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노케히메 다시보기 - mononokehime dasibo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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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 제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전설적인 걸작 극장 애니메이션.

일본 영화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는데 1997년 7월 12일에 개봉해서 1998년 7월 12일까지

무려 1년 동안이나 상영함으로써 일본 극장가 역대 최장 기간 상영작이 되었고 엄청난 인기와 함께 

1997년 전체 흥행 1위작이다.

일본 내 1420만 관객 동원이라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으며 이때 일본 인구의 10%가 넘는 사람이 극장에서 관람했다고 한다.

전작 붉은 돼지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며 한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작품.

구상 기간 16년, 제작기간 3년에 제작 예산이 200억원에 달했으며 총 14만 장의 동화가 들어간 대작이다.

특히 초반부의 재앙신 촉수 움직임은 제작하는 데 19개월이나 소모했다고. 일본 아카데미상 수상작이다.

수백년전 야마토 조정과의 싸움에서 패한 후 북쪽 변방에 숨어서 생활하고 있는 에미시 일족. 평화로운 마을 부근의 숲에 어느날 갑자기 타타리가미(재앙신)가 나타난다. 인간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가득찬 타타리가미는 마을을 습격한다.

에미시의 차기 족장(族長) 아시타카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재앙신에게 활을 날린다. 결국 재앙신을 쓰러뜨린 아시타카는 그 대가로 오른팔에 죽음의 각인이 새겨지고 죽음의 저주를 받게 된다.

[1]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경우 톱 크래프트에서 제작했으나 미야자키가 저작권을 가지기로 하고 제작한 작품이고 미야자키가 지브리에 저작권 관리를 위탁해 스튜디오 홈페이지 작품목록에 포함되어져있다.[2] 미개봉 영상물.[3] 니노쿠니 시리즈 중 1편을 한정으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을 검수하는 방식으로 참여함.

관련 문서

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 | 지브리 파크

연표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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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반딧불이의 묘 (1988)
火垂るの墓 / Grave of the Firef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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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애니메이션, 드라마, 전쟁

원작

노사카 아키유키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

각본

타카하타 이사오

제작

하라 토오루

출연

다츠미 츠토무, 시라이시 아야노 외

음악

미치오 마미야

미술

야마모토 니조

작화

콘도 요시후미

제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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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급사

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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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원엔터테인먼트

개봉일

1988년 4월 16일
2014년 6월 19일

상영 시간

89분

일본 흥행 수익

5억 9,000만 엔

대한민국 총 관객

3,674명

국내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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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이상 관람가[1]

1. 개요2. 상세

2.1. 원작과 작가2.2. 감독의 의도

3. 제작 스텝 리스트 (애니메이션 영화)4. 등장인물

4.1. 주연4.2. 가족 및 주변 인물4.3. 기타 인물

5. 평가

5.1. 피해자 코스프레 작품 논란

5.1.1.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주장5.1.2. 피해자 코스프레가 아니라는 반박과 의견

6. 괴담

6.1. 세츠코는 영양실조로 죽은 것이 아니다?6.2.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7. 제작 비화8. 여담

8.1. 7,000엔의 행방은?


1. 개요[편집]

4歳と14歳で、生きようと思った。
4살과 14살에, 살아 보자라고 생각했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한 세이타, 세츠코 남매가 전쟁 중 겪는 피난 생활을 다룬 작품.

특히 애니메이션은 단순 완성도, 스토리적 밀도와 연출만 보자면 일본 애니메이션을 넘어 역대 애니메이션사에 남을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영화의 묘사에 대한 논란이 있어 작품의 높은 작품성과는 별개로 국내에선 여타 지브리 작품들과는 달리 큰 유명세를 얻지는 못했다.[2]

2. 상세[편집]

반딧불이의 묘는 원작 소설과 애니메이션, 실사 드라마, 실사 영화 등 여러가지 장르로 미디어 믹스되었다. 그 중 1967년에 출판한 노사카 아키유키(1930-2015)의 단편 소설과 1988년에 개봉한 동명의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가장 유명하다.

2005년에는 실사 드라마, 2008년에는 실사 영화로 제작되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은 타카하타 이사오. 애니메이션은 원작 소설에서 일부를 생략하기는 하였지만 대사를 포함하여 원작을 시간순으로 거의 충실하게 옮겼다. 이에 비해 실사 드라마와 실사 영화는 각색이 많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영화채널에서 더빙판으로 간간히 방영만 되다가 일본에서 개봉한 지 26년 후인 2014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개봉하였는데, 이는 일본에서 개봉한 1988년 당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정식 소개되기 전, 1990년대 초중반부터 한국에는 일본 등에서 가져온 비디오테이프에 한국어 자막을 단 영상을 불법으로 상영하는 소규모 상영회인 '시네마테크'가 흥했다.

이때는 '반딧불이의 묘'가 아닌 '반딧불의 무덤'으로 번역해 소개했다. 그 이유는 원제 '火垂るの墓'는 일본어로는 '호타루노 하카'로 읽는데, 이는 墓를 음독하면 보(ボ)=묘지만, 훈독으로 읽으면 하카(무덤)로 읽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반딧불과 반딧불이는 동의어로 썼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반딧불을 ‘반딧불이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빛’과 ‘반딧불이’의 동의어로 제시한다. 따라서 반딧불은 동의어로 쓰였다.

이 점이 다시금 재고된 탓인지 이후에 번역되어 나온 소설 판본에는 <반딧불이의 무덤>이라는 타이틀로 출판되었다.

2.1. 원작과 작가[편집]

원작 소설은 1967년 잡지 올(all) 요미모노(オール讀物) 10월호에 게재해, 같은 시기에 발표한 단편 <아메리카 히지키(アメリカひじき)>와 함께 제58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국내에는 1980년대 초반, 2002년, 2003년, 2006년에 번역 출간했다.

내용은 사실상 작가 본인의 자전(自傳)으로 실제로 기아로 여동생을 잃은 체험이 바탕이 되었다. 그덕에 원작 소설은 애니메이션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내용보다는, 당시 기성세대에 대한 시니컬한 냉소주의가 더 강하다.

노사카 아키유키의 데뷔작 '에로 선생님들'은 포르노 감독을 주인공으로 욕망에 충실한 전후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이 소설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인류학 입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했다.) 요컨대 냉소주의와 풍자, 골계미적 성격이 강한 작가.

소설 반딧불이의 묘는 굳이 예를 들자면 노벨문학상 작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비슷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노사카 아키유키는 어린 시절 부모의 별거 및 이혼으로 인해 다른 집안에 입양되었다. 그런데 고베 공습으로 양아버지를 잃는다. 이어 피난을 간 후쿠이현에서 여동생을 영양실조로 잃었다. 이때 여동생을 구하지 못한 속죄를 위해 소설로 쓴 것.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죽었지만, 노사카 아키유키는 살아남아 방황하다 친아버지가 다시 거두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종의 참회록으로 쓴 소설이지만, 작가는 인터뷰에서 '소설 속의 세이타는 상냥했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면서 "여동생(1년 4개월)의 먹을 것을 뺏아먹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잔혹한 오빠였다. 여동생을 때려 뇌진탕을 일으키게 한 적도 있다. 소설을 쓰다 보니 일기를 공개하는 것 같아, 있는 그대로 쓰지 못하고 자신을 치장(미화)하는 거짓말을 했고 그래서 이 소설을 읽지 못한다. 또 이 소설로 돈을 벌고, 애니메이션화가 되어서 인세를 받는 것이 깊은 상처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애니메이션이 완성되고 마련한 시사회에서는 영화를 보다 감정이 북받쳐 도중에 퇴장한 일화가 있다.

노사카의 다른 단편 중에는 '고추잠자리'도 있다. 이게 일각에 도시전설처럼 와전되듯 알려진 "카미카제 대원이 훈련기 몰고 자폭하려다 콕핏에 앉은 벌레를 보고 순간 생명의 귀중함을 깨달아 적함까지 갈 남은 연료를 무인도 가는데 써서 무인도에 불시착한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름"이라는 일화의 원전이다.

해당 작가의 다른 서적에 대한 해석적 방법론에 대한 논문에서, 작가는 전공투 출신이며, 천황제를 부정하는 신좌익계라고 분석한다. 반 미국, 혐 일본적인 사상적 전환을 가져 정치적 발언으로 이러한 소설을 연속으로 출간했다고 분석한다. #논문

노사카 아키유키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한 인물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나 아베 신조 등의 일본 총리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에 대해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하였으며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원고에서는 "이 나라가 과거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기 전의 시기로 다가가고 있음이 확실하다."는 섬뜩한 경고까지 남겼다.기사 1 기사 2 그가 극우라고 잘못 알려져 김세완은 1990년대 후반, 유니텔 만화동호회에 이러한 글을 쓰기도 했다. 당시 "누이동생이 죽은 걸 미군 탓으로 여겼다"든지 "빵이나 서구풍 음식을 먹으면 굴욕"이라는 망언을 했다고 서술한 적도 있다.

2.2. 감독의 의도[편집]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반전 작품 같은 게 절대 아니다. 그런 메시지는 일절 실려있지 않다'고 했으나, 반전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어쩔 도리가 없다고 회고했다. 그는 "오누이가 둘만의 가정생활을 이뤄내는 것에 성공하지만 주변 사람과의 공생을 거절하고 사회생활에 실패하는 모습이, 현대에도 통한다"고 해설하고, "고등학생과 20대의 젊은이들이 공감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아래는 타카하타 이사오의 인터뷰다.

"그 시대, 미망인이 말한 것쯤은 특히 냉혹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세이타는 그것을 참지 못한다. 방공호로 옮겨살 것을 결심하고 세이타는 말한다. "여기서라면 아무도 없고, 세츠코와 둘이서 마음대로 할 수있다." 그리고 생각없이 '순수한 가정'을 세우려고 한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가능할 수 없으니까 세이타는 세츠코를 죽게 만들었다."

