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머리 매직 안하고 단발 - gobseulmeoli maejig anhago dan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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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17살, 고등학생 때 였습니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매직 스트레이트"라는 획기적인 스트레이트 파마가 등장하면서 전국의 수많은 곱슬머리 보유자들의 가슴이 두근거렸죠. 그때까지는 단순히 스트레이트 파마만 있었는데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는 정말 이름 그대로 마법처럼 곱슬머리를 생머리로 만들어주었습니다.

17살의 고등학생이 무슨 돈이 있었을까요. 용돈을 모으고 모아, 엄마를 조르고 졸라서 어떻게든 모은 약 5만원으로 처음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를 하러 갔던 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침마다 정말 개털처럼 꼬불꼬불거리며 뻗치던 제 곱슬머리는 약 3시간에 걸친 매직 시술 이후로 새탄생 했습니다. 약이 얼마나 강했던지, 매직을 한 부분은 정말 말 그대로 "쌩"으로 생머리로 변신하더군요.

그때는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뻐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요. 긴 생머리를 고수하는 것이 그 나이대의 여고생들에게는 최고의 꾸밈이었습니다. 염색도, 파마도 할 수 없었던 그 시절. 유일하게 허락된 헤어스타일은 긴 생머리였죠. 아, 유일하게 허락된 "예쁜" 헤어스타일을 말하는겁니다. 저는 그 "긴 생머리"만이 유일하게 "예쁜" 헤어스타일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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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의 저는 여전히 세상에서 말하는 "미의 기준"에 저를 맞추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었습니다. 4~5달에 한번씩 미용실을 찾아 3시간이 넘도록 가만히 앉아서 저의 곱슬머리를 생머리로 만들기 위해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학교 4년 내내 대부분의 시간을 긴 생머리 헤어스타일로 지냈으니.. 그 동안 쏟아부은 돈과 시간이 얼마나 되는걸까요?

저렴한 미용실의 매직 스트레이트는 약 10만원이었고, 보통 미용실에서는 약 20만원이었습니다. 학생이었던 저는 그 돈이 어디서 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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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은 단순히 매직 시술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태생적으로 머리카락이 얇고 힘이 없는 저는 매직 시술을 받고 나면 더 약해진 머리카락을 마주하게 됩니다. 구불거리고 꼬불거리는 곱슬머리가 생머리로 변했지만 스타일은 오히려 더 없어지는거죠. 그럼 아침마다 그 약해진 생머리에 고데기를 말아 넣고 다시 웨이브를 만드는겁니다. 그리고 그 머리를 틀어올려서 부분가발까지 써서 업스타일을 만들기도 하죠.

참 이상하죠?

굳이 그 돈과 시간을 써서 곱슬머리를 생머리로 만들었는데 다시 또 웨이브를 만들어내다니. 곱슬거리던 그 머리카락 자체로 뭔가 해 볼 생각은 왜 못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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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그건 "예쁘지 않다" 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죠.

'돼지털처럼 꼬불거리는 곱슬머리는 예쁘지 않아'

'돼지털은 뽑아버려야해'

'머릿결이 부드럽고 빛나야해'

'땀이 나도 머리카락이 곱슬거리면 안돼'

저는 약 10년 동안 수많은 "내 머리카락이 예쁘지 않은 이유"를 만들어냈고 세상의 기준에 맞춰 저의 머리카락을 재단해왔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데 10년이 넘게 걸렸네요. 어머니는 10대 시절부터 "딸아, 너의 그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얼마나 예쁜데"라고 수없이 저에게 말씀해주셨지만 저는 한 귀로 듣는 것 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그때의 제가 생각한 세상의 기준, 예쁨은 <긴 생머리> 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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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스트레이트 파마를 그만해야겠어" 라고 생각한 시기는 대학원에 입학한 후 입니다. 수업 들으러 갈 때도 풀메이크업에 곱게 빗어내린 머리를 하고 갔던 저에게 학교 안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어요. 그 곳에서는 아무도 화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츄리닝에 운동화를 신고 커다란 배낭을 끌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어요. "주리야~ 어디 몸 안좋아? 오늘 민낯이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어요. 오히려 교수님들이 "제발 옷 좀 제대로 입고 다녀라~ 등하교 할 때는 츄리닝 좀 입지 말아라~"라고 전체회의 시간에 말씀하실 정도였죠.

학교 안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와 행동이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작업에만 신경 쓰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때부터 저는 제 머리카락에 가하던 열과 화학약품을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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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스트레이트 파마를 그만두니 더이상 "긴" 머리를 유지할 이유도 없더군요. 부스스한 곱슬머리로 길어봤자 더 부스스해지기만 할 뿐.. 묶으면 두피만 아파질뿐,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말 곰곰히 따져봤는데 저엉말 그 불편한 긴머리를 고수해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어요. 왜냐면 그 "긴 생머리"는 내가 원해서 유지하고 있던 것이 아니니까요. 세상의 미의 기준에 억지로 저를 맞추고 있던 것이었죠.

