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장 1절 - yohanbog-eum 13jang 1jeol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성경본문: 요한복음 13장 1-17절

개인적으로 현존하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 중에 지미 카터 대통령을 좋아합니다. 대통령 재임시는 그저 그런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으나 퇴임 후 보이고 있는 그의 활동과 발언 등은 대단히 성경적이고 가히 좋은 그리스도인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 시민권을 가진 한국인이 북한에 억류되었을 때마다 그들의 인권과 석방을 위해 늘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습니다. 늘 그는 금권주의와 물신주의를 경계하면서 분배정의와 함께 나눔의 삶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가난과 기아, 전쟁과 지진이 있는 곳마다 그가 함께 있었습니다. 3년 전인 2011년에 아이티에 큰 지진이 나고 온 나라가 깊은 절망 가운데 빠졌을 때 87세의 노구를 이끌고 부인과 함께 그곳에 간이 주택을 짓는 해비타트 운동을 벌이는 그의 모습을 방송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미국의 평범한 할아버지처럼 청바지를 입고 팔을 걷어 붙이고 세워진 목재에 못을 박고 집을 지으며 땀을 흘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은퇴 이후의 권위와 편안함을 버리고 낮은 곳에 와서 함께 섬기는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우리는 그런 모습의 원형을 요한복음 13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저자는 13장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서 자세히 그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 일을 통해 우리 모두 진정한 겸손의 섬김이 무엇인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진정한 겸손은 사랑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을 잠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13장은 요한복음에서 일종의 전환점이 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까지는 치유와 기적과 선포가 주를 이루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13장부터는 소위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하는 다락방 강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마지막 세번째로 예루살렘이 입성하신 후에 예수님은 미리 준비된 조용한 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맞이하셨습니다. 한 주일 동안 베다니에서부터 성전을 비롯하여 예루살렘 이곳 저곳을 다니시며 하나님 사역을 진행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유월절을 맞이하게 되신 것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다니다가 최후의 만찬이 될 저녁 식사를 위해 함께 모인 것입니다. 이때 요한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13장 1절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12명의 제자들을 너무도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처음 불렀을 때부터 이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를 앞두고서도 그 모두에 대한 사랑을 그치지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힘든 앞날을 미리 안다고 하는 것은 마음 속에 굉장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스트레스가 쌓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언제나 그러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확신 가운데 사랑의 눈으로 제자들을 바라보셨던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온 힘을 다하여 끝날까지 그들을 중심으로 아끼고 염려하고 기도하고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비록 오늘 저녁이 지나고 내일이 되면 그들의 죄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죄를 담당할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모욕과 조롱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알면서 예수님께서는 전혀 표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들어오면서 굉장히 들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곧 예수님께서 통치하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마음 속에는 그 나라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려는 마음으로 벅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만해도 제자들 사이에 적잖이 소동이 났었습니다. 바로 그들 중에 누가 크냐라는 논쟁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예수님깨서 어린아이처럼 겸손해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노라고 교훈을 주셨건만, 심지어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져야 한다(마태복음 20장 26-27절)고 하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해 주셨건만 저마다 자기가 다른 제자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유월절 식사 자리에 도착한 예수님과 제자들은 하루 종일 먼지와 진흙 길을 돌아 다닌터라 지쳐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곳엔 그들의 발을 씻길 종이 없었습니다. 그들 속에 자리 잡은 자존심 때문에 그 누구도 감히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길 엄두를 내지 못한 때 다들 식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문 앞에 있는 큰 양동이에서 물을 떠다가 항아리에 담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종처럼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한 사람씩 그들의 발을 씻기시기 시작합니다. 제자들은 저마다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가까이 있는 제자부터 시작해서 닦아주십니다. 마침내 가룟 유다 차례가 왔습니다. 요한은 이미 13장 2절에서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보고합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속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자기를 배반하고자 하는 가룟 유다 마저도 무릎을 꿇고 그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마디 던지십니다.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요한복음 13장 7절) 예수님의 붙잡히심을 보고 뿔뿔이 도망갈 제자들을 아시면서도, 자기를 세 번 부인 할 베드로를 아시면서도, 십자가 아래서 주님을 모른 채 하고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만 할 그들을 알면서도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조건부 사랑이 아닌 절대적인 사랑을 표현한 것이 바로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는 말씀입니다. 요한은 후일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이니라.”(요한 일서 4장 7-8절)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시고 그들에게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시고자 했던 이 본은 제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절대로 진정한 겸손의 섬김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겸손히 섬기고자 하십니까? 