- 아니메쥬 1988년 5월호. 타카하타 인터뷰에서

「あの時代、未亡人のいうことぐらい特に冷酷でもなんでもなかった。清太はそれを我慢しない。壕に移り住むことを決断して清太はいいます。『ここやったら誰もけえへんし、節子とふたりだけで好きに出来るよ。』そして無心に”純粋の家庭”を築こうとする。そんなことが可能か、可能でないから清太は節子を死なせてしまう」/『アニメージュ』1988年5月号の高畑監督インタビューより]


또한 아니메쥬 1988년 5월호 인터뷰에서 타카하타 이사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시의 일본은 최악의 전체주의가 올바르다고 받아들여진 시대였다. 이 이야기는 두 남매가 전체주의에 저항하고 순수한 가족을 만들려고 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게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세츠코가 죽게된다. 하지만 과연 그렇다고 그들을 비판할 수 있을까? 지금 관객들은 "세이타에게 동감한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 "세이타는 잘못됐고 친척 아줌마가 옳았다"는 의견이 대세가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무서운 생각이 든다.


이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2010년대 이후의 일본 인터넷을 보면 세이타를 비난하는 여론이 많이 늘어났으며, 나무위키에도 그러한 해석이 있다.

감독의 발언까지 고려해보면, 영화를 만들면서 세이타-세츠코 남매를 통해 전시의 일본이 피해자라는 코스프레를 할 의도는 없던 걸로 보인다.

이웃집 토토로와 동시 개봉해 어느 쪽을 먼저 봤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졌다고 하면서, <이웃집 토토로>를 먼저 보고 행복감에 젖어있다 <반딧불이의 묘>를 이어 보면 영화가 상영 중인데도 도중에 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반대로 <반딧불이의 묘>를 먼저 본 경우에는 그런 일은 안 생겼다고 한다.

3. 제작 스텝 리스트 (애니메이션 영화)[편집]

  • 제작, 기획 - 사토 료이치

  • 음악 - 마미야 미치오

  • 캐릭터 디자인, 작화감독 - 콘도 요시후미

  • 레이아웃 작화 감독 보좌 - 모모세 요시유키

  • 미술감독 - 야마모토 니조

  • 촬영감독 - 코야마 노부오

  • 음량감독, 음량연출 - 우라카미 야스오

  • 원화 - 하네 유키요시, 오오타니 아츠코, 안노 히데아키, 카와치 히데오, 오쿠야마 레이코, 야마우치 쇼주로, 코사카 키타로, 키가미 요시지, 우메츠 야스오미, 오가와 히로시, 코타베 요이치[3], 사이다 토시츠구, 카가와 메구미, 호리우치 히로유키 외

  • 동화 - 동화공방, 오! 프로덕션, 드래곤 프로덕션, 그룹 라이너스, 스튜디오 포켓 외

  • 배촬 - 히라타 슈이치, 히구치 노리코, 스도 에이코, 히시야마 토오루, 히라카와 에이지 외

  • 특수효과 - 카오루지 타니후미

  • 캐릭터 색채설계 - 야스다 미치요

  • 임상 - 스튜디오 키리, 스튜디오 딘, 타츠 프로덕션, IM 스튜디오, 토레스 스튜디오 M, 포비 기획, 스튜디오 OZ, 스튜디오 샤프트, 스튜디오 엔젤, 스튜디오 톰캣, 셀 아트 스튜디오 외

  • 촬영 - 럭키 모어

  • 편집 - 세야마 타케시

  • 음량효과 - 오히라 노리요시, 이토 미치히로

  • 제작비조 - 우에다 신이치로

  • 제작 데스크 - 오시키리 나오유키

  • 연출조수 - 스도 노리히코

  • 녹음제작 - 오디오 플래닝 U

  • 녹음 스튜디오 - APU 스튜디오

  • 현상 - 토쿄현상소

  • 제작 - 스튜디오 지브리

  • 프로듀서 - 하라 토오루

  • 각본, 감독 - 타카하타 이사오

4. 등장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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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주연[편집]

  • 세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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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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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가족 및 주변 인물[편집]

  • 어머니 - 시노하라 요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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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의 모친으로, 일본 해군 대위 남편을 둔 주부. 첫째 세이타에게 어린 둘째 세츠코를 맡기고 니혼마츠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혼란 중에 헤어지고 만다.

    나중에 공습이 끝난 후 세이타와 대피소에서 만나지만 이미 상반신 전체에 화상을 입어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눈과 코, 입 부분을 제외한 상반신 전체에 붕대를 감았고 곳곳에 피가 스며나왔다. 영화에서도 (분명 붕대를 다 두르긴 했지만) 비위 약한 사람은 흠칫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걸 꽤 적나라하게 묘사했다.[4]

    원래 심장이 좋지 못해 제대로 된 병원에 옮기려 했으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옮기는 데 실패했다. 세이타는 공습 다음날 인력거를 불러 어머니를 병원으로 옮기려 했으나, 이미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인력거 기사가 돈 받기를 포기하고 돌아가버렸다. 결국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붕대만 감아놓은 상태로 누워있어야 했다. 병원은 매일 아침마다 화상 환자들 붕대 갈아주고 소독해주는 게 아침 일과다. 화상을 입은 시기가 6월 여름인 걸 감안해보면 그런 과정을 더욱 철저히 해줘야하는데, 병원에 옮기지도 못해 계속 누워 있어야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가 썩어 주변에 시커먼 파리떼가 들끓고 붕대 사이사이로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결국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사망하고 합동 화장으로 시신을 처리하였다. 그 후 어머니의 유골함은 세이타 남매가 소중히 보관한다.

  •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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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타, 세츠코 남매의 부친으로, 일본 해군 대위다. 관함식(觀艦式)(국가의 원수 등이 해군 함대를 검열하는 의식. 군함의 장비와 병사들의 사기(士氣) 등을 살핀다.) 장면에서 아버지가 경례하는 모습의 옷소매에 새겨진 계급을 확인할 수 있다.

    원작자의 아버지가 모델. 출전중이라 회상 씬과 사진으로만 등장. 애니메이션만 보면 순양함의 함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세이타와 세츠코의 나이와 아내의 나이를 봐도, 아버지가 그 나이에 함장급(적어도 대좌)의 높은 계급일 수가 없다. 원작에서도 대위로 나온다. TV 드라마는 유복한 삶에 대한 현실성과 세이타의 자존심을 부각시키려 한 것인지 대좌로 변경되었다.

    극중 후반에 세츠코를 살리려고 은행에서 전부 돈을 찾은 세이타는 다른 행인들로부터 일본의 패전과 아버지가 승선한 연합함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아버지 역시 전사했음을 짐작하고서 절망한다. 아버지가 승선한 마야는 침몰되었어도 구조된 인원도 있어 정확히는 생사불명이지만, 작중 간간히 편지를 보냈음에도 답장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 친척 아주머니 - 최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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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베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니시노미야 시에 사는 친척 아주머니. 세이타 아버지의 사촌 형제의 부인으로, 촌수를 따지자면 당숙모. 남편이 죽은 미망인이다. 원작에는 미망인 또는 소모(小母)로 표기된다. 원작 정발판에서는 숙모라고 번역했다. 일본에서는 친척 관계를 일일이 따지지 않고 친척 아줌마는 오바상으로 퉁쳐 부르며 작중에도 오바상으로 부른다.

    원작에서는 만약의 경우 공습으로 집이 불타거나 피난을 가야 할 경우 서로 신세를 지기로 미리 약속되었다. 영화는 이게 잘렸지만 TV 드라마는 이 장면을 집어넣었다. 사실 세이타는 몰랐지만, 어머니가 기모노, 모기장 등 피난 살림을 미리 옮겨 놓았다.

    주인공 남매 입장에 감정이입해서 보면 나쁜 인물로 비춰질 수가 있는데 남매의 어머니가 죽고 친척 집에서의 시간이 지나자 점점 눈치를 주며 아이들 어머니의 옷을 팔아 쌀로 바꾸며 자신의 가족에게 흰쌀밥을 주나 남매에겐 멀건 죽을 주는 등 남매에게 구박을 주며 재산을 갈취하는 악역으로도 보일 수도 있으나 객관적으로 보자면 절대 나쁜 인물이라 할 수 없다.

    우선 세이타 남매의 어머니가 처녀 때 입던 기모노를 쌀로 바꿔 흰 쌀밥을 며칠 주다 곧 남매들에게는 멀건 죽만 준다지만, 당초에 돈을 받고 남매를 돌보는 것이 아니며 자신도 똑같이 멀건 죽으로 식사를 하기에 이는 자기 자식들만 편애하는게 아닌 학업과 노동에 대한 차등 보상이라고 보는 해석하는 것이 옳다. 심지어 바꾼 쌀의 절반은 세이타의 몫으로 남겨주었기에 더욱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며 작중에서 남매를 구박하고 눈치를 주는 상황이 계속 나오지만 그러면서도 끼니는 분명히 챙겨줬으며 잔소리는 자주 했지만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지도 않았고 위탁비나 생활비 등 금전을 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주인공 가족이 남긴 돈을 노리지도 가로채려 하지도 않았는데 이 돈은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도 남매들끼리 얼마 정돈 음식을 사서 한동안 자립이 가능할 정도로 큰돈이었다. 남매가 집을 떠나려고 하자 조금은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남매가 떠나자 바로 집으로 들어가려 했기에 진심으로 걱정했는지는 의심해볼 부분이나 남매가 다른 데로 가도 이전에 말한 다른 친척 집에 갈 것으로 생각해 크게 걱정은 안 하고 들어간 것이지, 방공호에서 살 거라는 걸 알았다면 말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때 집에 들어가려던 참에 남매가 콧노래를 부르며 가는 것에 돌아보며 아마 이것 때문에 아예 신경을 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지만, 영상을 보면 오히려 자신이 눈치 준 것들 때문에 집 나가면서 세츠코가 저리 기뻐하는지 한편으론 마음 아파하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와 별개로 숙모의 행동 중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아직 너무 어린 세츠코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린 일과 남매들에게 정말 잘 대해줬다고는 결코 볼 수 없지만, 이러나저러나 살게 해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 한 입장이라도, 세츠코까지 대놓고 짐 덩어리 취급한 건 비판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세이타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아직 4살밖에 안 된 세츠코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느 정도 판단력이 있을 나이의 세이타마저도 전시상황에 친척 집에 신세를 지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그걸 감안하지 않으며 마치 자기 집인 것 마냥 철없이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집안일을 돕지도 않으며 근로 동원이나 소방 활동을 하라는 아주머니의 말을 무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으며 나중에 따로 밥을 챙겨먹을 때도 뒷정리까지 아주머니에게 떠넘겼다. 전쟁 중에는 친척끼리도 인심이 각박해지기 쉽다는 걸 생각해보면, 세이타의 태도가 너무 안일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세이타는 현재 돌아갈 집도 없어진 상황인지라 더더욱 숙모에게 잘 보여야 했는데 완전히 거꾸로 해버린 셈.

