러 번의 실험을 거쳐서 그것을 재현하였고, 성공하게 됩니다. 유럽에서는 1834년에 이르러 중국식 시추술로 소금을 채굴하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1841년에 이르러서는 이 방식을 석유를 채굴하는데 활용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뾰족한 돌 대신에 끌(chisel) 모양의 철 도구 또는 비트(bit)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방법으로 직경 10cm의 좁은 구멍으로 100미터까지 뚫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추 방법을, 흙과 부드러운 바위를 분쇄하여 가루로 만든다고 해서 퍼커션 시스템(percussion system) 혹은 충격식 시스템이라고 불렀습니다.

퍼커션 비트

스팀 엔진(steam engine)의 발명과 케이블-툴 시스템(cable-tool system)

스팀 엔진의 발명으로 시추 기술은 한 단계 더 발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사람의 힘으로 비트에 파워를 주던 것을 스팀 엔진이 대신함으로써 비트에 아주 큰 파워를 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865년 스팀엔진 광고

나무로 만든 유정탑(derrick)을 유정(well) 위에 설치하고, 로프 대신에 스틸 와이어(steel wire) 한 가닥을 탑의 꼭대기에 매달았습니다. 스팀 엔진은 크랭크(crank)를 구동하여 드릴비트(drill-bit)를 탑의 꼭대기까지 끌어 올린 후 갑자기 놓게 되면 비트가 상당한 힘으로 땅 위를 급히 내리 쳐서 넓고 깊은 구멍을 팔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프는 가끔 식 잘 끊어지는데 비해 스틸 와이어는 잘 끊어지지 않으므로 와이어의 사용으로 전 공정을 더욱더 빠르게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구멍을 뚫은 유정의 벽이 허물어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철 케이싱(iron casing)을 사용하였고 유정탑으로 유정 속 더 깊은 곳까지 더 쉽게 케이싱을 밀어 넣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여 생산 중인 펜실바니아 오일 크릭 유전, 1868년 사진

이 시추 시스템을 케이블-툴 시스템(cable-tool system)이라고 불렀으며 1930년대까지 잘 사용하여왔습니다. 이 시추 방법이 이전의 시추 방법보다 비약적인 발전은 하였지만, 오일이나 가스 시추 시에 나타나는 문제점을 여전히 안고 있었습니다.

그 주된 문제는 땅 속의 석유나 가스를 마주쳤을 때, 그 속안의 압력이 엄청날 경우 유정 밖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분출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석유시추에서는 분유정(噴油井, gusher) 또는 거셔라고 말합니다. 거셔가 발생되면 통제할 수 없고 매우 위험하며 가끔 화재를 일으켜 수주일 동안 사납게 타오르게 됩니다.

1909년 캘리포니아 미드웨이 유전에서 거셔

현재의 시추시스템인 로테이션 시스템(rotation system)

1930년대 말에 현재의 시추시스템과 거의 유사한 로테이션 시스템이 발명됩니다. 무거운 비트를 땅으로 쳐서 구멍을 뚫는 대신에 회전을 시킬 수 있는 비트를 사용하게 된 것 입니다. 이 비트에 스틸 와이어 대신 파이프를 부착하여 유정(well) 상부의 지표면에 위치한 원형의 스틸 테이블의 가운데를 통과하게 한 것 입니다.

스팀엔진이 이 테이블을 회전시켜서 비트에 연결된 파이프를 회전시키는 것입니다. 유정탑(데릭, derrick)에 매달려있는 후크(hook)를 서서히 아래로 내리면, 가장 아래에 있는 비트가 회전을 하면서 점점 더 깊이 구멍을 파게 되는 것 입니다. 파이프가 다 파고 들어가면 데릭(유정탑) 안에 저장해 둔 새로운 파이들을 계속해서 추가로 연결하여 더 깊이 시추를 하게 됩니다. 비트 위에 파이프들이 계속 연결되기 때문에 무게가 상당하며, 바위 같은 단단한 지질도 쉽게 구멍을 뚫을 수가 있게 된 것 입니다.

또한, 내리치는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니고 회전을 시키는 것이기에 구멍 초입에 대한 제어를 쉽게 할 수 있어서 거셔의 문제점을 해결해 주기 위한 밸브를 설치할 수가 있게 됨에 따라서 석유나 가스가 갑자기 분출하는 것을 막을 수가 있게 된 것 입니다.

오늘날 유정에 설치되는 이 밸브를 보통 Blow-Out Preventer라고 말을 하고, 간단히 BOP라고 표현합니다

그 다음 이 시추시스템에서 아주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이수(利水)시스템(mud system)이 있다는 것 입니다. 물을 이용한다고 하는데 영어로 mud인 이유는 최초의 회전식 시추를 시도했던 Anthony Lucas가 그 당시 목장에서 퍼낸 진흙을 사용한 것이 유래가 되어 영어로 mud system이라고 합니다.

비트가 굴착할 때 이수의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지층 압력이 갑자기 분출되는 것을 막아주는 지지 역할
  • 비트가 잘 회전되도록 하는 윤활 작용
  • 회전으로 과열된 비트의 냉각
  • 땅 속 안에 굴착된 암편 조각 제거
  • 시추공 붕괴 예방

시추 방법의 역사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 포스팅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드릴링에 대한 기술적인 측면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