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언어·문자개념용어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람이나 사물, 단체, 현상 등에 붙여서 부르는 기호. 정의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람이나 사물, 단체, 현상 등에 붙여서 부르는 기호. 요약문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람이나 사물, 단체, 현상 등에 붙여서 부르는 기호이다. 이름이 주어짐으로써 사물은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고 존재가치를 지니게 된다. 누구에게나 고유의 이름이 있는 경우는 사람뿐인데, 그만큼 고귀한 존재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통일신라 때 지배층에서 성과 이름을 중국식으로 적기 시작하면서 성씨가 도입되었다. 이후 우리의 호칭에 자·호·별호·시호·택호·당호 등 많은 별칭이 생겼는데 그만큼 이름(호칭)에 관심이 컸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자와 하층민에게까지 성과 이름이 적용된 것은 광복 이후이다. 개설 ‘하늘은 녹(祿)이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이름 없는 풀이 없는데 하물며 이름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없음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이름’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존재 가치나 의의(意義)를 뜻한다. 이름이 주어짐으로써 사물은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고, 의미를 얻게 됨으로써 존재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민들레나 개나리가 우리들에게서 구체적인 이름을 얻고 있는데, 길섶에 있는 풀들은 구체적인 이름을 얻지 못하고 그냥 잡초라고 불리고 있다. 그것은 잡초는 잡초로서 우리 인간에게 더 이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민들레나 개나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냥 민들레면 민들레지 그것들 하나하나에 따로 붙여진 이름이 없다. 그냥 돌멩이면 돌멩이고, 바위면 바위지 그 이상의 다른 이름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건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특정한 의미를 지니게 되면 이름을 얻게 된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주인들에게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검둥이나 바둑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그 개가 울타리 밖을 나서면 그저 누구네 집 개일 뿐 검둥이나 바둑이가 되지 못한다. 남들에게는 그냥 개라는 짐승의 의미만 지닐 뿐 그 이상의 유의미한 짐승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름이 있고 그 이름으로 불려지기를 요구한다. 이름을 알 필요가 없거나 모르는 경우에는 그냥 어떤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고유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하나하나가 유의미한 개체요 존재이기 때문이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豹死留皮人死留名).’고 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의 수단이 아니라 바로 목적 그 자체이다. 이름의 말뜻 ‘이름’이라는 낱말을 겉모양으로 보면 ‘말하다’라는 뜻을 지닌 ‘이르다[謂]’라는 동사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동사의 명사형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원을 따지는 데 있어서 현상만을 두고 비교하는 것은 때때로 엉뚱한 결론을 빚을 염려가 있다. 15세기 국어에 있어서 이름의 어형은 ‘일훔’, 혹은 ‘일홈’이요, ‘이르다’는 ‘니르다’로서 형태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15세기에는 ‘일홈’의 기본형에 해당될 ‘*일ᄒᆞ다’ 또는 ‘*잃다’와 같은 어형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ᄒᆞ다, *잃다’와 같은 어형이 15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였을 것이고 그 뜻은 ‘부르다[呼, 稱]’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5세기의 ‘일ᄏᆞᆮ다[稱]’에서 어간 ‘일ᄏᆞᆮ-’은 ‘일ㅎ+*ᄀᆞᆮ-[呼+曰]’으로 분석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15세기초에 ‘*일ᄒᆞ다, *잃다’라는 동사는 ‘니르다[謂]’에 합류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이름’과 ‘이르다’ 사이에 나타나는 형태적 동일성이 앞선 시대의 형태발달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두 어형 사이의 의미적 유연성은 충분히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름의 역사 흔히, 이 세상의 모든 단어들은 이름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실에 대한 의미부여에서 비로소 단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존재가 이름을 뜻하는 바와 같이 이 세상에 존재한 사람으로 이름 없는 사람은 생각할 수 없다. 