일각에선 그래도 세이타는 아직 어려서 판단력이 없고 어머니의 사망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반문하는 의견도 있으나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평가하려면 현대가 아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점의 세이타 또래 나이대의 친척 남매들과 비교해봐야 한다. 저 당시 세이타와 같은 나이대 아이들은 다 학업과 근로동원을 함께 하던 시기로 작중에서도 친척 아주머니의 딸은 근로동원에 동원되었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놀기만 하는 세이타 남매를 주민들이 의아하게 쳐다보는 장면들도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또한, 같은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맨발의 겐만 봐도, 학업을 하면서 비는 시간대에서는 막노동하거나 돈이 될 만한 고철을 찾는 등의 행동이 나온다.

만일 세이타가 아주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거들거나 근로 동원이나 소방 활동 등 자신이 속한 마을에 도움이 되려 했으면 절대 아주머니는 세이타에게 냉소적으로 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상황을 보더라도 공장에서 일하는 하숙인이 "타 버린 공장의 일감이 남아있는 공장으로 몰리고 있다"는 언급으로 일을 구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정도면 정신적 충격 때문에 빈둥거리며 놀기만 했단 건 핑계라고 해도 될 정도다.

정리하자면 정말 착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전시에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기 벅찬 전시 상황에서 세이타 남매에게 금전적인 요구도 없이 계속 돌봐준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허나 작중 시점이 세이타 남매이기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원작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과 하숙인이 있다. 애니메이션에는 딸과 하숙인만 등장. TV 드라마에는 딸이 많은 집안에 막내아들을 뒀다는 설정이 추가되었으며, 남편은 일본 육군으로 징집되어 전사했다는 설정이 붙었다. 드라마에는 추가로 전쟁이 끝난 뒤 가출한 세이타가 산노미야역에서 부랑아가 되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딸과 직접 데리러 간다. 역 구내에는 수많은 부랑아들이 거지처럼 비참하게 살아가나, 그중에 세이타는 없었는데 이미 며칠 전에 부랑아 생활을 하다가 죽었다는 사실만 역무원에게서 듣게 된다. 이후 세츠코의 버려진 뼈만 수습해 돌아오게 된다.

  • 친척 아줌마의 딸 - 김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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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학생. 세츠코에게 게다를 사주고, 세이타 남매를 걱정하는 듯한 말도 한다. 나름 세이타 남매를 많이 생각해주는 사람. 원작에선 밥을 따로 해먹는 세이타 남매를 보고, 자기 엄마가 심한 소리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있지만 영화에서는 주먹밥을 싸들고 등교하는 장면 외엔 더 등장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는 부랑아가 된 세이타가 산노미야역에서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으러 가지만, 다른 부랑아들이 구걸을 하다 쫓겨나거나 도둑질을 하는 모습 등을 보게 되고, 역무원에게서 세이타가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 친척 아줌마네 집의 하숙인 - 김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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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타 남매를 가엾게 여기기는 하지만, 자신도 하숙인이라는 입장이라 내색을 안 한다. 잔정이 있다는 점에선 세이타네 숙모의 딸과 비슷하다. 이 사람이 일개 하숙인(타인)임에도 불구하고 세이타 남매의 숙모에게 은근히 좋은 대접을 받는 것은 절대 숙모가 자신의 친자식만 우대하는게 아니라는 증거다.

    영화판에선 드러나지 않지만 원작을 보면 고베 세관에서 근무한다. 일의 특성상 암시장 사정에 밝아 전시에 구하기 힘든 쇠고기, 물엿 등을 아주머니에게 선물하면서 호감을 샀다. 친척 아줌마의 딸에게 연애감정(짝사랑)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 농부 아저씨 - 정동열
    세이타 남매에게 반찬거리가 될 만한 야채를 (돈 받고) 파는 아저씨. 세이타 남매를 불쌍히 여겨 자신도 없는 형편에 먹을 것을 판다. 선술했듯 작중에선 꽤나 친절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이때 집 나간 남매를 걱정해 "친척 아줌마 집으로 돌아가 도나리구미(隣組)에 들어가 배급을 받으라"고 충고한다. 이 말이 맞는 게, 도나리구미에 속하면 방화 예방작업 등을 하고 배급을 받을 수 있기에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4.3. 기타 인물[편집]

  •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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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습 후 집합장소인 국민학교에서 만난 아주머니. 세이타 남매의 어머니랑 친분이 있는 듯. 잠깐의 등장이지만 남매를 걱정하고 건빵을 얻어다 준다.

  • 빗길의 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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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타 남매가 농부 아저씨와 헤어진 후 어느 비 오는 날 마주한 행인. 처음엔 속을 알 수 없는 무심한 표정으로 세츠코를 내려다보는 모습으로만 나와 약간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세츠코가 빗길에 감자를 실수로 떨구자 이를 주워주려는 듯 손을 뻗는다. 허나 그가 감자를 채갈지도 모른다 의심한 세이타가 먼저 감자를 주워버리고 도망치듯 세츠코를 데리고 떠난다. 상대가 얼마든지 길바닥에서 자신의 물건을 탐내고 훔칠 가능성을 아이인 세이타가 재보고 이를 경계할 정도로, 당시 전시라는 상황 탓에 민심이 상상 이상으로 각박하고 예민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세츠코는 그 행인을 의심하지 않았는지 가볍게 인사를 했으며, 행인은 그런 둘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등장 종료. 이때 행인은 세츠코의 손에 들린 감자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세츠코를 쳐다만 본다. 세이타가 지레 의심하고 도망갈 때도 뭐라 하지도 않고 감자를 탐내지도 않으며 둘을 바라보기만 한다. 전시라 쳐도 코흘리개 애들의 감자까지 훔칠 정도로 사정이 급했다면 가차없이 빼앗았을 테지만, 행인은 그렇지 않고 지나갔으니 최소한 아이들의 물건을 훔칠 생각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가 세이타를 전혀 쫓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는 것부터가, 그를 향한 세이타의 의심이 빗나갔다는 걸 알 수 있다.

  • 밭 주인 - 홍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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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타가 영양실조에 걸린 세츠코에게 설탕물을 먹이려고 훔치려던 사탕수수의 밭 주인. 세이타는 겨우 한 대의 사탕수수만 뽑았는데 그때 밭 주인이 나타나 세이타를 붙잡고, 용서를 구하는 세이타를 마구 두들겨 패고는 파출소로 끌고 간다. 세이타와 실갱이를 하던 도중 "여태 서리하던 녀석이 너지?"하고 추궁하는데, 이를 볼 때 먹을 것이 부족하고 물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마구 뛰는 괴랄한 상황 때문에 서리를 하는 사람들이 그 사탕수수밭에도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이타를 동정한 파출소장이 오히려 어린애를 너무 심하게 때렸다며 미성년자 폭행과 상해죄 얘기를 꺼내자 당황하고[5], 알아서 하라는 말과 함께 달아나다시피 파출소에서 나간다. 원작 소설에서는 감자를 훔치려다 지키던 밭 주인에게 실컷 얻어맞고 전쟁 중에 서리는 중죄라며, 돼지우리(감옥)에 갈 거라며 세이타를 파출소로 끌고 갔지만 후쿠이에 공습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에 결국 돌아간다.

  • 나이 든 파출소장 - 정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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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타를 감싸 준 파출소장. 어깨에 달린 구(旧) 일본 경찰 계급장을 보면 경부보(警部補)로 원작에서는 나이나 외모 묘사는 없고, 계급도 순사로 나온다. 밭 주인이 사탕수수를 훔치려고 한 세이타를 때려서 끌고오자 어린 세이타를 동정해 설교만 하고 집으로 돌려보낸다.[6] 밭 주인이 화를 참지 못해 세이타에게 폭력을 휘둘러 파출소로 끌고 오자 오히려 아직 미성년자인 세이타를 너무 심하게 때린거 아니냐면서 밭 주인을 상해죄로 추궁하려고 한다.

  • 구역소(区役所) 공무원 - 정동열
    세츠코가 죽은 후, 세이타가 구역소에 가서 신고하니 "화장터는 예약이 밀려 1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는데, 배급계 공무원으로 세이타에게 쌀을 배급한 이 아저씨가 특별 배급한 숯을 주면서, 세츠코를 어디 절 한 구석에 화장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무심하게 "오늘 날씨 참 좋네"라고 말하는데, 전쟁으로 사람의 목숨과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됐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 장면이다.

