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NSW 뜻 - naiki NSW tteus

공식적인 읽는 방법은 "나이키"지만 의외로 "나이크"로 읽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대체로 유럽에서 나이크로 읽는 경향이 있고 특히 영국은 영어의 종주국 이라는 자존심 때문인지 나이크로 읽는 사람들이 상당수이며 오히려 이에 의문을 표하면 Bike도 바이키라고 읽을 거냐고 묻는 식으로 반박한다.

  • 미국 공홈에도 온라인 스토어가 있으며, 델타 항공의 스카이마일스 쇼핑이나 아메리칸 항공의 어드밴티지 e-쇼핑 사이트를 경유하여 마일리지도 적립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온라인 스토어가 한국 카드를 거의 안 받아 준다는 것이다. 대개 나이키 공홈의 온라인 스토어에서 구매하려면 카드를 직접 이용하기 어려워서 페이팔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아니면 피니시라인 같은 사이트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29] 한국 온라인스토어는 결제가 잘만 되므로 걱정 안해도 된다.

  • 여느 글로벌 신발기업과 마찬가지로 생산은 OEM 업체들에게 하청을 주고 있는데 한국의 태광실업이 전체 물량의 10%를 책임지며 나이키 내 OEM 3위 안에 든다고 한다.

  • 시그니처 제품들은 스포츠 스타와 손을 잡고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비스포츠 스타와도 협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에미넴과 콜라보하였고, 2010년대 초반에는 칸예 웨스트가 직접 디자인한 콜라보 스니커의 레전드 AIR YEEZY를 남겼다. AIR YEEZY는 그동안 나이키에서 해온 방식[30]과는 다르게 칸예웨스트가 직접 디자인한 스니커라는 점이다.[31] 이는 당연히 성공할 수 밖에 없었고, 신발의 가치마저 바꿔놓았다. AIR YEEZY의 성공 이후 칸예 웨스트는 마이클 조던처럼 지분의 일부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나이키에서 거절당했고, 이후 경쟁사 아디다스와 2조가 넘는 금액에 손을 잡았다. 그가 떠나고 여러 스타들과 협업 했으나 칸예 만큼의 파급력이 없었는데 마침내 2018년 래퍼 트래비스 스캇과 내놓은 신발들이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스니커 시장을 다시 한 번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후 비정기적으로 그의 레이블인 CACTUS JACK의 이름으로 스니커를 출시하고 있다.

  • 2015년 아디다스가 전세계 6개 도시(뉴욕, LA, 런던, 파리, 상하이, 도쿄) 공략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을 밝히자, 이에 자극받았는지 2017년 나이키는 상기된 6개 도시에 추가로 6개 도시(서울, 베이징, 베를린, 바르셀로나, 밀라노, 멕시코시티)를 더해 도합 12개 도시를 중점 판매 거점 도시로 선정하기도 했다.

  • 한국의 래퍼 Beenzino는 다이나믹 듀오와 함께 나이키 찬양가인 <Nike Shoes>를 만들었다.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여자를 찬양하는 내용이며, 평소 빈지노는 나이키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후 빈지노는 영향력 있는 인물로서 나이키의 협찬을 받고 있다.[* 나이키와 콜라보로 제작된 <The Fearless Ones>에도 참여했다. 또한 빈지노의 의류기업인 IAB STUDIO가 나이키와 종종 협업하고 있다.

  • 애플 CEO 팀 쿡이 나이키의 사외이사를 겸임하고 있는데 이 영향인지 나이키와 애플의 합작라인인 'Nike+iPod'도 있다. 아이팟 없이 Nike+ 기능을 쓸 수 있는 제품도 나왔다고 한다. 아이팟이 시들해진 지금은 애플 워치 시리즈에 나이키 에디션을 추가해 판매 중이다.

  • 의외로 일본의 레이싱 시뮬레이션 게임인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와 연관이 꽤 있다. 2004년 그란투리스모 4 시절에서는 나이키와 그란투리스모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한정판 패키지가 출시되기도 했었으며,[32] 게임 내에서도 나이키가 직접 디자인한 Nike One 2022라는 미래지향적 컨셉트카를 수록. 그란투리스모 6에서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그란투리스모를 위한 차를 디자인해주는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 Vision Gran Turismo에 자동차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메이커로는 유일하게 컨셉트카 발표 예정이다.[33]

  • 창립자 필 나이트의 아들 트래비스 나이트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쿠보와 전설의 악기와 범블비가 있다.

