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짧은 영시 - yumyeonghan jjalb-eun yeongsi

천문학(天文學)은 하늘의 문학(文學)이다. 광대한 자연, 미지의 영역으로서 우주는 누군가가 시상을 떠올리게 한다. 17-18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들도 시에 우주를 담았다.

Who but is Pleased to Watch the Moon on High

Who but is pleased to watch the moon on high

Travelling where she from time to time enshrouds

Her head, and nothing loth her Majesty

Renounces, till among the scattered clouds

One with its kindling edge declares that soon

Will reappear before the uplifted eye

A Form as bright, as beautiful a moon,

To glide in open prospect through clear sky.

Pity that such a promise e’er should prove

False in the issue, that yon seeming space

Of sky should be in truth the stedfast face

Of a cloud flat and dense, through which must move

(By transit not unlike man’s frequent doom)

The Wanderer lost in more determined gloom.

-William Wordsworth, 1846

그저 높이 뜬 달을 바라보며 뿌듯해 하는 사람

달이 때때로 머리를 숨기는 곳을 여행하네

그리고 달 여왕은 기꺼이 항복하네

흩어진 구름 중 하나가 곧 불타는 귀퉁이를 보이며

올려다보는 눈앞에 달이 다시 나타날 거라 선언할 때까지.

빛나는 형체, 아름다운 달로서,

맑은 하늘의 열린 전망 속에 유영하기 위해.

그런 약속이 끝내 어겨지리란 것은 유감이다

저 우주처럼 보이는 하늘이 사실은

평평하고 빽빽한 구름의 굳은 얼굴이라는 것, 그 속으로

(사람의 빈번한 불운과 다르지 않은 이동으로)

좀 더 예정된 우울 속에 길 잃은 방랑자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윌리엄 워즈워스, 1846

유명한 짧은 영시 - yumyeonghan jjalb-eun yeongsi
ⓒ https://unsplash.com/photos/UteEnq6PE68

워즈워스는 우연히 마주친 대상들에 감명을 받았다. 이 시의 방랑자는 여행길에 달을 만나 그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한다. 그러나 달이 구름 뒤에 숨어 버리자 방랑자를 둘러싼 세계는 어두워지며, 달빛 아래에선 보이지 않던 내면의 우울함이 드러난다. 달을 만나 매료되었던 일이 그를 어떻게 바꾸어 놓은 것일까?

천문학을 하는 사람에게, 이 시는 천문대에서 관측을 하는데 예상치 못하게 날씨가 나쁠 때를 떠올리게 한다. 천체를 볼 거라는 큰 기대를 품고 올라간 천문대에서 관측 대상이 느닷없이 자취를 감춰버리고 먹먹한 빈 하늘만이 잡힐 때, 우리가 느끼는 허탈감은 화자의 감정과 비슷할 것이다. 이른 새벽 관측 화면에 잡힌 빛나는 천체는 희열을 느끼게 하지만, 잡지 못하거나 놓쳐 버린다면 관측자는 졸음 속에 비참함과 우울을 맛보게 된다.

Bright Star, Would I Were Stedfast as Thou Art

Bright star, would I were stedfast as thou art —

Not in lone splendor hung aloft the night,

And watching, with eternal lids apart,

Like nature’s patient, sleepless eremite,

The moving waters at their priestlike task

Of pure ablution round earth’s human shores,

Or gazing on the new soft-fallen mask

Of snow upon the mountains and the moors;

No — yet still stedfast, still unchangeable,

Pillow’d upon my fair love’s ripening breast,

To feel for ever its soft swell and fall,

Awake for ever in a sweet unrest,

Still, still to hear her tender-taken breath,

And so live ever — or else swoon to death.

-John Keats

빛나는 별이여, 내가 그대처럼 한결같다면

밤하늘 높이 외로운 광휘 속에,

자연의 침착하고 잠 없는 은자처럼,

영원한 눈꺼풀을 연 채,

지구 위 인간의 해안 주위를 깨끗이 씻는

성자 같은 임무 중인 물결의 흐름을 지켜보거나,

산과 들 위에 새로 부드럽게 내린

한 겹의 눈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니, 다만 여전히 한결같고, 여전히 변함없이,

내 아름다운 연인의 무르익는 가슴을 베고 누워

그 부드러운 오르내림을 영원히 느끼며

달콤한 불안 속에 영원히 깨어 있으면서,

여전히, 여전히 그녀가 부드럽게 삼킨 숨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계속 살리라 – 또는 죽음에 빠지리.