  • 행인들
    세이타가 부랑아가 되어 산노미야역에서 생활할 때 지나가던 사람들로, 패전으로 각박해진 인심을 잘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전쟁이 끝난 뒤 산노미야역 구내에는 세이타 말고도 수십 명의 갈 곳 없는 전쟁 고아들이 거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부랑아가 되어 기둥에 기댄 채 주저 앉아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행인들은 미군들이 보면 안 된다, 더럽다, 죽었나 등 마치 세이타보고 들으라는듯이 말을 하며 지나간다. 세이타가 앉은 걸 미처 모르고 가다 언뜻 풍겨오는 악취에 화들짝 놀라 피해가는 사람도 있는데, 뭐라고 한마디씩 내뱉으며 지나갔다. 중간중간에 세이타 또래의 여학생들이 지나가는데, 부랑아가 되어 앉아 있는 세이타의 비참한 모습과 대비된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라서 어떤 아주머니는 지나가다 기둥에 기대어 주저앉은 세이타를 불쌍히 여겨 먹을 것을 놓고 간다. 이 장면을 통해 부랑아가 된 세이타가 산노미야역에서 생활하는 이유가 드러나는데, 역 구내에 앉아있으면 물이나마 마음껏 마실 수 있고, 지나가는 행인들이 동정심에 주고 가는 먹거리들을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진 물건들을 다 팔아버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바지마저 팔 생각을 할 정도로 배고픔에 시달린 세이타에게 지나가는 행인들이 가끔씩 주고 가는 음식은 사실상 배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 역무원들 - 정동열, 김기철
    세이타가 죽은 뒤 등장. 역 바닥을 청소하다 굶어죽은 세이타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또 죽었냐"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만큼 부랑아들이 산노미야역에서 매일 많이 죽어나가는 상황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 구내 기둥마다 자리잡고 앉은 부랑아들은 수십 명에 달했으며, 대부분 세이타처럼 헐벗은 모습을 하고 굶주림 속에서 하루하루 버텼기 때문에 언제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세이타가 살아있었을 때도 언급되는데, 부랑아들이 역 구내에 머무르는 것을 싫어하여 역 밖으로 내쫓았다고 한다. 부랑아들은 당연하지만 돌봐주는 사람 없이 거리 위를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해 몹시 지저분하고 남루한 행색이다. 게다가 가진 물건조차 다 떨어진 뒤로는 먹을 걸 구하기 위해서라면 구걸은 기본에, 소매치기나 도둑질 등 범죄 행각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이타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는게 8월 말에 방공호를 떠난 뒤, 죽을 때까지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거리 위에서 부랑아 생활을 했다. 먹을 걸 구할 돈도 없는 마당에 청결이나 위생은 사치였고, 그동안 단 한번도 제대로 씻지 못했다. 입은 옷도 팔아치우는 판에 새로 사서 입는다는 건 꿈도 못 꿨다. 부랑아 생활이 계속되자, 몸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이가 생겨 나중에는 입은 누더기옷이 온통 이로 들끓었다. 게다가 다리에 힘이 빠져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된 뒤로는 그 자리에서 똥오줌을 지리고 마는데, 이렇게 되자 주변에 가기만 해도 악취가 나 행인들도 그런 세이타의 모습을 보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지나갔다.

    세이타 한명만 해도 저런데,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수십 명씩이나 역 구내 기둥에 기대어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있으니 역무원들 입장에서는 좋지 않았을 것이다. 거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부랑아들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입은 옷에 신발까지 다 팔아야 했고, 더 이상 팔 물건이나 돈이 바닥나자 마지막 수단으로 산노미야역 구내에 자리잡았다. 그래서 역 구내에 앉아있는 부랑아들은 하나같이 지저분하고 다 해진 누더기옷을 걸친 채 맨발로 다니는 등 헐벗은 모습이다.

    부랑아들은 돈과 물건이 다 떨어지자 행인들이 주고 가는 음식을 얻을 수 있고, 물이라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산노미야역으로 왔으며, 세이타도 마찬가지로 내쫓겼다가 역에 한 번 들어오면 기둥에 기대어 자리잡고 아예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다시피 했다. 이렇듯 이미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아이들 수십명이 역 구내에 하루종일 죽치고 있는 것도 모자라 하루에도 몇 명씩 굶주림으로 죽어나가니 시체를 수습해야 하는 역무원들이 좋아할 리 없다.

    세츠코의 유골이 담긴 사탕통을 발견하고는 그냥 던져 버린다.

  • 부랑아들
    애니판과 원작에서는 단순히 언급만 되지만, 드라마에서는 부랑아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조금이나마 묘사되어 세츠코가 죽은 뒤 세이타가 어떻게 생활했을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세이타가 부랑아가 되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들은 친척 아주머니와 딸이 산노미야역에 가는 씬과, 세이타가 죽어가는 씬에 등장한다. 드라마는 약간의 각색이 이루어졌는데, 친척 아주머니의 딸과 세이타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로, 세이타가 세츠코와 집을 뛰쳐나간 뒤에도 찾으려 해 산노미야역까지 오게 된다. 여기서 거지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의 부랑아들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맨 처음 등장하는 부랑아 소년은 출입구 근처에 쪼그려 앉아있다. 그러다 자신의 앞 쪽으로 지나가는 어떤 아주머니가 밀려 넘어지면서 짐을 흘리자 재빠르게 훔쳐 달아나고, 아주머니는 속수무책으로 짐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 다음으로 세츠코와 비슷한 나이대의 어린아이와 중간 나이대의 소년, 그리고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세 명의 아이들이 역 기둥에 기대어 같이 앉아 있다. 가장 나이가 어린 아이는 맨발로 다니는 걸 제외하면 그나마 옷차림이 깔끔하지만 나머지 두 소년은 고생을 많이 했는지 누더기옷을 걸치고 몹시 지저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제일 어린 아이는 배가 고픈지 계속 보채고 칭얼댄다. 나이가 많은 소년이 달래주려고 하지만, 그런다고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없으니, 지나가는 행인들을 애처롭게 바라보기만 한다.

이 소년들이 앉아있던 옆 기둥에는 또 다른 소년이 기둥에 기대어서 허공을 응시하며 멍하니 앉아있다. 한눈에 봐도 부랑아 생활을 좀 오래 했는지 입고 있던 바지는 다 해져 오른쪽 무릎이 다 드러났고, 윗도리도 누더기다. 때마침 나타난 역무원들이 친척 아주머니와 딸이 보는 앞에서 가만히 앉아있던 소년을 빗자루로 쳐 쫓아내고 더럽고 지저분한 녀석이라고 욕하며 다른 데로 가버리라고 한다. 미군들이 곧 들어올텐데 이런 아이들이 역에 있으니 부끄럽다고 말하는데, 사실 이 소년을 포함한 부랑아들의 모습을 보면 납득이 가는 게 하나같이 맨발로 다니며 헐벗은 옷차림에 지저분한 모습이다. 세이타도 예외가 아니라 수 차례 역무원들에게 내쫓겼다고 작 중에서 언급된다.

마지막으로 쫓겨난 소년 옆에 엎드려 있던 다른 소년도 역무원들에게 내쫓긴다. 쫓겨날 때 자세히 보면 동전 소리가 들리면서 그릇을 들고 도망가는데, 계속 엎드려 구걸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소년의 모습을 통해 가진 물건과 돈이 다 떨어진 부랑아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알 수 있다. 돈도 다 떨어지고 가진 물건조차 없으니 별 수 없이 역 구내에서 구걸로 연명하는 거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세이타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산노미야역에서 같이 생활한 다른 부랑아들의 모습도 보인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힘없이 돌아다니며 초점없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역 구내에 있으면 배는 고파도 물은 얼마든지 마실 수 있기 때문에 돈이 다 떨어진 부랑아들은 물로 배를 채우며 허기를 달랬다. 물론 제대로 된 음식은 구경조차 못 하니 영양실조에 걸리는 건 당연했고, 만성적인 설사도 계속되어 세이타를 포함한 부랑아들이 죽는 원인이 되었다.

  • 기둥에 기댄 소년
    세이타가 영양실조로 쓰러져 죽은 날 밤, 역무원들이 세이타의 유품을 뒤지다 세이타가 앉아 있던 기둥 뒷편에서 발견한다. 비중은 거의 공기이지만 전쟁으로 각박해진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세이타보다 어린 나이의 소년으로, 다른 부랑아들처럼 헐벗은 모습을 하고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있다. 역무원이 다가가서 잠깐 보더니 "눈빛이 흐리멍텅해서 이제 곧 저세상으로 갈 것이다"고 한다. 한마디로 굶주림으로 인해 의식이 혼미한 상태가 돼 눈빛이 초점을 잃었고, 머지않아 세이타처럼 쓰러져 죽을 거라는 뜻이다. 배고픔에 지쳐 쓰러져 가는 아이들을 보고 오히려 이제 죽을 때가 됐다는 말이나 하는 비정한 모습은 전쟁으로 인해 각박해진 인심을 보여준다.

5. 평가[편집]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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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발표, 출처  ·  같이 보기: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만화)

종합 순위

1위

신세기 에반게리온

2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3위

천공의 성 라퓨타

4위

기동전사 건담

5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6위

충사

7위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

8위

이웃집 토토로

9위

강철의 연금술사

10위

공각기동대

11위

드래곤볼 애니메이션 시리즈

12위

모노노케 히메

13위

AKIRA

14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15위

도라에몽

16위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

17위

붉은 돼지

18위

은하영웅전설

19위

어른제국의 역습

20위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

21위

카드캡터 사쿠라

22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23위

카미츄!

24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2

25위

기동전사 Z 건담

26위

별의 목소리

27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28위

은하철도 999

29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30위

만화 일본 옛날이야기

31위

태풍을 부르는 장엄한 전설의 전투

32위

반딧불이의 묘

33위

미래소년 코난

34위

하울의 움직이는 성

35위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

36위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

37위

슬램덩크

38위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시리즈

공동
39위

기동전사 건담 SEED

개구리 중사 케로로

41위

톱을 노려라!

42위

도라에몽 극장판

43위

용자 시리즈

44위

카우보이 비밥

45위

사무라이 7

46위

기동전함 나데시코

47위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48위

시끌별 녀석들

49위

아톰

50위

루팡 3세

전문가 순위

1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2위

아톰

3위

AKIRA

4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5위

만화 일본 옛날이야기

6위

기동전사 건담

7위

신세기 에반게리온

공동
8위

이웃집 토토로

사자에상

은하철도 999

도라에몽

마운틴 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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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도 100%

관객 점수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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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8.5 / 10

(IMDb Top 250 55위

20XX-XX-XX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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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4.3 / 5.0

( 레터박스 Top 250 36위

20XX-XX-XX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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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8.179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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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4.08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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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7.5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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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8.7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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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3.4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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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9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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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평론가 평점

8.25 / 10

관람객 평점

7.75 / 10

네티즌 평점

6.58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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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5.5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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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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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3.5 / 5.0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이자 영화가 표현하는 전쟁 속의 아이들의 고통을 파격적으로 표현하는 심도있는 연출이 크게 평가받으며 단순한 애니를 넘어 영화사에 남을 걸작으로 꼽힌다. 로튼 토마토 점수도 무려 100%를 기록했다.

다만 한국 일반 관객 사이에선 피해자 행세물이라는 잘못된 낙인이 찍혀 저평가받는다. 그러나 1점 테러를 당했음에도 3점 이상이 뜨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도 제대로 본 사람들은 고평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고평가한다. 미국도 진주만 공습 때문에 일본이 피해자 행세를 하는 걸 매우 싫어하는데[7], 이런 고평가는 미국에선 이 작품을 피해자 행세물로 보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서양권에선 타카하타 이사오의 대표작으로 다른 작품을 모두 제치고 반딧불이의 묘가 꼽힐 정도다.