설령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 하더라도, 이름이 없는 한 누구도 그 사람을 기억하거나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이름은 인간생활은 물론 본질적인 존재의 문제이기 때문에 인간의 출생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다음 항목들에서는 역사를 통해서 한국인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고 어떻게 발달해왔는가를 구체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름의 종류 크게 보아 이름이라고 할 때 그 속에는 실로 다양한 내용들이 포함된다. 정식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관명을 포함해서 아명·별명이 있고, 그 밖에도 자(字)·호(號)·별호(別號)·시호(諡號)·택호·법명(法名)·예명(藝名)·가명(假名)·당호(堂號) 등이 있다. 이렇게 이름의 종류가 많고 다양한 것은 한국인들이 이름(호칭)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이 컸던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전통사회에서 한국인은 누구나 관명(호적명)이 있고, 아명이 있으며, 성인이 됨에 따라 자와 택호를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아명은 나면서부터 가정에서 불려지는 이름으로, 대개는 고유어로 짓는데, 천한 이름일수록 역신(疫神)의 시기를 받지 않아 오래 산다는 천명장수의 믿음에서 천박하게 짓는 것이 보통이다. ‘똥개’·‘동냇개’·‘쇠똥이’·‘개똥이’가 보통이고, 어른의 회갑에 나면 ‘갑이’·‘또갑이’로 지어지며, 튼튼하라는 염원에서 ‘바우’라 부르고, 늦게 얻으면 ‘끝봉이’가 되는 것이다. 아명은 곧 애칭이기 때문에 가족뿐 아니라 이웃에서까지 부담 없이 불려지게 마련이지만, 홍역을 치를 나이를 지나면 이름이 족보에 오르고 서당에 다니게 되면서 정식 이름을 얻게 된다. 정식이름인 관명, 곧 호적이름을 얻게 되면 아명은 점차 쓰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여 얻은 이름은 평생을 두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함부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입신양명 현저부모(立身揚名 顯著父母)’라 하듯이 과거장에서 이름이 드날리기만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할만한 나이가 되면 성인식이라 할 관례(冠禮)를 치름과 함께 새로운 이름인 자(字)를 얻게 되는 것이다. 자(字)는 이름의 대용물로서 가까운 친구간이나 이웃에서 허물없이 부르는 것으로, 대개는 이름을 깊고 빛나게 하기 위해서 화려하게 짓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다가 혼인을 하여 성인이 되면 또 다른 이름인 택호를 얻는다. 택호는 원래 새로 시집온 여자에게 붙여지는 이름인데, 대개는 그 여자가 살아온 마을이름을 따서 시집어른들이 부르기 좋도록 지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에게 택호가 주어지면, 그것은 여자의 이름 대용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남편의 새로운 호가 되기도 한다. 그 아내가 ‘홈실댁’이면 그 남편은 ‘홈실양반’이 되고, 그 아내가 ‘조호댁’이면 그 남편은 자동적으로 ‘조호양반’이 된다. 여자에게는 홈실이나 조호에서 시집온 여자라는 뜻이 되고, 남자에게는 그 곳으로 장가든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성인남녀에게 택호는 평생 동안 바꿀 수 없는 것으로, 명예가 되는 동시에 구속이 되는 것이다. 택호를 얻게 되면 가족이나 친척들은 자연히 택호를 부르게 된다. ‘홈실아주머니’·‘홈실아저씨’·‘조호할머니’·‘조호할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직계 존비속은 택호를 부르지 않고, 가까운 친구들은 여전히 자를 부른다. 그런데 남자에게는 호 혹은 아호가 주어지고 여자에게는 당호가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남녀 다같이 학문과 덕행이 높아져서 이웃에 널리 알려지고 존경을 받게 되면 호를 얻게 되는 것이다. 호란 원래가 학문이나 도덕, 혹은 예술에서 일가(一家)를 이루어 남을 가르칠만한 자리에 이른 사람만이 가지는 영예인데, 대개는 스승이 지어주거나 가까운 친구가 지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 짓기도 한다. 남이 짓는 경우의 호는 화려한 것이 보통이고, 자신이 지을 경우에는 스스로 낮추어 부르거나 자신의 뜻을 담는 것이 보통이다. 