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작품 제목 정하기 - misul jagpum jemog jeonghagi

[현대미술 따라잡기]
제목 짓기는 창작의 핵심 요소

유진상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미술이론

 

르네 마그리트, ‘듣는 방’(Chambre d’ ecoute).
미술 작품 제목 정하기 - misul jagpum jemog jeonghagi

현대미술에서 제목이 갖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대미술 이전 시기의 제목은 작품에 드러난 주제를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목이 색채나 형태, 그림의 주제, 재료 등에 못지않게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부터다. 대표적인 작가는 마르셀 뒤샹으로, 그는 의도적으로 작품의 내용과 무관한 제목들을 붙인 최초의 작가였다.

개념미술의 효시라고도 할 수 있는 ‘유명론적 회화(nominalist painting)’ 중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어낸 그에게 단어는 중요한 시각적 요소다. 그러므로 ‘레디메이드’에는 ‘단어’도 포함된다. 제목 혹은 그림에 들어가는 소재로 사용될 단어를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라루스 사전(프랑스에서 가장 일반적인 프랑스어 사전)을 집어 들고 ‘추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단어를 베껴 쓴다. 즉 그것들은 구체적인 참조 내용이 없는 단어들이어야 한다.” 이렇게 선택된 단어들로 이루어진 작품 제목들 중에는 ‘재채기를 하세요, 르로즈 셀라비’ ‘너는 나를’ ‘정조의 모서리’처럼 그림과 상관없이도 강한 연상을 유도하는 것들이 있다. 그는 제목이란 ‘보이지 않는 색채’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로는 르네 마그리트가 있는데, 그의 대표작인 ‘듣는 방’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인간의 조건’ 등은 작품의 시각적 요소와 제목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제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제목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존 웰치만(John C. Welchman)은 주요한 시각적 요소로서 제목의 대두가 19세기 말에 이미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1880년대 화가인 알폰스 알라이스를 예로 든다. 이 작가의 작품 중 온통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모노크롬 회화가 있는데, 이 작품의 제목은 ‘(북극광 효과가 있는) 홍해 해변에서 중풍기가 있는 추기경에 의한 토마토 수확’이다. 이런 식의 유머러스한 제목 붙이기는 1960~70년대에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현대미술 경향의 특징적인 면들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제목 짓기가 창작의 핵심 부분이 된 것이다.   (끝)

 

미술 작품 제목 정하기 - misul jagpum jemog jeonghagi

미술 작품 제목 정하기 - misul jagpum jemog jeonghagi

작가가 한 폭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산고(産苦)에 비견하고, 그런 고통 이후에 만들어진 작품 탄생의 기쁨을 출산(出産)에 비유한다. 산고와 출산의 과정을 거쳐 태어난 작품은 작가가 지어준 이름으로 세상에 선보인다.

작품 제목은 작업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진 개별 창작물에 붙여진 고유한 이름이다. 이렇게 붙여진 이름은 특정한 작품을 ‘지칭’함으로써 이를 다른 작품으로부터 ‘구별’ 짓게 한다. 이러한 ‘지칭’과 ‘구별’은 제목이 고유명사로서 인식하는 기본적인 두 가지 기능과 역할을 전제하고 있다. 즉, ‘지칭’에 해당하는 하나의 일면을 살펴보면, 관람자가 작품 제목에 의존하여 미미한 정보라도 얻으려는 경향이 이에 해당한다. 감상자가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작가에 의해 주어진 제목이 일차적인 정보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작품 제목은 단순히 특정 작품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수용미학적 관점에서 볼 때, 감상자의 사유(思惟)를 일방적으로 유도하고 지시하는 경향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에 이름을 붙여주는 순간, 이미지가 생긴다. 이후 작품은 그 이름의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예를 들면, 작품에 고뇌라는 제목을 붙였다면 고통스러운 형상이 아닌데도 관람자는 제목만 보고 우울함을 그림 내용에서 탐색하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작품명을 말하는 순간 작가 고흐를 떠올린다. 또 마그리트의 작품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품은 파이프를 고전주의 양식에 따라 정확한 형을 재현해냈다. 하지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는 텍스트를 배치하면서 역설적인 의미를 갖게 한다. 따라서 텍스트와 이미지는 상호작용 또는 반작용하는 관계로 그 힘을 갖게 된다. 이처럼 작품의 이름은 감상자가 작품을 감상할 때 직접 또는 간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사실적인 묘사를 기반으로 하는 풍경화, 정물화, 인물화 등 형상이 뚜렷한 구상화(具象畵)는 제목에 의존하지 않아도 작품을 감상하는데 별 부담이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세부 정보 없이 스스로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큰 어려움을 못 느낀다. 그 이유는 이미지를 스캔하여 스스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형상이 있는 그림을 감상할 때는 스토리텔링 즉, 그림 속의 이미지를 인식하고 내용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추리하며, 그림의 내용과 형식이라는 것을 이분해서 그 관계를 살펴보면 된다. 그리고 그림 속의 느낌을 찾아서 작가의 시선과 감성을 내면화하여 작품을 읽어내면 큰 부담 없이 작품을 소화할 수 있다.

