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S 스토리 멤버 - ORAS seutoli membeo

포켓몬스터 5세대는 게임의 내적 구성에 있어 역대 세대 중 단연코 원탑으로 꼽을 수 있는 세대입니다. 비록 등장한 두 시리즈 - BW와 BW2가 합쳐지지 않은 점이 아쉽습니다만, 두 시리즈는 이전 세대에 비해 그래픽 디자인, 게임 레벨 디자인, 인터페이스에서 확실한 진보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동안 포켓몬에게 아쉽다고 비판받았던 점 - 스토리, 스토리가 끝난 이후 컨텐츠 - 을 완벽하게 극복했습니다. 그동안 포켓몬을 개발하면서 쌓인 역량을 이 두 시리즈를 통해 폭발시켰습니다. BW는 아직도 동인계에서 N과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으며, BW2는 BW의 스토리를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향후 PSS를 통해 크게 성장할 포켓몬 네트워크의 거대한 단초를 쌓았습니다. 5세대 BW를 발매하면서 언급했던 목표인 '새로운 시작'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으며, 같은 기기에서 세대를 변화시키면서 필연적으로 아쉽게 남을 그래픽의 일신이나 압도적 인터페이스 변화, 시스템 구조 개혁이 없었음에도 최고의 세대로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포켓몬은 이 위대한 세대를 끝으로 2D와 작별하고, 3DS 기반으로 6세대를 런칭합니다.

그동안 세대의 변화는 일반적으로 배틀과 연관이 있었습니다. 2세대는 악/강철의 등장과 특공/특방 분화 및 교배 시스템의 등장, 3세대의 성격/특성 시스템 추가, 4세대의 기술별 물리/특수 분화, 그리고 5세대의 미약하지만 드림특성의 등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6세대가 제시한 신세대의 배틀은 미묘한 종족값 변경, 도구의 추가, 그리고 메가진화와 페어리의 추가입니다. 그 외에 PSS를 통한 본격적인 포켓몬 네트워킹의 런칭, 트레이닝 및 사파리존, 교배공식 수정을 통한 헤비유저로의 진입을 용이하게 한 점, 무엇보다도 3D를 통한 그래픽 혁명과 이를 통해 구현한 포켓파를레가 있겠네요. 이것이 6세대가 보여준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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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BW처럼 해당 세대의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완성도를 자랑하는 것은 포켓몬 역사에서 2세대 외에는 없던 일입니다. 3세대의 루비사파이어는 자신들의 시스템을 점검하여 에메랄드 및 FRLG를 통해 구현하였고, 4세대 역시 DP에서 실망스러웠던 부분을 PT로 보완하고 HGSS에서 완성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1세대 역시 적청은 일러스트에서부터 비호감 팍팍 풍기는 게임을 피카츄 버전으로 손질했구요. 그리고 XY 역시 게임프리크의 실험이 가득 담긴 게임이 되었습니다.

XY의 그래픽은 3D의 첫 도입 치고는 성공적이었으며, 화려함은 없지만 기존 시리즈와 이질감 없는 무난한 렌더링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3D 성능의 최적화나 카메라 워크 등에는 미숙함을 드러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회사가 3D게임을 사실상 완성시켰다는 슈퍼마리어 64의 그 닌텐도의 자회사라는 것... 다행히 이 부분은 ORAS에서 어느 정도 개선된 편입니다.

게임의 디자인은 유례없이 훌륭하며, 도구를 사용하는 인터페이스 역시 5세대에서 약간 애매했던 부분을 보완하였습니다. 게임 내내 6세대의 시스템을 설명하며, 스토리 진행 역시 5세대에서 이어진 비전머신의 역할 감소와 적절한 타이밍에 투입되는 증정 포켓몬, 학습장치의 격변으로 인해 대단히 원활해졌습니다. 엔딩 이후 실전개체를 뽑는 것 역시 혁신적으로 쉬워졌으며, 전작의 골치아픈 과정 없이 드림특성을 뽑을 수 있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포켓 파를레는 HGSS의 포켓몬 데리고 다니기 이후 최고의 포켓몬 친화적 시스템으로 신입 유저를 긁어모았습니다.