전통적으로 호를 가진 사람에게는 ‘선생’이라는 극존칭을 붙이는 것이 예사인데, 포은(圃隱)선생·퇴계(退溪)선생·율곡(栗谷)선생 등의 호칭과 같은 것이다. 사람이 호를 얻게 되면 그 이상의 영예가 없으므로 그 이웃이나 제자들은 모두 호를 부를 뿐, 자나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된다. 조선조 이래 지금까지 명인들의 호는 한결같이 자연에 대한 회귀를 담고 있는데, 특히 ‘산(山)’·‘계(溪)’·‘은(隱)’ 등의 글자를 즐겨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여자로서 당호를 얻은 사람도 적지 않은데, 그 가운데서도 신사임당(申師任堂)·가효당(佳孝堂)·허난설헌(許蘭雪軒)·의유당(意幽堂) 등은 널리 알려진 이름들이다. 최근에는 문인·학자·서예가 등에게 호가 많고, 특히 동양화를 전공하는 사람들의 호는 낙관(落款)과 함께 작품의 성가(聲價)를 좌우하기도 한다. 살아서 불리는 호에 못지 않게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인 고려시대의 사람으로서 시호를 받은 사람도 적지 않다. 시호는 주로 높은 벼슬을 하거나 나라에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이 죽었을 때 나라에서 서훈(敍勳)하여 받드는 것으로서, 죽은 뒤에 즉시 주어지는 경우도 있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시호는 묘당(廟堂)에서 공적을 논하여 그 업적에 맞게 적당한 이름을 짓지만, 직접적으로 명명하여 왕의 이름으로 내린다. 시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자는 ‘문(文)’·‘충(忠)’·‘무(武)’·‘열(烈)’·‘정(貞)’ 등인데, 다같이 시호를 받았더라도 어떤 글자를 받았느냐에 따라 영광의 크고 작음을 구별하는 것이 예사이다. 조선조에 있어서는 특히 학문을 숭상하였기 때문에 ‘문’자가 든 시호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문충공(文忠公)·문정공(文貞公)·문열공(文烈公)·문간공(文簡公)·문원공(文元公) 등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좋은 글자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같은 시호를 지닌 조상들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역대 임금들의 왕호(王號)도 모두 죽은 뒤에 주어지는 시호라 할 수 있는데, 연산군과 광해군은 도덕과 의리에 벗어나 시호를 얻지 못하였으므로 임금이었으면서도 왕호가 없는 것이다. 그 밖에도 불교에 입문하여 얻는 법호가 있고, 천주교에서 얻는 본명(本名) 혹은 세례명(洗禮名)이 있으며, 예능인들이 즐겨 쓰는 예명이 있고, 언론인들이 편의적으로 적는 필명들이 있으나 보편적인 이름이 아니다. 한국인의 작명법 우리나라 사람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사주팔자(四柱八字)나 관상(觀相)과 함께 후천적으로 주어지는 이름이 그 사람의 운세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믿어왔다. 그러한 생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도시의 골목골목에 작명의 명인(名人)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명칭이 의미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볼 때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image)를 형성해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작명이야말로 새로운 한 사람의 탄생을 뜻하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양의 전통적인 작명관(作名觀)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는 것은, 이른바 작명철학으로 풀 수 없는 서양사람이나 고유어로 이름을 지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에 따라서 운명을 개척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성명은 대체로 성씨 한 자에 이름 두 자를 기본으로 한다. 성씨는 날 때부터 주어지는 씨족의 공통적인 이름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서양에서는 생활을 중심으로 가족을 보기 때문에 여자가 혼인을 하면 성씨마저 그 가장의 것을 따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혈통을 중심으로 하므로 성씨를 바꾸는 일이 없다. 타성입양(他姓入養)의 경우나 데릴사위가 되는 경우에 성이 바뀌는 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용인되는 풍속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성을 제외한 두 글자의 선택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두 글자 가운데의 한 글자는 그 종족에서의 세대(世代) 수를 표시하는 이른바 항렬자(行列字)이기 때문에 출생 이전부터 미리 정해져 있는데, 그것도 항렬자의 위치까지 규정되어 있으므로 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고유의 이름자는 주어진 위치에 놓을 수 있는 한 글자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항렬자는 성씨와는 달라서 따르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혈통을 존중해온 우리 나라 사람들은 어떤 혈통(姓氏)의 어느 세대(行列)에 속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기 때문에 억지로 그것을 벗어나려고는 하지 않는다. 