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태엽 오렌지 책 줄거리 - sigye taeyeob olenji chaeg julgeoli

시계 태엽 오렌지 책 줄거리 - sigye taeyeob olenji chaeg julgeoli

(중딩때 써서 완전 횡설수설)

줄거리 0/결말0

이 책을 읽게된 계기는 영화 시계태엽오렌지가 매우 잔인하고 영국에서 시계태엽오렌지의 주인공을  따라하는 그러니까 모방범죄(강간을 하며 sing in the rain을 불른다.)가 꽤 일어났다고 해서 알고있었는데 책이 있는줄은 몰랐다! 그리고 책이 원작인줄도 모르고 있어서 마침 시계태엽오렌지를 보고 싶었지만 잔인하다하여 못보고 있었는데 책이 있으니 즐거워하며 대출을 받아 보았는데.. 음 이책은 매우 신기한 책이었다.그리고 내용이 매우 자극적이었다(폭력,마약,강간,루도비코요법 등..)음 우선 줄거리를 말하자면 마약과 폭력을 즐기는 15살 소년 알렉스는 여느때와 다를바 없이 범죄행위를 그러니까  부자 할머니의 집을 털고있었다(+가기전 동무들과 다툼과 기싸움이 약간 있었다.)그런데 거기서 할머니와 싸우다 할머니를 죽여버리고 동무들은 알렉스를 버리고 심지어 때리기까지하고 도망가버린다.그후 알렉스는 감옥으로가 14년형을 받고 지내는데 거기서 루도비코요법을하면 2주후 밖으로 나갈수 있게된 알렉스는 그 관계자의 눈에 띄어 루도비코요법을 받게 되는데 루도비코요법은 폭력적인영상을 보여주며 몸에 자극을줘 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것을 반복하여 장치없이도 조건반사로 폭력적인것을 보거나 생각하면 고통스럽게된다.그요법을 받고 풀려난 알렉스는 옛날에 괴롭혔던 노인들에게 맞고 옛동무 딤과 만나 딤에게 연신 맞고 사람이 거의 없는곳에 버려지게 된다.그곳에서 어떤 작가가 자신을 도와줬는데 그는 시계태엽오렌지의 작가였다.알렉스는 예전에(가면을 쓰고)시계태엽오렌지라는 소설을본적이있다. 바로 자신이 그 작가를 폭행했고 소설을 찢고 작가의 아내를 강간했었던적이 있었다.그사실을 모르는 작가는 알렉스의 몰골을 보고 도와주고 이야기를 듣고 알렉스가 그냥 불쌍한 피해자인줄 알고있었다.아무튼 그일후 작가가 알렉스에게 정부에게 제대로 대응을하자고 하는데 알렉스는 갈등을 하는 와중에 작가가 알렉스가 자신의 아내를 죽게 만든 장본인인것을 알게되고(강간당한후 자살을한 작가의 부인)알렉스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거기에 노래를 틀어준다(알렉스는 루도비코요법때 노래도 함께들어 자신의 좋아하는 노래를 못듣고 노래를 들을때마다 고통이 찾아온다.)그리고 알렉스는 고통을 느끼고 결국 자살을 택한다.하지만 알렉스는 살게되고 사회가 루도비코 요법에 관심을 가질때 그런 사건이터져(알렉스가 자살하려한)알렉스는 루도비코요법의 엄청난 피해자가 된다.그후 알렉스는 치료를 받고 다시 폭력적 성향을 띄지만 퇴원후 계속 사람들을 때리고 그러는데 전혀 재미있지않아 카페에 가서 쉬고 있는데 옛동무를만나 봤는데 그 동무는 아내가 있는것이다! 그것에 충격을받고 카페에서 나가 알렉스는 알게된다. 자신이 왜 때리거나 그랬던게 재미가없었던것인지 그는 어른이 된것이다 철이 들어버린거다.왜 자신이 신문에서 아기의 사진을 잘라 자기 바지주머니에 넣었는데 그는 알게되었다.그는 철이든것이고 어른이된것이다.(무삭제에서는 "철이든것이고 어른이 된것이다. 새삶을 찾을것이다."라고 쓰여있다고 한다.) 

