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 - sikineun ilman haneun salam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 - sikineun ilman haneun salam

유디v 브런치 작가

brunch.co.kr/@goodgdg *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비즈옵스(BizOps)로 

근무하며 조직 구조와 체계를 다루고 있다.

"다른 팀이 무슨 일 하는지 왜 알아야 돼?"필자는 이 말을 들으면 속으로 안도한다. 대개 이러한 말은 전사 회의 시간에 다른 팀의 업무 브리핑을 들으며 지루하다는 듯 하품하는 사람이 말한다. 그들은 거기에 더해 '시간이 아깝다'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만약 이러한 표현을 우연히 듣게 됐다면 가슴을 쓸어내리며 감사히 여겨도 된다. 조직 내 사일로Silo 현상을 미리 알아차리게 됐기 때문이다.사일로에는 곡식 창고라는 뜻이 있다. 단단한 벽을 두르고 남들이 곡식에 접근하지 못하게 창고를 만든 것처럼, 회사 내에서도 여러 사일로가 생긴다. 한 팀이 다른 팀과 벽을 치고 자기 팀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현상이다. 이들은 서로 협력해야 함에도 협력하지 않고, 회사 전체의 목표나 공동의 목표보다도 자기 팀의 손해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자기 팀의 손익이라 함은, 업무량이 늘어나거나 평가/보상에서 더 많이 인정받는 것 등을 말한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이런 현상을 지켜보면 속에서 천불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나 몰라라' 하고 반목하기 때문이다.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IT회사에서 앱 서비스를 만드는데 기획팀과 개발팀의 사이가 좋지 않다. 기획팀에서는 '개발팀이 매번 자기들 업무를 줄이기 위해 개발해야 하는 기능을 안 된다고만 한다'며 욕한다. 개발팀에서는 '기획자라는 사람들이 개발 이해도가 낮아서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지도 모르면서 매번 언제까지 가능하냐는 무리한 일정만 요구한다'라고 욕한다. 그들은 상대팀이 매일 무슨 일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업무가 많은지 적은지, 업무 프로세스가 어떤지도 모른 채 막연하게 상대팀을 무능하다고 생각하며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다.혹은 이런 경우도 있다. 서로 완전히 무관심한 경우다. 영업팀에서 고객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마케팅팀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고객 인터뷰를 따로 진행한다. 어쩌다가는 서로 같은 고객한테 전화해서 다른 내용을 물어보기도 한다. 만약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알았더라면 같은 일을 두 번, 세 번 반복하지 않고 시너지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고객에 대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며, 인터뷰 방법론에 대한 노하우도 나누었으리라. 하지만 직장에서는 서로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멍청한 시간낭비가 반복된다.사일로 현상은 왜 발생할까?
단언컨대 사일로의 시작은 다른 팀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것에서 출발한다. 겉보기에는 고작 다른 팀의 업무를 모르는 것 때문에 사일로 현상이 발생한다는 게 논리적 비약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드러난 현상의 이면에 담겨 있는 가치관이다. 작은 생각이 파생시키는 수많은 행동이 쌓여서 사일로 현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나가다가 "다른 팀이 무슨 일 하는지 왜 알아야 돼?"라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면 행운을 잡은 것과 같다. 그 사람이 야기할 수 있는 수많은 문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다른 팀원이 하는 일을 모르면 신뢰가 줄어든다