항렬자는 같은 씨족을 두고도 분파에 따라 다른 글자를 쓰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일족들끼리는 세대 수를 짐작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항렬자의 배열은 역학사상(易學思想)에 바탕한 오행(金·水·木·火·土) 순환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로는 숫자를 쓰기도 하고, 간지(干支)를 배합하기도 한다. 오행순환이란 ‘금생수(金生水)·수생목(水生木)·목생화(木生火)·화생토(火生土)·토생금(土生金)’의 순환이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윗대에서 ‘금(金)’자를 항렬자로 취하면 아랫대는 ‘수(水)’자를 취하고, 다시 그 아랫대는 ‘목(木)’자를 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5대를 지나서 다시 항렬자가 되풀이되지만, 항렬자가 위에 놓이고 아래에 놓이는 순서가 교대로 되기 때문에 사실상 10대를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항렬자를 쓰는 것은 생면부지(生面不知)의 혈족끼리도 족친으로서의 우의(友誼)를 다지기 위함이니, 우리 나라 사람들의 혈연관념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성명 석 자에서 두 자가 이미 주어져 있고 그 나머지 한자로써 이름을 변별하고자 하니 종족들 사이에 동명이인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비하여 여자의 이름은 항렬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같은 형제자매간이라 하더라도 다양한 것이 예사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항렬자를 써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신라시대 이래 김인문·김대문(金大門)이 있고, 고려시대에도 김부식(金富軾)·김부일(金富佾)·김부의(金富儀) 등 같은 형제들이 같은 글자를 써서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항렬자를 써서 세대를 분별하려는 의식이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름을 짓는 데도 윗대 조상의 이름자를 피하는 것은 당연하며, 특히 성현이나 임금의 이름을 함부로 쓸 수 없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운명론적인 작명관을 떠나서도 부르기 좋고 뜻이 좋은 이름을 짓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도 좋은 이름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 소리가 부드럽고 분명하여야 한다. 지나치게 딱딱한 소리는 그 사람의 인상까지 거칠게 심을 염려가 있다. 그런데 발음이 분명하다는 것은 이름만을 두고 하는 것은 아니다. 국어에는 주지하다시피 다양한 음운변동규칙이 있는데, 주어진 이름으로 하여 성씨가 분명하지 않게 된다든지, 이름자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예컨대 ‘박노영’·‘신문호’ 등과 같은 이름은 누구에게나 ‘방노영’·‘심문호’ 등으로 들려서 혼란을 줄 것이고, ‘은례’·‘혁로’ 등은 ‘을례’·‘형노’ 등으로 들리게 될 것이다. 이는 자음동화현상을 유념하지 않고 이름을 지은 결과이다. 둘째, 음성상징적 가치에 유의하여야 한다. 음성상징적 가치는 개념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적 가치로서, ㅏ, ㅗ 등 양성모음들은 밝고 가벼운 느낌을 주지만, ㅓ, ㅜ 등 음성모음은 정중하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것이다. 지나치게 밝은 소리들만 모으면 가볍고 경망하게 들릴 염려가 있고, 지나치게 어두운 소리들만 모으면 둔중하고 침울하게 들릴 염려가 있다. 성씨와의 균형과 조화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셋째, 한자를 쓸 경우에는 지나치게 뜻이 드러나는 것은 피하여야 할 것이다. 만복(萬福)·천수(千壽)·미향(美香) 등은 그 뜻이 너무 강렬하게 드러남으로써 오히려 역설적으로 비천하게 들릴 염려가 있는 것이다. 되도록 은근하고 중립적인 뜻을 모으는 것이 저항을 없애는 길이라 할 것이다. 그 밖에도 글자의 시각적 균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정한 글자에 획수가 지나치게 많거나 구석지고 별로 쓰지 않는 글자를 써서 남에게 부담을 주는 것도 이로울 것은 없을 것이다. 성명철학이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의미적·형태적인 조화의 바탕을 추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름과 우리 문화 ‘입신양명 현저부모’를 효도의 궁극적 가치로 보는 우리 문화는 모든 것을 자신은 물론, 부모나 가문의 이름을 지키는 데서 비롯하였다. 