​이게 대략적인 줄거리인데 나는 이책을 읽을때 이상하게도 알렉스가 불쌍하게 느껴졌었다!왜일까.. 너무 생생하게 그 고통이 적혀있고 모든 상황들이 알렉스를 피해자로 만드는 느낌이었다.그래서 나도 정말 불쌍하다고 느꼈었었다.나는  이 책이 마음에든다.너무 새롭고 재미있다.하지만 범죄미화 그런 논란이 있어서 조금 찝찝한?기분이있지만 이책의 작품성이 너무 좋다고 생각한다.나는 이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게 (알렉스와 함께 공감한)장면은 루도비코 요법을 할때 알렉스가 좋아하는 교향곡이 같이 나와 알렉스는 (확실하진 않을듯하다 난 기억력이 좋은편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만해!!베토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작곡했을뿐이라고!"난 여기서 매우 공감을 했다 아마도 여기서부터 알렉스에게 공감을 한것같다.좋아하는 노래가 비참한 장면에서나오고 나는 정말 정말 기분이 나쁘고 저말을 하고싶었을거같다.나는 진짜 저 말이 너무나도 마음에든다.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작곡을 했을뿐 제발 그러지말자 라는 생각?이다.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말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책의 마지막 장면이 조금좋았다. 철이든것이 좋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좀 역겹다?라고 느낄수있는 부분일것같다. 자기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은 어떻게 되는건지.. 그래서 좀 이질감이 느껴졌지만..상당히 괜찮았던 책인거같다(주관적인 생각이다!)사람을 복잡하게 만드는 책인거같다.(+사람들은 말한다 이 작품은 정서에 안좋은거같다고 나도 꽤 같은생각인거같다. 판단을 잘못하고 가치관이 성립안된 어린아이들이 보면 범죄가 멋져보일수도 그행위를 따라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ponential growth

생각/책

시계태엽 오렌지 - 자유, 국가 그리고 코로나 (1)

성장은 우상향 2020. 5. 14. 08:02

수년 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를 보고나서 책도 읽어보고 난 후 독후감을 쓴 적이 있다. 그 책을 읽고 처음으로 '자유'라는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뭐, 사실 그 이전에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는 이미 절실히 체감한 경험이 있긴 했는데, 바로 군대가고 나서..ㅎㅎ;;

갑자기 그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니, 코로나 사태를 격고 갑자기 예전에 시계태엽 오렌지를 읽고 작성했던 독후감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원래 작성했던 독후감은 여기 (1)에 올리고 몇 가지 생각을 추가하여 (2)에 올리고자 한다.


우리들은 온전히 본인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어린아이들은 가정에서 기본예절을 배우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면서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으며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사회화 과정에서 그들은 적당한 처벌 혹은 책임을 짐으로써 사람간 관계에서 자신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확인하며 자신의 신체, 행동, 권리는 자신들이 속한 사회와 국가 권력에 의해 보장받기도 제한될 수도 있음을 알게되며 본인의 자유의지와 스스로 행동을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 이처럼 사회공동체에 속한 인간은 사회화의 과정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의 행동을 제약하도록 교육받는다. 그렇다면 국가의 권력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자칫 식상해 보이는 이 질문은 진부하지만 꽤나 오래되었고, 최근까지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제하는 국가의 행위는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각자 다르기에 이러한 논의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얼마 전(2017년) 인권위가 권고한 중, 고등학생들의 교내 휴대폰사용 허용 권고에 대한 작은 논란부터 이전부터 꾸준히 이루어 지고 있는 사형제도의 존폐여부까지. 인권 즉, 인간다운 삶을 침해한다는 의견과 결부되어왔다. 그렇다면 반대로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까지의 자유의지가 허용되어야 하는가? 여기 가장 막장의 케이스(싸이코패스)를 막장 국가가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살펴보자.

책의 주인공 알렉스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싸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다. 알렉스는 그를 사랑해주는 부모님과 같이 살고 학교도 다닌다. 하지만 그에게 주입된 사회화 과정은 소용이 없는 듯 보인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으슥한 밤에 홀로 길을 가는 노인을 보고는 소지품을 밟고 노인을 폭행한다. 수중에 돈이 부족하면 사람을 때리고 돈을 뺏는다. 차를 타고 길을 지나가다 자기 힘을 과시하고 싶으면 그냥 처음 보이는 집에 들어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 그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동은 특별한 동기도, 원한도 없고 오직 본인의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다. 그저 재미를 위해 남을 구타하고,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일을 저지를 뿐이라는 점에서 그의 행동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범죄를 즐기는 잔혹한 취미와 별개로 ‘베토벤 교향곡’을 감상하는 고상한 취미 하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를 바라보는 독자로 하여금 더 소름끼치게 만든다. 범행 동기와 목적이 어떻든, 알렉스는 감옥에 가게 된다. ‘감옥’ 또한 국가가 사람을 교화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사회화의 한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알렉스는 감옥이라는 또 한번의 사회화 과정도 소용이 없는듯 보인다. 그는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목사 앞에서 의도적으로 성경을 읽는 척을 하며 죄를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알렉스는 목사의 신임을 얻게되고, 그에게서 ‘루도비커요법’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된다. 루도비커요법이란 정부가 재집권을 위해 선전용으로 내민 정책실험으로, 범죄자에게 폭력적 장면을 강제로 시청하게 하여 폭력적 행동을 상상하거나 실행할 때 고통을 느끼도록 조건화하는 요법이다. 루도비커요법으로 치료받으면 가석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감옥에서 빨리 나가고자 기꺼이 실험에 자원한다. 그러나 정부는 다음 선거를 위한 지지율에 눈이 멀어, 루도비커요법의 부작용에 대한 고려 없이 실험을 진행한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감옥까지, 일반적인 사회화의 과정은 알렉스를 개과천선하지 못했지만 반사회적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조건화 시키는 ‘루도비커요법’이 알렉스와 같은 사람을 선하게 만들 수 있었을까?

