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 54회 다시보기 - jumong, 54hoe dasibo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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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012년 FX채널에서 월~금요일에 2회씩 하루 3차례에 걸쳐서 방영했고 지금도 심심치 않게 케이블채널 등에서 재방영을 하고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 후속 'MBC 명작드라마'로 2007년 6월 29일부터 2008년 9월 5일까지 금요일 낮 12시 35분에 재방영되었으나 그 이후에는 소재고갈 등의 이유 탓인지 'MBC 명작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다만 TV 다시보기에는 항상 있으며 2019년 MBC Sports+2 채널이 드라마 채널인 MBC ON으로 바뀌면서 한 번 다시 한 전적이 있다. 2019년 12월에도 주말에 1일 4회씩 하는 중이고 CNTV에서도 2017년부터 매년 하고 있다.[7] MBC가 시기적으로도 빨랐고 고구려에서도 초기 역사인 주몽의 건국시기를 담자 SBS가 연개소문을 제작했고 KBS가 대조영을 제작했다. 주몽과 연개소문, 대조영 이후 2007년 MBC에서는 태왕사신기와 2008년 KBS에서는 바람의 나라 그리고 2009년 SBS가 자명고를 다루면서 고구려 열풍은 막을 내린다.[8] 또한 고구려를 시작으로 2009년에 MBC에서 신라를 배경으로 한 선덕여왕, 그리고 2010년 KBS에서 백제를 배경으로 한 근초고왕과 마찬가지로 2011년 MBC에서 백제를 배경으로 한 계백, 그리고 2011년 KBS에서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광개토태왕, 2012년 KBS에서 신라를 배경으로 한 대왕의 꿈, 2013년 KBS에서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칼과 꽃 등이 방영되었다. 그러나 대왕의 꿈과 칼과 꽃 방영 이후에는 삼국시대를 주제로 한 사극붐도 저물고 다시 고려-조선을 배경으로 한 사극이 제작되었다.[9] 대표적으로 주몽의 성장기와 유리의 아버지 찾기 등.[10] 실제로 금와를 배신한 것은 해부루왕으로 금와는 아버지가 벗인 해모수를 배신한 것을 몰랐다가 뒤늦게 사실을 알고 구원하려 가려고 하였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11] 철을 녹인 용선의 탄소함유량을 조절하여 강철을 만드는 방법으로 전한대 중국에서 발명되었다.세계사적으로 초강법의 원리를 이용해야 철기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초강법의 원리를 터득한 국가들이 각 지역의 패자로 올랐다. 실제 한국사에서도 나중에 건국된 고구려가 부여보다 더 강성해진 이유도 초강법을 고구려가 익혔기 때문으로 본다.[12] 부여는 괴련강 수준의 철기는 능히 만들어냈으나 초강법의 원리는 터득하지 못했다. 부여의 철기방 대장 모팔모는 풀무질 등 철제 무기를 생산하는 지식은 상당했으나 초강법의 원리를 몰라 한나라 보다 강한 철제 무기를 생산하지 못했고 이러한 이유로 대량생산도 불가능해 한나라에 밀렸으나 중반부에 한나라 출신 야장들의 도구를 훔쳐내서 초강법의 원리를 이해한 뒤에는 한나라보다 더 강한 철제 무기를 생산해 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모팔모가 초강법의 원리만 몰랐을뿐 철기방 야장으로서의 경험은 한나라 출신들보다 더 깊었기 때문이다.[13] 이 전투 장면을 더욱 초라하게 보이게 한 외부의 요인이 있었다. 주몽과 비슷한 시기에 KBS에서는 대조영(드라마)을 방영하였다. 대조영에서 초반부에 안시성 전투 등 엄청난 규모의 전투신을 연출해 냈고, 이는 주몽의 전투신을 더욱 초라하게 보이는 결과를 낳았다.[14] 사용은 극중에서 양성자임을 밝히고 있긴 한데 일단 배우가 남성이고 우태를 '형님'이라 불렀기에 남성 캐릭터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15] 협보 역할을 맡았던 임대호가 MBC 라디오스타 출연 당시 배수빈에게 설레는 상대역 1위로 꼽혔다.[16] 고조선은 지금의 랴오닝 성 및 평안도 중심, 부여는 지금의 지린 성 지역.[17] 옆의 링크들은 실제 한나라 시대의 군대를 복원한 그림들인데, 거의 갑옷을 입지 않거나 아니면 입어도 가죽 갑옷의 가벼운 차림들이다.흉노족에게 사로잡힌 한나라 군사들, 한나라 중무장 기병대의 돌격[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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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이 시기 한나라에서는 당나라나 통일신라 복식과 많이 다르게 생긴 곡거(曲裾)라는 복식이 가장 유행했을 때였는데, 웃기게도 극 중 한나라출신 인물인 현도군 태수 양정과 그의 딸이자 대소의 부인인 양설란은 고증에 맞게 곡거를 입고 나온다. 그런데 원후, 유화, 예소야 같은 부여의 왕실 여성들은 고증에 맞지 않은 당나라 혹은 통일신라풍에 가까운 복식을 입고 나오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국 사극인데 한국보다 중국 의상 고증이 더 좋은 황당한 시츄에이션