반면 스토리의 경우 플롯은 괜찮았으나 연출이 약하고, 전설의 포켓몬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된 점이 비판받았습니다. 또한 게임을 다 클리어했음에도 생각나는 캐릭터는 오히려 엔딩이 끝나고 난 2회차 스토리인 핸섬하우스 쪽 인물 뿐일 정도로 관장과 라이벌, 4천왕의 역할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바로 전작인 BW2의 최고의 강점이던 엔딩 이후의 컨텐츠가 XY에서 원작회귀만도 못한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 가장 결정적. 포켓몬이 블소도 아니고 2000년대 초반 수준의 폴리곤 아바타 커스터마이징이 그렇게 대단한 효과를 보기는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끝나고 잡을 전설의 포켓몬 역시 거의 없었습니다.

 6세대는 XY를 보완하지 않고, 그 역할을 3세대 리메이크에 넘깁니다. 3세대 리메이크는 3세대가 정발되지 않은 한국의 포켓몬 체제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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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마 다시 꺼내기 무서운 물필드의 압박 -

 ORAS는 XY의 시스템을 완성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ORAS가 XY에 비해 가지는 강점이라면 3D 연출 정도를 꼽을 수 있겠네요. 좀 더 다양한 인물들에게 3D그래픽을 적용했고, 라티남매의 창공날기나 메가레쿠쟈의 화룡점정 등 기술 연출 및 컷 신 연출에서 전작보다 나아진 카메라워킹을 선보였습니다.

 문제는 XY가 가진 문제점을 ORAS도 다 가지고 있다는 건데, 스토리의 경우 3세대의 내용을 그야말로 갖다 박은 수준이며 시리즈를 상징하는 전설의 포켓몬인 그란돈과 가이오가에게 원시진화라는 추가점이 가미되었음에도 그들의 역할이나 스토리 내 비중은 오히려 더 줄었습니다. 물론 이 내용은 호평받는 2회차 스토리인 에피소드 델타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했습니다만, 에피소드 델타 역시 왜 이 스토리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결정적으로 이런 진지한 주제와 떡밥을 해결하기에는 너무 스케일이 작습니다. 주인공이 그 와중에 도시를 잠깐 찍고 오는 한국 MMORPG의 일일퀘스트급 행동을 하는 건 보너스. 거기다  Too much water, Too many HMs라는 개드립에 가까운 평가는 의외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대짱이가 아니면 파도타기-폭포오르기용 쌍두형 물포켓몬 확보가 아주 어려운 탓에 포켓몬 구성도 제한적이고, XY처럼 다양한 포켓몬(칼로스도감은 300번이 넘는 역대 최강의 지방도감입니다)을 얻는 것 역시 리메이크의 한계로 불가능합니다. 자전거도 2개에다 2개 전부 단점이 명확합니다. 마하자전거는 가지 못하는 필드가 있고 더트자전거는 스피드를 심하게 포기했습니다. 거기다 물필드 최고의 단점인 필드가 지나치게 광활해지고 단순해지는 것 역시 여전하며, 거기에 다이빙을 통해 숨겨진 지역도 많아 1회차든 2회차든 스토리 클리어가 상당히 짜증납니다. 거기다 특별한 포켓몬을 조우하게 해 주는 살금살금 걷기와 포켓서치 역시 스토리 클리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계속 소리를 내면서 플레이어의 신경을 끕니다.

 스토리가 끝나고 나서도 3세대의 강점이었던 배틀프런티어가 프런티어의 하부컨텐츠인 배틀타워만을 채용한 배틀리조트로 크게 하향되었고, 사파리존은 아예 일반필드로 대하향되었습니다. XY의 유일무이한 컨텐츠였던 커스터마이징도 없어졌고, 후속작을 위한 떡밥만 시리즈 내내 풀었습니다. 심지어 XY에서 크게 너프된 관장과의 재대결은 아예 없어졌고, 순진하고 귀여운 병약미소년이던 민진의 캐릭터는 배틀과 교배에 미쳐버린 중증 포덕으로 바뀌며 민진의 팬들에게 문화충격을 먹였습니다. 그나마 콘테스트와 전포획득 쪽이 강화되었습니다만, 여기까지 즐기기엔 그 전에 관문이 너무도 많습니다.

