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존의 죽음 - meosjin sinsegye jon-ui jug-eum

안녕하세요~! 멋진 신세계 2탄입니다. 

이번에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포스팅을 시작하겠습니다.

멋진 신세계 속 공간적 배경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멋진 신세계라 일컬어지는 문명 세계와 아직 기술과 문명이 도입되지 않은 야만인 구역입니다. 

야만인 구역에서는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하고 , 다양한 종교가 있으며, 나이가 들고 주름이 생깁니다.

그렇기에 멋진 신세계 주민들은 야만인 구역 주민들을 하찮고 천한 짐승 취급을 합니다.

'멋진 신세계'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버나드'가 등장합니다.

버나드는 심리학자이고 알파 플러스 계급으로 최상위 계층입니다.

하지만 버나드는 치명적인 단점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알파 플러스 계급답지 않게 키가 작고 풍채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화과정 속에서 대용액에 알코올이 들어갔다는 등 많은 소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버나드는 이러한 큰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었죠.

이 컴플렉스는 버나드가 문명 세계를 조금씩 부정하기 시작하는 원인이 됩니다.

다름은 곧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곧 고통을 수반하게 되고 이 고통은 소마를 통해 없애는 것이 룰이었습니다.

버나드는 소마를 먹는 것이 아닌 고민과 고뇌를 하는 삶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여기에 버나드와는 다른 또 다른 '다름'이 존재합니다.

바로 헬름헬츠입니다. 헬름헬츠는 너무나 우수했습니다. 

알파 플러스가 아닌 알파 플러스 플러스 플러스인 존재였죠.

다름은 고독을 만들고 고독은 사색을 만듭니다. 

너무나 우수했던 헬름헬츠는 알파 플러스 계급의 사회와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공유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인문학 쪽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런 그의 행동은 사회에 배척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버나드와 같이 사회와 거리를 두고 있는 존재였습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레니나, 레니나는 외모가 뛰어나고 몸매가 좋으며 멋진 신세계의 룰을 착실히 이행하는 존재입니다. 레니나는 버나드와 함께 다니면서 버나드와의 의견 대립을 통해 문명 세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인공, 존입니다. 

존은 인공부화 소장과 린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전에 포스팅했던 세계관 편을 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문명 세계 속에서 '임신'은 절대 금지였습니다. 

그런 린다가 어떻게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인공부화 소장과 린다는 야만인 구역으로 여행을 가게 되고 여행 중 린다는 사고를 만나게 됩니다.

소장은 린다를 야만인 구역 속에 찾다가 결국 못찾고 혼자 돌아가게 되고 린다는 야만인 구역 속에 혼자 낙오하게 됩니다. 

그런 린다의 뱃속에 존이 있던 것입니다.

그렇게 문명 세계의 삶이 자신의 가치관, 그 자체였던 존재는 전혀 다른 세계 속에 발을 담그게 됩니다. 

어느 야만인 부족과 같이 살게 된 그녀는 피부가 하얗고 

다른 야만인 여자들과는 달랐기 때문에 많은 야만인 남자들의 추파를 받게 됩니다.  

많은 남성들은 그녀를 겁탈하게 됩니다. 린다의 시련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야만인 부족은 엄연히 결혼을 하고 각자 짝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남편을 홀렸다는 이유로 부족 내 여성들은 그녀를 무참히 학대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고통에도 린다가 정말 참지 못했던 것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었죠.

자신이 평소에 천하고 하찮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야만인 구역에서는 모든 것이 당연스럽게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린다는 보호 받을 수 없었고 그녀는 항상 자신의 과거를 동경하며 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의 아들 존은 달랐습니다. 문명 세계 속의 삶을 경험해보지 못한 존은 야만인 구역에서의 삶을 잘 적응했습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은 받았지만 부족 내 어른들은 그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죠. 

또한 존은 글을 배우기 위해 받은 셰익스피어 전집을 매일 읽고 읽었으며 셰익스 피어는 존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린다는 날이 갈수록 부족 내 남자들에게 겁탈을 당했고 그로 인해 수반되는 여자들의 폭력 또한 심해졌습니다.. 존은 그걸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죠. 

과거를 동경했던 린다는 존에게 자신이 살던 세상을 무용담처럼 얘기를 했고 존은 이 세계를 '멋진 신세계'라 지칭합니다. 

이런 존은 더 이상 어머니인 린다의 고통을 두고 볼 수 없었고 멋진 신세계를 동경하는 마음이 생기며 야만인 구역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다시 문명 세계로 돌아와서

버나드는 심리학자로써 야만인 구역을 답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였고 그는 레니나와 함께 야만인 구역을 답사하기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버나드는 존을 발견하게 되죠. 버나드는 존에게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연구할 가치가 큰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야만인 구역에 떨어져 문명의 빛을 못 본 문명인이었죠.