  • 2019년 2월 20일에 미국 농구선수 자이언 윌리엄슨의 PG 시리즈 농구화 [34]가 경기 시작하자마자 찢어지는 바람에 넘어져서 경미한 무릎 부상을 입었다. 게다가 해당 선수가 속한 팀이 라이벌전에 져서 나이키는 전방위적으로 욕을 엄청 먹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이언 윌리엄슨 본인이 같은 신발을 오래 자주 착용하여 생겨서 일어났다고 밝혀졌다. 이후 자이언은 카이리 어빙 시그니처 농구화를 신었고, NBA 및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입성 후, 에어 조던과의 신인 역대 최대 계약을 맺었다. 정리글 영상

  • Nike Run Club이라는 러닝 보조 어플리케이션[35]과 Nike Training이라는 운동 보조 어플리케이션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나이키라는 명칭과 나이키 로고를 붙인 것만으로 광고 효과가 충분하다 판단했는지 무료 앱임에도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오는 신상품 안내를 제외하면 추가 광고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 쇼미더머니5 상 등급 참가자들의 싸이퍼에서 슈퍼비가 '나이키'를 네 번 말한 후 '방금 내 가사처럼 너넨 다 편집'이라는 랩을 했다. 이는 쇼미더머니가 아디다스의 협찬을 받는다는 점에서 경쟁 신발 회사를 언급하면 편집될 것임을 노린 것이다.

  • 과거 한국 TV 방송에서 출연자가 '나이키'를 외치는 것은 해당 장면을 편집해달라는 은어였다. 방송법 상 직접적인 상표를 노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발음이 짧고 편한 상표명인 나이키를 주로 외쳐서 해당 장면이 일부러 편집되도록 만들었다. #.

  • 한때 랜스 암스트롱이 현역일때만 해도 사이클 분야에 진출해있었으나 지금은 철수했다.

  • 나이키 '조던 브랜드' 회장이 10대 시절 살인죄로 복역했던 어두운 과거를 공개했다.링크

  • 나이키의 신발들은 발볼이 넓은 한국인의 족형과 대체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신발들이 마이클 조던을 위시한 흑인 스포츠 선수들의 족형을 많이 따르고 있기 때문에 볼이 타이트하고 발등이 낮은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아디다스나 아식스 같은 다른 브랜드의 신발들에 비해 5~10mm는 크게 신는 사람들이 많다.

  • QC가 나쁘기로 악명높아서 나이키 신발들의 경우 제품 퀄리티 차이가 상당히 심하다. 일부 라인은 다른 브랜드들의 비슷한 가격대 신발들과 비교해보면 마감이나 재질 면에서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고, 아예 퀄리티가 나쁜 제품이 정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평균적인 제품 퀄리티가 좋지 않아서 많은 비판을 받는다. 사실상 브랜드의 감성으로 구입하는 신발로 봐야 할 지경이다.

  • 인기가 많은 브랜드인 만큼 다른 럭셔리 브랜드의 신발만큼이나 가품이 매우 많다. 한정 응모로 발매되는 제품은 물론, 물량이 부족한 제품들은 귀신같이 가품이 쏟아지며, 오픈마켓이나 소셜커머스에서 판매하는 제품 중에서 인기 모델인데 사이즈가 꽉 차있는 경우, 정가보다 약간 가격이 저렴한 경우에는 무조건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정품임을 증명하는 소위 나코탭이라고 불리는 주황색 나이키 코리아 태그 역시 가품 제작자들이 쉽게 만들어서 붙이기 때문에 완전한 구분 수단은 아니다.

    심지어는 상술했듯이 나이키의 QC가 좋은 편이 아닌데다 가품 제조에 상당한 공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품보다 오히려 퀄리티가 좋은 경우도 있어서 일반인이 정-가품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따라서 애초에 공식 홈페이지나 매장에서 구입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며, 인터넷 쇼핑몰 역시 떴다방 같은 곳이 아닌, 영업한지 오래된 사이트나 전문 멀티샵, 백화점 등의 인터넷 쇼핑몰에 입점한 제품들도 정품으로 볼 수 있다. 다만, 21년도에는 백화점몰에서 가품이 유통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게 되기도 했다.