결국 ORAS는 XY와 마찬가지로 실험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리메이크작이라는 굴레에 빠진 마이너호환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기다 시리즈 내내 후속작 - 아마도 델타 에메랄드? - 떡밥만 풀어 ORAS를 구매한 유저들을 두 번 죽입니다. XY에서 봉인되어 있던 6세대의 전설의 포켓몬 역시 대부분 공개되지 못했고, 배틀리조트 역시 '공사중' 이라면서 후속작에선 공사가 다 끝날 것이라고 대놓고 광고를 합니다. 

어차피 후속작 나오면 살 게 뻔한데도 뒤통수를 맞은 듯 한 기분은 지울 수 없습니다. 저렇게 떡밥을 풀어놓고 후속작이 세대를 넘긴다거나 안나오는 것도 문제지만 말이죠.

6세대의 배틀은 메가진화로 다수의 포켓몬의 종족값이 버프되면서, 4세대 이후 일어난 고화력 물리 스피드 배틀의 양상은 벗어났습니다. 전작보다 특성과 도구에 기대는 면이 많아졌고, 되도록이면 모든 타입에서 메이저가 나올 수 있도록 한 느낌이 강합니다.

메가진화는 그 자체로 종족값의 버프인 만큼 당연히 배틀에 영향이 가는 것이고, 그보다 6세대에 바뀐 특성이나 신포켓몬, 페어리타입 쪽에 포커스를 맞춰 6세대 배틀에서 인상적인 포켓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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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가 왜 사기인지 보여주는 포켓몬. 공격 종족값 50의 마릴리가 천하장사 하나로 물포켓몬 물리공격력 3손가락 안에 들었는데 이놈은 56입니다(마릴리는 6세대에 와서 60으로 상향). 종족값 총합이 423인데 거의 480급 활약을 합니다. 은혜값기와 지진이라는 국민웨폰의 자속사용자이며, 노멀/땅이라는 타입으로 포켓몬의 영원한 강자인 메가팬텀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내구가 엄청 높은 건 아니지만 고스트와 전기 공격을 무효화하며, 방어와 특방이 균형잡혀 있습니다. ORAS에서는 기술가르침을 통해 어마어마한 기술폭을 자랑하며, 박세준을 신으로 만든 분노의 앞니도 사용가능. 

마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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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도 천하장사라 원래 물 계열에서 알아주는 물공 어태커였습니다만, 페어리가 추가되면서 그 입지가 더욱 늘어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천하장사를 먹은 메가입치트를 제외하면 페어리족 최강의 물리 스위퍼이며, 특히 메가입치트와는 달리 6세대에서도 여전히 날뛰고 있는 한카리아스를 무난하게 상대할 수 있다는 게 최고의 강점. 물과 페어리가 약한 상성에게는 종족값이 좋지 않아 약합니다만, 자신이 약점을 찌를 수 있으면 손속을 두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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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대 최고의 메이저. 블레이드 폼과 실드폼을 적절히 안배하여 상대의 공격은 막고 나는 막강한 공격력으로 후려패는 심리전 포켓몬. 고스트/강철이라 자속기의 위력이 시원찮은 것이 단점이지만 이 녀석의 진정한 강점은 혼자서 판을 쥐락펴락한다는 점. 존재하는 것만으로 상대방에게 대책을 강요하며, 배틀의 고수가 사용할 수록 포텐셜이 터지는 포켓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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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대의 배틀을 정의한 존재. 126이라는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비행기술을 선공기로 날려대는 질풍날개라는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기존에 인파이트를 위시한 고화력 물리기 전성시대를 열었던 수많은 격투 포켓몬들, 가속이라는 사기특성을 들고 날뛰던 번치코 및 벌레 포켓몬들, 원래 잘 안보이던 풀포켓몬들(...)이 전부 이 놈의 질풍날개라는 특성 하나 때문에 박살이 났고, 모든 트레이너들이 이 녀석의 공격을 받아내고 업어치는 전략을 연구하면서 내구와 화력을 동시에 갖춘, 말 그대로 딜탱형 포켓몬들의 전성시대가 열립니다. 페어리로 인해 아사 직전까지 갔던 드래곤들은 메가진화가 해금되면서 다시 메이저로 등극하였습니다만, 이 녀석이 찌르는 놈들은 메가진화가 열렸어도 번치코 정도 제외하면 포켓몬랭킹에 얼굴 한 번 올리기 힘듭니다. 풀포켓몬은 사실상 메가이상해꽃 하나 남았고, 5세대까지 배틀을 지배하던 핫삼의 기세를 크게 꺾었습니다. 얼음은 원래 하등종족이었고(...). 거기다 이놈은 선공보정이 없는 스피드도 어지간한 포켓몬을 전부 씹어먹기 때문에 약점을 찔리지 않아도 내구가 낮은 포켓몬들은 대부분 벌벌 떨어야 합니다.