존은 멋진 신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어머니의 고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때문에 존은 린다와 함께

버나드를 따라 문명 세계로 떠나게 됩니다.

잘못된 사상을 지녔다는 이유로 좌천 될 뻔한 버나드는 야만인의 손에서 

길러진 존을 데리고 등장했다는 이유로 일약 스타 덤에 오르게 됩니다.

문명 세계 속 사람들과 같은 모습을 한 야만인의 등장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모두가 야만인을 한번이라고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체구가 외소하고 알파 플러스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회와 거리를 두었던 버나드가 존에 의해서 사교계의 중심에 서게 되자 

그는 예전에 느꼈던 고뇌와 고민 있는 삶이 아닌 세계의 중심에서 더욱더 세계의 룰을 따르는 선두두자로 변모합니다.

소마를 먹지 않는 삶, 고민과 고뇌를 하는 삶을 지향하던 그의 모습은 

단지 열등감에서 비롯된 반항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돌아온 린다는 야만인의 삶을 살면서 겪었던 모든 고통과 마음의 훼손을 보상받기 위해 소마를 과잉 섭취하기에 이릅니다. 

소마에 빠져 연구소에서 제공하는 영상의 재미만을 느끼며 

그녀는 어떠한 고뇌와 고통없이 그저 외부에서 제공된 재미만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스타가 된 존은 신세계의 문명을 소개 받게 됩니다. 

야만인 구역에서 문명 세계를 동경했던 그가 

실제 눈으로 그 모습들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점점 그는 실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의 내적 가치관을 구성한 셰익스피어의 사상과 야만인의 문화와는

너무나도 달랐던 것입니다. 

비인간적인 사회, 인간적 가치보다는 통제가 우선되는 사회, 외부에서 오는 쾌락에 좀비들처럼 맹목적으로 통제되는 상황 속에서 존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는 안에 들어가 그가 소지하고 있던 셰익스피어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계속 되는 충격에 그는 결국 방 문을 걸어 잠그기에 이르렀고 버나드는 크게 당황합니다. 

버나드는 존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에게  존이 나오기를 거절한다고 전하자. 

그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야만인 따위가 자신들과의 만남을 거절한다는 것이었죠. 

존은 그렇게 방문을 걸어 잠갔고 문명 세계를 자신과 격리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유일하게 말이 통했던 헬름헬츠조차 존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존을 비웃는 모습을 보이자 

존은 점차 철저히 신세계를 배척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사상 속에 갇히게 됩니다. 

존은 자신이 동경했던 레니나가 자신 앞에서 옷을 벗자 그녀를 매춘부라 욕하며 죽이려고 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광기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린다의 죽음을 목격하기에 이릅니다. 

소마를 과잉섭취한 린다는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문명 세계 속 죽음은 당연하면서도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어릴때부터 실제 죽음의 장면을 보여주며 학습시키며 죽음을 당연하다고 교육시켰고 린다의 죽음 또한 그들에게는 아이들의 교육 도구이자 그저 단순한 실험체였습니다.

린다가 그렇게 죽음에 이르자 존은 난동을 피게 되고 린다의 죽음에 그 누구도 슬픔이란 감정을 갖지 않는 세계에 회의를 느낍니다.

하층 계층에게 주어지는 소마를 막으려고 난동을 피우던 존은 잡히게 되고 버나드, 존, 헬름헬츠는 총통이 있는 방으로 불려지게 됩니다.

총통 무스타파 몬드... 그는 이 문명 세계를 지배하는 지배계층입니다.

그는 모든걸 알고 있고 모든 인문학적 소산을 불태워버렸지만 그의 서재에는 그것들이 남아있죠. 존과 같이 셰익스피어를 아는 존재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존과 무스타파 몬드의 설전은 

책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은 무스타파 몬드에게 셰익스피어같은 인문학적 소산들을 

사람들에게 배포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무스타파 몬드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배포가 되더라도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 사람들이 사는 세계는 이미 다르기 때문이다.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여기서 대표되는 오셀로만 하더라도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사랑의 비극입니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사랑과 이 사랑을 갈려놓으려고 하는 이야고....

이미 문명 세계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고 모두가모두의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굳이 저런 비극을 겪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되면 읽히지도 않는 것입니다.)

존은 왜 모든 사람을 똑같이 만들지 않고 계급을 두냐고 질문하게 됩니다.