한편 추상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은 관람자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제목이 없으면 감상자는 자유로움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안개가 자욱한 길을 가는 것처럼 묘연함’을 느끼는 경향이 의외로 많다. 미술에 조예(造詣)가 깊지 않은 보통 일반인들은 추상화는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고, 화면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난감해한다. 그러면서 작품을 대충 훑어보고 지나친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추상화(抽象畵)란 사물의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는 조형 작업으로 다분히 철학적이며 개념적이다. 추상표현주의는 형(形)을 파괴하고 해체하면서 독자적인 방향성을 갖는다. 또한 표현하고자 하는 제재(題材)로부터 핵심적인 요소를 뽑아내어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을 담아 표출된 결과물이 추상화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그림을 그릴 때, 대상의 겉모습보다 본질을 중시하면서 형태를 단순화하거나 생략한다. 이를테면 제재(題材)가 품고 있는 본질을 추출하여 마음속으로 내면화하여 작가의 주관적인 느낌을 드러내기 위해 선과 색의 순수성이나 자율성을 찾아 나서는 작업이다.

추상화는 무의미한 것처럼 보여도,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림 속으로 풍덩 빠져 보면 생각보다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채소 중 깨는 깻잎을 먹을 때도 향이 진하고, 씨앗을 볶아 깨소금을 만들어 먹을 때도 역시 고소한 맛이 혀를 즐겁게 한다. 더 나아가 깨를 볶아 원액을 추출한 참기름은 더 고소하고 미감을 돋군다. 이렇듯 추상화도 정제된 조형의 본질을 취하면 깊은 느낌의 속성을 맛볼 수 있다.

미술 작품 제목 정하기 - misul jagpum jemog jeongh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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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 오성만

우리는 미술관에서 ‘무제(無題)’라는 명제(命題)를 마주할 때가 있다. 말 그대로 작품에 이름이 없다는 뜻이다. 작품에 제목을 부치는 것이 예의(禮儀)일 수도 있고, 제목을 달지 않는 것도 관람자에 대한 작가의 배려라 할 수 있다. 예컨대 특별한 의도를 내비치길 원치 않음이 작가의 생각이라면, 무제라고 명명하기를 작가는 주저하지 않는다. 즉, 감상자에게 어떠한 맥락도 주지 않고, 그냥 마음에 와닿는 대로 느끼고, 해석하고, 즐기라는 의미에서 관람의 전권을 관람자에게 위임하는 경우다. 말하자면 작품에 '제목'을 제시함으로써 감상자의 생각을 '한정된' 틀에 가두어 제목이 감상자를 교묘하게 조종할 수 있고, 순수한 감정이입(感情移入)에 대한 상당한 부분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제’라는 제목의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대개 현대 미술 중에서도 이른바, ‘모더니즘’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현대 회화라고 분류되는 ‘추상화’ 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그림을 감상할 때 중요한 것은 깊이 있게 보고, 보이지 않는 내면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본다는 것'은 단순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보는 사람의 삶을 통한 총체적 경험과 지식 정보를 투과해서 인식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어떤 사물을 볼 때,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을 보는 관점이 남달라야 한다. 그 관점을 한번 살펴보자.

형식만 보지 않고 내용을 본다. 부분만 보지 않고 전체를 본다. 외형만 보지 않고 내부를 본다. 정위치에서만 보지 말고 거꾸로 뒤집어본다. 스쳐 지나듯이 보지 말고 오랫동안 관찰하고 탐색하면서 보아야 한다. 특히 작품감상에 있어서 시각(視覺), 청각(聽覺),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 등 다섯까지 감각(感覺) 기능을 작품 안으로 끌고 들어가 유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숲만 보지 말고 나무도 보아야 하며, 또 나무만 보지 말고 숲도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나무를 보되 땅속에 보이지 않는 뿌리까지 보아야 한다. 가시적인 영역의 것만 보지 말고, 불가시적인 영역까지 보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발견과 본질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할 줄 알고 그 깊이를 읽어내는 마음이 바로 그림을 보는 영혼의 힘이다.

이처럼 다양한 예가 존재함으로 작품 '제목'이 반드시 있고 없는 것에 구애받지 말고, 이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살펴보면서 제목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우리가 자유롭게 미술을 즐기면 된다. 즉, 미술은 정답이 없으므로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작품이 품고 있는 맛과 멋을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만큼 느끼면 된다. 또한 작품 제목이 무제(無題)로 명명되어 제목이 없다면, 관람자 스스로 이름을 달아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오성만 (작가/현대미술)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졸업(학사)

국립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미술교육전공) 졸업(석사)

미술관 기획초대전 및 단체전 260여회 참가(국내외)

경기 미술인상 수상

용인 미술협회 회장 역임

용인시 미술장식품 심의 위원 역임

경기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역임

검인정 고등학교용 미술교과서 집필(미진사)

개인전 18회 개최(국내외)

현재 - 한국미협 회원. 용인미협 회원

홈페이지 - http://blog.artmusee.com/ohseong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