물리막이에 취약하고 내구력이 약함에도 이런 포켓몬 생태계 절반 이상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강력함으로 6세대 내내 그 어떤 재평가에도 탑티어에서 내려와 본 적이 없는 로얄클래스. 배틀을 좀 판다 하는 사람은 이 녀석의 머리띠 브버 or 플드의 결정력을 무조건 감안해서 파티를 짭니다. 게다가 2년 내내 탑티어들의 연구를 받으면서 운영의 발전 역시 탑티어답게 다양합니다. 

4세대때 판을 치던 드래곤을 견제한다고 해놓고 5세대에 멀티스케일 망나뇽이라는 미친놈을 만들었던 과거의 게임 프리크와는 다르게, 포켓몬 하나만으로 기존의 배틀 구도를 박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드래곤이 설치는 건 여전하지만, 포켓몬 레이팅에는 이놈 하나 잡는다고 워시로토무나 휘석폴리곤2가 탑티어를 유지할 정도로 과거보다 포켓몬의 양상이 다양해졌습니다. 메가진화 역시 어마어마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거의 종족값을 100씩 올려놓고 특성을 조정해주면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6세대 이후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포켓몬을 소개하면서 마칠까 합니다. 왜냐면 이 놈이 4세대 이후 저의 페이보릿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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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대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대 난천 및 대 와타루용 결전병기. 당시 전설을 제외한 드래곤 포켓몬은 킹드라 정도를 빼면 모두 얼음에 4배를 입었으며, 전부 스피드에서 포푸니라에 밀린 탓에 얼음 선공기까지 가진 포푸니라에 대항하려면 무조건 열매를 차거나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5세대 때 멀티스케일 신속 망나뇽이 풀리면서 이 놈의 입지가 흔들립니다. 거기에 악/얼음이라는 타입조합이 방어에서 갖는 치명적 약점(불에 쳐맞고 격투에 쳐맞고 바위에 쳐맞고 벌레에 쳐맞고 세상에 그렇게 호구가 없는 강철에도 쳐맞고)과, 공격에서 갖는 화력부족이 화력인플레 대전 시대에서 발목을 크게 잡힙니다. 

그리고 6세대 때 드래곤 잡이로 페어리라는 대안이 등장하고, 파이어로한테 짤없이 털리는 성능에, 우습게 잡던 드래곤들이 메가진화로 내구를 보완하는 동안 이 놈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유일왕께서 플드를 영접하시고 근성특성을 먹을 동안 이놈은 자속기가 80 언저리로 상향되는 것 빼면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메가니움은 내구형 전법이나 서포터로 쓸수라도 있지 이놈은 더 이상 어디다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놈은 일반특성은 물론 드림특성까지 뭐 하나 쓸만한 게 없으며, 6세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얼음타입이 그냥 막장대접을 받은 게 드러나면서 눈팟에서도 못 쓰게 되었습니다.

진짜 메가진화가 필요한 놈은 무우마직이나 이놈 같은 차별화가 약한 포켓몬일 텐데... 한카 마기라스에 이어 보만다에도 메가나이트가 가는 걸 보면서 오늘도 포푸니라 팬은 오매불망 테크니션을 외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