5.1. 피해자 코스프레 작품 논란[편집]

감독의 정치 성향을 보면 극우 미디어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일본의 전쟁 피해자 코스프레 작품 아니냐는 논란이 있어 피해자 코스프레가 맞다는 주장과 반박을 서술한다.

5.1.1.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주장[편집]

주인공의 대사 중 "무적의 일본 함대"라는 대사가 있다거나, 군함행진곡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일본이 스스로를 피해 국가로 인식시키려는 목적을 지니고 만든 홍보성 애니메이션이라는 주장이 있다. 1990년 당시 9시 뉴스에서 우익 애니메이션이라고 비난한 적도 있다.

정성일의 평에 따르면 영화 자체에 일본인=피해자라는 의식이 깔려 있으며, 관람자에게 그 이데올로기를 전염시키고, 감동적이기 때문에 관람자로 하여금 영화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수십 년간 수탈 받은 피해자가 옆에 있는데 침략국인 일본이 마치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작품이라는 게 비판론의 주된 요지.

5.1.2. 피해자 코스프레가 아니라는 반박과 의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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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멍청한 남주인공이 자기 멍청함 때문에 개고생하고 그 멍청함 때문에 동생과 함께 죽는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2차 대전 당시 일본 상황을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영화라는 해석이다. #

간단히 말해서 일본의 과거 행적을 대놓고 보여주며 비판의 선상에 놓는 작품은 아니지만, 정작 작품 자체를 보면 극우나 일본의 피해자 행세와도 거리가 멀다. 작중 일본제국의 행적을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내용 같은 것은 나오지 않으며, 그저 두 명의 개인 이야기에만 초점이 집중되어 있다.특히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 남매가 죽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요컨대 작품에서 주인공의 사망 원인은 자존심 때문에 친척집을 나온 것이라고 해도 좋다.

세이타, 세츠코 남매가 친척 아주머니집을 나와 살 때 남매에게 채소를 팔던 농부 아저씨조차 친척 아주머니집으로 돌아가 배급받으면서 살라고 충고했을 정도였다. 부유했던 집안이 부모의 죽음으로 한순간에 몰락한 것과 친척 아주머니 집에 얹혀산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고 여기에 친척 아주머니가 텃세를 부린다고 생각한 세이타가 결국 여동생을 데리고 가출한 탓이 컸다. 방화예방 활동을 하고 일감이 몰린다는 공장을 찾아가 일하며 배급을 받고 살았더라면 남의 집에서 눈칫밥 먹을지언정 굶어죽지는 않았을 텐데 전술한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만들어진 비극이다.

친척 아주머니는 주인공 남매를 학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남매 가족의 재산을 약탈한 것도 아니다. 다만 가족의 기모노를 판 것 뿐인데 당시엔 남매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죽은 상태였다. 이미 입을 사람도 없고 놔둬봤자 자리만 차지하는 짐일 뿐이며, 팔면 귀중한 돈 및 식량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오히려 당시 남매 가족의 재산은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도 자립을 하고 꽤나 쌀밥을 먹으며 버틸 만큼 상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이타는 부랑아가 되고 막상 본인이 굶주리는 상황이 오자 어머니의 기모노는 물론이고 자신의 옷과 신발까지 다 암시장에서 팔아치운다. 그렇게 얻은 돈마저도 다 떨어지자 맨발에 누더기 차림으로 산노미야역 기둥 한구석에 자리잡는다. 게다가 자존심은 어디로 갔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정심에 던져주는 음식으로 연명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아 물로 배를 채워가며 연명한다. 모든 걸 잃고 더 이상 팔 것도 안 남은 이 지경이 되어서도 스스로 일해서 입에 넣을 걸 손에 넣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아, 결국 세이타는 곧 굶어죽고 만다.

친척 아줌마는 주인공이 자립하려 할 때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아줌마가 본심으로는 주인공을 걱정했다는 걸 보여주는데 주인공 남매는 아주머니를 자신을 구박하는 모습만 보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워 집을 떠났다가 비참하게 죽었다. 친척집에서 나오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학업에 열중하는 모습 또는 공장에 다니는 모습을 보이며 친척 아주머니의 가계에 도움되는 생활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세이타가 거지가 되어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안타까우면서도 가장 어리석은 사람을 꼽자면 바로 주인공인 세이타일 것이다. 주변이 변하고 환경이 변했으니 이젠 그 자신이 환경과 주변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데 여전히 환경과 주변이 자신에게 맞춰줘야 한다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다 파멸에 이른 인물이다.

중학교 3학년짜리가 무슨 수가 있겠으랴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다못해 자질구레한 일을 해주면서라도 목숨을 연명할 방법은 있었다. 현대의 관점에서야 '고작' 중학교 3학년이겠지만 당대 일본의 중학교 진학률은 고작 10% 초반대에 불과했으니(관련 기사) 세이타가 이렇게 투정이나 부리고 있을 때 또래들 대부분은 이미 공장에서 돈을 벌든 농사를 짓든 뭔가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도 싫고 주변에서는 자신과 여동생을 (자신들이 느끼기엔) 구박(?)만 해대니 못 견디겠다면서 나왔다는 것은 주인공의 미숙함을 다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바꿔 말하자면 피해자 행세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는 (전쟁의 피해자인) 개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개인의 국적과 국가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당시의 일본 사회가 이 작품의 배경이 되기 때문에 약간 불편한 장면도 없진 않겠지만 어디까지나 주요 화자는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다. 그리고 이들이 당시 겪었던 어려움은 어느 인간 사회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감독 자신도 극우는커녕 오히려 대척점에 있는 일본 공산당 당원이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헌법 9조의 회' 결성 집회에서 애니메이션 팬들이 전쟁 홍보용 애니메이션을 '일본이 가해자로서 뭔 짓을 했는지도 몰랐고, 전쟁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애니메이터들이 평화적으로 그린 것 같다'고 왜곡해서 받아들인 일화를 언급했다. 바로 '모모타로 바다의 신병(桃太郎 海の神兵)'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전쟁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1980년대 쇼치쿠의 창고에서 필름이 발견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이 반전 요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대다수 일본 국민들이 전쟁에 대한 브레이크 없이 치달은 결과 가해자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전쟁을 반대하던 이들은 비국민 취급당하며 감옥에 갔고, 나머지는 올림픽 국가대표 응원하듯이 전쟁을 응원했다는 뉘앙스로 강연회에서 언급하였다. 그러면서 전체주의, 군국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평화 헌법을 옹호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일본의 독립 언론인 야스다 고이치가 기고한 기사에도 자세히 나온다. 링크

감독이 2015년 1월 1일자 가나가와 신문에 기고한 글이 네이버 블로그에 번역되어 올라왔는데 참고로 읽어보자.링크

해당 내용을 한국 블로거가 번역해 게시해도 되는지 문의하자,

"전쟁말기의 자국민의 비참한 체험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원인, 즉 그 이전에 타국으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와, 그것들이 타국민에게 안겨준 참상에 대해 확실하게 전달하고, 생각하게 할 수 있어야만이 비로소 <반전>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한 편의 영화로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자국의 타국으로의 침략을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우며,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굉장히 힘들다. 그렇기에 진정한 <반전>은 영화에서보다, 교육 등 보다 이성적인 방법으로 끊임없이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신이 평소 해왔는데, 그 내용도 첨가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저 코멘트에 따르자면 본인의 입장에서도 반딧불이의 묘는 불완전한 반전 영화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헌법 9조의 회' 강연회에서도 자신의 영화는 전쟁으로 인한 비참한 체험까지는 충분히 묘사했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전쟁의 원인)에 대해서는 불충분하다고 인정하였다. 다양한 해석을 통해 논란이 있는 영화이며 외적으로 오용되지만 나쁜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또한, 영화 초반 공습 장면 중 시민들이 폭격에 맞아 사망하고 부상당하며 참호 밑으로 대피해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와중에 한 일본 군인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일본 군부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원작 소설을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에는 작중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의 모습이 문학적으로 당시 일본 국민과 지배층의 모습을 은유한다는 것도 있으니 참고할 것.

작품을 보면, 주인공 남매가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도 아니다. 주인공 남매가 겪은 고난과 빈궁은 엄밀히 말하면 당시 일본인들이 겪었던 평균적인 상황과는 좀 다르다.

단적으로 작품 초반부에 나오는 산노미야역 구내에 있던 다른 부랑아들은 세이타처럼 스스로 친척집에서 뛰쳐나온 것이 아니라 진짜로 의지할 곳이 전혀 없는 처지일 가능성이 높다. 받아줄 친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부랑아 생활을 하는 세이타와는 다르게 말이다.

1944년에 설탕 절인 복숭아를 먹었다거나, 게 통조림을 먹었다는 대목도 있고, 심지어는 음식을 상한 것도 아니고, 단 게 싫다고, 냄새가 이상하다고 버렸다는 대목도 있다. 게다가 은행에는 7,000엔의 저금이 있었고 폭격을 피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가면서 바리바리 싸간 것이 우메보시, 버터, 치즈, 기모노, 풍금 등인데 이것들은 모두 당시 기준으로는 대단한 사치품들이었다.

당시 일본의 상황은, 내각의 고위 인사 기시 노부스케도 고작 '버터 바른 군고구마'를 먹지 못해 별미라 칭할 지경이었으며, 군대로 차출된 사람에게 송별회를 한다며 준 음식이 '구운 오징어'이다. 심지어 영화 일본 패망 하루전에서는 도쿄 대공습 이후 히로히토 덴노와 나가코 황후 부부가 궁성에서 하는 식사가 단출한 바지락죽 한 그릇이 전부이며, '민간에선 아직 식량 유통이 가능해 앞으로 폐하와 함께 식사를 할 때는 자택에서 각자 도시락을 지참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고위 관료들의 건의가 나오자 히로히토가 허락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 황실조차 덴노와 고위 관료들의 식사 모임에 올려야 할 음식들도 제대로 구하기 힘들 지경이던 것.

