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가족 해석 - balamnan gajog haeseog

바람난 가족 해석 - balamnan gajog haeseog

예전부터 궁금하긴 했었지만

다소 자극적일 것 같아서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드디어 보게 된 바람난 가족.

(넷플릭스에 있음)

바람난 가족 해석 - balamnan gajog haeseog

돈 되는 일이면 모두 하는 30대 변호사, 영작.

그의 아내는 전직 무용수이자 지금은 주부인 호정.

그들 사이에는 수인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는 입양된 아이이다.

영작의 아버지인 창근과 어머니인 병한.

그 둘은 섹스 안한지 15년이 흐른 섹스리스 부부이다.

영작은 꾸준히 김연과 불륜관계였고,

어느 날 호정은 옆집 고등학생 지운과 바람이 난다.

호정의 시어머니 병한은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이 난다.

이 둘은 부부관계에서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했지만

(심지어 창근-병한 부부는 섹스리스였고

호정은 영작과의 관계 뒤에 자위를 하기까지 한다)

바람난 대상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섹스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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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하지 못한 성적 욕망을

밖에서 해결하는 그들

영작은 김연과 꾸준히 바람관계를 유지하지만,

이들은 직접적으로 삽입하는 과정보다

인상깊은 것이 바로 이상한 그들의 관계 자세.

영작이 아래에 누워있고,

김연이 위에서 마스터베이션 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하는데

이는 아마도 영작이 집 안에서는 해결하지 못한

자신의 지위 (아내를 만족시킨다는 것)를

밖으로 나가서 해결하려는 욕망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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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최고의 문제작?

2019년에 봐도 문제다

성과 결혼은 떼놓으려 해도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이다.

물론 사랑 역시 마찬가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는 성과 사랑이 양립하는 상태지만,

어쩔 때는 양립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예컨대 사회에서 통용되듯 흔히 말하는

'가족끼리 뭘 그런 걸 해' 따위의 우스갯소리가 속상하다.

사랑은 섹스를 유발하고, 섹스는 사랑을 견고히 한다.

비록 현대사회에서 성과 결혼의 결속이 흐려지고,

새로운 가족 형태가 등장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성=사랑=결혼 이 우리가 예상하는 사랑의 디폴트값.

<바람난 가족>은 2003년도 부부관계의

디폴트값에서 한참 벗어나있다는 점에서,

문제작이라고 불릴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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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감성,

이제는 사회적 허용 범위를 넘었다

또 다른 의미로, 2003년보다

지금 더 문제가 되는 점들이 있는데

예컨대 옆집 고등학생이 망원경으로 호정의

나체를 훔쳐본다거나 대놓고 따라다닌다거나 하는.

이런 범죄적 요소는 물론이고 옆집 고등학생의 동정을

호정이라는 이웃집 유부녀가 떼준다는 점이라든가

동창을 만나 섹파가 되는 것,

오피스 와이프 같은 존재와 몸까지 나누는 것,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이 서글픈 아들 수인 등.

현대적 시각으로 봤을 때 훨씬 부도덕한 것들이 많다.

2000년대 초에는 이런 것들이 마치 판타지적 요소로 여겨지며

영화의 주된 플롯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살짝 개탄스럽다.

예를 들자면 <연애의 목적>이나

바람피기 좋은 날>이라든가 하는 것들.

지금은 개봉 못하지 않을까?

하더라도 엄청난 비난을 받을 듯.

그 시대에는 어떻게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매커니즘이 받아들여졌는지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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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의 전라 연기를 보기 위해

이 영화를 보신다고요?

배우한테 사과하세요

일부 리뷰에서, 문소리의 전라 연기가

인상 깊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이 영화 속에서 문소리를 너무

단편적으로 기억하는 게 아닐까 싶다.

'여'배우 문소리는 이 영화에서 여배우로써,

그리고 호정으로써 표현할 수 있는

감정선의 최대를 표현했고

그를 몸으로 표출한 것 뿐이다.

그러니 문소리 감독, 출연의 <여배우는 오늘도>를 보고 온 뒤,

문소리에게 사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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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작의 아버지 창근은 결국 죽고,

병한은 외국으로 떠난다.

지운의 아버지는 영작을 찾아가 지운과 호정의 바람 사실을 말하고,

영작은 애써 모른척 한다.

영작의 차에 치여 교통사고가 난 지루는 변호사인 영작이

거짓 증언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복수를 하기 위해 만취한 상태로 수인을 납치해

건물 옥상에서 떨어트려 죽인다.

수인을 잃은 상실감과 상대가 바람을 핀다는

참을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둘은 크게 싸우고,

서로 불륜 파트너에게 찾아가 감정적, 육체적 위로를 받는다.

호정은 임신하고, 임신한 호정에게 영작은 찾아가지만

호정은 영작의 아이가 아니라고 하고,

그들은 각자의 삶을 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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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가족 리뷰들을 찾아보면 극단적이다.

수작이라고 하는 사람과, 불편해서 싫다는 사람들.

중간이 없는 게 마치 홍상수나 김기덕 영화같다.

(칭찬은 아니고, 그냥 비교한 것이다.)

이는 아마도 진보적이고 보수적이고를 떠나서

본인이 허용할 수 있는 사랑과 성의

자유 범위 안에서 판단내린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성은 아주 밀접한

개인과 개인 간의 합의와 약속이라는 점에서

절대 다수가 그에 대해 판단하거나 비판할 권리를 가질 수 없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바람난 가족>의 가족 구성원을

내 멋대로 해체하고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1:1 결속과 결혼(일처일부제)를 디폴트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멋대로 바람을 피우고 다니는 이들이 이해가 안 간다.

내 주위에서 이렇게 한다면 말릴 것이고,

나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며.

+)

추가적으로,

수인이라는 아이를 왜 죽였냐는 사람들이 많던데

이는 하나의 영화 스토리적 미장셴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복수는 나의 것>에서

신하균이 의도치 않게 유괴한 아이를 죽이는 것과 같이.

각자의 공적 활동, 섹슈얼리티 충족이

인생의 중심이었던 호정과 영작이

비로소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상실을 경험하고

그에 대한 의미를 제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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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영화에서 가족이 '부부'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호정과 영작과의 관계라든가 창근과 병한.

두 부부 사이의 관계 뿐만 아니라

영작과 창근, 혹은 영작과 병한, 지운과 지운의 아버지 등

부부가 아닌 제도로 이루어진 가족 관계 내에서

얼마나 서로 무관심한지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임에도 바람을 피우러 섬으로 간 영작,

아들 수인을 재워두고 지운과 바람을 피우러 가는 호정,

창근의 장례식장에서 마사지를 받기도 하고

자신의 바람 사실을 고백하는 병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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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내에서 부부가 아닌 관계 끼리도

얼마나 결속력이 떨어지는지,

친밀성이 바닥을 드러내는지

확인 가능하도록 연출이 짜여져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이들의 삶을

바람으로만 축소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바람을 소재로,

그들의 가족적 삶과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를 회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