그러면 먼저 사랑하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시고, 그 사랑을 가지고 형제와 자매를 바라보면 우리는 저절로 그들을 위해 낮아질 수 있고 섬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힘을 다한 온전한 예수님의 사랑이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둘째로, 진정한 겸손은 우리가 하나님의 죄사함을 경험할 때 생겨납니다. 본문을 읽다가 한 사람의 돌출적인 행동에 우리는 부딪히게 됩니다. 바로 베드로의 경우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발씻김을 거부합니다. “저는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 발을 씻기실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종이나 하는 것이지요. 제가 씻겨 드려야 되는데 지금 이게 말이나 됩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절) 베드로는 이런 예수님의 대답에 한 발 더 나아갑니다. “그러면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고 하십니다. 육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에서 인간의 모습을 띠고 성육신 하신 주님께서 이제는 더 낮아져서 십자가에서 온 인류를 죽음으로 대속하는 데까지 낮아지신 겸손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서로 간에 말 대답 같습니다만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는 심오한 영적인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영적인 영역에서 모든 정결케 됨은 예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정결케 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중생의 씻음(디도서 3장 5절)을 통해서만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그리스도께서 죄를 씻어주지 아니하시면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죄 씻음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우리 주님의 임재 안에 참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장 12절) 예수님은 더 나아가 한 번 구원 받은 사람은 계속해서 구원을 받을 필요가 없음을 역설합니다. 제자들이 아침에 길을 나서기 전 자신들의 몸을 깨끗이 한 것처럼, 그들은 다시 목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만 길을 다니다 더러워진 발만 씻으면 될 뿐이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의 쓴 뿌리로 인해 생기는 매일의 자범죄를 고백하고 그것에 대한 죄 사함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장 9절) 주님으로부터 죄사함을 경험한 사람만이 우리의 신분을 잘 압니다. 내가 높임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고 오직 주님만이 높임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셔야 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발씻김을 통해 자기 자신을 더 깊이 보게 되고 위치를 깨닫게 되고 우리를 향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안에서 우리가 겸손함을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늘 자신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목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 15장 9-10절)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가인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를 쓴 성공회 사제인 존 뉴튼(John Newton, 1725-1807) 목사님도 동일한 간증을 합니다. 믿음 좋은 어머니와 선장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못된 친구들을 사귀는 바람에 일찍이 영국 해군에서 탈영죄로 아프리카에서 노예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 후에 그는 그들을 부리는 노예 상인이 되고 온갖 악행을 일삼습니다. 24살 때 큰 폭풍우 속에서 생명의 위험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습니다. 이후 회심하여 하나님의 종이 되고 일생 동안 노예 페지 운동에 헌신하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음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죽기 전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주님의 뜻으로 만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보혈과 관계가 있습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신 주님을 바라볼 때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겸손을 깨닫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죄사함의 은총이 진정한 겸손의 시발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내가 본을 보였으니 너희도 이와 같이 서로 서로하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은 후 조용하게 제자들을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4-15절) 한치의 낮아짐도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제자들에게 그 어느 한 사람만 낮아지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서로가 모두 낮은 자리로 내려가라고 친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의 위치를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모두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주와 선생이 될텐데 그 때마다 이 본을 받아 제자라면 서로가 먼저 낮아지라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그날부터 제자들은 서로가 주님과 다른 제자들의 발을 씻길려고 물동이를 차지할려고 힘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는 후일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는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리라.”(베드로전서 5장 5절)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서로 서로 겸손히 섬기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진정한 겸손함에서 우러나오는 섬김은 자연 사랑의 봉사를 낳게 되어 있습니다. 불평이나 힘이 드는 봉사가 아니라 기쁨과 감사의 섬김으로 자기 중심적 신앙에서 벗어나 십자가 중심적인 봉사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웃을 향한 그리고 세상을 향한 진정한 섬김으로 발전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우리 안에 아직도 자신을 높이는 자아가 있다면 그것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이 시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한이 없는 사랑과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낮아지셨듯이 주님을 따른다면 우리도 기꺼이 무릎을 꿇는 마음으로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내려오셔서 종의 마음으로 기쁘게 섬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과 죄사함에 기초한 참된 겸손함이 우리 신앙생활의 큰 힘이 될수 있도록 날마다 영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인 삶 속에서 그것이 적용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