그러므로 불쌍하게 여기라고 만든 캐릭터는 아니다. 작품 초반에 나오는 역 구내에서 부랑아가 된 세이타의 모습은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난 뒤인 1945년 9월의 모습이다. 즉 최소한 친척집에 있을 때까지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친척 아주머니에게 천대받기 싫다는 여동생의 징징거림에, 아직 어린 오빠가 빡쳐서 자기들이 독립하겠다고 집을 뛰쳐나가는 바람에 그 꼴이 난 것. 물론 그 친척 아주머니가 아주 잘했다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상식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눈치밥은 좀 줘도 상당히 인간적인 대우를 해줬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는데 말이다. 세이타가 성숙해서 칭얼대는 여동생을 달래고 방화조에 들어가거나, 하다못해 친척 아주머니 집안일이라도 돕는 것으로 밥값을 하려고 노력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작중 남매의 가출이 문제인 이유가 있다. 이는 곧 토나리구미(隣組)를 비롯한 지역 조직을 중심으로 편성된 식량 배급 체계에서 이탈하는 것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부모가 남겨준 유산으로 암시장에서 식량을 사 와 남매끼리 재미있게 살았으나, 돈이 다 떨어지고 가진 걸 다 팔아치운 뒤 더 이상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자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여동생을 영양실조로 죽게 만들고, 혼자 남은 오빠는 산노미야역에서 거지처럼 생활하다 동생의 뒤를 따르게 된 것이다.

세이타가 판단력이 미숙하다는 것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여동생마저 굶어 죽은 상황이라면 친척집에 돌아가는 게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부랑아 생활을 하며 암시장에 가진 물건을 다 팔아치운다. 입은 옷에 신발까지 팔아버리고 난 뒤에도 친척집에 돌아가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산노미야역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세이타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만들어낸 모습이다. 물건들을 헐값에 넘겼는데, 친척집에 있었다면 아주머니가 팔아 줘 제값을 받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남매가 그동안 누렸던 풍요로움이 이들의 인격 형성에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부족함 없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살았기에 한순간에 자신들이 누리던 특권을 모두 잃어버리면서 밀려드는 상실감을 버틸 수가 없었던 것. 오늘날로 말하면 갑의 입장에서 누리던 것을 잃고 을의 입장으로 내려왔을 때 이를 수용할만한 포용력이 모자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성장 배경 때문에 철부지 같은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오빠가 판단력이 더 미숙한 여동생이 투정부리는 것을 적당히 달래지 못하고, 부화뇌동하여 친척집을 나가버린 것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세이타와 세츠코가 아직 미성년자로 판단력이 미숙한 게 정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도 냉정히 생각하면 세츠코 한정으로나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고작 4살의 철부지 유아는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중학교 3학년 학생인 오빠 세이타는 마음만 먹으면 세츠코와 같은 어린아이를 달래고 바로잡아주어야 할 정도의 판단력과 능력은 갖출 수 있는 나이다. 당시는 잘 살건 못 살건 모두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 전시였다.

그리고 1940년대에 세이타 나이(만 14세)면 그리 어리다고 볼 수도 없다. 미국이건 일본 제국 시기 한국이나 일본이건 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다.

예를 들면, 경의선 마지막 기관사로 유명한 한준기는 1943년부터 17세의 나이에 일본에서 철도 기관사로 근무했다. 그 당시 일제가 닥치는 대로 징병을 하는 바람에 철도도 17세 인력을 써야 할 정도로 막장이 된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당시는 구제중학교나 구제고등학교 진학 비율이 높지 않고 10대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2차대전 시작 이전에 일본이 다른 동양 국가들에 비해 여유로운 상황인 점이나 전쟁에 돌입한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여동생 세츠코는 일본 민중을 은유하는 것, 오빠 세이타는 일본 지도부를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전후 일본이 겪은 고난은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것을 은유하는 것이다.

또한 발간 당시 '전쟁은 국가지도층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고, 일본 민간인은 오히려 지도층의 무모한 야욕에 희생되었을 뿐이다'라는 역사관이 유행하던 것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결국 지배층은 어떤 식으로든 다수 대중의 요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고, 전후의 참상은 결국 일본 국민들이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책임의 대가를 스스로 치른 것일 뿐이라고 비판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무적의 일본 함대 운운하는 대사 역시 세이타의 시점에 가깝게 진행되는 이야기 특성상 주인공 입장에서는 아주 당연한 대사고, 더 나아가 이것이 주인공(그리고 당시의 일본 대중)의 전쟁에 대한 무지를 상징하는 대사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점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불쌍한 애들을 괴롭히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쯤으로 묘사되는 친척 아주머니 역시, 제3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보면 사실 나쁜 인물이 아니다. 어머니의 기모노를 대신 내다 팔아준다고 하더니 자기들에게는 고작 쌀 한 단지 주고 말았다고 남매가 서러워하는 부분도, 사실 암시장 거래의 위험성이나 아이들을 부양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적절한 분배 비율에 대한 이견의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기모노와 바꿔온 쌀 중에서 자기 가족 몫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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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들은 다 농사일이나 대피훈련 등으로 바쁘게 일하는데 여동생은 방에서 종이를 오리거나 피아노를 뚱땅거리며 논다. 아직 어린아이인데다 폭격에 의한 공포로 인해 생긴 행동이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피아노 소리도 시끄러운 데다, 전시에는 공간을 차지하기만 하고 쓸 데가 없는 가구인 피아노를 얘 때문에 팔지도 못하니, 짜증이 날 만한 상황이다.

게다가 오빠는 방 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안 하니 좋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하다못해 공부라도 하라는 숙모의 말에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답했는데, 친척 형, 누나들은 공부하러 나갔다. 더구나 세이타는 누구보다 학업에 더 집중해야 할 중학교 3학년이다. 거기다 숙모가 알아서 해먹으라고 쌀을 줬을 때도, 먹고 나서 뒷처리도 안 했다. 숙모 입장에서 이 남매는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밥벌레나 다름없는데 내쫓기는 커녕 구박하면서도 식사는 꼬박꼬박 챙겨줬다.

즉, 전쟁에 돌입한 일본의 태도가 마치 어린애와 다를 바 없었다는 비판으로도 해석 가능한 셈. 작중의 묘사에서 그러한 의도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으나, 그런 의도가 드러난 부분이 있다. 작중에서 숙모가 주인공 남매가 부모 돈으로 밥을 사 먹자 섭섭하게 생각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집을 떠날 때는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또한 숙모가 주인공 남매의 재산을 뺏는 장면도 없다. 작중에선 물가가 극단적으로 올라가는데, 주인공 남매가 물건을 한 번에 사지 않고 천천히 쓰는 장면이 나온다. 부모의 돈이 엄청났다는 증거인데, 이걸 뺏지 않은 것만 해도 과연 악인일지 의문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봤을 때 세이타와 세츠코는 희생자인 동시에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물이다. (세츠코는 아직 유아이니 봐줄 여지가 있지만) 무조건적인 동정의 대상이 되기에는 석연찮은 인물임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이 아이들이 당시 일본 사회에서 일종의 특권 계급이던 해군 장교의 자식들로, 남보다 훨씬 많은 특권을 누렸다는 점은 작중에서 명확히 묘사된다.

이러한 비평적 해석과는 별개로 적지 않은 독자나 시청자가 이 작품을 일본인의 자기연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이다. 주인공 남매가 상징하는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였다 하더라도, 남매들을 동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감성적 연출이 비판론 측에서 삼는 문제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비판적 의견을 대변하는 데 평론이 인용된 정성일도 이 해석은 분명히 언급하고 넘어갔다.

이는 오롯이 작가나 감독이 책임져야 할 영역인 것 역시 분명하다.

이 영화를 보고 아이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 시청자는 드물다. 받아들이는 쪽에서 남매의 어리석음을 제대로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연민에 빠지는 연출이 의도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제대로 된 해석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남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이 영화에서 의도된 결과다. 일단 어린 남매가 주인공이니 관객들은 일단 이들의 입장과 관점에 서서 작품을 감상하며 자연히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으니, 연민을 먼저 느낄 수밖에 없긴 하다.

원작에 나오는 표현조차 생략해가며 남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 것은 이 영화가 가진 한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 행세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다. 어쨌든 어린 아이들이 비참하게 죽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불쌍한데,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대한민국 국민은 대단히 불편한 심경이 될 수밖에 없고 비판을 안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감독 자신이 "전쟁 개시 전부터 일본 국민들이 브레이크 없이 치달은 결과, 가해자가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하며 일본의 전쟁 범죄 행위에 당시 일본 국민의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주장한 바 있다는 점 역시 감안할 필요는 있다. 전쟁의 광기에 대해 그 국가 구성원인 국민 자신들 역시 명백한 책임이 있다는 전제에 따라 본다면, 이와 같은 해석에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일본의 좌파들은, 일반 국민들에게 흔히 박혀있는 책임회피의식 즉, '전쟁은 당시 지도자들의 책임이며 자신들은 그에 쓸려갈 뿐이었다'는 논리에 대해 꾸준히 비판해왔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이렇게 일본의 전쟁 책임을 꾸준히 주장해온 사람으로 이런 사람이 피해자 행세물을 만드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스폰서 때문에 감독 의향과 다른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스튜디오 지브리는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유로운 창작을 할 수 있게 만들어진 회사로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는 작품에 대해서 거의 간섭을 안 하는 걸로 유명하다. 즉 이 작품은 타카하타 이사오 개인의 메시지가 온전히 담겼다는 것이다.

평론가 오카다 토시오는 "전쟁이 나빠서 불쌍한 일본인이 피해로 죽는다는 내용의 영화였으면 오빠와 여동생이 둘 다 죽는 내용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동생만 죽으며 여동생이 죽는 원인은 오빠에게 있다. 그런 영화가 아니다. 빈부와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6. 괴담[편집]

해당 괴담들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검증되지 않았다. 그러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재미로만 보자.