-존 키츠

이 시의 화자에게 별이란 한결같이 지구를 높이서 지켜보는, 인간과 먼 존재이다. 그는 별과 같이 한결같을 수 있다면 외로운 별처럼 거창한 일을 하기보다 그저 연인과 함께 있기를 바라는 로맨티스트다. 마지막 연에서 그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인 죽음을 인식하며, 죽음에 영원함의 의미를 부여한다. 과학적으로는, 별 또한 언젠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별에 비해 지극히 작고 수명도 짧은 인간에게 천문학적 스케일은 무한하고 영속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미래에 빛의 속도에 근접하는 속도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가 무한히 멀다고 생각했던 것들의 일부가 유한의 범위에 들어올 것이다. 그 후에 인류는 지금보다 더 자신만만한 태도로 우주를 마주하게 될 것인가?

When I have fears that I may cease to be

When I have fears that I may cease to be

Before my pen has gleaned my teeming brain,

Before high-pilèd books, in charactery,

Hold like rich garners the full ripened grain;

When I behold, upon the night’s starred face,

Huge cloudy symbols of a high romance,

And think that I may never live to trace

Their shadows with the magic hand of chance;

And when I feel, fair creature of an hour,

That I shall never look upon thee more,

Never have relish in the faery power

Of unreflecting love—then on the shore

Of the wide world I stand alone, and think

Till love and fame to nothingness do sink.

-John Keats

죽으면 어쩌나 두려움을 가질 때면,

나의 펜이 나의 무성한 머리에서 추수하고

높이 쌓인 책 속에, 글씨로 가득한 곡간처럼

여물은 곡식알을 저장하기 전에,

내가 별빛 박힌 밤 얼굴,

거대하고 구름 낀, 높은 낭만의 상징을 올려다보면,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은 결코

기회의 마술 손으로 그것들의 그림자를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할 때면,

그리고 내가, 짧은 시간의 아름다운 창조물이여,

그대를 다시 올려다볼 수 없다고,

다시는 분별없는 사랑의 요정 같은 힘을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할 때면,

나는 광활한 세계의 해변에 홀로 서

사랑과 명예가 무(無)로 잠길 때까지 생각한다.

-존 키츠

이 시의 화자는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 그는 순간과 영원의 경계에 있는 듯하다. 그는 연구에 심취한 천문학자나 사랑을 불안해하는 연인으로도 보인다. 존재의 불안이 나타나는 시라고 할 수 있을까. “Bright Star, Would I Were Stedfast as Thou Art”처럼, 시간의 무한한 스케일 앞에 작아지는 인간의 모습도 나타난다. 거대하고 구름 낀 높은 낭만의 상징이라는 구절에서 성운을 떠올리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제목없음)

The splendours of the firmament of time

May be eclipsed, but are extinguished not;

Like stars to their appointed height they climb,

And death is a low mist which cannot blot

The brightness it may veil. When lofty thought

Lifts a young heart above its mortal lair,

And love and life contend in it, for what

Shall be its earthly doom, the dead live there

And move like winds of light on dark and stormy air.

– Percy Bysshe Shelley

시간의 창공이 발하는 광휘는

가려질 순 있지만 꺼지지 않네,

별들이 정해진 고도까지 오르는 것처럼,

그리고 죽음은 그 광휘를 얇은 막으로 가릴지언정

완전히 덮을 수는 없는 낮은 안개다. 우뚝한 생각이

필멸의 은신처 위로 젊은 심장을 들어 올린다,

그리고 사랑과 삶이 그 안에서 다툰다, 그것의

세속적 불운이 될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죽은 자들이 거기 사네

그리고 어둡고 폭풍우 치는 공기 위에 빛의 바람처럼 움직이네

-퍼시 비시 셸리

셸리의 시 중에는 읽는 사람이 쉽게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제목이 없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시도 그러하다. 초반에 어떤 광휘나 빛이 죽음과 대비되면서 나타난다. 화자는 광휘를 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사랑과 삶, 죽음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데 사랑과 삶의 세속적 불운,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죽은 자들은 무슨 의미일까? 천문학자도 시공간이나 빛, 천체에 대해 매료되어 사유할 때면 – 글재간이 없다 하더라도 – 셸리처럼 심오한 시인이 된다.

유명한 짧은 영시 - yumyeonghan jjalb-eun yeongsi
https://unsplash.com/photos/7V78KRaWMKQ

*워즈워스와 셸리의 시는 직접 번역하였고, 키츠의 두 시는 참고자료의 번역을 수정하여 썼습니다. 독자들 중 이 기사의 번역에서 수정할 부분이 있으시다면 메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http://blog.naver.com/eatravelove/110188737809

엘리자베스 거, 『시대사 속의 영국문학』, 고려대학교출판부, 2008, 손영도 옮김

http://www.europa.com/~telscope/astrpoem.t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