무스타파 몬드는 모든 사람들이 능력이 같은데 능력이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불안정이 생기고 그 불안정으로 인해 사회는 반란과 혼란의 연속으로 휩쌓인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실제로 이 실험을 사이프러스 섬이란 곳에서 진행했고 그들은 야만인들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종교 또한 그러했습니다. 

종교라는 자체는 본래 불확실성에서 나오는 존재. 

하지만 이제 이세계는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사라진 세계였습니다.

죽음은 당연한 것. 

나이 들면 죽음으로 이어지는것이 당연하다고 배우며 죽음의 공포는 사라졌고 

그들은 더 이상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질 필요도 사라진 것이다.

존은 반문했습니다. 

희생과 저항, 인내가 있어야 삶은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무스타파 몬드는 말했습니다. 

희생,저항,인내는 더 이상 문명인과는 맞지 않다. 

더 이상 이들은 인내할 필요도 저항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삶을 행복하게 느껴지도록 조건반사실험과 유전적변이를 통해 탄생된 존재들이니깐.....

그들은 행복할 이유 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행복 외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세계. 

만이 존재하고 어둠은 존재하지 않은 세계. 

어둠의 가치를 모르는 세계. 

어둠에서 오는 고뇌와 고민의 장쾌성을 느끼지 못한는 세계...

존은 더이상 할 말이 없어지게 됩니다.

탄생부터가 달랐고 이 세계는 더 이상 변화 할 수 없는 세계였던거죠.

그는 모든 걸 포기하고 외딴 곳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는 혼자 남았죠.

거기서 그는 모든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며 잘못된 행동과 생각을하면 

그는 자유롭게 고뇌하고 고통 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일구며 생활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존을 관찰하던 문명인들은 존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을 보게 됐고 

고통과 고뇌를 모르던 문명인들은 사람이 스스로 자학하는 모습을 

처음 경험하게 됩니다.

충격을 먹은 문명인들은 이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존 주위로 구름같이 몰려들게됩니다.

더 이상 문명 속에서 살기 싫었던 존은 필사적으로 그들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그들은 존을 조롱하고 비웃고 동물 취급하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레니나가 찾아옵니다.

레니나는 존을 사랑했고 존 또한 레니나를 사랑했습니다. 

사상이 달랐던 그들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존재였지만 

존은 레니나를 마치 여신처럼 동경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레니나조차 자신을 조롱하러 온 문명인들과 같은 취급을 한다고 생각한 존은 광기 어리게 레니나를 채찍으로 마구 때리기 시작합니다. 

레니나는 황급히 달아나게 되고 그는 광기와 소마가스에 의해 쓰러지게 됩니다.

정신을 차려서 일어난 존은 광기어려 기억이 잘 안 나는 

지난 밤의 기억을 조금씩 떠올리게 됩니다. 

그는 큰 충격을 먹게 됩니다.

마치 이야고에게 조종당해 자신의 연인 데스데모나를 죽였던 오셀로처럼

존은 문명인들의 조롱에 휩쓸려 레니나를 무참히 죽이려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오셀로와 같이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 죽음을 끝으로 멋진 신세계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세계관은 빈틈 하나 없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말 읽으면 읽을수록 소름 돋아서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들 아시다시피 과도한 기술 발전의 문제점과 회의 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꼭 그렇게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처음에 이 책을 읽고 문명 세계는 행동주의적 학습 방식이고 존은 인지주의적 학습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행동주의적 학습은 외부적 기재로 인한 학습입니다. 전기충격을 주어서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것이죠. 인지주의 학습은 내부적 기재를 활용 하는 것으로 자신의 기반지식을 기반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학습을 의미합니다. 

학습이란 세계를 바라보고 흡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명 세계와 존의 세계는 서로 다른 방식이기 때문에 괴리감을 느낀 존이 고통을 겪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했을때 존 또한 셰익스 피어라는 것을 암기하다시피 했고 

문명 세계도 수면 교육을 통한 지식을 암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기반 지식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를 하는 것이죠. 

다시말해서 모든 사람들은 행동주의에 의해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가지고 인지주의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문명 세계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고 

존 또한 존의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니 

이는 '상대적 다름'일 뿐인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이 글의 주제는 기술적 폐혜를 역설하기 위한 것이고 문명세계를 나쁘다라고 말하는 이분법적 구를 취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읽고 난 후의 생각은 존은 '수병'이 아니었을까?입니다.

존은 그저 다른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도 향수병이라는 것을 겪습니다. 

내가 살던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거나 이민을 가게 되었을 때

 그 나라의 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가 않죠.

음식부터 시작해서 옷, 라이프 스타일까지 그로부터 오는 우울증 때문에 귀국을 하는 사람도 정말로 많은게 현실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과도한 기술발전의 문제점만을 지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혹시 존은 자기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고통, 즉 향수병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