살아 있는 동안의 영화보다도 유방백세(遺芳百世), 그 빛나는 이름이 길이 후세에 남아 전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호랑이가 죽어서 좋은 가죽을 남기듯이 훌륭한 이름을 역사에 남기는 것이 생의 최고의 이상이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의식(衣食)을 해결할 만하면 족보를 만들고 조상의 산소에 빗돌 하나라도 세우는 것을 소원하는 것은 이름을 그만큼 소중히 하기 때문이다. “역적의 오명(汚名)을 쓴다.”든지, “도둑의 누명(陋名)을 듣는다.”는 데서 보듯이, 역적이나 도둑이 되는 것보다 그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 나라 사람이다. 또, “그런 짓 하면 네 이름이 무엇이 되느냐?”는 말에서도 잘못된 행동 자체보다 이름이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가치관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가치관은 자칫하면 실질보다 형식을 중시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비판의식은 ‘이름이 좋아 불로초’라든지, ‘이름 좋은 하눌타리’라는 말이 겉모양은 좋으나 실속은 없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음에서 확인될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형식이나 격식이 없는 문화가 있을 수 없음을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만한 자존(自尊)은 역시 이름을 소중하게 생각해온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문화는 실로 이름의 문화라 할 정도로 이름을 짓고 얻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같은 관원이라고 하더라도 1급이나 2급이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당하관(堂下官)에서 당상관(堂上官)이 되는 것을 바랐고, 통훈대부(通訓大夫)나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는 것보다 대광보국 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가 되는 것을 원하였다. 그 숱한 직위마다 다른 품계 이름이 주어져 있었으니, 그 이름 하나를 얻기 위해서 평생을 살아온 셈이다. ‘치수 보아 이름 짓는다'는 속담에서 보듯 우리 나라 사람은 이름을 짓고, 이름을 얻기 위해서 사는 것이다. 우리의 문인들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짓고 불러왔다. ‘길동’을 짓고, ‘몽룡’을 지었으며, ‘춘풍’을 짓고 ‘충렬’을 지었다. 그 숱한 이름들 속에 의미를 담은 것이다. 여인들의 이름은 작품 속에서도 감추어지는 것이 예사이다.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의 사씨가 있고, 「박씨전(朴氏傳)」의 박씨가 있으며, 「장화홍련전」의 포악한 허씨가 있었지만 그들의 이름은 깊숙이 감추어져 있다. 여자들의 이름은 흔히 성씨로 대신된다. 윤씨할머니·김씨부인·연안김씨·박실(朴室)·김서방댁 등이 모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은 여자들의 이름이 감추어지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존중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기녀들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고, 어린 소녀들의 이름이 오히려 남아 있는 데서 확인된다. 숙향·옥단춘·춘향·운영·영영·채봉·숙영 등은 기녀들로서 작품 속에 남아 있고, 매화(梅花)·명옥(明玉)·진이(眞伊)·계랑(桂娘)·한우(寒雨) 등은 역사 속에 살아 있다. 1920년대에서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남자의 이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삼돌이·삼보·식이·기덕·성두·길서·수룡·욱이·학보·득추·문수·박추·천수·윤패·명준·진수·뭉태·영득·치삼·득아·들께·쇠다리·시봉·철한·억쇠·득보·덕근·수택·돌쇠·길보·견만·기섭·대섭·윤섭·용칠이·장손·기선·만득이·복돌·준이·구길·돌이·붓들이·만이·칠성·바우 등이며, 여자의 이름은 복녀·순이·기특·얌전·확실이·이쁜이·모화(毛火)·낭이·술이·중실·옥분·동이·분녀·순야·옥녀·을손·월손·섭춘·점순·봉필·덕순·분이·설희·용녀·정이·필련·기실·정아·필녀·선이·순녀·옥남·연이·춘례·구월이·화산댁·복술·해순·탄실·떠벌네·판례 등이다. 이상의 이름들은 작가들이 그 시대의 소박한 농민의 아들딸들의 이름으로 지은 것들이다. 투박한 아명들이 그대로 젖니처럼 남아 있어서 오히려 인정미를 더해 주고 있다. 요컨대,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보다도 가문의 이름과 함께 태어나 그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하다가 이름과 함께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주석 주01太祖王주02次大王주03新大王주04故國川王주05山上王주06近肖古王주07典支王주08毗有王주09武寧王주10聖王주11威德王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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