동료에게 일을 맡기거나 협력하려면 기본적으로 그를 신뢰해야 한다. 그가 맡은 업무를 열심히 수행해 기대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신뢰가 기본 전제다. 결과가 좋은지는 제쳐두더라도,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그가 '무슨 일을, 얼마나 열심히,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나는 매일 뼈 빠지게 일하는데 저 팀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일을 열심히 하는지도 믿음이 안 가면 어떻게 그들에게 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사무실에서 다 같이 모여 일할 땐 그나마 나았다. 바로 맞은편 자리에서 같이 야근하는 모습이나 바쁜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격근무가 보편화되면서 다른 사람이 일하고 있는지, 놀고 있는지도 알기 어려워졌고, 동시에 내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다는 불안감도 생겼다. 그래서 원격으로 근무하면 오히려 커뮤니케이션 비용과 행정 절차들이 늘어난다. 경영자도 직원을 신뢰하기 어렵고, 직원도 직원끼리 신뢰하기 어렵고, 내가 일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어려운 탓이다. 그만큼 직장에선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자신이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는 착각
다른 팀이 무슨 일을 하는지에 무관심한 사람은 습관적으로 편을 가른다. "그 일은 기획팀에서 해줘야 할 일이다" "그 일은 디자인팀에서 아직 안 넘겨줘서 못 하고 있다"라는 등 매 순간 우리 팀과 다른 팀을 나눈다. 기획팀이 지금 갑작스러운 문제로 얼마나 난처한 상황인지, 디자인팀에 업무가 너무 몰린 상황인지 등 다른 팀의 상황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 팀의 이익만 대변한다. 결국 모든 문제를 다른 팀에 넘기고 자신의 성과 부진 또한 축소하려 한다. 전형적인 사일로 현상이다.내가 속한 조직에도 그러한 팀원이 있어서 수차례에 걸쳐 1on1 미팅을 진행했었다. 그들은 왜 다른 팀에 무관심하고, 다른 팀과 편을 가르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기저에는 '선의'가 숨어있었다. '나는 내가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이해득실을 따지거나 정치질을 하려는 악의가 없었다. 특히 보수적인 직장에서 근무한 사람에게서 이러한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보수적인 회사는 권한을 절대 쉽게 주지 않는다.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경영진이 결정하고, 전략도 팀장급만 논의해서 정하며 일개 직원들은 탑다운 방식으로 이를 통보받는다. 회사의 방향이나 전략, 당면한 문제들은 꽁꽁 숨기고 사원들에게 공유하지 않는다. 그들이 불안해하거나 업무에 몰입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도 덧붙인다. 그리고는 '너는 네가 맡은 일에만 집중해'라고 이야기한다. 직원들은 그냥 위에서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되고 다른 팀이 무슨 일을 하는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게 된다. , 조직의 보수적인 구조와 문화가 직원의 마음가짐을 이기적으로 만들고,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직원들이 다른 팀에 무관심해진다.사일로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사일로 현상을 해결하려면 다른 팀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밖에 없게 만들고, 회사의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아래와 같다.회사 방향성과 문제를 공유한다 ― 주간회의
회사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속한 조직은 매주 1~2회씩 전사 인원이 모여 주간회의를 진행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뤘다. 분기 혹은 반기 목표와 마일스톤, 팀별 프로젝트 현황, 레드 플래그Red Flag1), 축하할 일, 전사 공지사항 등이다.가장 먼저 한 일은 팀별 업무 내용을 정리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일이었다. 해당 파트의 전문 용어들까지는 알 필요가 없으나, 프로젝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만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용어를 정리했다. 따로 용어집을 만들고, 신규 입사자에게는 매번 온보딩 과정에서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이렇게 직원들이 알게 하고 싶은 정보가 있으면 정보를 떠먹여 줘야 한다. 장문의 글이나 복잡한 숫자들을 늘어놓고서는, 공지했는데 왜 확인하지 않았냐고 따져봤자 아무 소용 없다. 원래 실무자는 자기 일에 집중하느라 다른 정보에는 둔감하다. 그러니 이를 받아들이고, 애초에 정보를 쉽게 가공해서 반복적으로, 친절하게 전달하는 수밖에 없다.주간회의에서 특히 중요한 점은 레드 플래그인데,이는 사업의 적신호가 될 만한 우려 사항을 뜻한다. 전체 사업이나 다른 팀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걱정거리를 자유롭게 공유하고, 이를 회의 시간에 하나씩 점검하며 다 같이 해결 방안을 찾아본다. 이렇게 했을 때 장점은 문제를 '남의 팀 문제'가 아니라 '우리 회사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보통 문제가 터지고 나서 네 탓, 내 탓을 따지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레드 플래그를 미리 공유하면 '공동의 문제'가 되어 사일로 현상이 줄어든다.먼저 나서서 투명하게 공개한다 ― 회고 다이어리