6.1. 세츠코는 영양실조로 죽은 것이 아니다?[편집]

세츠코가 죽은 원인이 영양실조가 아닌 공습 후 맞은 유해물질이 섞인 비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공습 이후 내린 비를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가 맞았고, 공습 당시 수많은 재가 날아다녔으며 공장들이 파괴되었다는 언급이 나온 점, 그리고 비를 맞을 때 세츠코가 눈을 비비고, 그 비를 맞은 세츠코가 일반적인 비를 맞았으면 통증이 생길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통증을 느끼고 임시 대피소에서 받은 치료는 간단히 눈을 물로 씻겨준다. 이후 방공호에서 세츠코가 몸이 가렵다며 긁는 장면이 나오고 이후 물놀이를 하러 갈 때 처음으로 세츠코의 몸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세이타는 더위 때문에 생긴 땀띠라고 생각하고 그저 바닷물로 세츠코의 식혀주지만, 이는 사실 유해물질로 인해 세츠코의 몸이 망가져 가는 전조증상이고, 친척 아주머니가 눈치를 주자 집에서 나온 뒤에는 세츠코의 몸은 더욱 악화되었고, 배가 이상하다며 계속 설사를 한다고 한다. 그 뒤 병원에서 한 진찰은 청진기를 배에 대본 것 뿐으로 영양실조라는 진단을 내리지만, 이 진단을 신뢰할 수 없다. 또 세이타는 세츠코에게 밥을 주지만, 세츠코는 밥을 넘기지 못하고 기력이 쇠해가고 결국 생을 마감하는 것이 세츠코의 죽음의 원인이 단순히 영양실조가 아니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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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의 밝기를 올리면 전투기가 보이며 포스터에 보이는 반짝이는 것들은 반딧불이가 아닌 전투기에서 내려온 포탄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브리의 대답은 당시 제작과정을 아는 사람이 적어지고 있어 확증을 얻을 수 있는 게 없으니 답을 삼간다고 하고 현재 판권을 가진 신쵸샤도 문고판은 자기들 쪽에서 나오는데 자기들도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이 괴담의 치명적인 오류는 정작 유해물질이 녹아든 빗방울을 맞은 눈은 별 다른 이상이 없었단 것이다. 정말 유해물질이 사망 원인이라면 눈부터 이상이 나타났어야 자연스러우나 작중에서 세츠코는 피부가 안좋아진다거나 잦은 설사와 같은 증상만 있었지 눈과 관련된 증상은 시사되거나 언급되지도 않았다. 위에서 언급된 악화된 피부와 눈의 통증 역시 영양실조와, 먼지바람으로 설명 가능하다. 실제 영양실조 증상중 면역력 저하로 인해 피부가 안좋아지기도 하며, 작중 세츠코의 머리를 빗을때 이가 잔뜩 나오는 장면으로 보아 방공호에서 지내면서 각종 벌레에 노출된 것 역시 피부가 안좋아진 원인이라 볼 수 있다. 또한 비가 왔다 한들 폭격으로 온 마을이 전소된 상황이라 자욱하게 먼지가 날리는데 그런 상황에서 마스크나 고글 같은 안전장비도 없는 세츠코의 눈에 먼지가 들어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6.2.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편집]

세츠코가 죽은 후 세이타는 기차역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세이타와 세츠코는 죽어서 재회하게 되고, 시차를 타며 자신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장면들을 보게 된다. 여기서 세츠코가 저승으로 향하는 기차역을 배회하며 오빠 세이타를 기다린다는 것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얽힌 괴담이다. 치히로가 제니바를 찾아 나서며 탄 기차에서 어떤 목적지로 가는 승객들 사이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또는 찾는 듯한 소녀가 보이는데 이 소녀의 그림자가 바로 세츠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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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츠코와 이 소녀의 나잇대는 상당히 달라 보여 그저 같은 지브리 작품에 옛 영화에 흔적을 찾는 괴담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 괴담대로 보자면 치히로가 탄 기차는 저승행 기차라는 상상도 가능하다. 그 증거로는 신들이 찾는 온천과 달리, 기차에 탄 승객들은 그림자이지만 인간의 형태를 띈다는 것이고, 다들 각자의 목적지가 있다는 듯 움직이는데 이 기차는 왕복이 없는 기차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기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츠코라고 생각되는 그림자가 서 있는 곳은 세이타가 죽은 역과 연결되는 공간이며, 그곳에서 기다린 세츠코가 결국 죽은 세이타와 만나 저승행 기차를 올라탄다는 것이다. 신들의 세계에 속한 치히로는 그저 바다 위로 달리는 열차 풍경만 보일 뿐이고 의미 없는 역을 거쳐갈 뿐이지만 죽은 자들은 그 열차에 타며 자기가 죽기까지의 풍경을 보게 되고, 여기서 내려 죽기 전의 경험을 제3자의 입장으로 체함하고 다시 기차에 타 저승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7. 제작 비화[편집]

느긋하게 만드는 타카하타의 성향 때문에 스케줄을 맞추지 못해 개봉 직후에는 몇 장면이 색칠하지 못한 채로 개봉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세이타가 도둑질하는 장면. 대다수는 연출인 줄 알고 넘어갔는데,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와 우연히 영화관에서 만난 미야자키 하야오의 동생이 큰 소리로 미완성 아니냐고 물어 프로듀서가 당황해했다고.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는 반딧불이의 묘 개봉 이후 조금 더 일본을 비판하는 장편을 기획했다. 《국경》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조선과 만주국을 배경으로 난징 대학살을 고발하는 내용의 《국경 BORDER 1939》의 기획안까지 제작했으나, 당시 천안문 사태로 인해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면 좋지 못할 꺼란 스즈키 토시오의 판단에 의해 취소되었다.

원제인 火垂るの墓의 火垂る는 반딧불을 뜻하는 蛍(ほたる)의 어원으로 추측되는 말 중 하나다. 그 외에는 〈火照る〉〈星垂る〉〈火太郎〉 등이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출처 - #. 물론 영어 제목이 Grave of the Fireflies이며, 작품 내에서 반딧불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을 고려하면 원제의 火垂る도 당연히 반딧불을 뜻하는 게 맞다.

작품의 배경이 된 도시는 고베로, 애니메이션 마지막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가 내려다 보는 도시도 현대의 고베다. 세이타가 아사한 곳은 고베의 산노미야역. 작중 초반의 공습 장면은 고베 공습 중 피해가 컸던 1945년 6월 5일 공습을 묘사한 것이다.

한편, 제작 스탭 중 안노 히데아키가 있었는데 순양함의 원화를 맡겼을 때 밀덕후답게 신이 나서 극사실주의로 원화를 그렸더니 정작 작화 감독 콘도 요시후미는 관함식 장면을 화려하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실루엣만 보이게 하고, 흑백 영화처럼 어두운 색으로 처리해 버렸다.

색칠한 장본인은 안노의 절친 히구치 신지의 부인 타카야 노리코. 안노가 나중에 연출한 톱을 노려라!의 주인공의 이름을 제공한 인물이다. 스즈키 토시오와의 대담에서 반딧불이의 묘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있다.

스즈키 토시오 (이하 스즈키): 그리고나서, 반딧불의 묘 때에 다시 나타났었지?
안노 히데아키(이하 안노): 그렇죠. 취직활동이죠. 일거리가 없어서요. 미야상한테가서 뭐 일거리 없습니까 물어보니, 토토로의 오프닝을 하던지, 타카하타상 쪽의 뭐랄까 전함 그릴 사람이 없다는데, 그쪽을 하든지 어디 할래? 그래서 미야상하고는 전에 (같이)해 봐서 타카하타상하고 일을 해보고 싶었죠.
스즈키: 그래. 그랬지.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전함에 일루미네이션(여기서 웃음 터짐)하고 불꽃.
안노: 네. 일루미네이션과 불꽃입니다. 실은 전함이 아니라 순양함(巡洋艦)입니다. 전함이 아니라.
스즈키: 그래서 그 다음엔가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두 사람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으니까 "라고 말하던데...
안노: 한 번 같이 일해 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압니다.


작가의 딸이 학교에서 '반딧불이의 묘'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썼을까요'라는 숙제를 받아 오자, "마감에 쫓겨서, 헥헥거리며 썼다.(締め切りに追われ、ヒィヒィ言いながら書いた)"고 대답해 줬다고 TV 방송에서 밝혔다는 일화가 유명하며, 이는 최승호의 일화와 함께, 인터넷에서 문학 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는 이야깃거리로 회자된다.

그러나 이 일화는 거짓으로, 작가의 딸이 개인 블로그에서 아버지가 할 것 같은 말이지만(いかにも父が言いそうなことではありますが) 사실무근(全くの事実無根)이라고 직접 도시전설임을 인증했다.(출처)

이 가짜 일화는 일본어 위키백과에도 2007년부터 2018년까지 구체적인 방송 이름과 방영 날짜 등의 정보 없이 사실인 것처럼 실렸으며, 처음에는 손녀딸이라고 쓰였다가 중간에 딸로 슬쩍 내용이 바뀌었다. 이 일화는 위키백과에 실리기 전부터 2ch 등의 일본 사이트에서 도시전설처럼 회자된 것으로 보이며,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언급은 2003년의 2ch 영화작품·영화인 게시판의 어떤 스레드인데, 여기에는 숙제를 제출해 틀렸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일본에서 첫 개봉시 같은 제작사의 이웃집 토토로와 동시 상영으로 개봉했다. 그런 이유로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는 두 작품을 세트로 비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작품을 세트로 비평하게 되면 반딧불이의 묘는 절대로 일본 피해자설을 주장하는 작품으로 해설할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83~85쪽 참조.

이렇게 된 이유는 제작사 측에서 이웃집 토토로가 대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웃집 토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 수작이 되었다.

8. 여담[편집]

  • 이웃집 토토로를 먼저 상영하고 반딧불의 묘를 뒤에 상영해버리는 바람에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이어서 나오는 반딧불이의 묘 때문에 순식간에 관객들의 기분이 암울해져, 어이없게도 이웃집 토토로의 이미지가 꽤 안 좋아진 일이 있었다.
    보다 보면 은근히 토토로와 비슷한 구도의 컷이 나오며, 토토로와 대치되는 형태로 사용되는 이미지도 나오며(우산, 조력자) 서사 구조도 대조적으로 채용한 탓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이웃집 토토로 항목의 10. 반딧불의 묘와의 관계를 참조.

