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차방정식 근과 계수 교육과정 - samchabangjeongsig geungwa gyesu gyoyuggwajeong

교과서에는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참고서에서는 빈번하게 나오는 '근과 계수와의 관계' 란 이론이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이차방정식에 대해서

 이라는 이론은 수학 교육을 마음먹고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거쳐야 하는 코스 중에 하나인 걸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물론, 삼차방정식 사차방정식에 대한 근과 계수와의 관계성도 논의할 수 있죠.

이 공식은 '수학의 정석' 이라는 교재에서 탄생한 '장사속 수학의 결과물' 이란 답변을 들었던 내용 중 하나였었습니다. 즉 '빨리빨리 문제를 풀기 위해'

(수학을 공부하는 본래의 목적이 문제풀이가 아니란 사실은 매우 중요한 논지이지만...) 나왔던 수학 공부가 아닌 암기하게 만든 원흉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질문했던 문제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학교 수행평가에 반영되는 문제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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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세근을 a,b,c 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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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은?

삼차방정식의 근과 계수와의 관계를 이용하지 않고,

f(x) = x³-2x²-4x+8 로 놓고 조립제법을 이용해 인수분해하면

f(x)=(x-2)²(x+2)

로서, x=2 는 중근, x=-2 입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그 이후로는 생각을 못해서 실제로는 문제를 하나 틀렸습니다...)

이걸 a,b,c에 넣고 풀었는데 a=2, b=2, c=-1 을 넣고 풀면 x의 근을 구할 수 있습니다.

Reasoning 이 잘못된 비논리적인 풀이인가요?

선생님은 이렇게 푼 경우의 경우에 체크표시를 하고, 삼차방정식의 근과 계수와의 관계를 이용해야 정확한 풀이라고 하는데요.....?

(저희 동네는 부천인데, 선생님이 자가용이 없어서 사당역(?)까지 지하철 타고 가면서 채점한다고 하더군요 -_-;;) (주 : 2007년 당시 깨알같은 드립)

제가 질문했던 문제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원래 c=-2인데 잘못 계산해서, 엉뚱한 답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실수는 이것 때문에... 답을 못낸것!)

근데, 이 문제풀이에서 지적받은 부분은 해를 잘못 구한 것에서 답을 못구한게 아니라 '삼차방정식의 근과 계수와의 관계' 를 이용하지 못해

감점을 먹은 사실이었습니다.

삼차방정식의 근과 계수와의 관계를 이용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일단, 그 암기해야 할 이론은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이걸 외우고 있을 겁니다....

<삼차방정식의 근과 계수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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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두 근을 각각 α, β,γ 라고 한다면

α + β + γ = -b/a

αβ+βγ+γα = c/a

αβγ=-d/a

 입니다.

근과 계수와의 이론을 이용해서 푼다면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sol.

  일단, 분모가 0이 되면 안되니까 x≠a , x≠b, x≠c 여야 합니다(x가 a,b,c,란 값을 해로 가지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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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x-a)(x-b)(x-c)로 통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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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모를, (x-a)(x-b)(x-c) 를 인수로 가지는 , 즉 세 근을 인수로 가지는 거니까, 분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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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될 거고

분자는, 전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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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

이 됩니다. 이 때 근과 계수와의 관계의 이론을 사용하면

a+b+c = -(-2)/1 = 2 , ab+bc+ca = -4/1 = -4

가 됩니다.

그럼,

3x²-4x-4=0

이란 방정식을 만들고 인수분해 해 풀면

x=2, x=-2/3 

 이 나옵니다. 이 때 분모가 0이 되는지 확인해 봐야 하는, x값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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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0이 되는 값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x=2 의 경우 0이 됨으로서,

즉 분모가 0 이 되는 결과가 나옵니다. 따라서 x=2 의 근은 적합치 않고, x=-2/3 만 근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게 아마 수학 선생님이 원했던 결과였을 겁니다........ 근과 계수와의 관계를 사용했잖아요... ^^

아마, 그 때 당시의 수학 선생님이 지적한 부분은 '근과 계수와의 관계'를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거였단 걸 알 수 있는데, 여기서 대수학님과

토론을 한 결과, 이런 이야기를 얻었습니다.

대수학님께서는 근과 계수와의 관계는 별로 수학이 도움이 되지 않는 이론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이 만들어낸 장사속 결과물이라는 답변을 들었는데요. 문제를 빨리 푸는 법을 체득하는게 수학이라고 여기는 것이 중요한(그렇게 왜곡된) 한국 사회에서는 최고의 묘약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댓글을 하나 더 달아주셨는데요....

근과 계수와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것과 관계된 문제를 출제를 하고 그렇게 출제된 문제를 쉽고 빨리 풀게 하겠다는 것외에는 수학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는 내용이다.

한국의 수학문제라는 것이 모두 필요한 수학 내용을 알게 하겠다거나, 알고 있어야 할 수학 내용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를 평가하겠다는 의도 보다는 시험을 통해 변별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 진다.