[19] 사실 제작진들이 참고한 당나라 혹은 통일신라 복식은 서역이나 선비족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복식들이라 순수 한푸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의상이다. 오히려 흉노를 제외하고 이민족과 교류가 거의 없던 시기에 입던 의상이자 극 중 양정과 양설란이 초반에 입고 나오던 곡거가 훨씬 한족의 색이 짙은 한푸의 원형에 더 가까운 의상이다.[20] 하지만 외형적으로 무조건 비슷했던 것도 아닌데, 기본적으로 고대 한민족은 상하의가 투피스로 나뉘어진 의상이 유행했던 반면 중국은 몇몇 호복의 영향을 받은 복식 빼고는 기본적으로 상하의가 나뉘어져있지 않은 원피스형 의상이 많이 유행했었다. 특히 극 중 주몽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기원전 중국 한나라의 경우 아직 이민족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을 때라 더더욱 그러했으며, 실제 춘추전국시대나 한나라 무덤에서 출토된 목용들이 입은 의상을 보면 죄다 남녀노소 원피스형 치마에 가까운 의상을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중국 사극 대진제국 시리즈에서 당시 유행하던 복식인 곡거(曲裾)와 직거(直裾)가 잘 선보여진 편.[21] 고구려가 삼국 중에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중국까지도 위협했던 역사가 있는 국가다보니 대중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는데, 고구려 역시 건국 초기에는 약소국이었으며, 부여, 선비 등 주변 강국에게 늘상 털리는 샌드백 신세였다. 그러나 고구려가 주변 소국을 제압하면서 강성해지고,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동안 부여는 3세기 무렵부터 기울기 시작하더니, 결국 전연에 의해 몰락했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잔존세력도 광개토대왕에게 털린 후 결국 문자명왕 대에 고구려에 완전히 복속된다.[22] 화약은 중국에서조차 군사적인 목적으로 쓰인 것은 당나라 말기 무렵부터이며, 본격적으로 무기로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북송시절부터이다. 당연히 이 시기의 화약은 군사적인 목적보다는 도교의 연단술 재료로써 쓰이는 것이 옳다.[23] 이는 주몽이 당시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한창 시끄럽던 시절에 제작, 방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당시 동북공정 문제가 한창 대두되면서 한중간의 큰 사회적 이슈가 있었고,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와 만주 벌판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하는 민족주의 열풍이 한창 불 때였다. 그러다보니 다소 고증에 어긋나더라도 현대 한국의 근간이 된 국가(고구려)가 현대 중국의 근간이 된 국가(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는 스토리를 통해 국민들의 큰 호응을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논란이 되었던 후반부 고구려와 부여의 연합 스토리 역시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부득불은 흑치 장군에게 주몽이 다물군을 포기하지 않으면 제거해야 한다고 얘기한 다. 다물군은 부여의 안정에 걸림돌이 된다는 말에 흑치장군은 결단을 내린다. 흑치 장군은 금와의 호위무사에게 주몽과 그 일행의 동태를 잘 살피라 당부하고, 없애야 할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이른다. 주몽은 유화에게 금와가 다물군을 해체하고 부여로 돌아오라 했다 얘기를 한다. 유 화는 주몽에게 어떤 결단을 내리든 주몽의 편에 설 것이나, 다물군은 이미 주몽과 한 몸이라고한다. 한편, 소서노와 연타발은 부득불을 만나 부여와 계루의 관계를 다시 예전과 같이회 복하기를 요청하고 회신을 기다린다. 주몽은 다물군을 포기하지 않고 부여를 떠나기로 결단을 내리고, 유화는 예소야에 게 주몽을 따라 갈것을 권하나 예소야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 유화 곁을 지킬거 라 한다. 그때 주몽이 군사들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이 들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