고통스러운 치료과정을 거쳐 알렉스는 나쁜짓을 하지 않게 된다. 범죄에 대한 거부감이나 양심이 생긴것이 아니라 범죄를 상상하면 고통을 느끼도록 조건반사되었기 때문이다. 어쨋거나 치료가 된(?) 알렉스는 감옥을 나와 사회로 되돌아가지만, 그를 마주한 부모는 그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을 내비치고 그와 마주친 사람들은 복수를 빌미로 알렉스를 구타한다. 그러나 알렉스는 저항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거나 미안한 마음에 저항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상상을 하면 고통을 느끼도록 조건화 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 통제된 채 기계적인 행동을 하는 것뿐이다. 알렉스는 이내 자살을 택하지만 실패하고, 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되자 그에게 가한 실험을 비난하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는 ‘역 루도비커법’으로 알렉스를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그렇게 알렉스는 처음상태로 되돌아갔고, 몇 년 후 세월이 지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폭력적인 성격이 사라지고 다른 사람들처럼 철이 들며, 이내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책에서 알렉스가 저지른 범죄와 범죄 동기를 살펴보면, 작가는 알렉스의 행동을 통해 사회계약을 무시하고 완전히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개인을 완벽하게 통제하고자 하는 국가 권력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책의 저자 ‘앤서니 버지스’가 책의 제목을 시계태엽(자유의지를 억압하는 장치) 오렌지(인간)으로 지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책에서, 작가는 완전히 대비되는 주체들을 서술한다. 완전히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알렉스, 그리고 알렉스를 시계태엽처럼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국가. 이 두 주체가 행동한 결과는 각각 알렉스의 행동에 의해 발생된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고, 자유의지를 말살한 정부의 실험은 알렉스에게 ‘자살시도’ 라는 결과를 낳았다. 타인의 자유는 물론 생명까지 위협하는 행동에는 당연히 통제가 필요하지만 여기서 국가는 알렉스같은 범죄자를 교화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의지를 기계적인 방법으로 말살해버리는 쉬운 방법으로 그를 통제하려 한다.

현실에서도 국가는 구성원을 여러 이유에서 통제하게 된다. 알렉스처럼 극단적인 사람이 아니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억압받고 싶어하지 않고,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사회가 정한 ‘선’을 넘어 남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동기는 자주 받는다. 당연히 여기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이 책처럼 개인이 타인을 때리고 국가가 개인을 고문으로 억압하는 사례처럼 간단하지 않다. 어떤 국가에서는 껌을 함부로 뱉으면 엄격하게 처벌을 받는데, 어떤 국가에서는 길거리에서 대마초를 피워도 합법이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사람들의 인식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며 기존에 있던 논리는 어떤 사건에 의해 새로운 논리에 의해 도전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학생들의 교복과 두발을 두고도 말이 많은데, 그러한 점에서 기존에 정한 '선'을 두고 이제 어디까지를 선으로 정할 것인지 기존에 정한 선이 필요한지에 대해 갑론을박은 계속해서 벌어질 수 밖에 없다.

현실의 문제는 복잡하기 그지 없다. 바로 그런 점에서 나는 국가와 개인 누구든 기회가 된다면 복잡한 문제에 가급적 간단한 방법을 사용하길 원하리라 생각한다. 만일 ‘사형제도 존폐문제’ 부터 ‘학생들의 휴대폰 사용허용에 대한 논란이 본질적으로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에 대한 의문에서 나온 것이라면, 개인의 자유의지와 국가권력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돼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시대와 관계없이 끊임없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호시절을 맞아 사회에 정이 넘칠 수 있지만 어떤 이유로 포퓰리즘이 거세게 일어나 사회가 거칠어 질 수도 있다. 이에따라 당연히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데 대중의 시선도 달라질 수 있고 대중의 표에 의식하는 정부는 사회의 거센 흐름에 올라타기 쉽다. 만약 이런 흐름에 명확한 잣대가 없다면 그러한 거센 흐름에 휩쓸려 국가와 사회가 잘못된 길을 갈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선 자유, 평등, 존중 등을 대해 가르치긴 하지만, 정작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기엔 여기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볼 기회가 부족할 뿐더러 서양에서 '자유'라는 개념을 자신들의 역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음은 물론 토론을 통해서도 배우지만 한국에서는 그 개념을 한반도 역사에선 찾아볼 수 없고 서로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조차 매우 부족하다. 학생들은 물론 어른들도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계태엽 오렌지 - 자유, 국가 그리고 코로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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