이 점이 미국의 수학 교육과 한국의 수학교육의 차이점이다. 미국의 대학 준비 시험인 SAT 는 철저하게 표준화의 범위 내에서 출제를 하고 쓸데없는 열쇄를 필요로 하거나 과정이 복잡한 문제를 출제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학교 공부만 충실히 하면 누구나 좋은 범수를 받도록 되어 있으며, 변별력 보다는 표준화의 내용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 또는 문제의 지문을 얼마나 잘 이해 하느냐, 그리고 수학적 방법론을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느냐 를 평가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출제 방식도 몇년에 한번 씩 문제 은행식으로 출제를 하여 보관 하고 있으면서, 일년에 7번 시험을 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문제들이 출제가 되는지 누구나 알 수 있다. 만약 이런 방식의 시험이 한국에서 이루어진다면 거의 모든 학생들이 만점을 받아 변별력 논란속에 자리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만점자가 속출하고, 시험을 몇번씩 응시를 하여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있으며, 그 어느 누구도 변별력의 문제를 재기 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일부 동양인(주로, 한국학생들과 중국학생들..)들을 제외 하면 SAT 시험 만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상적 학교 수업을 따라 공부를 하고 때가 되면 SAT 시험을 보고, 필요하다면 원하는 점수가 나올때 까지 몇번이고 시험을 보는 정도 이다. 이러한 것은 시험을 관리 하는 기관이나 대학에서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할 뿐 아니라, 여러번 응시한 학생과 한번만 응시한 학생들과의 점수 차이에 대한 통계적 자료를 가지고 이를 입학 사정시 반영을 한다. 따라서, 점수를 얼마를 받았느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범위에(대개, 30 - 50 점 정도...) 들어가 있느냐를 가지고 입학 사정을 위해 참고적인 자료로 활용을 할 뿐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의 부모들은 이를 이해 못하고 SAT를 위해 적지 않은 돈을 낭비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학교의 공부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점도 미국의 부모들과 한국 부모들의 차이점이다. 미국에서 SAT 만을 위해 사교육을 시키는 것이야 말로 아마 가장 가치없게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근과 계수와의 관계가 아닌 꼭 알아야할 수학 내용을 나열하면.....

Theorem) 모든 실수를 계수로 갖는 다항식은 반드시 적어도 한개의 해를 갖는다.

Theorem) (Division Algorithm) 책을 찾아 보기 자란다.

Theorem) (Remainder theorem) f(a) 는 다항식 f(x) 를 (x-a) 로 나누었을 때의 나머지 이다.

Theorem) 다항식 방정식 f(x)=0 가 x = a 를 해로 가지면, 다항식 f(x) 는 (x-a) 를 factor 로 갖는다.

Theorem) n 차 다항식 방정식은 반드시 n 개(중복을 허용하여 계산 할 때)의 해를 갖는다.

역함수를 사용하여 풀 수 없는 다항식 방정식의 경우 바로 위의 이론들과 실수의 성질(a*b=0 이면 a=0 또는 b=0) 을 사용하여(인수분해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해를 찾는다. 이것이 우리가 방정식을 풀거나 인수분해를 할 때 사용하는 수학 내용의 전부이다.(물론 일반해를 구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즉, 위의 내용을 이용하여 다시 정리를 한다면,

Theorem) n 차 다항식 방정식 f(x) = 0 가 a1, a2, a3, ....., an을 해로 가지면,

f(x)= c(x-a1)(x-a2)(x-a3)……(x-an) 으로 인수분해 된다.

이 한가지를 알고 있으면 근과 계수와의 관계를 암기 하여야 할 필요는 없다. 필요하다면 이 정리를 이용 각각의 필요한 경우에 맞는 수학 내용을 스스로 만들어 내면 된다. 물론 문제를 푼다는 면에서 보면 효율적이지 않을 수는 있지만 수학을 공부한다는 면에서 보면 바로 이런 방식의 공부를 하여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근과 계수와의 관계에 대하여 지적을 하는 것은 이런 내용을 암기하게 함으로서 반드시 배워야할 위의 정리들을 배우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근과 계수와 관계와 같은 쓸데 없는 내용들이 없어져야 정상적 수학 교육이 이루어진다.

 대수학님께서는 이, 근과 계수와의 공식 암기를 통해서, 앞에 배웠던 이론은 깡그리 잊어버리고(즉, 가장 중요한 기본개념과 연계되지 않는), 앞에 배웠던 최소단위의 개념과 연계에서 알아낼 수 있는 이론들을 접목할 수 있는데...

 앞에 이론과 연계되지 않는 쓸모없는 공식을 하나 암기하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혹, 그걸 이용해야지만 풀 수 있는 문제도 있습니다. 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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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같은 방정식 소자(?)가 잘 인수분해 되지 않는 다면, 근과 계수와의 공식을 쓰는게 빠를지도 모를일입니다. 