  • 배트맨 실사영화 시리즈 중 모던 에이지 시리즈에서도 나이키가 PPL을 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배트맨(1989)과 배트맨 리턴즈에 협찬을 한 것인데, 영화에서 발견하기 어렵기 하지만, 사실 배트맨이 신고 다니는 장화의 정체가 바로 나이키에서 생산한 운동화이다. 배트맨(1989)에서는 나이키 에어 트레이너 III이고, 배트맨 리턴즈에서는 에어 조던 VI인데, 이 운동화를 검게 칠하고, 윗부분에 장화 목을 접착해서 만든 것이다. 나이키에서 PPL을 넣으려고 했는데, 1940년대 풍인 어두컴컴한 분위기인 영화에 나이키 운동화가 어울릴 만한 곳을 못 찾다가 끝내 검게 칠해서 배트맨에게 신기기로 했다고 하며 덕분에 마이클 키튼은 촬영 내내 발이 편해서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워낙 시커먼 색이라서 잘 안 보일 뿐, 소품 사진을 자세히 보면 제품 디자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36]

  • 축구 유니폼 디자인은 경쟁사인 아디다스에 비해 매우 형편없고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도 나이키랑 굉장히 오랫동안 계약을 맺고 있는데 재계약 기사가 뜰때마다 매우 부정적인 반응 뿐이다.[37]