각자의 일일 업무를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공유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회사가 다른 팀의 업무를 떠먹여 주는 게 아니라, 다른 팀 업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스스로 확인해볼 수 있도록 장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특히 딱딱한 업무 보고 형태가 되면 쓰는 사람도 불편하고, 아무도 다른 사람 업무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에 '다이어리' 형식으로 진행하는 게 특이한 부분이다.회고 다이어리는 일일 업무와 더불어 그날의 회고를 적는 사내 게시판이다. 일기 형식으로 하루를 돌아보고 그날의 느낌을 적기도 하고, 업무적인 느낀 점이나 고민을 적기도 한다. 모두가 보는 공간에 적기 때문에 처음엔 부담스러워하지만, 나중엔 서로의 회고를 읽어보며 자극을 받는다. 업무를 공유할 뿐 아니라 고민과 인사이트도 함께 공유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 특히 그를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갈망하는 것도 역량이다 ― 채용
사실 협업은 껄끄럽고 번거로운 일이다. 서로 싸우듯이 의견 차이를 좁힐 때도 있고, 안 해도 되는데 굳이 나서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이런 협업을 잘하려면 무언가 갈망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2) 왜냐하면 갈망하는 사람은 더 상위의 가치를 위해서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직장과 직업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수준이 나뉜다. 일을 수단으로만 보는 사람은 퇴근할 시간만 기다린다. 자기 직무와 커리어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자기 맡은 일에만 신경 쓴다. 그리고 회사가 가는 방향에 공감하는 사람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다른 팀과도 협력한다. 더 나아가 자신이 맡은 역할과 회사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아는 사람은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한다. 사람의 가치관을 바꾸고 억지로 동기부여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에, 처음부터 공동의 목표를 갈망하는 사람을 뽑는 게 좋다. 물론 모든 구성원이 갈망하는 사람일 필요는 없다. 역할에 따라 팔로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앞서 회사의 전체 방향이나 문제점까지도 모든 구성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구성원들의 관점을 조직 단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다. 직원을 직원으로 보면 직원으로서만 회사를 다닐 것이고, 동반자로 보면 함께 회사를 만들어갈 것이다.채용만큼 중요한 건 또라이를 내보내는 일이다. 사일로 현상을 조장하는 촉매가 있다면 내보내야 한다. 한 명의 또라이가 있으면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의 프레임에 영향을 받는다. 그들은 언제나 문제의 원인을 '사람'이나 '숨은 의도'에서 찾고, 언제나 손익을 따진다. 그들을 내버려 두면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직을 바꾸려 들 것이다. "다른 팀이 하는 일을 왜 알아야 되나요? 비효율적인 회의를 없애주세요"라고 주장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는 회사가 된다. 나는 그들이 내가 속한 조직을 망치는 꼴을 1 1초도 보고 싶지 않다.개인이 회사의 방향에 공감하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도록 얼라인Align 해야 한다. 얼라인이 잘된 구성원은 회사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관심이 많고, 회사에 기여하려 한다. 그런 사람들이 사일로를 깨부순다
반면 다른 팀이 무슨 일 하는지 왜 알아야 되냐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사일로를 만든다. 그 신호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1)

managing, 해럴드 제닌 저, 권오열 옮김, 오씨이오 발행
2)
《최고의 팀은 왜 기본에 충실한가》, 패트릭 렌시오니 저, 유정식 옮김, 흐름출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