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문제점 - gwahaggisul-ui munjejeom

과학기술의 양면성: 가능성과 문제점

1. 오늘날 과학 기술이 인간에게 제공해 주는 가능성은 무수히 많아서, 그것들을 일일이 열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많은 종류의 새로운 제품을 출현시켰고, 기존 제품의 생산 과정을 혁신시켰으며, 농업, 광업 등의 1차 산업에서의 여러 혁신들과 함께 인간이 이용하고 소비할 수 있는 자원과 물품의 범위를 크게 넓혀 주었다. 또 과학 기술은 의술(醫術)의 발달을 낳아서 인간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질병을 치료해 주었으며, 수명의 연장에도 기여했다. 과학 기술이 가져온 교통 통신 수단의 발전 또한 막대한 양의 상품의 유통과 인간의 교류, 전자 통신과 자료 처리 능력의 혁신, 대중 매체의 확산 등 인간 생활에 많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었으며, 결국에는 인간의 우주로의 진출 가능성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중 전자 계산 기술을 사용한 정보 및 자료 처리 능력의 발전은 특히 놀라워서 ‘컴퓨터 혁명’이나 ‘컴퓨토피아(computopia)' 같은 말까지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2. 그런데 수많은 이 같은 가능성들은 역시 수많은 문제들을 수반하고 있다. 우선 겉으로 뚜렷이 드러나서,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들만 해도 매우 많다. 공장 폐수, 방사성 및 기타 유해성 폐기물, 자동차 및 공장 매연, 소음 등 여러 종류의 환경 오염, 에너지 및 자원의 고갈, 그리고 그 밖의 여러 면에서의 자연 훼손, 무기 개발 경쟁과 그에 따른 전쟁 위협, 도시의 지나친 비대화에 따른 주택 및 교통난, 개인의 사생활 침범 등은 이들 중 두드러진 몇 가지 예에 지나지 않는다. 

3. 그러나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서 널리 인식되어 있는 문제들 외에, 뚜렷이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훨씬 더 깊은 차원에서 인간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제약을 가하는 문제들이 있다. 그리고 실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이러한 문제들이 인간 생활과 인간의 장래를 두고 더 심각한 경우가 많다. 이런 종류의 문제들 중의 한 가지는 역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자주 지적되는 것으로, 과학기술의 고도한 발달에 의해 인간 생활의 여러 면이 지나치게 기계화되고 자동화되어, 기계가 인간의 위치를 침범하고, 나아가 인간이 기계에 예속되었다는 점이다. 기계에 의해 인간의 노동이 대체되기 시작한 19세기부터 나타난 기술에 대한 반감(反感)이 기술의 고도화에 따라 더욱 심해져서 이에 이르게 된 것이다.

4. 그러나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거나 인간과 경쟁하거나 인간의 위치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는 이러한 관점은 지나치게 한편으로 치우친 것이다. 왜냐하면,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결국 인간에 의해 조종되어 행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동화된 기계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설계와 조작에 의해 움직인다. 예속이라는 것도 기계에의 예속이 아니라 기계-나아가 과학 기술-를 소유하고 통제하는 사람들이나 계층에의 예속을 가리키는 것이다.

5. 그런데 오늘날 첨단 과학 기술의 영향이 인간 생활의 많은 부분에 광범위하게 나타난다는 점이 이러한 ‘침해’와 ‘예속’을 심각한 문제로 만들었다. 그처럼 과학 기술의 영향이 광범위하게 미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이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의 의견에 상관없이 그 영향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새로운 발명이나 기술 혁신을 두고 개인은 그 수용 여부를 선택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사회가 통신 수단으로 전화를 받아들이면 개인은 그것의 수용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가 종전의 통신 수단을 선호한다고 해도 혼자서 그것을 고수할 수는 없으며, 그는 자신의 의사에 상관없이 새로운 통신 수단의 편리함과 불편함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6.  또한 설사 새로운 기술이 모든 개인들에게 필요함을 제공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의 개인 생활을 두고서는 궁극적으로 침해와 속박일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첨단 과학 기술의 고도의 발전과 그것의 광범위한 이용이 생산, 기술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고도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같은 관리, 통제 기술의 발전 또는 개인의 의사, 욕구, 감정 등을 충족시키는 쪽보다는 억제하고 제한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작용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것은 어쩔 수 없이 개인에 대한 집단의, 특히 과학 기술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집단의 힘의 우위를 확립시켜 주는 데 기여하게 된다.