  • 일본 대중 문화가 금지된 1990년대 초에 신촌 모처에서 애니메이션 동호회 주관으로 열린 상영회에서는 아키라와 함께 상영했다. 가정용 타이틀의 단체 상영은 따지자면 불법이지만, 당시에는 저작권 인식도 없었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 참고로 두 작품 모두 반전 코드를 담고는 있지만, 분위기가 워낙 달라 보는 사람의 기분이 이상해진다. 특히 반딧불이의 묘는 외견상으로는 분명 비참하게 굶어 죽는 남매가 불쌍하고 피해자 코스프레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 전쟁의 직접 피해자인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공감하고 동정해서는 안 될 상황이라...(감독의 성향이나 원작자의 의도 같은 작품 배경은 당시 상영회 관객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본편 상영 중 주인공인 애들이 죽는 장면에서 누군가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이니까) "꼴 좋다!"고 외치자, 관객들 반은 웃고 반은 화를 내는 그야말로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 한국은 대원방송에서 더빙 방영했다. 세이타는 김일, 세츠코는 김서영. 계약상 대원방송 계열의 애니 채널에서 가끔씩 방영하는 편이며, 방영할 때마다 시청자 게시판엔 부모로 보이는 이용자들이 왜 이런 애니를 방영하냐며 항의글을 자주 올리는 편이다. 작중에 세이타가 하는 "네? 대일본제국이 졌다고요?!"라는 대사 때문에 특히나 부모 시청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 한국에서는 원작의 지명도가 낮다 보니 원작 소설의 작가 노사카가 우익이라는 출처 불명의 루머가 돈다.

  • 스웨덴의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 아치 에너미의 곡중 The Day You Died는 이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한다.

  • 작품 속에서 세츠코가 즐겨 먹던 캔 상자 안에 든 사탕은 사쿠마식 드롭스'라는 상품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세이타가 세츠코에게 입 벌려 보라고 하면서 사탕을 먹인 것으로, 실사 영화에서는 친척 여자아이들이 캔 안의 사탕을 늘어놓으며 세츠코에게 사탕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나왔다.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세츠코가 좋아하고 드롭스를 다시 먹고 싶어한다. 안타깝게도 2023년 1월 중순부터 폐업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 1988년에는 작중 배경인 전시에 판매된 상품을 디자인과 내용물을 복각한 상품이 나왔다. 복각판은 아니지만, 2008년에는 실사 영화 공개 기념으로 세츠코가 캔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사탕을 찾는 모습이 그려진 제품이 발매되었다.
    이 두 제품은 동일한 디자인이다. 한쪽 면은 원래의 디자인을 복각한 형태고, 다른 면은 그 디자인 위에 세츠코의 모습을 겹쳐서 프린트한 제품이다. 그와는 별개로 동일한 깡통에 조금 밝은 디자인을 넣은 현행 제품도 존재한다.

  • 세이타와 세츠코가 풍금을 연주하면서 "호니하니 호이토 호호호하니"하는 대목은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도레미파솔라시를 금지하고 대신 일본어로 '이로하니호헤토'로 바꾼 것이다. 한국어로는 가나다라마바사. '가장조', '사단조' 할 때 '가~'가 이거다. '도레미파...' 순서대로는 '다라마바사가나(하니호헤토이로)'.
    이는 영국과 미국을 악(귀축영미 鬼畜英美)으로 규정하고 영어 사용 금지, 서양 문화를 금지한 정책 때문이다. 당시 일제 치하인 국내에 나온 국민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일본식인 '이로하니호헤토'로 계이름이 붙었다. 도레미파솔라시도는 영어가 아니고 이탈리아어이지만, 서양 문화 규제 및 금지 정책 때문에 금지했다. 근데 정작 당시 이탈리아는 같은 추축국이었으므로 팀킬 조치다. 이 이로하 관련 이야기는 비슷한 시대를 다룬 '스물네 개의 눈동자'란 소설에도 나온다.

  • 2005년 2시간 30분 단편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요코가와 세이타 역은 이시다 호우시, 요코가와 세츠코 역은 사사키 마오.

  • 타가하타 이사오는 스태프진에게 이와사키 치히로의 그림책 <戦火のなかの子どもたち>(전쟁 속의 아이들)을 읽도록 지시했다고 하며 이와사키 치히로에 대해서는 '어린이를 순간의 귀여움이 아니라, 내면을 지니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자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작가'라고 평했다.

  • 게임 쿠키요미를 진행하다보면 주인공 남매를 패러디한 남매가 나온다. 여동생은 누운 채로 "배고파"라는 말을 하고, 오빠는 "어떻게든 먹을 것을 구해올게"라고 말한다.

  • 명암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포스터 제목 뒤에 폭격중인 B-29가 보인다.

  • 2020년에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이 넷플릭스에 제공되었는데, 장편 작품 중 유일하게 제외되었다. 민감한 소재를 다루었기 때문에 한국 정서를 고려해서 빠진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마찬가지로 태평양 전쟁 관련 소재를 다룬 바람이 분다는 정상적으로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진짜 이유는 <반딧불이의 묘> 해외 배급 판권이 지브리가 아닌 신쵸샤 쪽에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 수입사도 대원미디어가 아니다. 여기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해외 홈 비디오 출시 판권료가 비싸다고 알려져 있는데, 신쵸샤 측은 싸게 부르는 편인지 지브리 블루레이 중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와 함께 한국에 출시한 작품이다. 때문인지 한때 왓챠 플레이에 <반딧불이의 묘>가 수록되어 관람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왓챠에서 내려간 상태이다.

  • 2006년에 도서출판 디딤돌이 발행한 2007 수능 시리즈에 이 작품의 내용이 일부 실렸다.

  • 1945년 패망 직전의 방화 작업을 고증에 알맞게 연출했다.

8.1. 7,000엔의 행방은?[편집]

어머니가 저금해 둔 7,000엔이면 당시 가치로는 엄청난 거금이다. 1940년대 일본의 교사나 은행원 초임 월급도 100엔이 채 안 되던 상황, 2017년 기준으로 한국에서는 200만 원이 좀 안 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단순 계산으로도 1억 4천만 원에 해당한다. 그러나 세이타는 그 큰 돈을 어림잡아도 1달 반밖에 안 되는 사이에 다 날리고 여동생 세츠코를 영양실조로 보내고 자신도 부랑아가 되어 비참하게 살다가 죽고 만다. 세이타가 죽은 이유가 자기 본인의 잘못도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그러나 세이타가 7,000엔을 아무렇게나 낭비하는 바람에 다 쓴 것은 아니다. 영화 후반에 세츠코가 영양실조로 쓰러진 후 세이타가 맛있는 것을 사다 주겠다고 은행으로 가서 남은 저금 3천엔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위의 계산을 토대로 6,000만원 정도. 고작 음식 조금 사온다고 이런 거금을 찾는 것이 의아할 텐데, 전쟁 전에야 거금이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이것보다 이전에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의 초인플레이션 사태에선 생필품들의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지폐만 흔한 것으로 취급되기까지 했다. 너무 남아돌아서 그냥 장난감이나 벽지 바르는 용도로까지 취급될 정도.

타카하타도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그 시절에는 아무리 돈이 있어도 물자 자체가 극심하게 부족한 상황이라 물건을 살 수 없었다. 특히 식량은 더해서, 원작에 따르면 계란 1개에 3엔, 기름 1되 100엔, 쇠고기 100돈(刄 약 375g) 20엔, 쌀 1말(18리터) 25엔이던 게 패전 직전에는 더 올라 1되(升 1.8리터) 40엔, 십수배 이상으로 치솟았으며, 이것도 암시장에서 겨우 살 수 있는데다가 설령 돈 액수가 맞아도 쌀은 (화폐 가치가 계속 떨어지니까) 저런 웃돈으로도 쉽게 거래가 가능하진 않았고, 국가에서도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극 중에서도 쌀을 시장에서 사지 못하고 어머니의 유품인 옷 몇 벌을 물물교환으로 쌀 1말(18리터)을 구한다. 비슷한 시기를 다룬 이 세상의 한구석에에서도 주인공 스즈가 암시장에서 배급보다 50배나 비싼 가격으로 설탕을 구입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즉 실제로 전후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시기에 7,000엔은 현재 가치로 억원 정도만큼 쓸 수 있기는 커녕 잘 쳐줘야 백만원 수준도 될까말까한 식량과 바꿀 수 있는 정도다. 지금은 대량생산에 의한 저렴한 가공식품도 많고 통조림등 장기보존식도 많이 있어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 가성비 좋은 고열량 식료 구입이 가능해 더 버틸 수 있겠으나[8] 당시는 그런 것도 없고 보관이 어려운 농산물, 신선식품 위주에 공산품도 비싸고 구하기 어려워 체감 가치는 훨씬 더 낮다.

그러므로 그 돈은 두 아이가 두세달 정도 버티는 것은 몰라도, 장기적인 생활비로써는 턱없이 부족하다.

작중 세이타가 은행에서 돈을 찾아와 세츠코를 위해 계란죽을 끓여주려고 하는데 그 계란 하나 구하기도 어렵고 비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보면... 또 세츠코가 먹고 싶어하던 '사쿠마식 드롭스'는 아무리 돈이 있고 구하려고 노력해도 물건 자체가 없어 살 수가 없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이후 설탕 공급이 중지되어 사탕 생산을 할 수 없게 되고, 기업정비령(企業整備令)으로 인해 1945년에는 회사가 폐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1]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 중 최초로 12세 이상 시청가 판정을 받았다. 2005년경 개봉이 취소되었을 때는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았다.[2] 오히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같은 경우 몇 십년이 지나도 인기가 높다. 오히려 다른 작품들이 지브리 작품이라고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3] 논 크레딧. 닌텐도 소속이라 몰래 했다고 한다.[4] 이 장면은 전체 이용가, 12세 이상 관람가 수준이 아니다. 피를 심하게 흘렸기에 보기 안 좋은 사람은 유의해서 볼 것.[5] 물론 잘한건 아니지만 잘못하면 징역으로 갈 수도 있다. 만약 세이타가 얻어맞고 죽었다면 심하면 살인죄로 갈 수도 있다. 절도는 잘못했지만 지나치게 폭력을 휘두르는건 사적제재에 해당한다.[6] 세이타에게는 크게 화를 내지 않고 물이라도 마시고 가라고 한다.[7] 이러한 평가는 전쟁을 제대로 경험한 노년 세대나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이나 이런 것이고, 일본 문화의 인기와 와패니즈들의 영향으로 미국에서도 일본이 피해국이라는 잘못된 인식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