[1] 1971년 5월 30일 나이키로 기업명 변경.[2] 단순히 스포츠 용품 브랜드 중 1위가 아니라 전세계 어페럴 브랜드 1위의 가치를 지녔다. 2019년 브랜드 파이낸스가 조사한 어패럴 브랜드 가치 조사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출처. 2019년 포브스가 선정한 기업 가치 순위에도 패션 브랜드 중 루이비통과 함께 20위 안에 들었다. 출처.[3] 드물긴 하나, 이 로고와 특유의 필기체 글꼴도 아주 가끔씩 빈티지 나이키 슈즈에 각인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다.[4] 현재는 주로 NIKE 로고가 안 달린 버전으로 쓰지만 이 버전도 사용 빈도가 적지 않다. 스포츠, 전문 기능성 제품은 스우시 로고만 있고, 캐주얼 제품들은 사진처럼 나이키와 스우시 로고가 같이 들어가 있다. 축구 유니폼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5] 물론 요즘은 파리 생제르망 FC와 같이 에어 조던과 콜라보해 스우시 대신 조던 로고를 넣는다거나, 레트로한 느낌을 내기 위해 'NIKE' 문구가 들어간 스우시를 넣는 경우도 있다.[6] 심지어 처음부터 그래픽 디자인을 지망한 게 아니라 저널리즘 공부 도중 학점 채우기용으로 디자인 수업을 듣다가 전과했다고 한다.[7] 회사가 작았을땐 전담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70년대 중반부터 나이키가 외주를 주면서 데이비슨 역시 나이키 일 말고 다른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8] 2019년까지 나이키에서 쓰이던 슬로건. 한국어로는 '그냥 해.'[9] 2020년의 나이키의 슬로건으로 전 세계가 스포츠로 다른 사람들간의 벽을 뛰어넘어 하나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10] 2021년의 나이키의 슬로건으로 기존의 승리와 성공에만 집착하는 강압적이고 부조리한 스포츠의 관습을 부수고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만들어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11] 2022년의 나이키의 슬로건으로 어느 누구 스포츠에서 뒤떨어지는 일 없이 자신이 원하는 스포츠를 찾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12] '나이키' 라는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 에 등장하는 승리의 여신에서 따온 것이다.[13] 오니츠카 타이거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신발이 바로 코르테즈다. 자동차 업계로 본다면 아식스는 미쓰비시, 나이키는 현대자동차 정도 된다.[14] 이후 나이키 재팬도 닛쇼이와이와의 합작으로 설립했다.[15] 아디다스의 미국 내 총판을 맡고 있던 미국인들로부터 판매권을 인수하는데 자금을 무리하게 동원하였다.[16] 아시아의 모 국가에서 실수로 장갑용의 가죽으로 신발을 생산하여 납품한 것이었다. 참고로 그 모 국가는 한국일 가능성이 높다. 1970~1980년대 화승산업에서 나이키에 스포츠화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국내 나이키 총판을 맡기도 했지만, 1986년 나이키와의 계약 종료로 르까프 브랜드를 런칭했다. 여기에는 나이키 뿐만 아니라 리복을 위시한 타 브랜드에도 신발을 납품하려는 화승의 계획과 자사에만 독점 납품하기를 원했던 나이키와의 의견 대립이 원인이였다는 설이 있다. 참고로 그 시절 세계 최대의 스포츠화 생산기지는 한국이였다. 산업화 시대 한국 제 가발과 신발이 전세계 공급의 60% 정도를 차지했다고 한다. 전세계인들이 쓴 신발이나 가발의 절반은 한국에서 제작된 제품이었던 것. 물론 그 뒤에는 단가와 납기를 맞추기 위한 어마어마한 노동 착취가 있었다.[17] 나이키는 아디다스를 역전했지만 80년대 중후반부에 리복에게 역전당했으며, 1989년 당시 리복의 매출은 18.2억 달러, 나이키는 17.1억 달러로 앞서고 있었다고 한다. https://www.retaildive.com/news/reebok-was-meant-to-be-a-nike-killer-how-the-brand-lost-its-no-1-spot-adidas-sale-of-reebok/603733/ 또한 1980년대만 해도 나이키와 리복, 아디다스와 컨버스가 경쟁을 하던 구도였으며, 컨버스는 당시 NBA에서 연봉을 많이 받는 최고 인기선수였던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를 동시에 계약하기도 했다.(1984년에 두 선수가 같이 함께 컨버스 광고를 찍다 친해졌다는 건 유명한 얘기다. 유튜브에도 영상이 남아있다) 1980년 당시 나이키가 한때 업계 1위를 차지하긴 했으나, 운동화 시장의 절반을 집어삼켰다는 건 과장이다. 1990년대 초중반까지 나이키와 리복은 팽팽했으나, 1990년대가 꺾이고 나이키가 독주, 아디다스가 열심히 따라가는 사이 리복은 지지부진하며 완전히 둘에 비해 뒤쳐지게 된다.[18] 나이키는 1979년에 미국 런닝화 시장 지분의 절반을 차지했다. 1970, 1980년대 당시 나이키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성장하며 아디다스, 컨버스처럼 기존의 강자들을 앞서나가던 시기였지, 1990년대 중반 이후처럼 절대강자가 아니었다.[19] 별다른 문구 없이 흘러가는 시간만을 표시했음에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광고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광고계에서 엄청난 주목도를 받았다.[20]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호나우지뉴,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반페르시, 보얀 키르키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아르센 벵거등 당대 최정상 축구스타와 감독들이 참여하였다.[21] BIGBANG의 태양, 2NE1의 산다라 박, 축구선수 박지성, 테니스 선수 정현이 카메오 출연.[22] 후에 에어 조던 29에 프린트되어 나왔다.[23] 마이클 조던이 아디다스의 팬이었고, 계약을 맺을 당시 나이키보다 아디다스와 계약하기를 고대했던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84년 당시 나이키의 주식은 폭락을 거듭했었지만 조던과의 계약 후 최초의 시그니쳐 개념을 가진 Air Jordan이란 메이커가 대박을 친 후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상황이 역전됬으며 또 1990년대 초반, 즉 마이클 조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당시에는 몇몇 사람들이 Air Jordan을 나이키에서 독립시켜 독자적 브랜드로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만약 그랬다면, Air Jordan은 세계 3위의 신발 제조 회사가 되었을 것이다.[24] 번역하면 '우리 딸들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25] 즉, 나이키는 보수주의자나 시골 공화당원, 트럼프 지지자는 필요없다는 것. 또한 사회적 이슈로 광고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펩시나 스타벅스와 달리 예전부터 나이키는 '반항아'적인 광고를 해왔으며, 이러한 광고가 나이키의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시켜 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26] 실제로 4천 3백만 달러 가치의 SNS 버즈량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27] 유명한 Think different 광고로 Apple을 다시 전성기로 회귀시킨 스티브 잡스도 칭찬했었다.[28] 조던이 당시 신었던 모델은 에어 쉽 모델이었다.[29] 그러나 피니시라인은 서로 치수가 안 맞는 신발을 보내는 경우가 있어 "막장 라인"으로 불린다. 실제로는 물건을 직구로 구매하고 받아놓고선 못 받았다고 카드 결제를 취소해버리고 물건도 보내지 않는 블랙컨슈머가 많아서 안 받는다는 말이 있다. 다른 풋 계열은 잘 받는 중이고 변팔만 잘되면 미국 공홈에서 충분히 한국카드 사용 가능하다.[30] 나이키의 베스트셀러 제품을 여러 컬러웨이나 소재를 바꿔 재창조[31] 실제로 칸예웨스트는 패션계 입문 전부터 펜디의 인턴사원으로 일하며 디자인을 배웠다.[32] 나이키 디자인의 드라이빙 슈즈와 티셔츠가 들어있는 알루미늄 케이스의 패키지며 국내에는 들어오지 않았다.[33] 사실 에어 조던 역시 예정하고 있지만 나이키 산하의 조직이다.[34] 폴 조지 시그니처[35] 상술한 애플 워치 나이키 에디션에 나이키 페이스와 기본적으로 설치된다.[36] 심지어 배트맨 리턴즈의 에어 조던같은 경우에는 발바닥에 조던 마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른바 걸을 때마다 땅에 마이클 조던 발자국을 남기는 배트맨이었다.[37] 사실 이건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수밖에 없는게 디자인도 못하고 재질도 2018월드컵 까지는 한단계 아래등급으로 유니폼을 제공했다. 근데 이건 조중연이 8년 호구 계약을 맺은게 크긴 컸다