출전: 김영식, ‘현대 사회의 과학 기술과 인간’

◐개관

․이 글은 현대 사회에서의 과학 기술이 가능성의 증대와 문제점의 발생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음을 전제로, 과학 기술의 양면성 중 어느 한 쪽을 강조하는 관점을 비판한다. 과학 기술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에도 주목하지만 아무래도 과학 기술이 수반하는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분석

1문단: 과학 기술의 가능성(인간에게 제공하는 혜택)

  →생산, 의술, 교통․통신, 유통, 전자 등 많은 분야에서 무수한 가능성을 제공함

2문단: 과학 기술이 수반하는 문제점(1)

  →환경 오염, 에너지․자원의 고갈, 전쟁 위협, 주택 및 교통난, 사생활 침범

3문단: 과학 기술이 수반하는 문제점(2)

  →과학  기술의 고도화로 인해 인간이 기계에 예속됨

4문단: 인간이 기계에 예속되었다는 견해에 대한 비판

  →기계에 예속된 것이 아니라 과학 기술을 가진 자(계층)에 예속된 것임

5문단: 첨단 과학 기술의 광범한 영향으로 인한 인간 생활의 침해와 예속

  →침해와 예속이 심각한 것은 과학 기술의 영향력이 광범하기 때문임

  →개인은 과학 기술의 수용 여부를 선택할 수 없음 

6문단: 과학 기술이 개인에게 미치는 침해와 속박(2)

  →과학 기술의 고도 발전으로 과학 기술을 소유․통제하는 집단에 의해 구속 당하게 됨

◐어휘 풀이

․편향적 : 한쪽으로 치우친. 편향적

․컴퓨토피아: 컴퓨터와 유토피아의 합성어로 컴퓨터에 의해 이루어지는 편리한 세상을 가리킴. 정보화 사회에 대한 낙관적 견해를 드러낸 말이다.

인류 역사에서 오늘의 과학이 등장한 것은 불과 300여년 전 일이다. 그 당시 과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근대적인 그릇된 편견들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준 합리적인 사고의 전형이었다. 단순히 유용성을 넘어 세계관, 가치관, 인간관의 변화를 가져온, 그래서 인간에게 새로운 깨우침을 가져다 준 근본적이고 새로운 것이었다. 과학은 변화와 혁신을 의미하는 근대성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과학은 불과 300여년 만에 오늘날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인간 문명을 창조하였다. 과학을 통해 인간은 멸종 동물을 복제하고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신물질을 제조하며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먼 우주를 항해하는 등, 더 이상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자연을 정복하거나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과학은 각종 문명의 이기들을 만들어 내 인간의 삶을 매우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과학기술이 없는 현대사회는 그래서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과학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그 부작용 또한 곳곳에서 나타나거나 예측되고 있다. 과학기술에 기초한 산업화가 만들어 낸 온갖 종류의 환경 파괴,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및 심각한 기후변화, 원자력 이용에 따른 방사능오염 및 피폭 가능성, 생명체 조작 또는 복제가 가져올 수 있는 생명 질서에 대한 교란 가능성, 인공 나노물질의 독성 때문에 발생하는 인체 및 환경에 대한 위해 가능성, 다양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한 개인 정보의 유출 및 새로운 전자감시사회의 출현 가능성 등등. 솔직히 우리가 누리는 혜택이 커지는 만큼 동전의 양면처럼 그에 따르는 위험 또한 커진다.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창조의 측면과 부정적인 파괴의 측면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속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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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현대사회에서 과학의 긍정적인 성과 부분은 매우 강조되고 있는 반면,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대체로 언급조차 미미하다는 점이다. 20세기에 있었던 현대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수많은 비판들은 바로 이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한 예로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Ulrich Beck)은 과학기술이 성공을 거둘수록 그 발전의 위험 또한 더욱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으며, 따라서 과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원천이기도 하지만 다른 문제들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하였다. 근대성에 기초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들을 지속적으로 산출하였고, 이제 우리는 이러한 위험들에 직면하여 산업사회를 반성적으로 고찰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근대적인 합리성에서 태동한 산업사회를 어떻게 반성적으로 성찰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과학이 지닌 합리적 속성이 인간에게 진정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과학이 지닌 합리적 특성을 실용적 가치를 생산하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적인 내용의 합리성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과학은 실용적 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에 내재된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성찰적 혹은 비판적 내용의 합리성으로서도 작동할 수 있다.

가령 20세기의 우주물리학은 우주의 본성, 그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물질들의 세계, 그리고 그러한 물질들을 지배하는 조화로운 자연법칙의 존재를 밝혀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우주의 조화로운 질서를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또한 20세기의 생태학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복잡한 상호 연관과 조화를 보여 준다. 이는 인간에게 하나의 완전한 개체로 고립된 채 존재할 수 없으며 무수한 존재자들과의 조화로운 관계 그물망하에서 살아가고, 인간 스스로가 이러한 관계 질서를 깨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간 자신의 생존 환경을 스스로 붕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이처럼 우주와 생명의 전체적 연관성에 대한 현대과학의 이해는 인간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설정, 곧 세계관, 인간관, 가치관의 새로운 변화를 요청한다.

한편 생명복제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것이 가져올 긍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 동등하게 이루어져야 생명복제에 대한 올바른 윤리적 판단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비록 과학이 인간 사회에 많은 윤리적 문제들을 야기하였지만, 역설적으로 올바른 윤리적 선택을 위해서 과학이 필요하다. 실용적 가치를 생산하는 ‘긍정의 과학’만이 아니라, 초래될 부정적 결과들을 분석하여 실용성의 논리가 갖는 위험성을 알리는 ‘부정의 과학’이 모두 필요하다. ‘두 과학’의 상보적인 관계를 통한 발전이 있을 때, 현대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