(그건, 아예 작정해놓고, 제한시간안에 그 이론을 써야지만 빨리 풀리게 해 놓은 거죠...)

 그것은 앞에 말한대로 변별력에 기인할 겁니다. 배웠던 수학 이론과 상관없이.... 공식을 알고 있느냐,(암기하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 의 차이이니까요....

이건, 답을 갈구하는 것이지 수학이 아닙니다....

수학을 그저 답을 빨리 찾아가는 것, 답을 찾아내는 방식을 암기하는게 목적이라면 , 무시하고 외우시면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럼 할 말이 없습니다....

그게 가장 빠르니까요.  그러나, 모 신문에 게시된 칼럼을 하나 쓰면서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일찍이 수학자가 되려던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수학 교과서 뒤에 실린 해답을 맹목적으로 믿고 이를 열심히 반복했기 때문이었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답은 모두 정답이었는데 말이지요.”

인도 태생의 가톨릭 신부인 앤서니 드 멜로의 <일 분 지혜>에 나오는 이야기다. 만일 당신이 이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탁 치며 ‘그렇지!’ 하고 동의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수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보아도 틀림없다. 당신도 수학 공부란 그저 문제의 해답을 익히는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일반인들은 수학이란 문제를 푸는 학문이니, 수학 학습은 문제의 답을 익히는 것이라 여기는 것 같다. 이러한 생각은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수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곧 문제를 풀어주는 것으로 인식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음악 선생님은 음악 시간 내내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불러준다는 말인가? 미술 선생님은 직접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인가? 아닐 것이다. 문학을 가르친다고 국어 선생님이 소설을 창작하거나 시를 짓는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수학 선생님은 수학 시간 내내 문제를 풀어주는 사람으로 인식돼 있고, 대부분의 학교 수업에서도 실제 그러하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딱한 것은 선생님이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고 학생들이 그대로 따라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도 그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착각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문제를 풀어줄 때는 그 풀이 과정이 잘 이해가 되는 것 같았지만, 잠시 후에 다시 그 문제를 접하면 처음처럼 백지 상태가 되고 마는 경험을 무수히 많이 겪었으리라. 당신이 학창 시절에 사용하던 수학책의 어느 부분에 가장 많은 손때가 묻어 있었는지 기억해보라. 아마도 해답이 있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해답을 보고 풀었건만 나중에 보니 또 모르기 때문에 다시 들춰보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문제를 접할 때마다 해답집을 찾아야 하는 이 안타까움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며, 그동안 했던 공부는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요즘은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길을 찾으니 굳이 지도를 찾아볼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서울시청에서 경포대 해수욕장을 찾아간다고 하자. 초행길이라 하더라도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그리고 틀림없이 경포 바닷가에 도착할 수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운전해 온 길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라서만 운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비게이션 없이 전에 가보았던 길을 다시 가라고 하면 시쳇말로 ‘대략난감’일 수밖에.

수학 문제 풀이는 길 찾기와 같다. 주어진 문제를 출발 지점이라 하면 그 문제의 정답은 도착 지점이니, 수학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은 출발지에서 도착지에 이르는 올바른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풀이해 놓은 방법을 그대로 따라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결국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도착지에 이르는 길을 하나하나 선택해서 찾아나가는 과정을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는 것과 똑같다. 말하자면, 선생님이 ‘친절하게도’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문제를 풀어주는 우리의 수학 수업은 내비게이션의 지시대로 길을 찾아가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훈련이지 교육이 아니다.

미국 유학 시절, 조교로서 대학 신입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의 이야기다. 대학원 과정 중이었기에 시간이 빠듯했던 터라 수업 준비를 하는 시간이라도 줄여볼까 싶어 해답이 들어 있는 교사용 지도서를 출판사에 주문했다. 그랬더니 정작 출판사에서 보내온 것은 지도서가 아니라 ‘당신이 이 책으로 수업을 하는 교사라는 증명서를 보내시오’라는 답신이었다. 요컨대 학생들에게는 해답집을 건네주지 않겠다는 것이 출판사의 방침이라는 얘기였다. 한국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해답집뿐만 아니라 소위 ‘족보’라는 예상 문제까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나로서는 적잖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수학을 가르치는 것, 나아가 교육이란 무엇이냐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들 나름의 관점과 철학을 단편적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오늘도 교육방송 채널에는 문제 풀이에 여념이 없는 소위 ‘스타’ 강사들이 출연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거침없이 일필휘지로 풀이 과정을 적어가며 자신만의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양 의미심장한 미소까지 띠기도 한다. 그 장면 위로 아무 생각 없이 이를 열심히 받아 적고 있을 수많은 학생들이 오버랩되면서 앤서니 드 멜로가 언급한 학생이 떠오른다. 내비게이션식 수학, 이는 결코 수학이 아니다.

박영훈 | 수학자  2013.8.4일 경향신문 오피니언 내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