그 이후로 저는 근 6년이 넘도록 단발머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는 미용실마다 조금씩 스타일을 다르게 잘라주셔서 어쩔 수 없이(?) 조금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은 늘 짧은 단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단발머리는 정말 너어무 편해요. 머리 감기도 편하고, 말리기도 편하고, 스타일링하기도 편합니다. 그냥 말린 후에 드라이만 조금 해주면 알아서 완성!

물론 단발머리를 한다고 곱슬기가 사라지는건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연 그대로의 곱슬머리를 종종 맞이하기도 해요. 아침에 드라이를 하고 나간다고 해도 오후가 되거나 땀이 나면 다시 이렇게 구불구불한 곱슬머리로 돌아오는거죠. 사진으로 보니 곱슬머리가 잘빠진 웨이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딱 그겁니다.

이런 제 곱슬머리를 보고 사람들은 "매직 해야하지 않아?", "매직 할 때 되지 않았어?"라고 묻기도 해요.

<곱슬머리는 매직을 해야한다>라는 논리인거죠. 하지만 저는 더이상 매직 스트레이트 파마를 하지 않습니다. 저의 곱슬머리를 생머리로 만들기 위해 원치 않는 시술을 받지 않아요. 웨이브를 넣기 위한 파마나 커트, 염색은 하지만 곱슬머리를 생머리로 만들기 위한 매직은 더이상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선택한 "나의 방식대로 예뻐지는" 방법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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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거려도 괜찮아요. 중간중간 돼지털이 나와도 괜찮습니다.

사진처럼 단정한 머리가 오후까지 유지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냥 그게 내 머리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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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저 곱슬거리는 제 머리카락에 맞는 헤어스타일을 찾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단발로는 할 수 있는 스타일링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상관없어요. 저는 거울을 보며 제 돼지털 머리카락들을 원망하는 것 보다 다른 일에 신경을 쏟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냈을 뿐입니다.

저는 여전히 "예쁜 것"이 좋아요.

예쁜 옷과 스카프를 좋아하죠. 신발과 가방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여전히 예쁜 옷들을 보면 눈이 빙빙 돌아갑니다. 하지만 더이상 유행하는 스타일의 옷에 저를 집어넣기 위해 괴로워하거나 남들과 비교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별로여도 제가 보기에 좋다면 저는 그 옷을 구입하고 즐겨 입어요.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죠. 세상에서 요구하는 미의 기준에 나를 억지로 맞추는 일은 더이상 하지 않습니다.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지킵니다.

나의 곱슬머리에 잘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을 유지합니다.

나의 두꺼운 하체를 커버할 수 있는 옷을 찾아 입습니다.

숨쉬기조차 어려운 스키니진은 더이상 입지 않습니다(흑흑 더이상 맞지도 않아요ㅋㅋㅋ)

나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스타일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세상적인 미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탈코르셋을 외친다고 해서 나의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나의 아름다움을 직접 찾아가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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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잔치를 위해 길렀던 머리카락을 드디어 잘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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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이렇게 길었으니 다시 긴 머리로 돌아가볼까.. 고민도 잠시 해봤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단발머리가 아닌 헤어스타일로 사는건 저에게 너무나도 힘든 일이더군요. 이 두피의 고통과 불편함을 견디며 왜 긴 머리를 해야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역시나 그럴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그 이유를 찾게 된다면 또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을 가지게 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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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브단발.

손질도 쉽고 별도의 스타일링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감고 말리면 끄읕. 지금의 저에게 딱 맞는 헤어스타일입니다. 사실 결혼식 사회자를 하지 않는다면 반삭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ㅋㅋㅋ 반삭은 50살에 해야겠습니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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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머리 할 동안 아빠랑 잘 놀고있었쪄요?

우리 뚜뚜리 좋아해~~~~~~ㅋㅋㅋ 근데 사진이 왜 이렇게 3등신처럼 나왔죠?ㅋㅋㅋ개미야 뭐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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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스타일에 관한 글을 쓰려고 하니 문득 이 사진이 생각나더라구요.

나의 나타샤.

나의 나타샤.

나의 나타샤ㅋㅋㅋㅋㅋㅋ

나의 뮤즈여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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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박항슝씨 반반 헤어 좀 다시 보고 가세요 ㅋㅋㅋ

지금 봐도 대단하다.. 진짜 했어.. 이 머리를 진짜 했어..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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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진짜 경기를 뛰었어ㅋㅋㅋㅋ

아 진짜.

여러분? 보셨죠?

자신만의 미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누가 뭐라든 항승씨는 만족한대요.

역시 인생은 박항승처럼!ㅋㅋㅋㅋ

기승전-항승이 멋지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